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라고 하면 대번에 징그럽다고 하고, 곤충 하면 해충부터 떠올리죠. 우리나라에 3만7000종의 곤충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 170만 종이 넘어요. 그중 해충은 몇 종이나 될까요. 파리, 모기, 바퀴벌레 말고 또 뭐가 해충인지 묻고 싶네요.”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이 연구소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짝짓기를 하고 있는 사향제비나비. [김형우 기자]
수컷들의 치열한 번식 경쟁은 여기서 끝나고 지금부터는 암컷의 시간이다. 암컷이 이 나무 저 나무, 이 잎 저 잎 앉았다 날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알을 낳을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서다. 암컷 앞발엔 일종의 센서가 달려 있어서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들이 먹기에 가장 좋은 잎, 천적으로부터 알을 지켜줄 안전한 장소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끼들에게 해주는 ‘엄마의 선물’이다.
붉은점모시나비 밀반출 사건과 생물주권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겸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김형우 기자]
이곳에서는 멸종위기 곤충의 유전자 다양성 확보, 인공 번식, 생태 복원을 위한 방사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한 애벌레의 효율적 보전을 위한 기초 자료를 구축하고 유용 물질을 추출하는 연구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 가시적 결과가 이강운 소장이 펴낸 캐터필러 도감(1,2권 출간)이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보전대상 멸종위기종은 붉은점모시나비,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3종이며 비(非)지정종으로 왕은점표범나비, 깊은산부전나비, 물방개, 대모잠자리 4종의 증식과 복원도 진행하고 있다. 이 소장은 그중에서도 붉은점모시나비를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장 먼저 사라질 생물”로 꼽았다.
“대표적인 한지성 곤충인 붉은점모시나비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멸종위기종 중 하나입니다. 일반 나비와 달리 12월 초에 부화해 애벌레 상태로 한겨울을 보내는데 알은 영하 45℃, 애벌레는 영하 28℃까지 견딥니다. 몸속 내동결물질이 일반 곤충보다 최다 1600배나 많아 극저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우화(羽化) 시기가 계속 앞당겨져 2017년 연구소 실험 결과에 따르면 6년 전보다 14일이나 빨라졌습니다. 다행히 12년 전부터 연구소에서 증식과 복원을 꾸준히 해온 결과 현재 약 1000개체가 확보됐고, 내동결물질의 합성 경로에 대한 연구 등 붉은점모시나비의 메커니즘을 ‘글리세롤 조절을 통한 붉은점모시나비의 초냉각 능력’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모시 같은 반투명한 날개에 붉은 점이 선명한 붉은점모시나비는 일장기를 연상케 해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실제로 2004년 5월 강원도 삼척에서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멸종위기종을 불법으로 포획하거나 채취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돼 있어요. 저는 규정대로 해당 일본인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문에 ‘생물주권부터 지키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멸종위기종 해외 밀반출은 주권 침해나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 후로 사람들 사이에서 붉은점모시나비는 허락 없이 만지기만 해도 벌금 3000만 원이라는 말이 퍼졌습니다. 오는 8월 17일부터 국내에서도 시행되는 ‘나고야 의정서(생물다양성협약)’의 핵심 내용은 생물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ABS·Access to genetic resources and Benefit Sharing)입니다. 유전자원 이용국은 유전자원 제공국의 승인 후 자원에 접근할 수 있으며, 유전자원 이용으로 발생한 이익을 제공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생물주권을 확보해야 나중에 신약 개발과 같이 그 생물자원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멸종위기종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똥이 귀한 세상, 사라지는 분식성 곤충
붉은점모시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2년 7월, 기자가 왕소똥구리 서식지로 알려진 충남 태안군 신두리 해안사구에 현장 조사를 갔을 때 이미 왕소똥구리는 사라진 뒤였다. 6~7월이면 왕소똥구리가 한창 산란할 시기인데 자취를 감춘 이유는 ‘소똥’이 없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이 도난을 우려해 주변 초지에서 키우던 소를 우사로 데려와 곡물사료를 먹이기 시작한 데다 문화재청이 신두리 해안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방목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바람에 소똥구리의 먹이가 될 소똥이 사라졌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15년 전부터 횡성한우 두 마리를 방목해 키우고 있다. 애기뿔소똥구리, 보라금풍뎅이처럼 똥만 먹고 사는 분식성(糞食性) 곤충을 키우기 위해서다. 연구소에는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가 1000여 마리 있다.
“곡물사료를 먹은 소의 똥은 먹이로 쓸 수 없어서 신선한 똥을 구하기 위해 직접 소를 방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기뿔소똥구리는 소똥으로 경단(Ball)을 만들고 경단 안에 알을 낳습니다. 알은 그 안에서 3번의 탈피를 마친 후 70일 후쯤 경단을 뚫고 애기뿔소똥구리가 나옵니다. 대체로 소똥 600g 정도가 제공되면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그때까지 계속 신선한 소똥을 공급해줘야 해요. 우리는 왜 이런 분식성 곤충을 연구해야 할까요. 생태계 구성 요소가 하나 없어진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우리가 이 곤충들의 몸속에서 새로운 항균성 물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소똥을 먹은 곤충들이 그 똥에 알을 낳고 거기서 나온 알이 부화해서 또 그 똥을 먹고 똥을 싸면서 살아가는 엄청난 항균력에 주목해야 해요. 앞으로 이런 것이 얼마나 활용 가치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또 애기뿔소똥구리는 목 부위에 응애를 달고 다니는데 이를 편승이라고 합니다. 이 응애가 애기뿔소똥구리와 똥을 놓고 경쟁하는 파리의 애벌레를 잡아먹어요. 이와 관련해 ‘한국산 애기뿔소똥구리의 편승 응애에 대한 새로운 기록과 생태적 의미’라는 논문을 발표했죠. 애기뿔소똥구리의 암수 구별은 뿔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뿔이 난 쪽이 수컷이죠. 그런데 이 뿔의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어요. 만약 성적 상징이라면 큰 뿔과 작은 뿔 중 암컷은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애기뿔소똥구리보다 몸집이 세 배 정도 큰 뿔소똥구리와는 어떻게 다른가 등등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요. 곤충의 개체 수가 많아지면 좀 더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죠. 이 소똥구리 때문에 전 세계 학자들이 저희 연구소에 찾아옵니다.”
물장군에 이어 물방개 너마저…
알을 품은 수컷 물장군.(왼쪽) 애기뿔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김형우 기자]
이처럼 작은 물고기들에겐 공포의 존재지만 지극한 부성애로 유명하다. 물장군 암컷은 짝짓기를 한 뒤 수초나 물 밖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70~120개의 알을 낳는다.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는 데 유리하지만 대신 알이 건조해지기 쉽다. 누군가 규칙적으로 수분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이 일을 수컷이 맡는다. 수컷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수시로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 알을 품는다(포란). 만약 수컷의 헌신이 없다면 물장군은 전멸했을 것이다. 실제 인위적으로 포란을 뗐더니 알은 부화에 실패했다.
지역에 따라 물장수, 물짱구, 물찍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물이 찰랑거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물장군이 농약 사용과 서식지 훼손으로 이제는 인간이 사육하지 않으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17년 12월 환경부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멸종위기종을 기존의 246종에서 267종으로 늘려 발표했다. 큰수리팔랑나비, 장수삿갓조개, 미선나무, 층층둥굴레 4종이 빠진 대신 새롭게 25종이 추가됐다. 그중에는 물방개도 포함돼 있다. 그 많던 물장군, 물방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방문객을 맞는다. “가지 못하게 꼭 잡으려 해도, 손에 쥔 바람처럼 생명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