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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 | ‘한반도의 봄’ 기회 혹은 함정 |

北이 파놓은 5가지 덫

“선제타격 막고 시간 벌려는 사기극일 수도”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北이 파놓은 5가지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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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한미군·美핵우산 제거 요구할 것
    ● ‘체제 보장’ ‘비핵화 이행’ 先後가 중요
    ● 北이 준 선물은 한미군사훈련뿐?
    ● 南이 ‘보증’ 선 대화… 탈 나면 비난 쏠려
    ● ‘통 큰 결심’이라면 大전환 시작
3월 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3월 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반도에 불어온 봄기운이 느껴지는 ‘北 사실상 ‘핵무기포기’ 용의 밝혀’ 제하 기사를 요약해보자. 

①핵무기 보유로 한반도에 긴장의 파고를 높이던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를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②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직접 언급하면서 “북한은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③비핵화에 대한 이 같은 언급이 김 위원장의 입을 통해서는 처음 나온 데다 그것도 남측 고위 정부 인사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였다는 점에서 한층 무게가 실린다. ④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한 개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 전제로 ‘체제 안전 보장이 관철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으나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만 약속받는다면 핵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한반도에 ‘운명의 봄’이 도래했다. 4월 남북정상회담·5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됐다. 핵동결→사찰→비핵화 과정에는 지뢰밭이 가득하나 ‘2018년 봄’은 한반도 정세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다. 3월 9일 미국 CNN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을 ‘너무 놀라워 가늠하기 힘든(mind-boggling) 정상회담’이라고 평했다. 또한 비핵화를 논하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공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여러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 본 듯한 장면

지난해만 해도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트럼프 대통령)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조선중앙TV)이라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북한과 미국이 만난다. 그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문제가 포함된 정상회담에 나선다. 

한반도에 봄은 왔는가. 속단하긴 이르다. 핵동결→사찰→비핵화 과정에는 난제가 가득하다. 1994년 제네바 합의(북·미 기본 핵 합의),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2007년 ‘2·13 합의’ ‘10·3 합의’로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 마련), 2012년 2·29 합의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북한의 태도가 앞선 합의 때와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한반도 정세의 극전 전환에는 문재인 정부의 중재 외교 역할이 컸다.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미국의 대북정책도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데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손을 들고 나온 것이라면 한반도는 역사적 대전환에 돌입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챘을 것이다. 앞서 요약한 ‘北 사실상 ‘핵무기포기’ 용의 밝혀’ 기사에서 ‘김 위원장’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로 2005년 6월 18일자 연합뉴스 기사다. 김정일이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내놓은 발언을 보도한 것이다. 김정일-정동영 면담은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졌으나 6자회담은 실패했다. 

김정은이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그간 행태 탓에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과거에 본 듯한 장면이 압축돼 ‘속도감 있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3월 6일 발표한 언론 발표문은 다음과 같다.

‘동어 반복’이거나 ‘전제 조건’ 달았거나

①남과 북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 실무협의를 진행해나가기로 했다. ②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을 설치하기로 했으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키로 했다. ③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④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 ⑤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와 함께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 ⑥북측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 

적대적 상대와 협상할 때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야 한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이나 2005년 6월 17일 김정일의 발언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핵무장 완성을 위한 압박 국면 해소와 시간 벌기, 주한미군 철수와 연동된 핵 군축 협상을 시도하는 차원에서 전술적 변화를 가져온 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합의문을 액면 그대로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것으로 비치지만 북한은 동어 반복이거나 기존의 견해에서 표현을 바꿨거나 전제 조건을 달았다. 온갖 논란과 신경전이 벌어질 수 있는 ‘덫’이 적지 않다. 언제든 부서질 가능성이 있는 불안한 합의인 것이다. 

첫째,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비핵화의 전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기존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동어 반복이라고 하겠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고수하면 핵 보유는 정당하다’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김정일도 2005년 “핵무기를 한 개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 전제로 ‘체제 안전 보장이 관철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은 한미군사동맹, 한미연합 군사훈련, 대북 제재를 포함한다.

“美핵우산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설전.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설전.

둘째,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점이다. 합의 내용에는 없으나 정의용 실장은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했다. ‘선대의 유훈’은 상용구에 가까운 선언적 표현이다. 김정은도 2016년 성명을 통해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일도 6자회담이 가동되던 시절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여기는 중국이 강조하는 한반도 비핵화도 북한의 그것과 같다.
 
핵무기와 주한미군을 등가(等價)로 여겨온 북한은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체결,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 철폐를 조건으로 요구할 것이다. 또한 북·미 수교와 미국의 대북 무력 불사용 공약을 요구하면서 경제적 보상을 원할 것이다. 체제 보장과 제재 완화를 챙긴 후 비핵화하겠다는 것인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과정을 쪼갤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북한은 제재 완화 등 선(先)보상 후(後) 비핵화를 선호할 것이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이뤄지면 주한미군 철수를 용인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기는 하다. 미국은 비핵화 공약이 없는 동결은 협상 대상이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나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에 쫓겨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게 하고 기왕의 핵무기 일부를 인정하는 핵 동결을 받아들이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ICBM 배치 유예와 비확산, 동결을 중심으로 미국과 대화를 진행하면서 비핵화는 이러저러한 전제 조건이 이뤄진 후 시행하겠다고 나서면 6자회담 때처럼 지루한 협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미 평화협정 및 수교 이후 비핵화하겠다고 밝히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군사적 옵션 시행을 막고 압박 국면을 완화하는 동시에 시간을 버는 것이다. 

셋째,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는 내용은 성과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기존 논리의 연장선일 뿐이다. 핵무기는 미국을 상대로 한 것이지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기왕의 주장의 반복이다. 김정은 지시로 2015년 수립한 ‘통일대전’은 핵무기를 이용해 미군의 증원을 막고 재래 전력을 활용해 한국을 강점하는 게 골자다. 네빌 체임벌린(영국 총리)은 아돌프 히틀러(독일 총통)와 맺은 종이 한 장의 협정문으로 평화를 확신했으나 영국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넷째,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전제 조건을 단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하면 북·미 간 대화의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일정 기간 북한이 도발을 멈춰야 대화에 나선다는 것이었는데 대화를 시작하면 핵·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지 않는 것으로 선후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제재 강화와 군사적 옵션 실행을 막으면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력을 완성하는 게 북한의 의도라면 한국이 중매인으로 나서 시간 벌기를 도와준 꼴이 된다. 

다섯째, 한국이 ‘보증’을 서는 형태로 북·미 대화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2005년 김정일 위원장이 정동영 장관을 통해 북한의 의사를 전했듯 김정은 위원장은 정의용 실장을 통해 미국에 메시지를 전했다. 비핵화와 관련해 전제 조건을 단 북한의 견해가 한국 정부의 ‘보증’을 거쳐 미국에 전달되고, 그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의 제안을 수락한 것에 대한 발표를 정의용 실장에게 맡겼다. 대화가 뒤틀어지거나 탈이 나면 중매인에게 비난이 쏠릴 수도 있으며 미국 내 주전론자(主戰論者)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 대화가 파탄 나면 전쟁 위기가 고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화 파탄 나면 다시 ‘벼랑 끝’

합의 내용에는 없으나 김정은 위원장은 특사단에 “4월부터 예년 수준 훈련이 진행되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한미군사훈련 지속을 ‘이해’했다고 한다. 전직 안보당국 고위 인사는 “한미군사훈련 지속을 받아들인 것도 중재를 맡은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선물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지금껏 언급한 ‘덫’은 남북 간 합의를 ‘최대한 비딱하게’ 해석한 것이다. 김정은은 특사단에 “(미국은) 북한을 정상 국가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 국가(normal state)는 국제법과 국제 규범을 지키는 일반적인 국가를 가리킨다. 김정은이 주고받기 식의 계산이 아니라 비핵화와 정상 국가화라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면 한반도에 봄이 올 것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돌입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후 중국 혹은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이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의 지원, 북·일관계 정상화에 따른 식민지 배상금, 남북 경협 등에 힘입어 북한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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