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서 노동당 규약 ‘全한반도 공산화’ 삭제 요구해야”
‘북한 시간표대로’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나선 까닭은…
기존의 핵전략 포기했다면 한반도에 봄이 찾아온 것
적대국과 대화할 때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하므로 북한의 남북 및 북·미 대화 시도가 미국의 선제타격을 막고 핵무력을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전술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북한이 동결, 비확산 합의 수준에서 위기를 봉합한 후 비핵화 절차를 중장기 협상으로 넘길 수 있다.
외교·안보 분야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현재의 핵 능력으로는 미국에 대한 신뢰적 최소억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핵무장 완성까지의 시간 벌기에 나섰을 수도 있다”면서 “국가 안보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억제’는 핵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으나 적국의 도시 한 곳을 파괴할 능력 정도만 갖춰도 억제가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신뢰적 최소억제’는 최소억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적극적인 공격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최소억제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 것이다.
‘국가 핵무력’은 핵능력, 핵전략, 핵지휘체계로 완성된다. 북한은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잠재력’은 보여줬으나 평양의 핵전략이 무엇이고, 지휘체계가 어떻게 구성됐는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美 본토 타격할 ‘잠재력’은 보여줘
박휘락 국민대 교수(정치대학원 원장)는 ‘전략(strategy)=목표(ends)+방법(way)+수단(means)’의 방정식을 통해 북한의 핵전략을 분석한다. 목표와 수단이 일정 부분 드러났으므로 방법을 유추하면 핵전략을 개략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핵개발 및 핵무기 보유의 이유로 내세운다.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후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 탁자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 설계자들은 북핵을 미국과의 협상용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국가 안보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협상용이 아닌 군사적으로 사용할 것을 암시하는 발언을 해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해 8월 25일 백령도·연평도 점령을 위한 특수부대 훈련을 시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
지난해 9월 6일 평양에서 열린 6차 핵실험 경축행사에서 오금철 북한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은 “서울을 비롯한 남반부 전역을 단숨에 깔고 앉을 수 있는 만반의 결전 준비 태세를 갖춰나가겠다”며 “조국 통일의 역사적 위업, 반미 대결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겠다”고 했다. 같은 날 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는 “미국은 조선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
한미동맹만 없으면 단숨에 서울로 밀고 내려오겠다는 투의 언급인데도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9월 27일 “많은 분이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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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보유와 주한미군 ‘등가’로 여겨
북한 체신성이 지난해 발행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기념 우표.
“북한의 대남 핵전략을 추정해보면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서 한국에 정치적, 경제적, 기타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점점 요구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고, 결국은 다양한 내정간섭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 내에서 핵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질 경우 한국 정부의 대안은 더욱 제한될 것이고 그럴수록 북한의 입지는 강화될 것이다. 핵무기에 의한 위협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선제적으로 한국의 주요 도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리면 큰 어려움 없이 한반도 전체를 석권할 수 있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박휘락 교수의 분석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북한이 평화협정→미군철수→통일대전→북한 주도 통일이라는 망상을 버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김정은의 통일대전은 미군의 증원을 막고 재래 전력을 활용해 한국을 강점하는 게 골자로 미국과 일본이 개입을 시도하면 핵으로 타격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거부억제 능력을 활용해 재래식 전쟁이나 제한적 핵전쟁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전 한반도의 공산화’를 지향한 노동당 규약의 삭제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주한미군과 핵 보유를 등가(等價)로 봐왔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평화협정 체결뿐 아니라 주한미군과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비핵화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북한이 동결과 비확산을 미국과 합의하고 비핵화에도 합의했으나 CVID는 중장기적으로 미뤄지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결하고 비확산을 약속한 상황에서 미국이 체제 보장을 해주면 주한미군의 위상이 애매해진다.
전직 안보 당국 고위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한국이 운전석에 앉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주도하는 국면이다. 지난해 6차 핵실험부터 김정은의 신년사,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실시 합의 등은 북한의 시간표대로 움직인 것이다.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한미동맹 균열을 기초로 북한 주도 한반도 통일 추진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통일이라는 낱말을 12번이나 사용했다. 북한이 노동당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전쟁 방법 외에 한국 정치체제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포함한다.”
현재의 대화 국면이 북한이 핵을 포기한 후 정상국가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라면 기존의 핵전략을 버린 것으로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