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연쇄정상회담 이후 북미는 어디로Ⅲ

파키스탄 모델에서 친미비중(親美非中) 베트남 모델로

  • | 구해우 前 국가정보원 북한담당 기획관·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입력2018-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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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택 앞세운 친중정권 수립 시도…北, 中에 불신 가져

    • 美는 대(對)중국 전략서 北을 우군으로, 北은 中 영향력서 벗어나

    • 北-美도 美-베트남처럼 전략적 이해관계 합치 가능해

    5월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역사의 중대한 분수령이다. 북·미 회담 성공을 위한 핵심적 필요조건은 북한의 진정한 의도와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북한이 왜 ‘핵무장 국가 전략’을 세웠고, 어떻게 변화·발전시켰으며 향후 자신들의 국가전략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국이 현명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동북아 정세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됐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지렛대로 한미동맹을 균열시키고 북한 주도 한반도 통일을 추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현시점에서 역사적·구조적 맥락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 국가 전략’을 이해하는 것은 향후 북핵·북한 문제 해법의 기초가 될 것이다.

    김정일 ‘파키스탄 모델’에서 김정은 ‘베트남 모델’로

    필자는 2003년 언론에 기고한 ‘구멍 난 북핵 정책’이라는 칼럼에서 북한의 전략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이해 부족을 지적한 후 2005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전략이 파키스탄 모델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9년에는 2차 핵실험을 통해 파키스탄 모델로 진입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파키스탄은 지정학적 경쟁자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한 것을 계기로 ‘핵무장 국가 전략’을 구체화한다. 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미국의 소련 남하 저지 정책에 협력하면서 1981년 우라늄 농축제재 유예 등의 조건을 확보한 후 핵 개발 프로그램을 진전시켰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경쟁자인 중국의 지원을 받아 1982년 핵무기 제조를 시작했으며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해 핵무장 국가로 전환한다.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았으나 2001년 9·11테러 이후 반(反)테러전쟁 과정에서 미국에 협력하면서 제재에서 벗어나 실질적 핵무장 국가가 됐다.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을 학습하면서 김정일 체제 등장 이후 선군(先軍)사상을 앞세우고는 ‘핵무장 국가’ 전략을 구체화한다. 1994년 김일성 사후 등장한 김정일 체제는 김일성 체제와 비교할 때 더욱 확고한 ‘핵무장 국가 전략’을 내세운다. 그 배경에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혈맹관계로 표현되던 중국마저 한중수교로 북한을 배신하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김정일은 고립무원(孤立無援) 처지에서 체제 안전을 위한 생존전략으로 ‘핵무장 국가 전략’을 내세운다. 이는 2002년 고농축 우라늄 사건을 매개로 한 2차 북핵위기로 이어진다. 2002년 2차 북핵위기는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봉합되나 합의는 결국 유명무실하게 됐으며, 북한은 2006~2017년 6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실질적인 핵무장 국가가 됐다. 

    역사적 맥락에서 북한의 ‘핵무장 국가 전략’을 살펴보면 김정일 체제하에서 체제 생존을 중심으로 한 ‘파키스탄 모델’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다가 김정은 체제에 접어든 후 한 단계 진화한 ‘베트남 모델’을 추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11년 김정일 사후 등장한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체제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력한 의지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주력했다. 현재는 북·미 간 최종 담판(예컨대 미국과 핵 동결과 비확산에 합의하고 비핵화에도 합의하나 체제 보장 등 전제 조건에 따라 비핵화는 중장기적으로 진행하는 형태 등)을 이끌어냄으로써 북한 주도 한반도 통일에 다가서려는 목표까지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 주도의 ‘베트남 모델’로 이끌어야”

    북한과 베트남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를 거쳤으며 20세기 최강대국 미국과 전쟁을 수행했다. 또한 사회주의 강대국이던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자주적 외교를 벌였다. 베트남은 프랑스 제국주의와 전쟁을 치렀고 최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사회주의 대국 중국을 1979년 국지전 끝에 격퇴했다. 

    베트남은 1980년대 후반 ‘도이모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고, 1995년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뤄냈으며,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외적 강제에 의한 ‘체제전환(Regime Change)’이 아니라 시장의 확대와 점진적 변화에 의거한 ‘체제진화(Regime Evolution)’다. 

    베트남은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미국과 가장 협력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다. 3월 5일 미국의 항공모함 칼빈슨호 전단이 베트남전 종전 이후 43년 만에 미국 항모로는 처음으로 베트남 다낭 항구에 기항했고 베트남 공산당과 전 국민이 대대적으로 환영한 것은 미국-베트남 관계의 극적 변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미국-베트남 관계에서 역사적 대변화의 핵심적인 지렛대는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이다. 미국은 세계전략상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고자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핵심 파트너가 되기를 원했고, 베트남은 중국의 중화민족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미국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베트남의 국가전략상 합치는 동북아시아에서 북한과 미국의 국가전략상 이해관계도 접목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미국은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nti-Acess/Area Denial) 전략의 핵심 대상인 한반도에서 북한이 친미비중(親美非中) 국가로 방향 전환을 해준다면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원군을 얻는다. 북한 역시 친미비중 국가가 되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북한이 중국을 불신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2년 한중수교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큰 배신을 경험했다. 둘째, 1990년대 말 100만 명 내외의 아사(餓死) 사태를 겪을 때 중국으로부터 특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셋째, 중국이 김정일 사후 장성택을 통해 친중정권을 도모하려다 실패한 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운 큰 잔칫날이던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개막식 날(지난해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 있지 않으며 국가전략의 대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낸 것이다. 

    한국은 비핵화를 매개로 한 북·미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북·미수교 및 북·일수교가 현실화되고 그 결과로서 북한을 한미동맹이 주도하는 ‘베트남 모델’(시장경제 수용에 기반을 둔 산업화와 부분적 민주화를 결합한 ‘베트남 모델’)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지향하는 ‘베트남 모델을 잘 연구해 개혁·개방에 기반을 둔 북한의 정권 선진화(Regime Evolution)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미 간 협력으로 북한의 선진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북한이 ‘베트남 모델’로 갈 경우 이를 북한이 주도하느냐 한미동맹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진다. 

    현 정세는 북·미 협상의 진전에 기초해 북한이 베트남 모델로 전환할 가능성이 85% 내외, 북·미 협상 결렬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15% 내외인 중차대한 시기다. 한국은 전쟁 위기를 극복하면서 한미동맹 강화와 자강을 병행하는 전략, 북한에 대한 개입 전략, 통일 전략, 새로운 동북아시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구해우
    ● 1964년 전남 화순 출생
    ● 고려대 법대 졸업, 고려대 대학원 법학박사
    ● 민화협 청년위원장
    ●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
    ●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
    ●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 국정원 북한담당기획관(1급)
    ● 現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 저서 : ‘김정은 체제와 북한의 개혁개방’ ‘통일선진국의 전략을 묻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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