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저 친구 퇴직금이 나보다 많지?” 30년간 같은 일을 한 입사동기로 급여도 비슷하게 받아왔지만 정년에 받은 퇴직금이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무슨 이유인지, 어떻게 하면 귀중한 노후 자산인 퇴직금을 최대한 키울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아직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지 않았거나 DB형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하는 사업장부터 살펴보자. 이들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퇴직할 때 ‘30일분 평균임금’에 ‘계속근로기간’을 곱해서 나온 금액을 퇴직금으로 수령하게 된다. 임금이 높을수록, 근무기간이 길수록 퇴직금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김씨와 박씨가 DB형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다고 치고, 퇴직금이 차이가 나는 원인을 살펴보자. 우선 두 사람이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은 같다. 다만 이들이 과거 퇴직금을 중간정산받은 이력이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통상 계속근로기간이라고 하면 입사한 날부터 퇴직한 날까지를 말한다. 하지만 중간정산 받은 사람은 중간정산받은 날부터 퇴직한 날까지를 계속근로기간으로 본다. 중간정산을 여러 번 받은 사람은 마지막 중간정산받은 날부터 퇴직한 날까지 기간을 계속근로기간으로 본다.
만약 김씨와 박씨가 모두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퇴직금이 차이가 난다면, 두 사람의 평균임금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평균임금이란 퇴직 이전 3개월 동안 받은 총급여를 해당 기간의 총일수로 나눠서 계산한다.
예를 들어 퇴직 이전 3개월 동안 임금으로 1800만 원을 받았고 해당 기간의 총일수가 90일이었다면, 하루치 평균임금은 20만 원(=1800÷90)이다. 여기에 퇴직 직전 1년 이내에 받은 정기상여금과 연차수당이 있으면, 이를 365로 나눈 다음 평균임금에 더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평균임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재직기간 내내 월급을 많이 받았더라도 퇴직 직전에 임금이 줄어들면 퇴직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 반대로 퇴직 직전에 월급을 많이 받으면 퇴직금도 그만큼 더 받게 된다.
DC형은 투자수익률도 중요
이번엔 김씨와 박씨가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퇴직금제도나 DB형 퇴직연금과 달리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은 자기 이름으로 된 퇴직계좌를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매년 근로자가 받는 급여의 12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해당 퇴직계좌에 입금해 준다. 이렇게 회사가 입금하는 돈을 ‘부담금’이라고 한다. 부담금은 회사 사정에 따라 1년에 한 번 입금해주는 곳도 있고, 반기나 분기 또는 매달 나눠서 입금해주기도 한다.앞서 살펴봤듯이 DB형 가입자는 퇴직 직전 3개월 동안 급여를 많이 받으면 퇴직금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DC형 가입자는 다르다. 회사가 매년 근로자가 받은 급여의 일정 비율(1/12 이상)을 부담금으로 납부한다. 따라서 퇴직 직전 급여뿐만 아니라 재직기간 내내 받은 임금이 퇴직금에 영향을 미친다. 임금을 많이 받은 해에는 퇴직계좌에 입금되는 부담금도 늘어나고, 반대로 임금이 삭감된 해에는 부담금도 줄어든다.
매년 받는 임금뿐만 아니라 운용 수익에 따라서도 퇴직금이 달라진다. DC형 가입자는 자기 퇴직계좌에 입금된 부담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결정하고 성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투자 성과에 따라 퇴직금을 더 받을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만약 김씨와 박씨가 재직하는 동안 매년 받은 임금이 똑같은데도 퇴직금이 차이가 난다면, 투자 성과의 차이로 봐야 할 것이다.
임금상승률 vs 투자수익률
앞서 김씨와 박씨가 입사할 당시 30일분 평균임금이 200만 원이었고, 재직하는 동안 매년 4%씩 임금이 상승했다고 치자. 이때 김씨는 DB형, 박씨는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했다면, 퇴직금은 어떻게 될까? DB형에 가입한 김씨부터 살펴보자. 매년 임금이 4%씩 상승하면, 입사 당시 200만 원이던 30일분 평균임금은 퇴직 시점에는 823만 원이 된다. 여기에 계속근로기간 30년을 곱하면 퇴직금은 1억8712만 원이다.
반면 DC형에 가입한 박씨의 퇴직금은 투자 수익에 따라 다르다. 박씨가 근무기간 내내 연평균 4% 수익률을 내면, 김씨와 마찬가지로 퇴직금으로 1억8712만 원을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수익률이 연평균 3%에 그치면, 박씨의 퇴직금은 1억6323만 원이 된다. 김씨에 비해 2389만 원이나 덜 받는 셈이다. 반대로 연평균 수익률이 5%면 퇴직금으로 2억1571만 원으로, 김씨보다 2859만 원이나 많이 받게 된다. 결국 임금상승률보다 나은 수익을 낼 수 없다면 DB형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고, 임금상승률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DC형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앞서 김씨와 박씨의 임금이 재직 기간 내내 연평균 4%씩 상승한다고 가정했지만, 실제 임금이 그렇게 오르지는 않는다. 연봉제를 도입한 회사의 경우 업무 성과에 따라 매년 연봉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렇게 되면 DB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퇴직금도 영향을 받는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업무 성과가 좋아 임금을 많이 받은 시점에 퇴직하면 퇴직금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 우수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연봉제를 실시하는 회사 중엔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곳이 많다.
임금피크 땐 DC형으로
근무기간이 경과하면서 임금상승률이 달라지기도 한다. 보통 임금상승률은 신입사원 시절에는 높다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낮아진다. 입사 초기에는 물가 상승과 함께 직급 상승도 있어 임금상승률이 높지만, 정년이 가까워질수록 승진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금총액이 많아지면서 상승률이 둔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입사 초기에는 임금상승률이 높다가도 퇴직에 임박할수록 투자수익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그래서 DB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에서 DC형 퇴직연금을 추가로 도입한 다음, 근로자에게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임금상승률이 높을 때는 DB형을 유지하다가, 상황이 역전되면 DC형으로 갈아타면 된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도를 도입한 기업에서 근로자에게 이 같은 전환권을 준다. 임금피크제란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부터 근로자의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중 절반(53%)이 임금피크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가 임금피크 연령에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앞서 김씨와 박씨가 DB형 퇴직연금에 가입하고 있고, 55세 때 30일 평균임금이 600만 원이고 해당 직장에서 30년간 근무했다고 치자. 만약 김씨와 박씨가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55세 때 퇴직하면, 퇴직금으로 1억8000만 원(=600만 원×30년)을 받는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도를 받아들이면 60세까지 5년을 더 일하는 대신 매년 임금이 10%씩 줄어든다. 이때 김씨는 DB형 퇴직연금에 그대로 머물렀고, 박씨는 DC형으로 전환했다. 이 경우 두 사람이 60세 때 퇴직금으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DC형으로 전환한 박씨의 퇴직금은 어떻게 될까? 우선 임금피크 시점까지 발생한 퇴직금 1억8000만 원은 DC 전환과 동시에 박씨의 퇴직계좌로 이체된다. 그리고 60세가 될 때까지 매년 임금의 1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박씨의 퇴직계좌로 이체된다. 이렇게 김씨의 DC계좌로 이체된 금액을 전부 합치면 2억100만 원이고, 박씨는 여기에 운용 수익까지 더해 퇴직금으로 수령하게 된다.
퇴직금도 분산 투자
DC형 가입자의 퇴직금은 운용 성과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예금이나 보험, ELB처럼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품도 있고,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 상품도 있다.퇴직금은 노후생활비 재원인 만큼 가능하면 안전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상당수가 예금 등 원리금보장 상품에 맡겨두고 있다. 하지만 시중금리가 채 2%가 안 되는 상황에서 이래서는 임금상승률 이상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퇴직금 재원을 전부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 상품에 맡겨두자니 불안하다. 이럴 때는 퇴직금을 여러 금융상품에 분산투자하면 된다.
DC형 가입자는 적립금을 하나의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여러 금융상품에 골라 포트폴리오로 투자할 수도 있다. 다만 전체 포트폴리오 내에서 위험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으로는 펀드 내 주식 편입 비중이 40% 이상인 혼합형 펀드와 주식형 펀드가 있다. 같은 실적배당 상품이라고 해도 펀드 내 주식 비중이 40%가 안 되면 안전자산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적립금 중 70%는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 30%는 주식 비중이 40% 이하인 혼합형 펀드에 투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 포트폴리오 내 주식 비중은 최대 82%가 될 수 있다.
Simple is beautiful!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펀드를 고르는 과정도 단순하지 않다. 원칙대로 하면 우선 자신의 위험 성향, 소득, 자산, 건강 상태,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살핀 다음, 경제 환경과 주식시장 동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험자산 비중을 결정해야 한다. 주식과 채권, 대체자산과 같은 투자자산의 비중을 결정한 다음에는 투자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주식시장의 평균 수익을 좇는 소극적인 투자 방법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주식시장보다 나은 수익을 추구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런 다음 펀드를 선택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다음에도 할 일이 많다. 투자한 펀드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펀드를 교체해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포트폴리오의 위험자산 비중을 재조정하는 일도 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평가해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아서 비중이 높아진 자산을 처분해 비중이 줄어든 자산을 추가로 취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포트폴리오 내에서 위험자산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 밖에 투자자 중에서는 은퇴 시기가 다가올수록 포트폴리오 내 위험자산의 비중을 차츰 낮추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할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그만한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바쁜 직장인들이 연금자산 관리에 충분한 시간을 쏟을 만한 여유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투자 경험이 일천하다고 해서, 투자 관리를 할 시간이 모자란다고 해서 노후자금을 모두 원리금보장 상품에 맡겨둬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투자자가 일일이 투자 과정에 개입한다고 해서 투자 성과가 더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를 망칠 때도 많다.
그렇다면 투자 경험도 많지 않고, 투자에 쏟을 시간도 많지 않은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자산관리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자신의 요구수익률을 살펴야 한다. 시중금리 정도 수익에 만족한다면 원리금보장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원리금보장 상품을 고를 때는 금리와 만기를 살펴야 한다.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만기가 긴 금융상품을 선택했다가 중도에 해지하면 약정한 금리를 받을 수 없다.
TDF 상품에 주목을
하지만 투자 경험도 일천하고 시간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에게는 국내외 다양한 자산에 분산해 투자 위험은 낮추면서도, 가능하면 투자자가 신경을 덜 쓸 수 있는 심플한 금융상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처음에 투자 상품을 고르는 단계에서는 전문가에게 간단한 도움을 받더라도, 이후부터는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금융상품을 골라야 한다. 이런 상품으로는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춰 위험자산 투자 한도만 정하면 알아서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을 해주는 자산배분형 펀드나 랩어카운트가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TDF(Target Date Fund) 상품을 내면서 퇴직연금 가입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TDF란 가입자가 은퇴 연령만 정하면 알아서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조정해나가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2045년에 은퇴 예정인 직장인이 TDF 상품에 가입하면 초기에는 펀드 내 주식 비중이 70% 이상으로 유지되다가 차츰 그 비중이 줄어든다. 퇴직 시점(2045년)에 임박했을 때 주식 비중은 20% 내외가 된다. 전 세계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면서도, 근로자가 신경 써야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