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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 | ‘한반도의 봄’ 기회 혹은 함정 |

정의용, 트럼프에게 김정은 말 그대로 전했나?

“의지를 갖고 있다”와 “비핵화하겠다”는 다른 말

  •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정의용, 트럼프에게 김정은 말 그대로 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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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이 ‘北 비핵화’ 보증 선 형국
    ●중신 잘못 서면 뺨이 3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한 특사단 방남과 우리 특사단의 방북으로 조성된 화해 무드는 현실화될까. 전략자산과 부대를 전개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중국과 한국에 통상압력을 가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확실히 돌아설까. 그리고 북·미 정상이 만나면 북핵 문제는 풀릴까. 

열쇠는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있다. 그가 ‘아니다’라고 하면 화해 무드는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열쇠를 쥐고 있다. 그가 북핵을 완벽히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면 다시 전운이 밀려온다. 둘은 자기 의견만 밝히고 가만히 있는데, 중신에 나선 ‘매파’가 자화자찬을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 특사단이 김정은과 어떤 합의문도 만들지 않고 돌아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우리 측은 녹음과 녹화도 하지 못했으니 김정은 말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적어온 메모와 기억뿐이다. 그러나 3월 9일 미국을 방문한 우리 대표단은 미국과 함께 합의한 문서(발표문)를 만들어 기자들 앞에서 낭독했다. 우리 대표단이 트럼프를 면담한 시간은 45분 정도다. 그리고 2시간에 걸쳐 양측은 발표문을 만들었는데, 그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까지 온 김에 한국 측이 직접 백악관에서 발표해달라”는 깜짝 제안을 하고 백악관 기자실(브리핑룸)로 가, “잠시 후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란 예고까지 해준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한 후 백악관 기자실을 처음 방문한 것이다.

한국에 책임 떠민 트럼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한국 대표단이 백악관 웨스트 윙으로 나와 영어로 합의된 발표문을 낭독했다. 인사말을 제외하면 발표문 내용은 간략한데,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영문 전문과 이를 번역한 발표문이 실려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이 ‘I(=정의용)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이다. 



청와대는 이를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했다고 했습니다’라고 번역해놓았다. 청와대는 ‘commit to denuclearization’을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commit’는 의지를 갖는 것보다는 강한 의미를 갖기에, ‘비핵화를 하겠다(혹은 약속했다)’로 옮기는 게 옳다. 왜 청와대는 ‘commit’를 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의지를 갖고 있다’로 번역했을까. 

새로운 점도 발견된다. 3월 6일 평양에서 돌아온 정의용 특사는 ‘방북 결과 언론발표’를 통해 “3.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정 특사는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하겠다고 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백악관에서 낭독한 발표문에는 김정은이 제시한 ‘북한 체제 보장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라는 전제 조건이 빠져 있다. 이 발표문은 2시간에 걸쳐 그와 미국이 합의해서 만든 것이니, 그가 이 대목을 누락한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정 실장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북한 체제 보장’ 등을 누락했다고 의심해볼 수 있다. 이는 미국 측의 처지에서 보면 ‘북한 비핵화를 정 실장이 보증해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실현을 확정하라’는 뜻에서 정 의장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낭독한 영어 발표문에는 그가 트럼프에게 ‘김정은이 비핵화하겠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돼 있으니, 만약 그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면 정 특사는 김정은의 비핵화를 보증해준 사람이 돼버린다. 우리 특사단이 방북하기 전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특사단 방북 결과를 정확히 알려달라고까지 당부했었다.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공조에 균열이 노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관측이 있다. 북한과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했다는 게 이 같은 관측의 골자다. 따라서 북한의 선(先)체제 보장 요구로 회담이 결렬되면, 그 책임은 북한 비핵화를 확인해준 정 실장 등 한국이 지게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시기를 5월까지로 못 박은 것도 유의할 부분이다. 

정 실장이 낭독한 발표문에는 ‘President Trump … said he would meet Kim Jong Un by May to achieve permanent denuclearization’이란 문구가 있다. 이를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금년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라고 번역해놓았다. 청와대는 ‘permanent denuclearization’을 ‘항구적 비핵화’로 옮겨놓았다. 항구적은 ‘영구적’ ‘영원히’와 비슷하지만 그 강도가 조금 약하다. 이런 식으로 청와대 번역문은 영문과 뉘앙스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영원한 비핵화 달성(achieve)을 위해 김정은을 5월까지는 만나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김정은이 비핵화를 약속하지 않으면 회담을 하지 않거나 군사적 옵션이 포함된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우리는 북한이 말과 수사에 일치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할 때까지 이 만남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구체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행동을 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다.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했고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했으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코앞에 둔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가 이를 모를 리 없으니 북한의 시간 끌기를 막기 위해 5월까지로 한정한 것으로 보인다.

‘잘되면 노벨상, 안되면 벼랑끝’

5월은 독수리와 키리졸브 연습이 끝날 때로 상당한 전력이 추가로 한반도에 전개돼 있어, 미국은 군사적 옵션을 사용하기에 용이하다. 이는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문재인 정부는 한미훈련을 연기 또는 축소하고 북·미 정상이 만나 비핵화에 합의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문 정부가 트럼프에게 북한이 요구한 ‘체제 보장’ 등을 빼고 보고해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촌평도 있으나 현재까지는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만약 ‘한국 특사단에 비핵화를 약속한 바 없다’고 하면 이 노력은 허사가 되고, 미국에 허위 사실을 전달했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 한국에는 한반도 사태를 그 나름대로 분석해 미국 정부에 전달해주는 이가 매우 많다. 이들 중 일부가 문재인 정부의 행동을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선(先) 체제 보장 요구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적 옵션을 한국에 대해서는 통상 압력을 가중하는 것으로 동시에 남북한 잡기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주목할 것이 영국 BBC가 ‘문재인 대통령, 잘되면 노벨상, 안되면 벼랑끝’이라고 보도한 점이다. “중신 잘하면 술이 석 잔이지만, 잘못하면 뺨이 세 대”라는 속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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