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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인왕제색도’ ‘압구정’

정선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인왕제색도’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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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압구정’
인 간의 마음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동시에 변하지 않기도 합니다. 마음의 측면에서 우리와 더 가까운 화가는 동양화가일까, 아니면 서양화가일까를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미술 작품에 담긴 마음을 동양의 마음과 서양의 마음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한국인의 마음은 어떤 걸까요.

한국인의 마음을 말할 때, 어떤 이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유교로부터 영향 받은 마음을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교의 핵심 교리는 ‘삼강오륜’이지요. 무엇보다 충(忠)과 효(孝)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연에 대한 태도인 듯합니다. 서양의 경우, 근대 이후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양에서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한국의 자연을 그린 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화가로 저는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을 꼽고 싶습니다. 20세기에 활동한 이상범과 변관식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우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선구적으로 그린 정선의 작품은 새삼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그 안에 깃든 역사의 의미를 돌아보게 합니다.

생활 속으로 들어온 예술

널리 알려졌듯이 정선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개척자이자 완성자였습니다. 그는 중국풍의 관념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산하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정선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정선을 오랫동안 연구한 최완수 선생에 따르면, 정선은 우리 산과 바다, 들과 하천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그림 기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정선의 방법은 북방 화법의 기법인 ‘선묘’와 남방 화법의 기법인 ‘묵법’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것이었습니다. 바위봉우리로 이뤄진 골산(骨山)은 선묘로, 수목이 우거진 토산(土山)은 묵법으로 표현한 정선은 작품 안에서 이 두 가지 산의 모습을 조화롭게 담아냈다고 합니다.



정선은 한양, 금강산, 관동지방 등을 즐겨 그렸습니다. 특히 그가 그린 조선 왕조의 수도 한양의 풍경은 현재와 비교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정선이 주로 활동한 시기는 영조 시대인데, 지난 300년 동안 변화된 점도 있고 변화되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장구한 자연의 시간 속에서 300년은 짧지만, 근대화가 가져온 빠른 도시화는 서울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1751)는 정선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금강전도’ ‘박연폭포’ ‘인왕제색도’를 정선의 3대 명작으로 꼽는다면, 유홍준 선생은 이 가운데서도 ‘인왕제색도’가 으뜸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저 역시 동감합니다. 생애 말년에 그린 이 작품은 한양 한가운데 놓인 인왕산의 바위봉우리가 비안개가 걷히며 드러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담았습니다. 국보 제216호인 이 그림은 현재 리움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정선이 바위나 소나무를 그리는 데 매우 섬세한 기법을 활용했다는 데 주목합니다. 이런 기법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우리 산의 당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서울 시내에서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인왕산은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닙니다. 서울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 들어온 산입니다. 작품 속 인왕산 큰 바위는 당당하고 굳건한 정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숲과 나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합니다.

‘인왕제색도’는 일종의 한국적 사실주의 풍경화입니다. 사실주의 회화가 주는 감동의 원천은 우리 삶과 매우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광화문광장에서 문득 인왕산을 바라봤을 때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인왕제색도’를 떠올리고, 서울의 역사를 돌아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 생활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지요. 생활 밖에 있던 예술이 생활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지점입니다.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

인왕산 아래에 있는 동네를 흔히 ‘서촌’이라고 합니다.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서촌 어디서든 고개를 들면 훤칠한 인왕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서촌을 무척 좋아합니다. 서촌을 거닐며 사색에 잠겨 있노라면 어떤 감동을 느끼곤 하는데,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한 이유라면, 다른 이유는 서촌에 있는 누상동에 있습니다.

사직공원 아래에 있는 필운대길을 좇아 올라가면 누상동이 나옵니다. 누상동은 일제강점기에 시인 윤동주가 하숙한 동네입니다. 당시 연희전문을 다니던 윤동주는 1941년 5월부터 9월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한옥이었는데, 지금은 연립주택이 들어섰습니다. 몇 해 전 처음 그 골목을 찾아갔을 때, 바로 여기서 윤동주가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등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윤동주만큼 우리 국민에게 큰 공감과 깊은 감동을 동시에 준 시인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누상동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옵니다. 윤동주가 저녁 때 산책하면서 시상(詩想)을 가다듬던 곳이라 해서 종로구가 조성한 길입니다. 언덕길에는 윤동주문학관이 들어섰는데, 가까이는 인왕산과 백악산이, 멀리는 시내가 바라보이는 전망이 괜찮은 곳입니다. 길지 않은 언덕길을 걸어가면서 아래 서촌을 굽어보면 마치 역사 속으로 성큼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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