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취득한 고객 정보로 통신사 서비스센터 사칭
통신사 갈아타기 유도 뒤 돈 떼먹고 연락 끊어
“중개대리점에 부당이득금 요구” vs 인터넷 통신3사 부인
통신사가 지원금 내역 투명하게 공개해야
인터넷 가입 사기 피해고객 명단.
‘솔깃한’ 인터넷 가입 권유 전화를 요즘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휴대전화나 인터넷 약정만기일이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와 같은 전화가 여러 통씩 걸려온다. 인천에 사는 김모 씨 역시 이런 전화를 받고 인터넷 통신사를 바꿨다가 마음고생을 꽤 했다.
김씨는 S영업점이라는 곳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씨의 신상 정보는 물론, 어떤 인터넷 요금제를 쓰는지, 몇 개월의 약정이 남아 있는지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계약 조건은 이렇다. 기존 SK브로드밴드에서 쓰던 3만3000원 요금제에서 LG유플러스(U+)로 인터넷을 바꾸면서 6개월만 3만6000원 요금제를 쓰면, 이후에는 2만3000원의 요금제로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지원금 욕심내다 두 회사 인터넷 사용
더욱이 처음에는 상품권 7만 원과 현금 21만 원의 사은품이 지급되고, 이후 6개월이 지나면 현금 20만 원(어떤 업체는 많게는 41만 원까지 제시함)을 사은품으로 추가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S영업점은 약정 기간이 남아 있던 SK브로드밴드에 대해서는 6개월 동안 ‘해지 예약’을 설정할 테니 그때까지는 SK의 장비를 잘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그런데 통신사를 바꾼 뒤 3개월 후 SK브로드밴드가 갑자기 ‘일시 정지 기간이 끝났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김씨는 SK브로드밴드에 전화를 걸어 “S영업점에서 해지 예약을 설정한 것으로 안다”고 하자 SK에서는 “본인이 아니면 해지 예약을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김씨는 뭔가 이상해서 인터넷 가입을 도와준 S영업점에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는 자동응답만 나와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S영업점이 해지 예약을 한 것이 아니라, 3개월 동안 일시정지를 해놓은 것이었다.
결국 김씨는 현재 2개의 통신사를 모두 사용 중이다. 약정 기간이 6개월 남은 SK브로드밴드를 해지하자니 40여만 원의 위약금을 내야 해서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새로 가입한 LG유플러스의 해지 위약금은 SK보다 적지만, 이미 휴대전화와 TV까지 하나의 상품으로 묶어버렸기 때문에 그걸 해지하는 것도 적지 않게 부담스러웠다.
김씨는 위약금을 물기보다 6개월 동안 2개의 통신사에 사용료를 내기로 했다. 그나마 새로 LG유플러스에 가입하면서 받은 상품권 7만 원과 현금 21만원으로 6개월치 통신비를 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6개월 뒤 받기로 한 20만 원은 S영업점이 이미 잠적해버렸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통신사 인터넷 가입 시스템에 허점
S영업점의 상위 업체인 매집업체 I사에 따르면 “김씨와 같이 인터넷 통신사 가입 권유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최근 3개월 동안에만 9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로 인한 피해 금액도 5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 피해자들은 개별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KT 3사에 민원을 통해 위약금을 청구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 소비자보호원 등에 민원을 넣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있다. 이 밖에도 개별적으로 형사고발을 추진하는 피해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피해자가 나온 것은 통신사들의 인터넷 가입 시스템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악덕 업체들이 이를 파고들어서 고객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
통신사들이 인터넷 고객을 유치하는 방식은 조금 복잡하다. 우선 통신 3사(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는 인터넷 가입 고객을 모집하기 위해 하위 업체인 ‘서비스센터’(SK브로드밴드는 자회사로 편입)와 계약한다. 이 센터들은 그 밑으로 ‘중개대리점(유통/중개대리점)’과 계약을 하고, 그 중개대리점들은 개별 영업점과 다시 계약을 맺는다. 중개대리점은 전국에 대략 50여 군데가 있는데, 이들은 통신 3사의 인터넷 가입 영업 및 관리를 맡고 있다. 이들의 모든 영업은 본사(통신3사)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들 중 고객에게 사기를 친 업체는 가장 밑 단계에 있는 개인 영업점 중 몇 곳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S영업점이다. 2017년 10월 G모 씨를 대표로 등록해 영업을 시작한 S영업점은 I사, U사, T사 등 7~8곳의 중개대리점과 거래를 시작했다.
위기에 내몰린 중개대리점
그런데 개인 영업점들의 불법 영업으로 인해 중간 유통 단계에 있는 ‘중개대리점’들이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통신사 본사가 중개대리점에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I사 측의 설명이다.“고객이 신규로 가입하면 서비스센터에서 내려온 60만 원의 지원금을 중개대리점이 중개비용(1만 원 안팎)을 떼고 하위업체(S영업점 등)에 지급하게 된다. 하지만 이 지원금은 고객들이 6개월 이상 상품을 쓰는 조건으로 나오는 것이다. 6개월 전에 해지하게 되면, 60만 원의 지원금을 다시 서비스센터에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영업점에서 지원금을 떼어먹으면 저희 같은 중개대리점에서 고스란히 물어줘야 한다. 게다가 기존에 가입했던 통신사로 되돌아가기 위해 15만 원 정도의 해지위약금과 부과된 요금까지 중개대리점에서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
6월 중순 현재까지 피해가 집계된 중개대리점은 6곳 정도이고, 이 중 몇 곳은 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 T사는 얼마 전 모 인터넷 사이트에 “8년 동안 힘들게 운영해왔는데, 2개월 동안 받은 민원 때문에 문을 닫게 생겼다”면서 “S영업점과 이면 녹취에 합의(임시로 몇 개월 통신사 이동했다가 원래 통신사로 복귀 시 20만 원 지급한다는 것 등에 동의)한 고객들까지 모두 고소할 것”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파장이 일기도 했다.
계약 당사자인 중개대리점(I사 등)은 불법 영업을 한 해당 영업점 대표를 사기로 고소했지만, 민사소송은 제기하지 않았다. 영업점 대표가 ‘바지 사장’(명의만 빌려준 사람)이기 때문에 소송에서 이겨도 돈을 돌려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중개대리점들은 통신사 본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본사의 고객 데이터 관리 소홀을 이유로 들었다. I사 김 대표는 “S영업점 같은 개인 영업점들이 통신3사 가입 고객 중 정확하게 약정 만기 6개월 이 남은 고객들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다”며 “본사에서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통신사 본사나 서비스센터의 갑질 의혹도 불거졌다. 항의가 있을 경우 고객에겐 바로 보상하지만 중개대리점에는 페널티라는 명목으로 지급해야 할 돈을 주지 않거나, 추가로 금액을 환수해가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개대리점에 부당한 페널티
통신사들의 부당이득금 환수 내용을 보여주는 서류들.
LG유플러스는 3회 이하 요금을 납부한 고객이 해지할 경우 중개대리점에 지급한 수수료(60만 원)의 100%, 5회 이하 요금을 납부한 고객이 해지할 경우 수수료의 30%를 환수하고 있다. 하지만 첫 회 납입을 인정하지 않고 100% 전액을 환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리고 KT를 비롯해 통신3사가 부당이득금을 가져가는 것은 비슷한 구조다. 예컨대 가입자 1명당 영업수수료가 50만 원일 경우 이 가운데 대리점이 서비스센터로부터 받는 실제 수수료는 본사 사은품 7만 원과 현금 사은품 23만 원을 뺀 20만 원이다. 그러나 고객이 해지할 경우 서비스센터는 고객 현금 사은품을 포함한 총 지급수수료(50만 원)를 환수한다. 그러면 중개대리점 또는 개인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현금 사은품을 회수해야 하는데, 애초 서비스센터에서 받은 것이라며 거부하는 고객이 많아 대리점이나 영업점이 피해를 보게 된다.
I사 관계자는 “민원을 빠른 시간에 처리하지 않으면 서비스센터에서 우리에게 페널티를 부과했다”며 “우리는 페널티를 받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하루에도 50~60건씩 들어오는 민원을 다 처리해주는 실정이다”라고 토로했다.
S영업점 같은 업체의 사기 행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업체에서 일하다 불법 영업인 것을 알고 퇴사한 B상담원은 소비자도 경각심을 갖기를 당부했다. B씨는 “현금을 준다는 사기 업체들의 수법에 소비자가 걸려들면 결국 그 뒷감당은 중개대리점이 하는 구조다”며 “과도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경우 소비자들이 신중하게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소비자 김씨는 “통신3사가 지원금을 홈페이지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면 고객들이 개인 영업자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가입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통신사에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인터넷 통신3사 적극적 대응 필요
한편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는 “통신사가 중개대리점(매집점)에 부당이득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변해왔다. 이에 I사는 통신사들의 부당이득금 환수 내용을 ‘신동아’에 제시했다. 통신사와 서비스센터, 대리점 간의 진실 공방은 향후 명확한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SK브로드밴드는 또 “개인 영업점과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기 때문에 고객정보 불법 보유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없고, 부당 영업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 가입 신청 시 고객에게 영업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에 한 중개대리점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는 고객 가입 해지신청이 들어오면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다는 개인 영업점의 불법 영업 관련 녹취물(고객과 개인영업점 상담원의 통화 내용)을 중개대리점에 달라고 요구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영업점의 사기로 불편을 겪은 소비자들의 불만은 통신3사 본사를 향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협력사 혹은 하청 회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에 대해 좀 더 명백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가입 시장에서 지나친 경쟁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 통신3사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전승낙제 등을 통해 판매점 적격심사를 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으나 LG유플러스의 반대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인터넷 서비스 가입 상담 시 지급하기로 한 경품을 제공하지 않거나 일부 서비스를 허위로 안내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며 “피해 규모가 클 경우 통신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실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