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앞서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실험 중’
일자리 줄고 체감물가 급상승
차이잉원 지지하던 젊은 세대, “차라리 중국으로 갈래”
아시아의 대처? 대만 최초 연임 실패 총통 될 판
[뉴시스]
두 사자성어는 지난 5월 취임 2주년을 맞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처지를 요약한다.
‘숫자’는 상황을 더 여실히 보여준다. 5월 15일 대만 ‘연합보(聯合報)’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의 국정운영 불만족도는 56%. 만족도는 그 절반가량인 29%에 불과하다. 현 총통이 ‘계속해서 대만을 이끌어가지 못할 것이다’는 응답도 지난해보다 5%포인트 증가한 58%로 집계됐다. 총통 연임 여부에도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대만 총통은 4년 중임(重任)제. 현시점에서 차이잉원은 대만 최초의 연임 실패 총통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1996년 총통 직선제 부활 이후 당선된 리덩후이(李登輝), 천수이볜(陳水扁), 마잉주(馬英九)는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최저임금, 2년 연속 5%대 인상
노동절인 지난 5월 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노동할 권리” 등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왼쪽). 2017년 노동절 집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차이잉원 총통의 사진에 두부를 던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뉴시스]
국내외의 높은 기대 속에 출범한 차이잉원호(號)가 불과 2년 만에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빠진 요인으로는 악화일로를 걷는 양안관계, 공무원연금 개혁 등 강력한 개혁 정책에 대한 저항, 그리고 차이잉원 본인의 리더십 문제가 꼽힌다.
차이잉원은 지난 2월 개각을 단행하며 자신의 이종사촌 언니 린메이주(林美珠)를 노동부 부장(장관)에 임명했다. 같은 시기, 조카 차이위안스(蔡元仕) 이란(宜蘭)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총통부 직속 사법개혁국시회의(國是會議) 검찰 대표로 선출됐다. 정실 인사 논란에 대해 차이잉원이 “능력에 따른 발탁”이라 일축하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차이잉원이 키우는 고양이도 언젠가는 ‘부장(장관)’이 되겠다”는 냉소가 확산됐다.
무엇보다도 차이잉원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다. 문재인 정부보다 1,2년 앞서 최저임금을 (대만 입장에선) 급격하게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전격 단축한 것에 대한 재계 및 노동자 반발이 거세다. 노동자의 소득 감소, 실업률 증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차이잉원 당선 이전 대만은 10년가량 최저임금을 동결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이 그 이유였다. 취업이 어려운 청년 세대의 불만도 하늘을 찔렀다. 120신대만달러(480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150신대만달러(6000원)까지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차이잉원은 특히 청년 세대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차이잉원의 대만 정부는 2016년 최저임금을 126신대만달러(5040원)로 5% 인상했다. 이듬해인 2017년에도 133신대만달러(5320원)로 5.6% 상향했다(2018년 최저임금은 국민적 저항으로 인해 동결).
문제는 최저임금 상승의 ‘역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고용률이 저하돼 사회 초년생과 단기근로 노동자가 직격탄을 맞았다. 차이잉원 취임 후 대만 실업률은 4%, 특히 청년 실업률은 12%로 고착화된 상태다. 차이잉원 당선 전 청년실업률이 10%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악화된 셈이다. 이에 대만 청년들은 차이잉원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대만 청년들은 ‘차이니즈 드림’을 꿈꾸며 대만 탈출을 시도한다. 과거에도 중국 취업을 희망하는 대만 청년들이 꽤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최근 1,2년 사이 대만 경제가 더 악화되는 한편 중국의 실질임금이 대만의 그것에 비해 더 높아진 것도 ‘탈(脫)대만’을 부추긴다. 대만에서 대졸 초임은 대략 월 2만8300신대만달러(113만2000원)지만, 중국의 대기업은 월 7000위안(약 119만 원)을 준다. 절대 금액에서 차이는 미미하지만, 실질 물가를 감안하면 중국의 급여가 월등히 높다.
2018년 4월 대만 최대 구직 사이트 ‘104인력은행’이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18~24세 청년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69%가 “중국에서 취업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행정원 주계총처(통계청에 해당)에 따르면 2017년 대만의 해외취업자 수는 72만4000여 명으로, 최근 4년간 6만2000여 명이 증가했다. 그중 2017년 기준으로 중국 취업자가 58%로 가장 많다.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위탁 생산)업체 대만적체전로제조(臺灣積體電路製造·TSMC) 설립자 장중머우(張忠謀)는 “우리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과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법정휴일 근무는 불법”
‘대만판 워라밸’ 구현을 명분으로 실시한 노동법 개정도 논란을 일으킨다. 2016년 12월 6일, 노동법 개정안이 난투극 끝에 입법원(국회) 다수당인 민진당 주도로 입법원 3독회(讀會·법안 심사 최종 과정)를 ‘날치기’ 통과했다. 개정된 노동법은 201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노동법 개정의 요지는 이렇다. 법적으로 일주일 중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해오던 것을 실질적인 주5일 근무제도(一例一休·일례일휴)로 변경했다. 이틀의 휴일 중 법정휴일((例假·정기휴일)은 법적으로 근로가 금지되고, 휴일(休日·비번일)에는 회사가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노동자에게 근무를 요구할 수 있다.
그간 휴일노동수당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었고 기업들은 대개 통상 시급의 1.5배를 지급해왔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휴일노동수당은 통상 시급의 2배로 규정됐다. 구체적으로 휴일 초과 근무수당은 2시간 이내면 평일 시급의 3분의 1을 지급하고, 2시간 초과 근무에 대해서는 평일 시급의 3분의 2를 추가 지급한다. 즉, 휴일에 4시간을 근무하면 하루치 평일급여를 수령하게 된다. 그리고 종전 법에는 명시되지 않았던 ‘교대 근무 시 11시간의 휴게시간 보장’도 명문화했다.
차이잉원 정부는 이로써 대만 노동자의 ‘워라밸’을 상향시켰으나, 동시에 반대급부도 제시했다. 법정공휴일 축소다. 연중 19일의 법정공휴일 중 양력 1월 1일(신정) 다음 날, 청년절, 교사절(스승의날), 광복절, 장제스탄생일, 국부(쑨원)탄생일, 행헌(제헌)절 등 7일을 법정공휴일에서 삭제했다.
이 같은 노동법 개정은 노사(勞使) 양측의 불만을 샀다. 재계는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주휴(週休)수당 추가 지급으로 인건비가 상승해 투자·고용 축소가 불가피하며, 물가 상승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쉬청슝(許勝雄) 전국공업총회 회장은 “원가 상승-서비스 악화로 인한 폐업-사회 부담 가중의 3가지 부작용(三輸)을 안은 ‘썩은 사과(爛蘋果)’ 정책이자 잔혹한 정책”이라 맹비난했다. 린보펑(林伯豐) 공상협진회(工商協進會) 회장도 “최저임금 인상에 이은 노동시간 단축은 성급한 조치였으며, 기업의 고용 비용이 5~8% 상승해 물가 상승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대만 재계 양대 경제단체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만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대만은 경제성장률 2.84%, 물가상승률 1.64%, 소비자 물가상승률 1.4%를 나타냈다. 그러나 대만 국민들은 “체감 물가상승률은 10%대에 달한다”며 아우성이다. 일례로 50신대만달러(2000원) 선이던 커피나 과일음료가 55신대만달러(2200원), 100신대만달러(4000원)가량이던 서민 식당 음식 가격은 110~120신대만달러(4400~4800원)가량으로 10~20% 인상됐다.
기업 규모나 산업별 특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강제한 점도 불만의 주요 포인트다. 휴일에도 공장 가동을 쉴 수 없는 기업체의 경우 인도네시아, 태국, 방글라데시 등 외국인 노동자들만 선별해 휴일에 일하도록 하거나,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파견직 고용을 늘리고 있다.
의사, 간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종, 버스·화물차 등 ‘특수면허’가 필요한 산업 분야의 고심도 크다. 성수기나 연휴를 대비해 대체인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만 최대 규모 종합병원인 국립대만대학병원은 2017년 4월부터 토요일 외래진료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여타 대형병원들 또한 토요일 외래 휴진을 도입하는 추세다.
최대 여객·운송기업 궈광객운(國光客運)은 버스 운행 시간과 노선을 축소했고, 일부 구간 운임을 5~8% 인상했다. 여타 서비스 분야도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언론의 평가도 박하다. 자유시보(自由時報)는 2017년 1월 ‘일례일휴 이기는 자 없는 개정안(一例一休 沒有贏家的修法)’이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노동법 개정안의 허점이 너무 많다. 진흙으로 만든 보살이 강을 건너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대만 3대 일간지 중 발행 부수 최대를 자랑하는 자유시보는 대표적 친(親)민진당 성향 매체다.
“진흙 보살이 강 건너는 격”
노동자는 재계보다 불만이 더 많다. 주휴임금 지급을 꺼리는 기업들이 고용을 축소함으로써 일자리가 줄었고, 법정 근로시간 축소로 실질임금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종전 임금 수준을 유지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비번인 날에도 일을 더 해야 한다. 법정공휴일 감소도 주요 불만 중 하나다. 설상가상으로 물가가 상승해 임금의 구매 가치가 떨어졌다. 대만 국민들 사이에선 ‘유연성 없는 일례일휴, 휴가 벌고 물가로 갚다(一例一休沒彈性 賺了休假賠了物價)’는 냉소가 확산되고 있다.지난 1월 시사주간지 ‘금주간(今週刊)’이 개정된 노동법 시행 1주년을 맞아 대만 성인 12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54.2%가 “현행 노동법에는 문제가 있고,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과 노동자의 반발이 거세지만, 차이잉원은 “개혁은 대가를 지불하기 마련”이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장 치러야 할 대가는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옳고, 필요한 정책이라는 취지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을 두고 논란이 이는 대만의 상황은 기시감을 준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두고 정부와 이해당사자 간 목소리가 엇갈린다. 7월 1일 ‘주 52시간 근무’ 전격 시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회적 진보’라는 당위성을 내세워 속전속결 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행태는 한-대만 정부가 묘하게 닮았다. 한발 앞서 한국과 유사한 정책을 실시하며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만의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