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를 ‘느끼게’ 하는 ‘건축’이라는 안경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379쪽, 1만8000원
한국인 모두가 동일한 층고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니. 좀 섬뜩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고 더 섬뜩해졌다. 저자 유현준에 따르면 아파트는 2.4m, 학교는 2.6m, 상가 건물은 2.5m로 층고가 통일돼 있다고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 물을 일이 아니다. 다 똑같은 데서 살고 있으니.
저자는 ‘다 똑같은’ 한국 건축과 도시의 현실을 하나씩 풀어헤치면서 “정말 이런 데서 살고 싶으세요?” 하고 속삭인다. 교도소와 학교 건축이 별반 다르지 않고, 어딜 가든 고층 아파트 담벼락은 길게 둘러쳐져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건축’이라는 안경을 씌워준다. 비로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제대로 보게 해주는 안경을.
지금부터라도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자는 저자의 제안은 솔깃한 대목이 많다. 스머프 마을처럼 저층에 분절된 학교를 짓는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건물 밖으로 자주 나와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이다. 한강에 서울숲과 압구정동을 잇는 보행교가 놓인다면, 서울숲에서 놀다가 걸어서 압구정동으로 저녁 먹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공원에조차 담벼락을 쳐놓은 이유가 뭘까? 그게 없다면 한결 쉽게 공원을 드나들 수 있을 텐데.
저자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건축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조금이나마 키워졌기를 바란다’고 한다. ‘건축을 느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책을 덮으면 자꾸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알쓸신잡2’에서 유독 유현준의 건축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 시청자라면, 이 책에서 방송이 못다 담아낸 건축과 도시에 대한 그의 상상력을 즐겁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 다양한 건축 사례와 역사, 인문학 등을 넘나드는 광폭 행보는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비슷하지만, 이번 책은 더 쉽고 재미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로버트 모스 지음, 박성기 옮김, 금토, 1권 427쪽·2권 411쪽, 각권 1만2000원
박진감 넘치는 극비 첩보전이 펼쳐진다. 번쩍이는 크렘린궁 철의 장막 뒤에서 새로운 혁명의 싹이 돋는다.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고 했다. 이 소설 주인공 ‘프레오브라젠스키’처럼 전대미문의 영웅은 태어나는 게 아니고 길러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대는 영웅이 출현할 무대를 제공하고, 우리를 ‘영웅’을 기다린다.
신노예
최성환 지음, 앤길, 294쪽, 1만6000원
당신을 노예로 만드는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AI가 발달하고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면서 삶은 한결 편해졌으나 ‘노동’에 인간이 필요치 않은 시대가 다가온다. 노동하던 인간은 ‘잉여’가 되고 소수 기득권층은 평화로운 삶을 방해받지 않고자 ‘잉여’들을 소비체로 활용한다. 이 같은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
중심에서 ‘세계 품으려는’ 현대 중국 ‘제국몽’
이유진 지음, 메디치, 524쪽, 1만8000원
나폴레옹은 중국을 ‘잠자는 사자’에 비유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중국·프랑스 수교 50주년 기념 강연에서 “중국이라는 그 사자가 이미 깨어났다”고 선언했다. 사자의 깨어남은 ‘중화의 부흥’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최고라는 중화사상은 역사적 경험에서 각인된 일종의 컬처코드(Culture Code)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국 이후 30년, 개혁·개방 이후 30년을 지나온 중국이 새로운 30년을 펼쳐가고 있다. 지난 두 단계 모토가 각각 계급투쟁과 경제 발전이었다면 향후 30년의 모토는 ‘위대한 중화의 재현’이다.”(7쪽)
중국은 오랫동안 ‘제국’이었다. 청(淸)이 몰락하면서 해체된 중화제국이 중국몽(中國夢)과 함께 복원된다. 중국은 지역 질서의 주도자를 넘어 세계 질서의 변경자가 되고자 한다. ‘부강의 부상’ 즉 ‘강한 중국’을 넘어 ‘문명의 부상’을 선언했다. 세계 질서를 주재하겠다는 ‘제국몽’이 꿈틀거린다.
중국 역사는 ‘제국의 흥망사’다. 하나의 제국이 멸하면 또 다른 제국이 등장했다. 제국이 무너진 후 여러 나라로 쪼개진 서구와 다르다. 중국사는 분열의 과정이 아니라 통일로 회귀하는 방향으로 전개돼왔다. 좋건, 싫건 중화제국 복원은 시간문제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와 이웃해 국가 자존심을 지키면서 공존하려면 중국의 경로와 지향이 어떠했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둥지 박차고 더 높은 비상 꿈꾸다
‘시안, 실크로드의 영광을 품은 곳’ ‘뤄양, 용문석굴과 모란의 도시’ ‘카이펑, 송나라의 찬란한 기억’ ‘항저우, 서호의 낭만이 깃든 곳’ ‘난징, 육조 문화의 꽃을 피운 곳’ ‘베이징, 정주세계와 유목세계의 접경’ 6개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중국사 3000년 ‘시간’을 씨줄, 도읍 여섯 곳(시안·뤄양·카이펑·항저우·난징·베이징) ‘공간’을 날줄로 삼았다. 중국인은 시안에서 자부심을 찾고 뤄양에서 기도하며 카이펑에서 기개를 얻고 항저우에서 낭만을 맛보며 난징에서 와신상담하고 베이징에서 미래를 본다.
“‘서양엔 로마, 동양엔 장안’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중국 역사의 황금기에는 모든 길이 장안으로 통했다.”(15쪽)
천년고도 시안(장안)에서 시작해 ‘삼국지연의’ 낙양으로 잘 알려진 뤄양, 송나라의 카이펑, 소동파의 고장 항저우, 근현대사 비극을 간직한 난징에서 베이징까지, 여섯 도읍에 중국 3000년 역사 전체를 품었다. 저자는 역사가 층층이 숨어 있는 도시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촬영한 사진으로 책에 정취를 더했다.
공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살펴보는 게 꽤나 흥미로운 일인 데다 옛날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시선’으로 ‘중국 읽기’를 시도한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시안에서 베이징까지 순서대로 읽어나가다 보면 중국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생각해보게 된다. 6장의 마지막 문장을 음미해보자.
“베이징은 몰라보리만큼 변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마오주석기념당, 인민영웅기념비, 천안문, 자금성, 냐오차오(올림픽 주경기장·鳥巢·‘새둥지’라는 뜻) 등 베이징 중축선상의 이 기념비적 건축들은 변하는 중국을 말해주는 동시에 변하지 않는 중국을 대변한다. 중축선이 부여한 질서의 전통 위에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난다. 중축선 위에 둥지를 튼 냐오차오에는 중심에서 세계를 품고자 하는 중국의 바람이 깃들여 있다. 과거 오랫동안 세계 정점에 있던 중국, 얼마간 추락을 겪은 뒤 중축선 위 둥지에서 자신의 비상을 알린 중국은 지금 더 높은 비상을 꿈꾸고 있다.”(517~518쪽)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서울 선언 |
문헌학자가 길 위에서 기록한 서울의 민낯
김시덕 지음, 열린책들, 416쪽, 1만8000원
그동안 거대 도시 서울을 다룬 책은 많다. 다만 특정 주제의식 혹은 문제의식을 통해 ‘서울’에 접근하고자 했다. 서울은 ‘주인’이 되지 못하고 ‘객(客)’이 된 셈이다.
‘서울토박이’ 문헌학자가 10여 년 동안 서울을 걸으며 찍고 기록한 이 책은 서울의 민낯을 보여준다. 조선 5대 궁궐 등 우리 문화유산을 찬미하지도 않는다. 일제강점기 건축이 되새겨주는 ‘아픈 근대’의 흔적을 찾는 책도 아니다.
스마트폰으로만 쓰고 찍은 ‘현장감 넘치는’ 글과 사진
저자는 상징성 높은 건물이나 공간에 가려진 서울 곳곳을 재조명한다. “도로명도 붙지 않은 좁은 골목,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낡은 건물 하나하나가 소중한 연구의 대상”이라는 저자는 존재 의미를 생각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서울 곳곳의 건물과 공간을 살폈다.
켜켜이 먼지 쌓인 고문서에 담긴 의미를 캐는 문헌학자에게 서울은 하나의 거대한 필드워크다. 그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행간’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고 독자와 공유하고자 책을 냈다. 이 책의 부제는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걷기 2002~2018’.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들 뜻대로 서울을 바꾸려 할 때 누군가는 뒤에 남아 그들에 의해 바뀌어가는 서울의 모습을 기록하고 증언할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안내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서울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오로지 스마트폰으로만 쓰고 찍은 ‘현장감 넘치는’ 글과 사진을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강원도의 맛
전순예 지음, 송송책방, 352쪽, 1만6000원
저자는 1945년 강원도 평창군 산골에서 태어났다. 이 책에는 6·25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강원도 산골의 풍경이 담겼다. 작은 재료도 아껴 풍성히 차리고 골고루 나눠 먹던 음식, 굶는 사람, 딱한 사람 챙기던 밥, 이웃집 고양이도 잊지 않고 챙기며 ‘같이 살자’는 살뜰한 마음, 그것이 강원도의 맛이다.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임동주 지음, 마야, 384쪽, 1만8000원
동물은 움직이지 않는 식물과 달리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말한다. 물론 사람들은 동물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큼 대단한 존재냐고 코웃음 칠 수도 있다. 중동에 낙타가 없었다면 이슬람교가 전파될 수 있었을까. 몽골에 말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이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동물은 이루 다 열거하지 못할 만큼 인류에 영향을 끼쳤다.
저자와 茶 한잔
|허병두 ‘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들’ 이사장|
“글쓰기 넘어 책쓰기 교육 필요하다”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주제, 분량, 작성 시간을 주고, 심지어 글쓰기 용지와 필기구까지 통일하죠. 그래놓고 창의적인 글을 쓰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학생들은 글쓰기를 고역으로 느끼고, 점수를 따려면 해야 하는 일 정도로 여기게 됩니다.”
허 이사장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책쓰기’에서 찾았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원하는 주제를 찾아 자신만의 책을 써보도록 독려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책은 일정 분량의 글을 모아놓은 묶음이 아닙니다. 책이 되려면 하나의 주제와 체계가 필요하고, 그것을 정해가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큰 기쁨을 주죠. 책 쓰기 교육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학생들이 밤을 새워가며 몰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만의 문제의식과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애쓰고, 그 결과를 묶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로와 적성, 소질과 재능을 확인하고 글 쓰는 능력도 키우게 됩니다.”
허 이사장은 이 경험을 ‘책따세’ 동료 교사들과 나눴고, 점점 더 많은 교사가 교육 현장에서 제자들에게 책을 쓰도록 독려했다. ‘책따세와 함께하는 책쓰기 교육’은 허 이사장을 비롯한 7명의 현직 교사가 자신들의 경험담을 묶어 펴낸 책이다.
책따세와 함께하는 책쓰기 교육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들 지음, 문학과지성사, 387쪽, 1만 5000원
허 이사장은 “책 쓰기는 결코 어렵지 않으면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이 책을 통해 학생뿐 아니라 성인들도 직접 책을 쓰려는 시도를 하게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최준식 지음, 김영사, 236쪽, 1만4000원
여기, 아름다운 삶을 위한 ‘죽음 공부’가 있다. 인간다운 죽음이란 무엇일까.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하면 품위 있게 맞이할 수 있을까. 잘 사는 법은 많아도 잘 죽는 법은 없는 현실에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한국학·종교학·죽음학에 천착한 학인(學人)이다.
숲은 생각한다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 사월의책, 456쪽, 2만3000원
인류학자인 저자가 아마존 숲속의 생활상을 4년간 관찰해 사색한 결과물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재규어에서부터 개미핥기, 대벌레와 솔개, 선인장과 호두나무에 이르기까지 숲속 생물의 흥미진진한 삶과 생존 전략이 인간의 역사와 얽히고설키는 풍경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