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보 플랫폼 축적 261만 건 데이터 활용
청년의 중소기업 인식 알아보니…
근로기준법 위반 잦고, 회사의 ‘내일’ 안 보여
‘워라밸’ 따지는 남성, ‘취업 기회’ 목마른 여성
청년 500명 설문조사…정부 지원 취업에 도움? “글쎄요”
정부의 주요 일자리 정책 중 하나는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 지원이다. 그간 청년을 채용한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오다가, 지난해부터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청년에게 직접 혜택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을 개시했다. 청년이 중소기업에 취업해 2년간 월급의 일부를 떼 300만 원을 적립하면, 정부(900만 원)와 기업(400만 원)이 지원해 1600만 원의 목돈(적립금)을 만들어주는 제도다. 기업은 정부로부터 700만 원을 받아 400만 원은 청년 직원에게 주고, 나머지 300만 원은 인건비 등으로 사용한다.
정부는 재정적 지원 폭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3월 15일 발표된 청년 일자리 대책의 주요 내용은 △청년추가고용장려금(청년을 채용시 지급하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중소기업 폭 확대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게 5년간 소득세 전액 면제 등이다. 주거비 저리(低利) 대출, 근무지 여건에 따라 월 10만 원 교통비 지급 등도 추가됐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청년내일채움공제와 새로운 지원 내용을 합하면 청년 1인당 연간 혜택이 10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청년에게 환영받는가. 중소기업에서 일한 적 있는 청년은 그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중소기업 취업을 친구나 후배에게 권할 생각이 있는가. 중소기업 취업에 앞서 정부가 나서주길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신동아’는 기업정보 플랫폼 ‘잡플래닛’(www.jobplanet.co.kr)과 함께 잡플래닛에 누적된 기업평가 데이터 및 설문조사를 통해 청년 세대의 중소기업 인식 정도를 분석했다. 잡플래닛에는 매달 200만~300만 명이 방문해 자신이 근무하거나 근무한 적 있는 직장에 대한 기업 평가를 공유하고 있다.
중소기업 만족도(5점 만점)는 2.81로, 대기업(3.28), 외국계 기업(3.34)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특히 급여·복지, 소위 ‘워라밸(Work and Life Valance)’로 표현되는 업무와 삶의 균형, 사내 문화 등에서 상대적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져 전체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만족도는 2015년 대비 2016년 소폭 올랐다가 2017년 다시 하락한다. 이는 대기업 및 외국계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중소기업에서는 특히나 급여 및 복지(2.89→2.77), 사내 문화(3.00→2.85) 만족도 하락이 두드러진다(2016년 대비 2017년). 2016년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고 스타트업이 대거 출현해 청년 취업 시장이 그리 나쁘지 않은 해였다고 알려진다.
청년들의 중소기업 추천 의사는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42.48%). 그마저도 스타트업을 제외하면 추천 의사는 30%로 뚝 떨어진다(스타트업 추천 의사는 80%). 반면 대기업(58.11%), 외국계 기업(64.49%) 추천 의사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중소기업의 CEO는 사실상 오너인 경우가 많다. 반면 외국계 기업의 CEO는 ‘한국 지사장’이다. 권한의 차이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중소기업 CEO(57.94%)보다 외국계 기업 CEO(58.11%)를 조금 더 지지한다. 대기업 CEO에 대한 지지율은 63.87%로 가장 높다. 중소기업 CEO는 갈수록 민심을 잃어가는 듯하다. 2015년부터 지지율이 68.24%→65.05%→57.94%로 해마다 하락했다.
중소기업 근무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경영진에게 직원을 생각하는 마음(40.3%), 수익의 배분(18.83%), 명확한 비전 제시(16.36%), 커뮤니케이션 증대(14.29%), 투명한 회사 운영(10.22%) 등을 바란다.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청년들도 경영진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직원을 생각하는 마음’이지만 그 비율은 35% 이하에 그친다.
“승진·평가제도가 아예 없다”
대기업·외국계 기업 대비 중소기업에 근무한 청년들의 만족도가 이처럼 뚝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직장인에게 자신의 역량과 성과에 대한 인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중소기업 청년은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청년에 비해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5명 중 1명(19.08%)이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긴다. ‘지속적으로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는 응답은 중소기업(49%), 대기업(42.05%), 외국계 기업(44.54%)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피드백의 질적 수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중소기업 청년의 16.03%가 “회사에 승진 및 평가 제도가 아예 없다”고 응답했다. 장래 커리어에 나침반이 되어주는 ‘멘토’의 존재도 중소기업에선 만나기 어렵다(‘회사 또는 팀 내 멘토가 없다’는 응답이 중소기업 61.84%, 외국계 기업 42.33%, 대기업 38.78% 순).중소기업 퇴사 이유는 역시나 금전적 보상 부족(22.72%) 때문이다. 연봉에 대한 만족도는 대기업, 외국계 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확연하게 떨어지는데, 특히 ‘매우 불만족’ 응답이 무려 40.41%에 달했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17.12%), 자기 발전 기회의 부족(17.97%), 불명확한 비전(16.49%) 등도 적잖은 퇴사 이유다.
“일 평균 근무시간이 11시간 이상”이라고 한 응답은 중소기업(21.89%)이 현저하게 높다(대기업 18.24%, 외국계 기업 16.57%).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 5명 중 1명꼴로 주말 근무 없이도 새 법정 근로시간 52시간을 가뿐히 뛰어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휴가라도 마음껏 쓸 수 있을까. 현실은 그마저도 어렵다. “연차를 사용할 때 눈치가 많이 보인다”고 응답한 비율이 중소기업 28.24%로 대기업(17.88%), 외국계 기업(18.89%)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연간 실제 사용 휴가일수가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대략 10~20일인 반면, 중소기업은 0~15일 사이다. 실제 사용하는 휴가가 연간 0~10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중소기업 35.91%로, 대기업(18.46%), 외국계 기업(21.85%) 대비 15%포인트 가량 높았다.
급여, 업무강도, 휴가 등이 모두 불리한 중소기업. 회사나 팀의 목표라도 명확하고 투명하게 공유됨으로써, 청년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업무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을까. 이마저도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응답이 24.18%로 대기업(13.99%), 외국계 기업(18.42%) 대비 상당히 높다. 중소기업 청년들은 회사의 비전에 대해서도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회사 비전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중소기업(70.56%), 외국계 기업(63.07%), 대기업(60.26%) 순).
꼰대, 비합리, 마음대로, 답답…
청년들이 중소기업 기업 문화에 대해 언급하는 단어는 ‘보수적’ ‘비합리’ ‘답답’ ‘마음대로’ 등 주로 부정적이다. [동아DB]
청년들은 ‘월급’에 대해 즐겨 언급했는데(언급 빈도 75.3%), 월급과 연관된 주요 키워드는 ‘짬, 낮음, 적음, 시급’ 등으로 부정적 표현 일색이었다. ‘수당’도 마찬가지다. 수당을 언급한 청년들은 ‘잔업, 없음, 포괄임금제(포함), 야근, 주말, 특근, 연차, 근로기준법, 위반’ 등을 함께 거론했다. ‘잔업이 많으나 야근수당, 휴일수당 없음’ ‘연봉에 각종 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야 함’ ‘계약서에 명시된 초과근무를 넘겨도 수당 안 나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알고 있음’ 등으로 서술했다.
‘복리후생’은 ‘전혀, 없음, 부족, 아쉬움’ ‘근로기준법’은 ‘위반, 편법, 강요’ 등의 키워드와 함께 등장했다. 김지예 잡플래닛 운영이사는 “다만 ‘복리후생에 만족한다’ ‘근로기준법을 잘 지킨다’는 서술도 상당한데, 실제로 급여를 높이기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차선으로 복리후생 수준을 향상시키는 중소기업들이 있고, 일거리가 많지 않아 굳이 근로기준법을 어길 필요가 없는 중소기업이 특히 제조업 분야에 상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야근’은 ‘휴가·연차’보다는 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개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음’도 있지만, ‘업무 강도가 세서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천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어 회사와 개인의 발전 가능성이 높음’도 존재한다. ‘휴가·연차’에 관해서는 ‘일괄 휴가로 휴가 일정 조정이 불가능함’ ‘연차 사용이 어렵고 눈치가 많이 보임’ 등의 평가가 주를 이뤘다.
2017년 11월 서울 강남구 세텍전시장에서 열린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청년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9%로 역대 최저치다. [뉴시스]
상황이 이럴진대 중소기업 근무 경험에 대한 서술이 좋을 리 없다. ‘성취, 성장, 배움, 기회’는 ‘단순, 한계, 전문성 떨어짐’ 등과, ‘미래’는 ‘어두움, 불투명, 없음’ 등과 함께 언급됐다. ‘여기를 다니려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하고 딩크족으로 살아야 함’ ‘여직원 출산휴가 끝에 사표 제출 강요’ 등이 서술됐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정부 지원에 관한 언급도 드물게 있는데 이 또한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룬다. ‘청년내일채움공제와 상관없이 수틀리면 바로 해고시키려는 회사’ ‘청년이 아니라 기업의 내일을 채워주는 듯’….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직원이 꼭 데리고 있어야 하는 인재라는 믿음이 없고, 직원 또한 이 회사에 오래 다닐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와 청년 둘 다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적극 활용하려는 의지가 없는 편”이라고 전했다.
설문조사 ‖ 청년이 바라는 일자리 정책은?
3월 15일 정부가 발표한 청년 일자리 정책에 소요되는 예산은 10조 원 가까이 된다. 그렇다면 정책 수혜자인 청년들은 정부의 대규모 예산 집행이 청년 취업률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길까?‘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절반에 미치지 못해(45.3%) 청년 상당수가 실효 여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연령별로 구분하면 아직 ‘취업 전선’을 겪어보지 않은 20~24세의 기대는 상대적으로 높지만(57.6%), 당장의 정책 수혜자라 할 25~29세의 기대감은 31.1%로 가장 낮았다.
정부의 주요 청년 취업 정책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들어본 적 있지만 자세히 알진 못한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다. 정부가 작년부터 집중적으로 펼친 청년내일채움공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하고, 청년구직촉진수당에 대해선 ‘모른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56.2%).
이들 정책이 실제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50% 전후에 그친다. 2009년 개시돼 10년 가까이 추진돼온 취업성공패키지가 그나마 ‘도움된다’는 응답이 51.9%로 가장 높았다. 청년내일채움패키지(43.7%), 청년구직촉진수당(48.2%)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청년취업난에 대해 세상은 ‘일자리 자체가 부족해서’라고들 하지만, 청년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62.9%)이라고 생각한다.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여성(67.8%)이 남성(56.7%)보다 더 많이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취업 시장에서 불리한 데다 결혼, 출산, 육아휴직 등까지 고려하며 일자리를 찾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청년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경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항목은 급여(79.4%), 복리후생(58.1%), 고용안정성(46.9%), 워라밸(45.4%) 순이다. 이 4개 항목에서 남녀 간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는 점이 주목된다. 남성이 여성보다 복리후생과 워라밸을, 여성은 남성보다 급여와 고용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청년들은 청년내일채움공제 같은 한시적인 급여 보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21.5%). 그보다는 고용안정성 보장(63.8%), 복리후생 등 근무 환경 개선 독려(63.2%), 워라밸, 수평적 조직 문화 등 기업 문화 개선 독려(35.7%), 개인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근무 기회 제공(30.8%) 등을 더 선호했다. 김지예 잡플래닛 운영이사는 “대기업과의 관계에 따라 협력사인 중소기업 운명이 좌우되는 등 중소기업의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취업에서 고용안정성을 바란다는 것은 ‘회사가 곧 문 닫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없어야 취업할 의사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