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포커스

트럼프에게 배우는 비즈니스 협상 전략

“부도덕한 상대? 똑같이 맞받아쳐라”

  • 입력2018-06-20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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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이트-백? “혼자만 점잖으면 손해 봐”

    • 진심? “말 아닌 몸짓에 담아라”

    • 태도? “선역·악역 나눠 복합적 메시지로 상대 포획”

    • 가격 흥정? “우선 강하게 후려치고 시작하라”

    [뉴시스]

    [뉴시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시 협상의 달인이다. 뉴욕 맨해튼 바닥을 훑으면서 건설업체, 하도급업체, 은행, 큰손 고객들과 거래하며 터득한 협상의 기술을 미국 대통령이 돼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협상’이라 하면 워싱턴DC의 세련된 외교관이나 베이징, 런던, 파리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이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행적을 보면 중국의 시진핑 주석,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과 아시아의 지도자들이 ‘트럼프식 협상 전략’에 번번이 당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워싱턴의 정치가나 외교관, 관리들이 해오던 전통적 ‘미국식 협상’과는 전혀 다른 협상 전략을 쓰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물론이고 우리가 협상에 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많다. 시중에서 잘 팔리는 허브 코헨 (Hurb Cohen) 책같이 대중에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를 보면 협상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명시적으로 아주 설득력 있는 좋은 말을 하여 상대를 감동시켜, 상대가 자발적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주게 하는 행위.” 

    이건 대학생이나 신입사원 정도가 할 어설픈 수준의 협상이다. 실제로 회사의 간부로서, 정부의 통상 관료로서, 정치가로서 협상을 해보면 협상의 본질이 위의 정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버드대학교의 로저 피셔(R. Fisher), 윌리엄 유리(W. Ury) 교수, 그리고 와튼스쿨의 리처드 셸 (R. Shell) 교수가 설명하는 고차원의 협상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협상의 많은 부분이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이뤄진다. 둘째, 말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비언어적 행동, 즉 과감한 보디랭귀지(body language)가 중요하다. 셋째, 상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으로 협상자가 원하는 것을 내놓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트럼프는 정확히 하버드대가 말하는 고차원의 협상을 한다.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뛰어난 협상가로서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 대통령이 된 다음, 지금 세계 무대에서 협상 판을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식 4대 협상 전략

    우리 기업인이나 샐러리맨들이 배워야 할 ‘트럼프식 협상 전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파이트-백(fight-back)’ 협상 전략 

    “나는 협상 테이블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잔머리 굴리는 상대는 무자비하게 후려친다. 하지만 상대의 태도가 협조적으로 변하면 잘 대해준다.” 트럼프가 자신의 저서 ‘협상의 기술(Art of Deal)’에서 강조하는 트럼프식 협상의 첫 번째 전략이다. 

    미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파이트-백’ 전략의 첫 상대자는 중국의 노회한 지도자 시진핑 주석이었다. 시진핑은 2017년 4월 미국 플로리다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대면을 했다. 그때 시진핑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미국 대선 기간 중 트럼프가 하도 중국을 후려쳤기(bashing) 때문이다. 

    “미국에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는 중국은 미국인의 일자리 도둑놈(!)” “중국은 환율을 조작해서 미국과 불공정 무역을 하기에 대통령이 되면 중국을 단단히 혼내주겠다”…. 유세 기간 중 트럼프가 내뱉은 이 같은 말을 미뤄 볼 때 플로리다 정상회담이 엄청나게 험악한 분위기로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런데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테니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에 동참해달라.” 

    트럼프는 자기 식으로 환율조작국 지정과 중국의 대북제재 사이에 빅딜(big deal)을 제안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시진핑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우선 당장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직격탄을 피해서 좋다. 그리고 대북제재야 미국한테 “예스”한 다음,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처음에는 하는 척하다가 나중에 적당히 흐지부지하면 된다. 

    그런데 시진핑이 완전히 헛짚었다. 전임 W 부시나 오바마 대통령이라면 중국이 대북제재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외교적 수사로 한두 번 항의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트럼프 이전 미국의 외교는 그렇게 늘 점잖았고 의전적이었다. 그러나 비즈니스맨 출신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달랐다. 

    “시진핑이 대북제재를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나와 약속해놓고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며 한두 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시진핑을 물고 늘어졌다. 자신의 트위터에서만 찻잔의 폭풍처럼 떠들어댄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중국에 관세 보복을 했다. 

    이 같은 트럼프 특유의 파이트-백 전략에 다시 걸려든 상대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해 몸값을 잔뜩 올리고 난 뒤, 시진핑 주석의 초청을 두 번이나 받고는 대미 협상 태도가 확연히 변했다. 다롄회담에서 아마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다독거리며 그간 느슨해진 중국과 북한 사이의 혈맹 관계를 재확인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귀국하는 김 위원장을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대북 경제제재의 고삐를 풀었고, 여기에 힘을 받은 평양이 미국에 거칠게 나오기 시작했다. 펜스 미 부통령을 ‘아둔한 얼간이’라고 모욕하고, 수틀리면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협박한 것이다. 

    과거에는 이 같은 상투적인 평양식 막말과 위협이 미국에 잘 먹혀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보았다. 2018년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정말 강하게 ‘파이트-백’ 해버린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북한의 지도자가 문 대통령에게 먼저 연락하고는 허겁지겁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트럼프에게서 배우는 비즈니스 협상 전략 ①
    “나만 점잖으면 손해”

    비즈니스 협상을 하다 보면, 대부분은 점잖고 도덕적인 상대를 만난다. 하지만 가끔은 지저분한 술책(dirty tricks)을 쓰고 비도덕적인 위협, 지연 등을 일삼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다. 이럴 때 직면하는 고민은, ‘나도 비도덕적인 협상 술책을 써야 하는지’다.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것이 라이퍼 하버드대 교수의 ‘라이퍼 딜레마(Raiffer Dilemma)’다. 

    - 상대가 도덕적으로 나올 때 협상자 또한 도덕적으로 행동하면 회사나 조직에 손해를 끼치진 않는다.

    - 하지만 상대가 비도덕적으로 나오는데도 협상자만 도덕적으로 점잖게 협상하면 손해를 본다. 

    라이퍼 교수가 내린 결론은 ‘상대가 비도덕적으로 나오면 똑같이 비도덕적으로 맞받아쳐라’다. 말하자면 트럼프 식으로 ‘파이트-백’ 하라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6년 11월 10일, 백악관을 찾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는 두 손을 모으고 오바마의 말을 경청했지만(왼쪽 사진), 악수할 때 오바마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뉴시스]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6년 11월 10일, 백악관을 찾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는 두 손을 모으고 오바마의 말을 경청했지만(왼쪽 사진), 악수할 때 오바마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뉴시스]

    ② 파격적인 보디랭귀지(body-language) 

    트럼프 이전 미국 대통령들은 대중 앞에서 말과 행동이 점잖았다. 몸을 흔들거나 손발을 크게 쓰는 소위 ‘보디랭귀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반대다. 2016년 대선 기간 중 TV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면, 무대 위를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닌다. 발언하는 상대 후보의 뒤에 서기도 했다. 필자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역대 미국 대선의 TV 토론을 다 봤는데, 트럼프 같은 후보를 처음 보고 놀랐다. 다른 후보들은 예외 없이 연단 앞에 얌전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아주 뛰어난 협상가만이 할 수 있는 전략적 행동이다. 먼저 인간은 누군가가 자기 뒤에 서면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인체의 등 쪽 피부가 앞쪽 배나 가슴 피부보다 4배나 두껍다고 한다. 뒤에서 가해지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상대 후보는 등 뒤에 서 있는 트럼프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둘째, 발언하는 상대 후보 뒤에서 어슬렁거림으로써 청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다. 청중은 상대 후보의 말은 건성으로 듣고, 트럼프의 흥미로운 행동에 시선을 주게 된다. 

    트럼프가 당선 후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사진 두 장을 보자. 왼쪽 사진에서 트럼프는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있다. 그답지 않게 양순하다. 이러한 그의 보디랭귀지는 “지난 8년간 미국을 통치한 오바마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뭔가 배울 게 있다”는 트럼프의 당시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오른쪽 사진이다. 트럼프의 몸짓에서 뭔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독자 여러분이 찾아보시라. 오바마와 악수하면서 상대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협상을 할 때 상대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것은 ‘당신을 존경하지 않는다’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 것들을 모조리 뒤엎었다. 미국이 그렇게 공들인 ‘환태평양 경제 파트너(Tran-Pacific Partnership)’ 협정은 백악관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안 돼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파리기후협약, 이란 비핵화협정도 같은 신세다. 

    동아일보 2018년 6월 4일자에 실린 사진과 기사를 보자. 트럼트는 또다시 중요한 보디랭귀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북한의 특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접견하면서 트럼프는 두 손을 다소 공손히 모으고 있다. 이는 분명 평양에 굉장한 수준의 ‘소프트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는 김영철을 차까지 배웅했다. 이 또한 파격적 행동이다. 거기에 더해 김영철의 등,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미국 문화에서 이것도 대단한 친근감의 표시다.

    6월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화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트럼프는 김영철을 손수 배웅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뉴시스]

    6월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화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트럼프는 김영철을 손수 배웅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뉴시스]

    트럼프에게서 배우는 비즈니스 협상 전략 ②
    “때론 말보다 행동이 강한 메시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협상에서 말(language)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몸짓, 손짓, 발짓, 얼굴 표정, 말하는 음성의 톤 같은 비언어적 행위(non-verbal behavior)로 전달된다. 

    우리 비즈니스맨들은 상대와 협상할 때 문서나 비즈니스 내용 등에만 몰두해, 상대의 보디랭귀지를 너무 허술하게 관찰하는 경향이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반드시 상대의 보디랭귀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상대 회사와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강조하기보다는, 필요하다면 트럼프처럼 우호적 보디랭귀지를 통해 본인의 의사를 전하는 고차원의 기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③ 선역과 악역의 복합적 메시지 

    지난 5월 24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평양에 알리는 트럼프의 서신을 보면, 아주 상이하고 정반대의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선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하겠다는 폭탄선언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북한이 핵 능력을 자꾸 과시하는데, ‘미국이 가진 가공할 핵 능력을 사용하지 않길 신에게 기도한다’고. 이건 평양에 대한 엄청난 위협이다. 그러고는 미국인 인질을 풀어준 데 대해 ‘땡큐’를 하고, 평양이 원하면 언제든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재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정말 절묘한 서신이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상대 회사와 거래를 끊으려면 보통 단호한 결렬 통보를 보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서신에는 결렬 통보, 재계약 가능성, 상대의 성의에 대한 감사함 등 이질적인 메시지가 뒤섞여있다. 

    또한 트럼프는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선역(good guy)과 악역(bad guy) 전략을 적절히 구사했다. 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엄청난 악역을 하도록 했다. 볼턴은 리비아식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이라는 초강수로 북한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폼페이오 CIA 국장을 평양에 보내 유화적 실무 협상을 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북한에 당근과 채찍(carrot & stick)을 함께 내놓은 것이다. 

    이 같은 선역-악역 전략의 극치는 2018년 6월 4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특사와 면담할 때 악역을 맡은 볼턴을 빼고, 선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만 배석시킨 점이다. 평양에 의미 있는 유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에게서 배우는 비즈니스 협상 전략 ③
    “실무자는 배드 가이, 대표이사는 굿 가이”

    까다로운 거래 회사와 협상할 때는 때때로 트럼프식 선역-악역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협상 실무책임자들이 악역을 하고, CEO나 협상 대표들은 선역을 맡는다. 

    특히 인수합병(M&A) 협상을 할 때는 마케팅, 회계팀, 엔지니어팀, 노무팀 등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는데, 이 중 협상 대표와 마케팅 전문가는 당연히 선역을 해야 하지만, 회계 및 세무 전문가들은 상대 회사의 장부, 세금 문제를 꼼꼼히 따지는 악역을 해야 한다.

    ④ 가격 협상에선 ‘하이-볼(High-Ball)’로 후려쳐라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아베 총리,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한 장소는 플로리다의 마라라고(Mar-A-Lago)다. 트럼프의 개인 별장으로 한때 2억5000만 달러를 호가했는데, 트럼프는 이를 단돈 7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가격을 엄청나게 후려쳐 싸게 산 것이다. 

    트럼프 프린세스호.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초호화 요트다. 길이가 100m에 가깝고, 스위트 객실이 11개, 수영장에다 헬리콥터 이착륙장까지 갖췄다. 1980년대 트럼프가 이 요트를 구매할 당시, 그 가격이 1억5000만 달러를 호가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단돈 3000만 달러에 이 요트를 차지했다. 절반 값으로 깎는 수준이 아니라, 5분의 1 가격에 산 것이다.

    트럼프에게서 배우는 비즈니스 협상 전략 ④
    “하이-볼 구사는 상황과 때를 고려해서”

    가격 협상을 할 때 맨 먼저 고심하는 것은 ‘세게 후려칠까(High-ball), 아니면 받을 만큼만 적절하게 가격 제시를 할까(Low-ball)’다. 

    와튼스쿨의 리처드 셸(R. Shell) 교수는 거래적 상황에서는 원칙적으로 트럼프처럼 ‘하이-볼’로 후려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거래적 상황’이란, 우리말 ‘단골’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번에 보고 다시 볼 일이 없는, 또는 관계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대를 대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격 협상은 아주 간단하다. 무조건 하이-볼로 후려치면 되니 말이다. 살 때는 가격을 낮게 제시하고, 팔 때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면 된다. 

    하지만 하이-볼 전략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협상가에게 약점이 있고, 그것을 상대가 알고 있는 경우다. 길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그날 팔지 못한 생선은 모두 버려야 한다. 아침 10시쯤 동네 아주머니가 와서 “얼마냐”고 물으면 하이-볼로 값을 높게 불러도 된다. 저녁 늦게 장사를 마치기 10분 전에도 아주머니의 문의에 똑같이 하이-볼로 값을 부르면 어떻게 반응할까? 피식 웃으면서 “아저씨, 오늘 안 팔린 생선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텐데, 반값에 주세요”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하이-볼 전략을 써서는 안 될 때를 알아보자. 바로 상대가 심한 가격 흥정을 싫어하는 경우다. 이런 상대에게 너무 높은(혹은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 상대가 협상 자체를 하려 들지 않는다. 일본 기업가들과 부품, 기계 등 판매 협상을 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노 쓰쿠리(장인 정신.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를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은 무엇보다도 제품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가격을 후려쳐 부르면 아예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세돌, 알파고와 대국 전부터 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플로리다 별장 ‘마라라고’. 호가가 2억5000만 달러까지 오른 바 있는 이 초호화 별장을 트럼프는 단돈 7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동아DB]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플로리다 별장 ‘마라라고’. 호가가 2억5000만 달러까지 오른 바 있는 이 초호화 별장을 트럼프는 단돈 7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동아DB]

    가격 협상에서 다음으로 고심해야 하는 것은 ‘누가 먼저 가격을 제시해야 하느냐’다. 당신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세계 최초로 ‘휘닉스’라는 획기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자. 물론 세계 각국에 지식재산권 등록도 마쳤다. 어느 날, 중국 샤오미의 한 임원이 찾아와 휘닉스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말문을 연다. 

    “정말 훌륭한 기술이네요. 휘닉스 같은 기술을 구하기 위해 애플, 지멘스, 소니 등을 모두 돌아다녀봤습니다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싸 못 샀습니다. 휘닉스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10억 원이 들었다. 물론 상대는 이 사실을 모른다. 트럼프처럼 통 크게 하이-볼로 후려쳐 100억 원을 부른다. 잘한 가격 제안일까? 

    잘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샤오미의 저항 가격이 100억 원보다 높다면 그렇다. 애플, 지멘스가 500억 원, 1000억 원을 불렀더라면 샤오미는 휘닉스가 200억 원이라도 살 생각이 있을 것이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할 때 이세돌 측에서 대국료로 1억~2억 원가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대국료 수준으로 보면 그 나름대로 하이-볼로 부른 가격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구글은 100억 원 이상을 지불하더라도 이 대국을 성사시키려 했단다. 이 대국 이후 구글이 누린 알파고 홍보 효과는 수조 원에 달했다. 구글 시가총액이 수십조 원 상승했으니 말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이세돌 측에서 트럼프처럼 하이-볼 협상 전략으로 200억 원을 제시했더라면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적어도 10억 원 이상은 받았을 것이다.


    안세영
    ● 1953년 서울 출생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프랑스 소르본대 국제경제학 박사
    ● 제17회 행정고시, 통상산업부 미주과장,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 성균관대 특임교수(국제협상 전공)
    ● 저서 :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2017),
       ‘글로벌 협상전략’(2017), ‘이기고 시작하라’(201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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