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제대로 파헤칠까’ 의문
“문 대통령 지지율 높아서”
현판식 예상되는 날 공소시효 만료
“스모킹 건 없인 기소 힘들 듯”
“국정조사 병행해 드루킹 육성 공개해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허익범 특별검사가 6월 8일 청와대에서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아DB]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검 수사 시작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댓글 조작 범죄를 분석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품이 필요한 데 반해 유죄를 입증하더라도 중형을 구형할 법리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여권이 연루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현 정권 핵심 인사들 관련 의혹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매크로 프로그램’이란?
드루킹 김모 씨는 여권을 향한 반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DB]
당시 네이버는 각 뉴스 기사마다 아이디 1개당 1회 ‘공감’과 ‘비공감’을 선택해 클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공감 수치에서 비공감 수치를 뺀 ‘순공감’ 수치가 많은 댓글이 상위권에 노출되도록 했다. 드루킹 일당은 이 같은 점을 노려 ‘매크로(macro)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규모 댓글 작업으로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드루킹 일당이 구입해 사용한 매크로 프로그램은 여러 개의 명령어를 하나의 키 입력만으로 간편하게 동작하게 한다. 이 프로그램을 악용해 공연·스포츠 경기 좌석 티켓의 일시, 좌석 등급 선택, 결제를 수초 만에 마무리하는 암표상도 있다고 한다.
드루킹 일당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번 작성해놓은 글을 여러 개의 아이디로 접속해, 댓글을 달고 공감/비공감 버튼을 누르는 작업까지 순식간에 마무리했다. 이렇게 조작된 댓글은 가장 상위에 노출됐고 이 댓글에 드러난 생각과 논리가 주류 여론인 것처럼 호도됐다.
검찰은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댓글 조작 및 인사 로비 같은 혐의가 밝혀지면 추가 기소가 불가피하다.
드루킹 일당은 문재인 정부 및 민주당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아왔지만, 대선 승리 이후 인사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여권을 비난하는 내용의 댓글 작업도 했다. 당초 민주당이 여론 조작을 의심하고 고발해 드루킹이 붙잡혔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여권에 유리한 댓글 작업이 대다수였다.
특히 현 정권 핵심 인사인 김경수 경남 도지사 당선인과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의 연루 의혹이 확산되면서 결국 야권의 요구로 특검까지 왔다. 김 당선인의 전 보좌관 한모 씨는 드루킹 측과 금전거래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드루킹 김씨는 최근 ‘옥중편지’를 통해 2016년 10월 김 당선인이 매크로 기능 구현 서버인 ‘킹크랩’ 시연을 참관하는 등 사전에 댓글 조작을 인지하고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또 경공모 회원을 김씨가 요구한 오사카 총영사 대신 센다이 총영사로 추천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고도 했다. 실제로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추천받은 경공모 회원과 면담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송 비서관은 2016년 6월 김 당선인과 드루킹의 만남을 주선했고, 대선 전 드루킹과 경공모 측을 4번 만났다. 또 경공모 측으로부터 100만 원씩 두 차례에 걸쳐 총 200만 원을 참석 사례비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 당선인은 댓글 조작 인지 여부에 대해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인사 청탁 의혹에 대해선 “인사 추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대선 시기 다양한 사람과 접촉하는 것은 통상의 선거운동이라고 송 비서관을 감싸며 특검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은 김 당선인이 드루킹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이를 번복했다. 수사 초기 CC(폐쇄회로)TV와 USB 같은 증거물의 확보에도 실패하면서 부실 수사 논란을 자초했다. 심지어 압수수색영장에 주소지·차번호를 잘못 기재해 영장이 반려되기도 했다.
경찰은 최근 김 당선인의 전 보좌관인 한씨와 드루킹 김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숱한 부실 수사의혹만 남긴 채 뒤처리를 특검에 넘겼다.
구속 기소된 드루킹의 혐의는 업무방해다. 김씨는 기소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신속하게 판결을 받아 석방되는 쪽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석방되면 수사는 더 힘들어진다. 검찰이 혐의 사실을 추가해 시간을 벌었지만 장기간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혐의가 필요하다. 김씨에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명예훼손,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골든타임 지났다”
다만, 선거법 위반 혐의는 공소시효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김씨가 김 당선인에게 경공모 회원 도모 변호사를 일본 총영사로 추천한 시점은 지난해 6월이다. 이어 9월에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다시 요구했다. 김 당선인이 센다이 총영사를 역제안했다는 시점은 지난해 12월 28일이다.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의 공소시효는 6개월이다. 범죄추정일부터 계산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은 오는 6월 27일이다. 다만 기소 시점부터 공소시효는 정지된다.허 특검은 6월 7일 임명됐다. 특검보 및 수사팀 인선과 사무실 마련 등 실무 준비에만 매달려 그간의 수사 자료도 읽지 못했다고 한다. 현판식이 예상되는 오는 27일이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 만료일이다. 나중에 인사 청탁 등 대가성을 입증해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특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과 청탁금지법 위반 정도가 꼽힌다. 김씨 개인이 짊어져야 할 개인정보보호법 등 혐의와 달리 수사 여하에 따라 이런 죄목으로 여권 실세들의 댓글 조작 개입 여부를 파고들 수 있어서다. 김 당선인 보좌관 한씨에 대한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김 당선인 연루 의혹도 다시 불거질 수 있다.
특검의 칼날이 얼마나 매서울지는 미지수다. 김 당선인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다. 재선 의원임에도 급을 낮춰 청와대에 입성한 백원우 비서관도 실세로 알려져 있다. “경찰의 부실 수사를 거치며 이미 수사의 골든타임이 지났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추가로 댓글 분석을 해봐야 지금까지 나온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증거를 잡아내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당선인의 개입을 입증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없다면 기소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인선에 가자”도 수사?
특검의 수사 의지를 가늠해볼 시험대는 백·송 비서관 등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수사 압박 강도다. 특검이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관련 부분을 조사할지도 관심 대상이다. 김 여사는 지난해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투표일 당시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 주범인 드루킹 김씨가 주도한 문 후보 지지 온·오프라인 정치 그룹인 ‘경인선(經人先·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을 특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경인선 블로그에 게재된 영상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지자들과 악수하던 중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에 가자”고 여러 차례 경인선을 언급하면서 이동했다.향후 몇몇 실세에 대한 소환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인사는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설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권은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전신)의 댓글 조작 사건도 특검에서 함께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가능성은 낮다. 허 특검은 “주어진 사건이 아니면 아무리 무엇을 보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정치권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특검팀은 향후 수사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장시간 많은 인력이 필요한 댓글 수사의 특수성이 있다. 댓글 조작이 수년간에 걸쳐 이뤄져 추적해야 할 아이디, 댓글, 공감 등이 숫자를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특검팀은 경찰로부터 자료를 이첩받으면 기록 검토에만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을 것으로 보인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수사를 담당한 인력을 일부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을 처음 접한 검사들과 수사관들은 얼개를 이해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짧은 수사기간 내에 얼마나 진척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불안 요소는 허 특검의 수사 지휘 능력이다. 검사 시절 형사·공안 분야에서 주로 근무해온 허 특검은 2006년 서울고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통상 부장검사는 5~6명의 검사를 밑에 두는데 파견검사·수사관 등 87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잘 통솔해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는 시각이 없지 않다.
몇몇 법조계 관계자는 “허 특검이 일선 수사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됐고 첨단범죄 관련 수사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고등검찰청 검사는 직접수사를 담당하지 않는 데다, 부장검사는 평검사를 지휘하는 게 주된 업무라는 것이다. 퇴임 전 고검 검사로 재직한 기간을 제외하면 일선 수사 또는 지휘에 나선 지 16년 이상이 흘렀다고 한다. 매크로를 활용한 댓글 수사도 낯설 것이란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다양한 측면에서 인력을 활용, 지휘하는 부분에서 아무래도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다”며 “전문성이 중요한 첨단범죄 수사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될지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드루킹을 청문회석에 앉혀야”
정치 지형도 무형의 장애 요소다.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여권에 대한 수사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드루킹을 청문회석에 앉혀 그의 육성을 직접 듣는 소위 드루킹 국정조사가 특검과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야당의 이런 지원사격마저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그러면 특검의 힘이 더욱 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전직 의원은 “조직적으로 여당에 대항할 구심점도 없다”고 말했다.법조계 한 관계자는 “특검 수사의 동력을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특검 후보 추천 단계부터 명망 있는 특수통, 공안통은 다 고사했다. 대형 폭로 등 돌발 변수가 터져 나오지 않는 이상 이번 특검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