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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vs 민족주의’ 틀로 본 중국

“‘중국식 강대국 외교’는 美 추종 더는 않겠다는 뜻”

  • |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국제주의 vs 민족주의’ 틀로 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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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국제주의와 민족주의가 외교정책 두고 경쟁
    ● 국제질서 참여·수렴 국제주의 vs 타국은 ‘아래’ 급진민족주의
    ● ‘민족주의 중국몽’ 채택한 시진핑… 국제주의자 입 닫는 형국
    ● 미·중 충돌? 넘버원 확실해야 대외정책 수월해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 [박해윤 기자]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 [박해윤 기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신흥 강국과 기성 대국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일컫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기원전 4세기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그리스를 폐허로 만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신흥국 아테네의 부상에 따른 패권국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독일이 제해권을 쥔 영국에 대항해 일어난 유틀란트 해전(1916), 20세기 최강으로 떠오른 미국에 신흥 강국 일본이 도전한 태평양전쟁(1941) 또한 투키디데스 함정의 사례다.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신흥 강국의 부상이 기존 강국을 무너뜨린 16개 사례 중 12사례가 전쟁으로 귀결됐다. 중국과 미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촉발한 질문 중 하나가 ‘중국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다. 중국은 국제체제에 참여해 성장을 이룬 데 힘입어 ‘세계 속의 중국’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증대된 힘을 활용해 국제체제를 자국의 선호에 맞게 재구성하는 ‘중국식 세계’를 추구할 것인가? 중국의 선택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외개방 거치면서 성장한 국제주의

김재철(57) 가톨릭대 교수(정치학)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창(窓)으로 삼아 중국의 대외정책을 들여다본다. 국제주의와 민족주의가 외교정책을 두고 경쟁해왔으며 ‘세계와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에 대해 중국은 여전히 확실하고 분명한 답을 찾지 못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중국의 당 개혁 : ‘당의 지도원칙’의 재개념화’ 제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외교전략과 국제질서’(2007), ‘중국, 미국 그리고 동아시아 : 신흥 강대국의 부상과 지역질서’(2015) 등을 출간했다. ’중국과 세계: 국제주의, 민족주의, 외교정책’(2017)으로 한국정치학회 2017년 올해의 학술상을 받았다. 3월 2일 서울 광화문 미래전략연구원에서 그를 만나 ‘중국과 세계’를 주제로 대담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분열적입니다. 역사·문화·영토 갈등의 주범이면서 인류가 가진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과 한국 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나라라는 긍정적 인식이 혼재합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활용해 경제적 이득을 얻어야겠는데 섞이고 싶지는 않다고 할까요.” 



중국에 대한 국내의 많은 연구가 ‘중국의 시각’을 강조하는 반면 ‘중국과 세계’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보편적 틀을 통해 접근합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보편적 프레임을 통해 중국의 대외적 행태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 중국인은 숨기는 게 많으며 이기적이라는 편견을 갖게 마련입니다. ‘중국도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부각해야 중국인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은 세계 속의 정당한 구성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세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수용할 것은 수용했고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급진민족주의에 동화되는 온건민족주의

중국의 외교정책이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민족주의를 ‘온건’과 ‘급진’으로 나눴더군요. 중국의 외교정책이 세 갈래의 다양성에서 비롯한다고 본 것인데요. 국제주의 온건민족주의 급진민족주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외교정책에 관한 중국의 생각과 정책이 ‘통일돼 있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상반된 생각과 정책이 제기되고 경쟁합니다. 국제주의는 민족의 이익과 국제적 이익을 조화하려는 시도예요. 중국의 이익뿐 아니라 보편적 가치나 원칙도 중시합니다. 국제체제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 국제질서로의 전면적 참여와 수렴을 강조합니다. 다자협력과 국제기구를 중시하면서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책임을 수행할 것을 규정합니다. 

중국의 국제주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시각과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민족주의는 국가의 이익을 무엇보다도 중시합니다. 국제체제를 국가 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장으로 인식하면서 군사력 중심의 국력을 외교정책의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강조하고요. 그럼에도 온건민족주의가 국제체제를 현실로 간주해 참여할 것을 주장하는 실효성을 보이는 반면 급진민족주의는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체제를 배척하고 재구성할 것을 촉구하는 데서 차이를 보입니다. 중화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면서 전통적 가치를 보전·발현하려 하고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가 중국에서 맞부딪치는 겁니까.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가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서로 다른 이념으로서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이죠. 초창기에는 온건민족주의와 급진민족주의가 차이를 보였는데 최근엔 수렴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온건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이 최고지만 다른 민족도 최고일 수 있다고 봅니다. 급진민족주의는 자기만이 최고고 다른 나라는 아래라는 것이고요. 중국의 민족주의가 처음엔 과격하지 않았습니다. 정치 지도자들도 국제체제에 참여해 경제 발전을 이루려고 했고요. 국력이 커지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온건민족주의의 상당 부분이 급진민족주의에 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국제주의는 개혁·개방과 함께 1980년대 시작된 조류입니다. 

“마오쩌둥 시기 중국은 엄청나게 배타적인 사회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국제주의가 등장한 데는 현실적 절박성이 존재했습니다. 국제체제에 참여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아야만 경제를 발전시켜 민족 부강이라는 염원을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을 반영했습니다.”

세계 속 중국 vs 중국식 세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올라탄 것은 절박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의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합니다. 정치권력이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마음껏 연구하도록 풀어줍니다. 서구가 만들어놓은 체제의 작동 원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부국강병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주목한 거죠. 서구와 협력해 윈-윈(win-win)하자는 생각이 마오쩌둥 시기에는 없었습니다. 서구의 자유주의에 주목했으며 미국이 놓은 덫이라고 여기던 다자주의도 인정합니다. 국가로서의 국제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영향력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깨우칩니다. 중국이 국제 규범을 수용하기 시작한 데는 국제주의적 견해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한동안 중국의 대외정책에 민족주의보다 국제주의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념만 놓고 본다면 국제주의가 민족주의보다 영향력이 컸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급진민족주의는 기존 국제체제를 거부하고 재구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왼쪽 극단에 위치합니다. 오른쪽 극단에는 국제체제를 인정하고 참여와 통합을 지향하는 국제주의가 서 있고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국제체제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온건민족주의자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국제주의자는 국제체제에 참여해 책임을 지며 규범을 수용하는 게 ‘옳다’고 여기는 반면 온건민족주의자는 ‘옳고, 그름’이 아닌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에 주목합니다. 국제체제에 참여해 더 많은 것을 얻어오면 된다는 게 온건민족주의자의 논리였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국제주의자와 온건민족주의자가 연대합니다. 국제주의와 온건민족주의가 결합해 정책에 영향을 끼친 것이죠.” 

중국은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세계로의 수렴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내부에서는 국제체제로의 통합을 추구할지, 증대된 힘을 바탕으로 중국의 특성을 구현할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2008년 미국발(發) 경제위기를 고비로 베이징은 공세적 전환에 나선다. ‘어떻게 세계 속으로 편입할 것인지’ 고민해온 데서 ‘어떻게 세계를 재구성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확산된다.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국제주의가 퇴조하는 느낌입니다. 

“국제주의가 예전보다 영향력이 약화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시진핑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협력’ ‘윈-윈’ ‘세계화’를 강조합니다만 국제주의적 행동이 과거만큼 보이지 않아요. 중국학자들에게 ‘국제주의자지?’ ‘자유주의자지?’라고 물으면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레이블(label)이거든요.” 

국제주의자들이 입을 닫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후진타오(胡錦濤) 시기에는 외교 이슈가 등장하면 지식인이 서로 나와 강경론, 온건론을 제시하면서 중구난방으로 논쟁했습니다. 최근엔 국제주의자들이 논쟁을 삼갑니다. 대신에 교조주의적 해석이 강화됐고요. 그럼에도 ‘국제주의가 종언했느냐’고 물으면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답하겠습니다.”

‘중국 특색 강대국 외교’ 내놓은 시진핑

중국은 일당제 국가인 데다 대외정책에서 이견이 표출되는 것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대외정책이 단일하게 표출되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학자들이 이견을 가진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국제주의자 시각의 중국몽(中國夢)은 국제 규범에 맞게 행동하고 책임짐으로써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민족주의 시각의 중국몽은 군사력이 핵심이겠고요. 민족주의자와 국제주의자가 가진 강대국의 정의가 이렇듯 다릅니다. 시진핑은 민족주의자가 생각하는 중국몽을 채택한 것이고요. 시진핑 혼자 고민한 결과일까요? 중국 사회에서 제기된 논의를 살펴보고 채택한 것일까요? 후자라고 봐야 합니다.” 

중국의 대외정책이 종국에는 단일한 주장으로 표출되나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주장이 경쟁하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구체적 사례를 확인해보고 싶은데요. 사드나 북핵 문제 등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에서도 이념적 분화에 따라 정책의 차이가 드러납니까. 

“중국의 대북정책을 봅시다. 전략파와 전통파가 달라요. 전략파는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기에 북한에 끌려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관점에서 대북정책을 들여다봅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상수, 북한과의 관계를 종속변수로 보는 거죠. 전략파 중 급진적인 이들은 ‘북한 포기론’을 제기합니다. 반면 전통파는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평양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전략파는 국제주의자, 전통파는 민족주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드와 관련해서도 국제주의자들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이므로 군사적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국제주의자의 견해가 더 무섭다고도 하겠습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의 권위와 존엄에 관련한 문제로 인식합니다. 한국을 혼내줘 교훈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거죠. 사드 문제를 두고 강경론자의 견해가 득세한 데는 이 같은 이념 지형 또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진핑 집권 이후 대외정책에서 민족주의 색채가 강화됩니다.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라고 표현하더군요.
 
“공식 명칭은 ‘중국 특색의 대국외교’인데 저는 ‘중국식’ 강대국 외교라고 칭합니다. 중국은 그간 정치적으로는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적으로는 ‘중국식’ 시장경제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경제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중국 특색을 분명하게 내걸었죠. 중국식 정치 및 경제체제에 이어 중국식 외교정책이 나온 겁니다. ‘중국식’ 강대국 외교를 내놓으면서 중국이 나아갈 진로를 분명히 했고요.” 

중국 공산당은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를 ‘시진핑 외교사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민족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한 것은 아냐”

강대국 외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강대국 외교를 하기엔 국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덩샤오핑 시대의 외교 방침을 지칭하는 용어가 ‘빛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였습니다. 최근에는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라고 합니다. 도광양회 시절 중국은 국제 문제에는 나서지 않고 온건하게 대응하면서 경제 발전에만 집중했습니다.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는 국제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외교정책에 ‘중국 특색’이라는 낱말을 붙인 것은 미국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중국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살펴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대외적 자신감을 표방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식 강대국 외교는 시진핑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했어요. 지난해 10월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주요 업적 중 하나로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를 언급합니다.” 

미국 시각에서 보면 중국식 강대국 외교는 서구가 주도한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강대국 외교를 선언했대서 미·중이 곧바로 충돌한다고 여기는 건 성급한 결론입니다. 중국은 이제 막 강대국 지위를 선언했을 뿐이에요. ‘방어적 성격’인지, ‘팽창적인지’는 두고 봐야 해요. 신흥 강국으로 등장한 다수의 나라가 부상하는 과정에서 강대국 지위와 관련한 선언을 내놓았습니다. 히틀러의 ‘아리아인의 세계’,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대표적이죠. 영국의 청교도들은 신대륙에서 ‘언덕 위의 도성(shining city upon a hill)’을 지향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국제주의자들이 워싱턴의 대외정책을 주도하면서 ‘세계의 모델이 되겠다’ ‘자유민주주의 모범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인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했고 다수의 국가가 미국을 롤 모델로 삼았죠.” 

중국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까요. 

“현재 시점에서 볼 때 긍정적, 부정적 측면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식 강대국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가 돼라’는 워싱턴의 요구에 부응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민족주의가 국제주의를 누르고 궁극적으로 승리했다고 봐서는 안 됩니다.”

“단기간에 중국식 가치·이념 제시 어려워”

중국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규범과 질서를 변경하려 들면 미·중 간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질문이 나옵니다. ‘미국이 만든 규범과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옳으냐’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힘의 변화에 따라 틀은 유지하되 조정이 필요한지도 생각해봐야죠. 중국이 강대국 지위를 선언했으므로 패권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베이징이 요구하는 것은 미국과의 동등한 지위입니다. 학문적으로 풀어 말하면 ‘다극세계’라고 하겠습니다. 베이징은 ‘다극적 질서’를 원합니다. 다극에는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러시아 등도 포함되고요.” 

후진타오 시기까지 중국이 국제질서를 들여다보는 개념은 일초다강(一超多强)이었습니다. 

“미국이라는 하나의 슈퍼파워와 여러 강대국이라는 뜻이죠.” 

시진핑 시대에 들어와서는 양초다강(兩超多强)이라고 하더군요. 

“중국인 중 중국이 초강대국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소수예요. ‘양초다강’의 틀로 국제질서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소수의 목소리인데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이들이 그런 주장을 강하게 냅니다.” 

‘중국 특색’ ‘중국식’이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중국은 독자적 특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시진핑은 ‘전통’을 얘기하는데 중국 전통이 유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법가 묵가 도가도 있고, 유가도 시기별로 달라요. 서구식 보편 가치나 표준(Global Standard)과 ‘중국식’이 다르다면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이 최근 2~3년간 내놓은 게 ‘중국지혜’ ‘중국방안’ 같은 아리송한 개념입니다. 그게 뭐냐? 백인백색이에요. 해석이 제가끔 다릅니다. ‘중국 특색’ ‘중국식’이라는 개념에 내용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은 아주 지난한 과제일 겁니다. 중국이 새로운 규범 등을 내놓았을 때 다른 나라가 동의할 만한 것이어야 ‘서구가 말해온 보편적 가치보다 낫네, 그 방향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겠죠. 중국이 단기간에 다른 나라가 수긍할 만한 보편적인 가치나 이념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회의적이라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은 충돌할 것인가

중국과 미국이 충돌할까요. 

“주도권을 쥐려는 강대국 간 경쟁이 벌어질 소지가 예전보다 커졌다고 말하고 싶으나 조심스럽습니다. 패권 경쟁이 벌어지리라고 말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관계학의 시각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면 권력이 집중되는 시기와 완전히 분산되는 시기 사이에 여러 과정이 있습니다. 특정 국가가 패권을 획득한 뒤부터 이어지는 과정은 힘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는 시기죠. 분산 과정에서 어느 순간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대국과 신흥 강국은 충돌하거나 타협합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단계일까요? 힘이 분산되는 단계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동아시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이 딱 얘기하면 정리가 됐어요. 그것으로 끝이었죠. 이제는 그게 안 됩니다. 미국의 행태에 반대하던 중국이 미국의 행태를 배우기 시작했고요.”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만 하면 중국을 제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옳은지 생각해봐야 해요. 중국에 대한 호오(好惡)와 무관하게 미국의 힘이 빠진단 말이에요.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보를 돕습니다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은 아니죠. 미군이 전략자산을 동원해 한국을 보호해주면 우리도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해야 합니다. 

중국식 강대국 외교 정책이 가진 함의는 미국을 더는 추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이 자신들의 이익과 충돌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미국이 우리를 구원해줬고 중국보다 선진적인 나라인데 어떻게 중국과 함께 하느냐’는 주장은 명청교체기의 재조지은(再造之恩·거의 멸망한 것을 구원해 도와준 은혜)처럼 지나친 명분론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특정 국가가 주도하고 지배하다가 그게 와해되는 세력 전이(Power Shift) 시기마다 마음에 드는 국가가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청나라도 마음에 안 들었고 일본도 마음에 안 들었고 중국 또한 마음에 안 듭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 맞고 당할 필요가 있을까요? 중국과 가까워지면 중화 질서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견해는 기우라고 봐요. 예전에는 중국 하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다릅니다. 미국도 있고, 다른 나라도 있습니다.” 

1392년 개국 후 1592년 임진왜란 이전까지 대명천지(大明天地) 200년간 조선이 평화로웠듯 한국은 6·25전쟁 이후 60여 년간 미국 그늘 아래서 평화로운 경제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앞으로 그 같은 시절이 그리울 수도 있겠습니다. 

“벌써부터 어려워진 것 아닌가요. 미국이든 중국이든 ‘넘버원’이 확실하면 대외정책을 펴기가 수월하죠. 미국이 다시 부흥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되찾으면 지난 60여 년처럼 한국에도 문제가 없죠. 누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질지 알 수 없는 과도기가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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