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먹거리 이슈

다이어트의 진화인류학

운동 세게 해도 체중 감소 미미… 살찌는 건 거의 조상 탓?

  • |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hansonpark@snu.ac.kr

    입력2018-07-11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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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만 사라지면 의사들이 굶어 죽는다

    • “이 환자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으시오”

    • 임신 중 다이어트 자녀 비만 부를 수도

    • 삶이 행복하면 살이 찌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 배급을 보여주는 이미지. [wikimedia commons]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 배급을 보여주는 이미지. [wikimedia commons]

    어느 날 전 세계 비만인이 모두 모여 결의를 했다. 오늘부터는 반드시 살을 빼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세계 각지에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답지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미 비만에 적응한 몸이므로 자칫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아사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 질환을 치료하던 의사들이었다.

    비만의 사회경제학

    일제강점기 관리가 논에까지 나와 식량 공출을 독려하는 모습. [동아DB]

    일제강점기 관리가 논에까지 나와 식량 공출을 독려하는 모습. [동아DB]

    과거의 의사는 주로 결핵이나 장티푸스 같은 급·만성 전염병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신체 부상, 출산 시의 난산, 정신장애 그리고 기아(!)와 주로 싸웠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질병이다. 특히 기아는 만병의 근원이었는데,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문제는 잘 먹지 못해서 생겼다. 수백만 년에 달하는 인류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먹는 것’이었고, 배불리 먹는 것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위생 개선과 영양 수준 향상, 백신과 항생제의 발견 등으로 인해 곧 인류는 질병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었다. 조만간 의사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의사는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을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는 영양실조 환자를 진료한 뒤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라는 처방전을 썼다.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만, 이제는 도무지 있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처방전에 흔히 적는 말은 ‘식이조절’, 즉 ‘이 환자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으시오’다. 

    매년 세계적으로 비만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2조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을 훌쩍 넘는 액수다. 액수만 놓고 보면 세계 7위권 경제 대국 수준이다. 세계 인구 중 21억 명이 비만인으로,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무려 65%가 체중 과다에 해당하는데, 이 비율은 해마다 치솟고 있다. 돈을 먹느라 쓰고, 다이어트 식품을 사느라 쓰고, 운동하느라 쓰고, 대사성 질환을 치료하느라 쓴다.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가 바로 비만이다. 



    물론 비만이 진짜 경제 발전을 이끈다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비만은 개인적으로 불행이지만, 다양한 의료 자원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비극이다. 악덕 회사에서는 정크푸드와 비만치료제를 같이 팔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찾았다고 반색할지 모르지만 분명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유능한 의료 자원이 비만 치료가 아니라 암이나 난치성 질환 치료에 투입되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렇다고 사회경제적 자원의 전 지구적 효율적 배분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라는 건 아니다. 사실 우리가 다이어트를 고려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첫째 건강, 둘째 매력이다. 비만은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우울장애, 관절염 등 다양한 의학적 문제를 유발한다. 심지어 암도 야기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사망 다섯 건 중 한 건은 비만과 관련돼 일어난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체중부터 줄여야 한다.

    날씬한 몸에 대한 선호

    아프리카 줄루족. [wikimedia commons]

    아프리카 줄루족. [wikimedia commons]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좀 더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사회적 매력이다. 비만인은 취업이나 승진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비만 때문에 해고당하는 경우도 있다. 비만은 ‘나태’라는 부정적 성향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비만인은 좋은 평판을 얻기 어렵다. 과체중은 이성 교제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제일 싫어하는 이성 순위 2위를 차지한 것이 비만인이었다. 바람기 다음이다. 

    미의 기준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횡문화적으로 일정한 ‘보편적 미’의 기준이 있다. 바로 허리와 엉덩이 비율이다. 미국 텍사스대의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에 의하면, 남성은 0.9, 여성은 0.7의 허리 엉덩이 비율을 가질 때 가장 매력적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하면 남성의 경우 약간 안으로 당겨진 단단한 체형, 여성의 경우 허리가 잘록한 체형이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대체 우리는 왜 이런 체형의 이성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이성의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외모를 중시하는 속물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날씬하고 매력적인 체형은 애초부터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허리 엉덩이 비율은 심혈관 장애, 당뇨, 고혈압, 난소암, 유방암, 담낭 질환 등과 관련된다. 여성의 경우 가임률 및 생리주기, 유산율, 조산율 등과 이어지고, 남성의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 즉 남성 호르몬 수준을 보여준다. 비율이 가장 중요하지만 체중 자체도 의미가 있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체질량 지수(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값)는 매력의 지표이자, 동시에 건강 상태에 대한 신뢰할 만한 지표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줄루족의 경우 체질량 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비만이 매력 요소로 인정받을 날이 올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원시농경 사회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대사성 장애, 즉 당뇨나 고혈압, 혈관 질환 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만이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대사성 장애를 걱정할 만큼 장수하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이때 비만한 체형이 더 매력적으로 취급된 건, 최소한 굶지 않고 잘 먹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날씬한 체형은 감염병에 걸렸거나 가난하다는 뜻이었다. 전혀 매력적으로 간주되지 않는 셈이다. 

    아프리카 줄루족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이들은 높은 체질량 지수와 높은 허리 엉덩이 비율을 선호한다. 하지만 토비 포레보스트와 마틴 굴리포드 등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으로 이민 간 줄루족은 금세 이 기준을 바꿨다. 영국은 위생 환경과 영양 조건이 양호하므로, 그곳에서는 비만한 체형이 도리어 질병과 빈곤을 뜻했기 때문이다. 이미 전염병과 빈곤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에서 비만 체형이 매력의 상징이 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튼 건강한 체형과 매력적인 체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정서적 선호도가 곧 매력이다.

    절약 유전자 가설

    1944년 체코 동부에서 붙잡혀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유대인 여성과 아이들. [wikimedia commons]

    1944년 체코 동부에서 붙잡혀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유대인 여성과 아이들. [wikimedia commons]

    물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옳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외양으로 평가하는 것을 몹시 꺼리는 사람도 흔히 비만은 예외로 둔다. 비만은 타고난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자기 관리의 실패’, 즉 게으름의 문제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타고난 외모는 의지로 바꾸기 어렵지만, ‘안 먹고 운동하면 살은 그냥 빠지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비만인 처지에서는 이처럼 억울한 일도 없다. 살이 찌는 것이야말로 후천적인 노력이 아니라 선천적인 유전자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절약 유전자 가설(Thrifty Gene Hypothesis)’이라고 하는데, 1962년 유전학자 제임스 닐이 제안한 주장이다. 쉽게 말해 척박한 환경에서 굶주리고 살던 우리 선조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능한 한 에너지를 절약해 몸에 축적했다. 절약 유전자 가설은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비만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즉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살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마음은 살을 빼고 싶지만, 몸은 이런 ‘마음’을 몰라주고 섭취한 영양소를 차곡차곡 지방으로 바꾸어 쌓아두는 것이다. 식사량을 줄이면 몸은 ‘먹을 것이 부족하구나’ 하고 오인해 더더욱 근검절약에 박차를 가한다. 칼로리만큼은 펑펑 낭비해도 좋으련만 몸은 영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 운동을 하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운동은 건강에 아주 좋지만, 체중 조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 수렵채집인이나 사무실에서 앉아만 있는 사람이나 에너지 소비량은 별 차이가 없다. 특히 신체 활동이 많아지면 몸은 다른 쪽의 에너지 소비를 줄여 이를 벌충한다. 이를 ‘운동의 역설(Exercise Paradox)’이라고 한다. 

    물론 식사량을 기아에 빠질 정도로 줄이고, 최적 수준의 신체 운동을 지속하면 살이 빠지긴 한다.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단식에 가까운 ‘죽음의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절약유전자든 운동의 역설이든 무시하고, 무조건 안 먹으면 어쨌든 살이 빠지지 않겠느냐는 과격한 방법이다. 

    1941년 나치는 유대인 거주 지역을 봉쇄하면서 하루 3g의 지방, 30g의 단백질, 800㎈의 열량만 제공했다. 급속 다이어트 요법에서 제공하는 것이 흔히 하루 1000㎈ 식단이다.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갇혀 있던 유대인 의사들은 어차피 굶는 참에 기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로 했다. 

    “감정이 밋밋해지고, 무기력해져서 아무 의욕도 느끼지 못한다. 허기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빵이나 고기를 보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해 맹렬하게 탈취한다. 맥박과 호흡이 점점 느려진다. 그러다 숨을 거둔다 (중략) 때로는 손에 빵을 쥐고 죽는다.” 

    결국 20개월 만에 4만 명이 죽었는데, 연구에 참여한 의사도 절반이 죽었다. 죽음의 다이어트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자칫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5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데 물론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수백만 년의 진화적 적응 과정을 극복하겠다며 우격다짐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절약만 외치는 몸을 살살 달래가면서 다이어트하는 것이 현명하다. 

    비만인 중 이른바 ‘대식가’는 약 2%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연비가 너무 좋은 몸을 가진 것, 두 번째 이유는 운동을 많이 한다고 그에 비례해 칼로리가 더 소모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몸에 새겨진 진화적 유산, 즉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하겠다는 굳은 의지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한다.

    자린고비 속이기

    탄수화물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탄수화물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절약 유전자 가설이 비만에 대한 유전적 가설이라면, 환경적 가설도 있다. 바로 ‘절약 형질 가설(Thrifty Genotype Hypothesis)’이다. 이는 어린 시절에 겪은 환경적 자극에 대해 몸이 반응해 성인기의 대사 패턴을 조율한다는 것이다. 진화의학적으로 설득력이 매우 높은 가설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해 늘 배가 고팠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도 대충 궁핍할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 몸은 에너지 절약을 강화하는 비상 전략을 취하게 된다. 반대로 어린 시절 여유 있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자랐다고 하자. 그러면 풍족한 환경이라고 간주하고 절약보다는 소비를 늘리는, 즉 성장과 번식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장기 전략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생애사적 적응 전략은 주로 생애 초기에 일어난다. 상당 부분은 자궁 내에서 이미 시작된다. 임신 중에 다이어트를 절대 피해야 하고, 출산 후에도 충분한 모유 수유를 하는 것이 2세의 장기적 건강, 그리고 ‘날씬한 체형’을 위해 바람직한 이유다. 사실 이런 절약 형질은 후생유전학적 기전을 통해서 몇 대 이상 이어진다. 즉 할머니가 어려운 환경에서 유아기를 보냈다면, 그 영향이 손주에게도 ‘억울하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약 형질 가설이 반드시 어린 시절에만 일어난다고 볼 이유는 없다. 비록 당장 올여름까지 살을 확 빼고 싶은 사람은 실망스럽겠지만 장기간에 걸쳐서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만들면 몸과 마음도 그에 맞추어 적응하게 된다. 우리 몸은 걸핏하면 근검절약을 외치는 자린고비지만, 그에게 ‘봐라. 그렇게까지 절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살짝 속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안정된 식생활과 스트레스 없는 환경, 규칙적인 생활, 적당한 운동 등을 지속하면 몸은 어느새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다. 무리한 절약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정적으로 칼로리가 공급되는데 몸에 지방으로 저장할 이유가 없다. 장기간에 걸쳐서 조금씩 체중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다. 

    물론 규칙적인 생활 습관에 의한 긍정적인 변화는 나이가 어릴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발달 초기는 주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성인기에도 낮은 스트레스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게다가 조율된 절약 형질 및 삶의 방식은, 유전적 기전과 문화를 통해 다음 세대에도 내려간다. 자신만이 아니라 후손의 날씬한 몸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더 힘이 날지도 모르겠다. 

    우리 몸이 포만감을 느끼는 이유는 말 그대로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뭐든 먹으면, 설령 수돗물을 마셔도 배는 부르다. 가짜 포만감을 주어 식사량을 줄인다는 섬유질 위주 다이어트 식품이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실 비싼 건강식품을 먹을 이유가 없다. 섬유질이 풍부한,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

    스페인 화가 후안 카레노 데 미란다의 작품 ‘벌거벗은 유제니아 아르티네즈 발레조’. [wikimedia commons]

    스페인 화가 후안 카레노 데 미란다의 작품 ‘벌거벗은 유제니아 아르티네즈 발레조’.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바로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 특히 단당류 위주의 단 음식은 다른 기전으로 작동한다. 비극의 시작은 단맛이다. 인류의 오랜 진화의 역사 동안 단 음식을 먹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달콤한 음식은 꿀이나 과일에 불과했는데 꿀은 구하는 게 쉽지 않았고 야생 과일은 우리가 지금 먹는 과일처럼 달지 않았다. 

    설탕이나 빵, 밥과 같은 탄수화물은 혈당을 금세 높일 뿐 아니라 대뇌 안의 도파민 보상 체계를 활성화한다. 이것은 행복감을 줄 뿐 아니라 우울감을 낮추고 심지어 신체 통증을 줄여주기도 한다. 다른 종류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효과다. 그래서 과거에는 꿀이 약처럼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알코올이나 헤로인 중독 환자는 단것을 먹으면서 금단 증상을 해결하곤 한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맛에 대한 선호는 분명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강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단것을 먹는 것이라면 영 곤란하다. 인지와 행동은 중독의 회로를 이루는 중요한 두 축이다. 한번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면 끊기 어렵다.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복병이다. 

    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급한 마음에 무리한 다이어트에 돌입하곤 한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초조해하다가 급한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이내 실패한 후 가을에는 옷으로 가릴 수 있음에 안도하는 패턴이 매년 반복된다. 하지만 체중이 의도하지 않게 줄어든 때가 있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스트레스에서 잠시 해방된 때였다. 먹고 싶은 대로 먹었고, 운동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살은 쏙 빠졌다. 

    전투적 다이어트, 예를 들면 두 달 내에 10㎏ 감량, 하루 섭취 열량 1500㎈ 제한 혹은 매일 5㎞ 달리기 등의 공격적 감량 시도는 무조건 실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시적인 성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지속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늘리는 다이어트는 반드시 역효과를 낳는다. 

    사실 자발적으로 살을 뺀다는 행위 자체가 근대 문명사회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인류의 긴 진화사 동안 살이 빠지는 건 예외 없이 재난 상황이었다. 예를 들면 전쟁, 포로 생활,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인한 기아, 전염병으로 인한 부모의 죽음 등이다. 우리 몸에 새겨진 진화의 기억은 ‘다이어트’에 대해 이처럼 아주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과도한 다이어트에서 스트레스는 필연적이다. 몸은 생존을 위한 방어 체계를 즉각 작동한다.

    행복을 위한 다이어트?

    약물이나 수술 같은 의학적 방법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온건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살을 더는 찌울 필요가 없다고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일상, 규칙적으로 먹는 ‘맛있는’ 음식, 충분한 수면, 건강한 사교와 대인관계, 안정적인 이성관계, 적당한 신체 활동과 여가 생활이다. 비록 진짜 인생은 시궁창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몸에는 이러한 긍정적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한번 궤도에 오르면 관성을 받아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성도 만나고, 친구에게 인기도 얻고, 행복한 만족감을 누리려고 살을 빼려는 것인데, 반대로 그런 삶을 살아야만 살이 빠지는 것이라면 자신은 너무 절망스럽다는 것이다. 가슴 아픈 질문이지만 ‘대략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체중, 건강, 매력, 행복. 이 중 무엇이 가장 우선일까? 보통은 체중부터 조절하면 건강과 매력, 행복이 순차적으로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체중부터 잡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건강과 매력, 행복을 포기하면서도 체중을 줄이려는 본말전도의 강박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실은 그 반대다. 행복한 삶부터 찾으면 다른 세 가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행복은 삶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행복한 사람은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설령 좀 통통하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행복하니까.

    박한선
    ● 1976년생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 서울대 인류학과 강사,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 저서 :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역서 : ‘행복의 역습’‘여성의 진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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