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총력특집 | 미완의 합의, 불안한 미래 |

북핵 비핵화 4대 쟁점

사실상 손해 볼 일 없는 北, ‘2년 6개월’ 내 완전한 비핵화? 왜?

  •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18-06-27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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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탄두·ICBM 해체·반출 되도록이면 천천히 할 것

    • 북한 협조 없인 완전한 핵사찰 검증 난관

    • 합의 이행 불성실할 경우 군사옵션 재등장?

    한반도 운명을 가를 세기의 핵 담판으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북·미 정상회담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막을 내렸다. 회담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 즉 CVID가 아닌 그 어떤 결과도 수용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정상회담 종료 후 발표된 합의문 어디에도 CVID는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문 서명 직전 기자들에게 ‘포괄적인 합의문(Comprehensive document)’이라며 북핵 폐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일정과 방법이 합의문에 명기되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합의문 내에 CVID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곧 CVID이며, 당신들이 틀렸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찌 됐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비핵화 프로세스가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 빠른 시일은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임기, 즉 2년 6개월 이내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과연 이 기간 내에 북한 비핵화는 가능할까?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전망하려면 크게 4가지 쟁점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반출 일정과 반출 규모, 둘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해체 시기와 방법, 셋째 국제 사찰단의 입북 시기와 사찰 일정과 수준, 넷째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파기하거나 불성실하게 임할 경우 군사옵션 카드 재등장 가능성이 그것이다.

    핵무기 반출 시기와 규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후 서명한 합의문에는 CVID가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동아D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후 서명한 합의문에는 CVID가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동아DB]

    우선 북한의 핵무기 반출 시기와 규모에 대한 쟁점이다. 북한의 핵탄두 보유 수량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정확한 추적이 어렵지만, 대략 20~30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지난해 8월에 영변 핵시설 가동 이력, 북한의 우라늄 농축 기술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758kg, 플루토늄 54kg가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약 60개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이다. 미국은 이 핵탄두 전량을 모두 수거해 미국으로 가져가 해체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해체한 뒤 반출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과거 소련 해체 후 미국은 ‘협력적 위협 감소(CTR·Cooperative Threat Reduction)’ 프로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를 비핵화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는 러시아로 반출돼 전량 폐기되었으며,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의 핵무기와 핵물질은 미국이 직접 폐기 및 수거해 처리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탄두를 단계적으로 전량 수거해 미국 본토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위치한 Y-12 국가안보단지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미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보안국(NNSA)이 운영하는 Y-12 단지로 북한 핵무기가 옮겨질 경우 북한의 핵무기 기술 수준이 미국에 완전히 노출되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핵탄두 완성품을 일거에 반출하기보다는 핵물질과 기폭장치 등을 북한에서 해체한 후 여기서 추출한 핵물질을 순차적으로 미국으로 반출하면서 반출 작업과 보상 절차를 병행하는 방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먼저 북한 내에서 미국 사찰단의 참여하에 북한 기술진 주도로 핵탄두를 해체한 후 핵물질을 추출해 포장 작업을 실시한다. 이렇게 해체 및 폐기되어 정밀 분석이 어렵게 된 핵무기를 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북한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탄두와 핵물질 보유량을 정확하게 파악해 폐기 및 반출 대상 품목과 수량을 목록화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북한의 협조 여부가 프로그램 진척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의 속내가 시간 끌기라면 프로그램 완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핵무기 개발과 제조에 참여한 시설과 인력에 대한 관리도 문제다. 과거 CTR 프로그램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 핵 시설과 기지를 직접 건설한 러시아의 비핵화 의지가 컸기 때문에 폐기 대상 핵무기와 시설을 목록화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비교적 순조로웠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북한 당국이 진정성을 가지고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이상 어떤 시설이 핵 관련 시설이고 누가 핵 관련 기술자인지 알 길이 없다. 

    북한은 이 점을 활용해 시설 폐기와 핵 전문 인력의 재취업 및 순수 과학기술 분야 전용을 명분으로 경수로 건설과 연구단지 조성 등에 막대한 비용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핵탄두 및 핵물질 반출과 폐기 과정 스케줄을 북한이 주도하며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ICBM 폐기와 살라미 전술

    두 번째 쟁점인 대륙간탄도미사일 해체 역시 우려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이 폐기를 원하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은 괌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 12형, 미국 서부 해안을 사정권에 두는 화성 13형과 14형, 워싱턴 D.C.와 미국 동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 15형 등 4종류다. 북한은 이 4종류의 ICBM을 불과 6~7년 만에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해 실전에 배치했다. ICBM 관련 기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북한이 이처럼 단시간 내에 이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외부 기술 유입 가능성이 큼을 의미한다. 미 국방정보국 등 서방 측 정보기관들은 북한의 액체연료 ICBM 개발에 구소련 기술이, 고체연료 ICBM 기술에 이란과 중국·파키스탄 등이 관여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이 ICBM 전량을 동시에 미국으로 반출할 경우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이 구축한 장거리 미사일 기술 네트워크가 미국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ICBM 개발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중국, 러시아 등과 미국 사이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따라서 북한 ICBM 해체 작업 역시 완성품의 미국 반출은 북한 ICBM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반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ICBM 전량을 미국에 모두 내주는 대신 외국 기술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간 모델 한 종류를 골라 완성품 1~2기를 샘플로 내준 다음, 나머지 ICBM은 자국 기술자가 주도하고 미국 관계자가 참여해 북한 영내에서 단계적으로 해체 및 폐기하는 방안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은 아직 기술적 완성도에서 의심을 받고 있는 자국 ICBM 기술 수준에 대한 비밀을 보호하는 데 유용하다. 또 그것이 북한의 협상력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북한은 ICBM 해체 및 폐기 분야에서도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 즉 조금씩 내주고 보상을 챙기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사찰 일정과 수준

    더욱 우려되는 것은 세 번째 쟁점, 바로 국제 사찰단의 입북 시기와 사찰 일정 및 수준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파악하고 있는 북한의 핵 시설은 100여 곳이다. IAEA는 카다피 정권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도 10여 개소의 리비아 핵 시설 사찰을 완료하는 데 22개월을 소요했다. 단순 계산으로 북한 핵 사찰이 완료되기까지 18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 시설은 리비아보다 규모가 훨씬 크며, 숫자 역시 공식 보고된 100여 개가 전부가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이런 비밀 핵 시설을 모두 찾아내는 것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지만, 은폐된 핵 관련 시설을 찾아낸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플루토늄 관련 시설의 경우 플루토늄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공 방사성 동위원소 포집을 통해 시설의 유무를 파악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고농축우라늄 관련 시설은 이마저 쉽지 않기 때문에 추적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은 IAEA뿐만 아니라 자국의 NNSA(국가핵안보국)와 유엔 주도의 다국적군을 북한에 진주시켜 핵 관련 사찰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군의 북한 진주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기 때문에 실제로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사찰 인력은 IAEA 사찰관 일부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차후 실무 협상에서 IAEA 사찰단의 입북 일정을 조율하면서 사찰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하려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사실상 손해 볼 것이 없다. 이미 핵무기는 충분히 만들었기 때문에 연구와 제조, 실험에 필요한 기존 핵 시설에 대한 사찰과 폐기가 진행되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수백 개의 시설에 대한 사찰을 점진적으로 수용하며 적절한 보상을 얻을 수 있고, 느린 사찰 진행에 미국이 반발해 판이 깨지더라도 숨겨놓은 핵탄두와 시설을 이용해 얼마든지 재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가지 쟁점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파기하거나 불성실하게 임할 경우 판이 깨지며 과거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북한판 CTR이냐, 과거의 악순환이냐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돌아보며 향후 북한을 싱가포르와 같은 시장경제 체제의 친미 독재국가로 바꾸는 중대 결심을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면 비핵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에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라는 외적 난관과 김일성·김정일 선대의 유지를 거스르는 정치적 부담이라는 내적 난관도 풀어야 한다. 

    이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들이 보유한 핵무기 일부와 이미 핵무기가 완성되어 더 이상 필요 없는 핵 관련 시설을 하나씩, 천천히 내주며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이 던져주는 핵무기와 핵 관련 시설의 의미를 과대 포장해 선전함으로써 재선을 위한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 소요 시간을 2년 6개월이라고 언급한 것이 그 방증이다. 

    문제는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김정은과 트럼프의 밀월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는 2020년 미국 대선 정국이 본격화할 때까지 북한 비핵화가 더디면 미국 민주당은 그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으려 할 것이고, 트럼프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으로 모든 책임을 북한에 돌릴 것이다. 합의 파기는 곧바로 미국의 군사옵션 카드 재등장과 이에 따른 전쟁 위기 조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북한은 2년 6개월짜리 밀월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 대량의 핵무기를 포기하고도 체제 보장과 경제 발전이라는 선물을 받은 벨라루스나 카자흐스탄처럼 북한도 미국과 우리 정부를 믿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 북한판 CTR을 통한 실효적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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