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링커블’의 서울 맞춤형 차량공유 실험
아파트 및 오피스 입주자끼리 공유 차량 나눠 쓰기
‘세컨드카’ 역할하고, 법인차량 대체하고
“차는 소유가 아닌 소비하는 것…인식 바꾸겠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트리마제 주민 이찬용 씨가 ‘네이비’ 공유 차량 미니 컨트리트맨과 함꼐 포즈를 취했다. [지호영 기자]
택시를 대체하는 우버(Uber)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등 미국 주요 도시에 보급된 ‘겟어라운드(Getaround)’는 차가 필요한 사람과 ‘노는 차’를 가진 사람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미국인이 하루 평균 22시간 동안 자동차를 세워놓는다는 점에 착안해 개시된 이 서비스는 현재 20만 회원을 보유한다. 겟어라운드에 따르면 자신의 차를 공유함으로써 연간 최다 1만 달러(약 1070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블라블라카(BlaBlaCar)’는 일종의 모바일 히치하이킹 서비스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할 때 블라블라카를 통해 매칭된 여정이 같은 여행자를 태워줌으로써 기름 값도 벌고 심심함도 달랠 수 있다. 여행자 입장에선 기차나 버스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이 원하는 스케줄에 맞춰 도시 간 이동을 할 수 있어 유럽 여행 중에 이 서비스를 경험해봤다는 한국인 청년들도 나오고 있다. 2015년 블라블라카의 하루 이용자 수는 미국의 대표적 철도회사인 암트랙의 하루 이용자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유럽 최대 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는 2030년 카셰어링 시장이 전체 자동차 산업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에서는 2025년 미국 전역 대도시 중심가에서 운행되는 자동차의 20%가 이런저런 형태의 카셰어링에 참여한 차량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세계 유수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러한 변화에 얼른 올라타려는 분위기다. 도요타는 우버와 겟어라운드 등에 투자했고, BMW는 자체적으로 카셰어링 사업을 개시했다. 반면 현대차는 최근 택시업계의 반발로 국내 카풀업체 ‘럭시’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였다.
“골라 타는 재미”
캡션을 입력하세요공유 오피스에서 일하며 공유 차량을 즐겨 이용하는 김용현 씨(왼쪽)와 커뮤니티 카셰어링을 지원하는 '네이비' 애플리케이션 화면. [지호영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고급 아파트단지 ‘서울숲트리마제’ 입주민들은 컨시어지(concierge), 호텔식 조식 서비스와 함께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하 주차장에 별도 마련된 ‘네이비’ 구역에는 재규어 XE 2.0, 미니 컨트리맨, BMW 320d 등이 주차돼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테슬라 S90D가 배치됐다. 입주민이라면 누구나 네이비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으로 예약한 뒤 앱이나 입주민 카드로 차 문을 열고 이용하면 된다. 요금은 이용한 시간 및 소모한 연료량에 따라 책정돼 앱에 등록해놓은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된다. 주행거리 요금은 따로 받지 않는다.
트리마제 입주자 이찬용(33) 씨는 자신이 소유한 차가 교통사고로 수리받게 되면서 네이비를 즐겨 이용하기 시작했다. 금융 분야 프리랜서로 주로 집에서 일하는 그는 “외부에서 약속이 있거나 여자 친구를 만날 때 공유 차량을 이용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단지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는 것보다 편리하다는 것이 이씨의 소감. 이유진 링커블 마케팅팀장은 “주로 외국에 거주하며 트리마제에는 연간 한두 달씩만 체류하는 회원들은 렌터카를 장기간 빌리는 대신 필요할 때 잠깐씩 차량을 쓰면 되기 때문에 네이비 서비스를 매우 요긴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공인회계사 김용현(30) 씨는 자신의 차는 집에 놔두고 공유 차량으로 외근을 다닌다. 그의 회사는 공유오피스 위워크 을지로지점(대신파이낸스센터)에 입주해 있고, 링커블은 위워크 전 지점에서 네이비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씨는 오피스 빌딩 지하 주차장에 상주하는 공유 차량의 장점으로 편리함과 비용 절감을 꼽는다.
“제 차로 출퇴근을 하면 대신파이낸스센터에 월 주차료로 30만 원 가까이 내야 합니다. 월 주차료도 아깝지만, 아침저녁으로 막히는 도로에서 운전석에 앉아 시간 보내는 것도 큰 낭비예요. 하지만 고객사 방문 등 외근할 때는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가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사무실 바로 아래 지하 주차장에 공유 차량이 있으니 굳이 제 차를 회사까지 가지고 오지 않아도 돼 좋습니다.”
김씨는 늦은 밤에 퇴근할 때도 종종 공유 차량을 이용한다. 밤이라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다음 날 공유 차량으로 바로 외근을 다녀오곤 한다. 공유 차량 이용에 드는 비용은 월 주차료와 비슷하거나 적은 수준. 다양한 차종을 골고루 체험해볼 수 있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그는 “컨버터블인 BMW 428i가 처음 들어왔을 땐 금요일 밤 퇴근길에 빌려 주말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초단기 렌터카 말고 진짜 카셰어링
공유 차량으로 활용되고 있는 테슬라S90D를 세차하는 모습. 친환경 방문 세차업체 '페달링'이 네이비 차량 세차를 전담한다. [링커블 제공]
2014년 7월 창립된 링커블이 처음부터 커뮤니티 카셰어링 비즈니스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링커블의 첫 서비스는 ‘카키’라는, 중소 렌터카 업체들이 모바일 앱으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솔루션이었다. 2013년 ‘쏘카’ 등장 이후 모바일 기반 초단기 렌터카 서비스가 쏟아졌는데(하루 단위가 아닌 한 시간 단위로도 렌터카를 빌릴 수 있게 됐다), 이에 맞서 오프라인 기반의 중소 렌터카 업체들의 ‘모바일 진출’을 돕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카키 아래 연합한 각 업체들의 서비스가 균질하지 않은 등의 문제로 이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이에 링커블은 모바일 기술을 활용해 전보다 편리하게 자동차를 렌트해주는 서비스에서 탈피해 “진짜 카셰어링을 해보자”고 나섰다.
이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내 차보다 좋고, 깨끗하고, 관리가 잘되는 차량을 내 집 가까이에 두고 내 차처럼 이용할 수 있다면 ‘굳이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수준으로까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링커블은 BMW에서 테슬라까지, 입주자들이 보유한 차량보다 한 단계 고급한 차종을 커뮤니티 내 주차장에 배치한다. 차량 관리 전문업체인 AJ카리안서비스에 정비를, 친환경 방문 세차업체인 페달링에 세차를 맡긴다. 특히 한 번이라도 주행한 차량은 그다음 날 첫 주행 전까지 세차를 마쳐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 대표는 “서울은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커뮤니티 단위의 카셰어링이 확장되기에 매우 좋은 여건”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은 42%에 달한다.
네이비 이용 요금은 ‘택시보다 저렴하게’가 모토다. 요금은 차종별, 이용시간대별 차이가 있는데, BMW 420d를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3시간 이용한다면 1만800원이 부과된다. 주말에는 20% 할증 요금이 붙는다(실제 사용한 기름값 제외). 서울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의 한 주민은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줄 때마다 잠깐씩 사용하는데, 30분 사용하고 2400원을 낸다”며 “택시비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아크리버파크 입주자들은 트리마제를 찾아가 네이비 서비스 현장을 둘러본 뒤 네이비 측에 ‘입점’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유진 팀장은 “공유 차량 서비스를 아파트단지의 가치를 높이는 기반 시설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집·회사 둘 다 공유 차량 있다면?
커뮤니티 단위로 차량을 함께 사용하는 링커블의 실험은 ‘차 한 대쯤은 소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데 성공할 것인가.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에서 공유 차량은 마트 장보기, 자녀 픽업 등 차를 한 대 보유한 가정의 ‘세컨드 카’로 자리 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아파트의 한 여성 주민은 “남편이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해서 한 대 더 살까 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망설였다”며 “공유 차량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힐즈래미안의 한 주민은 공유 차량을 이용해본 뒤 15년 이상 된 차를 처분했다고 한다. “잘 사용하지 않는 낡은 차량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깨끗하게 관리가 잘되는 공유 차량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김용현 씨는 “사무실에 이어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도 공유 차량이 들어오면 굳이 연간 수백만 원의 유지비를 들이며 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이 대표는 “커뮤니티 카셰어링에서 가장 안 좋은 경험은 막상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차량이 없는 것”이라며 “회원들의 이용 패턴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대응하며 공유 차량 실험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interview | 이남수 링커블 대표
“서울 시내 차량 수 줄인다? 목표 아니나 결과 될 것”
“진정한 카셰어링을 하고 싶다”고 누차 강조한다.
“현재 한국은 기존 규제 때문에 라이드셰어링에 제한이 걸려 있고, 쏘카 등 렌터카 기반의 카셰어링만 활성화돼 있다. 그런데 모바일 렌터카 서비스가 진짜 카셰어링일까? 애초에 빌려주기 위한 차를 초단기 시간으로 쪼개 공유하는 것뿐이다. 진정한 카셰어링은 차량의 소유 개념을 뒤흔들어놔야 한다. 갖고 있던 차를 처분해도, 굳이 차를 사지 않아도 기존의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 기반 카셰어링으로 차를 소유하는 것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인식을 바꿔놓겠다.”
그러나 링커블도 렌터카 업체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부동산과는 달리 커뮤니티가 자체적으로 차량을 공동소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차량을 소유하고 그것을 특정 커뮤니티에만 한정해 대여하는 식이다. 앞으로는 커뮤니티가 차량을 구매·소유하고, 우리가 그 차량을 서로 편리하게 공유할 수 있게끔 모바일 솔루션을 제공하는 식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왜 커뮤니티 단위로 공유의 범위를 제한하는가.
“불특정 다수가 차량을 공유하면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 렌터카를 생각해보라. 내가 또 탈 차가 아니니까 조심하며 타지 않는다. 차량 상태는 나빠지고, 차량 공유는 그리 좋은 경험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커뮤니티 단위로 ‘우리끼리’ 타는 차는 다르다. 우리 집, 우리 회사 주차장에 차가 있으니 편리성도 높다. 또 서울은 아파트단지와 오피스 빌딩이 매우 많기 때문에 커뮤니티 단위로 카셰어링을 하기에 최적화된 도시다.”
무인자동차 시대, ‘내 차’가 무슨 의미?
[지호영 기자]
“유휴 자원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공유경제가 바람직하다. 또 차량을 공유하기 점점 더 편리한 세상이 돼가고 있다. 굳이 큰돈을 들여가며 차를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는 곧 무인자동차 시대가 온다. 그때 가서 ‘내 차’가 무슨 의미일까. 자율주행으로 차가 개인 소유물에서 공공재로 변화하는 그 중간에 카셰어링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사업 초기지만 회원들의 차량 소유 개념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는지.
“한 회원이 벤츠 e클래스 리스 견적을 받아놨다가 네이비의 벤츠 E200 AV 차량을 이용해 보고는 리스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매달 200만~300만 원을 리스료로 내느니, 필요할 때 네이비 차량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차량 소유 개념이 많이 약화되리라 본다.” (네이비의 벤츠 E200 AV 차종 이용요금은 평일 기준 시간당 2640원에서 5220원 사이다.)
주거지로는 아파트 단지만 고집하는가.
“그렇진 않다. 원룸 건물 등에서도 문의가 들어온다. 앞으로 셰어하우스, 복합 커뮤니티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 네이비를 론칭할 것이다. 법인차량을 주말에는 직원들의 공유차량으로 활용하는 솔루션을 우리가 제공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올해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으로 네이비를 확장할 계획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같은 차종이라도 그 가격이 한국보다 두 배가량 비싸다. 차량의 공동 소유도 법적으로 가능하다.”
필요할 때 주차장에 남아 있는 공유 차량이 없다면?
“그것이 카셰어링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경험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유 차량 대수를 늘릴 순 없기 때문에 면밀하게 수요 패턴을 들여다보고 있다. 커뮤니티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100~200가구당 10대가 있으면 되는 것 같다.”
서울 시내 차량 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인가.
“목표라기보다는 결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