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칼럼 썼다 1993년 법관재임용 탈락
‘사법부 독립’보다 중요한 건 ‘사법부 책임’
기득권 향유, 고질적 병폐 검찰도 못지않아
‘관선변호’ 실태 조사, 공수처 설립으로 ‘재판 공정성’ 확보
공수처 생기면 판·검사 대상 진정 가장 많을 것
로스쿨 제도 안 바꾸면 미래 없다
[지호영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주도한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지적 같다. 그러나 실은 1993년 5월 신평 당시 대구지법 판사가 한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25년 전 글인데도 마치 오늘 우리 사법부의 현실을 꼬집은 듯 읽힌다. 당시 칼럼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형태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치는 사회구조적 변화, 개혁의 시기가 도래했다. 사법부만이 그 특수성을 내세워서 개혁의 거센 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며, 오히려 이것을 사법부에 내재한 병폐를 시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도록 했으면 한다. 혹자는 외부기관의 부당한 압력 행사에 의해서, 또는 대법원장을 비롯한 몇몇의 특정인에 의해서 오늘의 사법부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나, 과연 그 책임을 그렇게 쉽사리 전가시켜도 옳은 것이지 반문하고 싶다.’
역시 현재 상황에 맞춤한 듯 들어맞는다. 신 전 판사가 해당 칼럼을 쓴 건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가 사회 전반에 가득했던 때다. 그는 이 변화에 발맞춰 법원이 과거 잘못을 털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4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은 듯 보인다. 이 시점에 신 전 판사를 만난 이유다.
“언젠가 터져야 했던 일”
먼저 밝혀둘 것은 위 칼럼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8월 신 전 판사가 법관재임용심사에서 탈락, 법복을 벗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건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당시 임기 10년차인 법관 재임용대상자 가운데 유일하게 심사에서 탈락해 세상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사법부 수뇌부가 바른말을 한 판사에게 ‘괘씸죄’를 적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국회의원들이 대법원장에게 ‘해당 칼럼 때문에 신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게 아니냐’고 집중적으로 물었지만 법원은 끝내 부인했다.”
1993년 10월 5일 기록된 제14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에는 당시 대법원장이 ‘언론매체에 대한 기고문에 대한 보복성 인사는 결코 아니다. (신 전 판사가) 연임에서 제외된 사유는 인사권자의 권한에 관련된 것으로 구체적 사유를 밝히기 곤란한 점을 양해해달라’고 답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결국 신 전 판사는 분명한 이유도 모른 채 10년간 해오던 판사 업무를 하루아침에 그만둬야 했다.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이듬해 1월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후 2000년 대구가톨릭대 법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06년 자리를 옮겨 지금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있다. 판사, 변호사, 법학교수로 30년 이상 법조 분야에 몸담아온 그에게 최근 사법부 내홍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언젠가 터져야 했을 일이 이제 터졌다는 느낌”이라며 입을 열었다.
간략하게 돌아보자. 우리 사법부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처음 대중에 알려진 건 지난해 2월. 한 판사가 법원 내 요직으로 손꼽히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간부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판사는 해당 문제를 조사하고자 꾸려진 진상조사위원회에 ‘법원행정처 컴퓨터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보고했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법원이 자체 조사를 반복하며 1년여를 끄는 사이 대법원장이 바뀌었고, 5월 25일 대법원 특별조사단(특조단)은 ‘△일부 판사의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파일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고 발표했다. 특조단은 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안과 관련된 재판에 협조 의사를 밝히며 상고법원 설치에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점도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2015년 7월 31일 작성)에는 과거사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이 사법부가 청와대에 ‘협력’한 사례로 기재돼 있다.
‘법관 독립성 강화’ 주장의 한계
신평 교수(가운데)가 2013년 4월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법조인 선발·양성제도 개선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제 공이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것으로 보나.
“물론이다. 공익을 심대하게 해친 범죄행위가 표면화됐다. 고발도 여러 건 이뤄졌다. 검찰이 수사해야 할 사안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2016년 시작된 ‘촛불혁명’ 영향으로 대중의 정치 참여 의식이 급속도로 팽창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를 안 하거나, 법원이 수사받기를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법원의 적폐가 해소될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우리 사법권과 검찰권은 오랫동안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작동해왔다. 이번에 법원 문제가 불거졌을 뿐 검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이 그 문제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국민이 법원과 검찰에 바라는 건 공정한 재판, 공정한 검찰 처분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보다는 기득권층과 조직 자체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좀 오래된 일이지만 한 연말 모임 자리에서 모 부장검사가 ‘나는 우리 조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거기 변호사도 있고, 아예 법조계 밖 인사도 있는데 주저 없이 ‘검찰 만세’를 부르더라.
법원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 대법원이 왜 그렇게 상고법원을 만들려고 노력했겠나. 법원 권한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양승태 씨’만 그런 게 아니다. 수십 년간 법원에 있으면서 법원이 주는 이득을 챙겨온 판사들이 있다. 이들에겐 재판의 공정성보다 조직의 이익이 우선할 수 있다. 판사들이 ‘철밥통’을 누리며 과거에 가졌던 것 이상으로 갖겠다는 ‘혐오스러운’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진정한 사법 개혁은 이뤄지기 어렵다.”
지금 법원 내 젊은 판사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 당사자들을 엄히 단죄하고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는 것 아닌가.
“법원 상층부에 있는 사람은 젊은 판사들에 비해 법원이 주는 이익을 좀 더 많이 누렸다. 현상 유지를 바라는 마음이 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젊은 판사들이 이들과 완전히 다른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라고 본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말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옳지만, 얘기를 듣다 보면 그들 또한 기존 판사의 인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계속 법관의 독립을 강조하는 것 등이 그렇다. 이번에 김명수 대법원장도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사법부 스스로 훼손했다’고 자탄하며 수차례 ‘법관의 독립’을 강조하더라. 현재 대법원장한테 집중돼 있는 권력을 분산해 개별 법관이 더 많이 독립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면 우리 사법부의 가장 큰 문제인 ‘사법 불신’이 해소될 것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법부 내홍 사태를 진단하며 신 교수는 먼저 지난 정부에 ‘협조’해 기득권을 누리고자 한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 수뇌부를 비판했다. 또 6월 초 전국 법원장 36명이 모여 ‘이번 의혹 관련자들을 사법부가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낸 것을 거론하며 “그분들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듯하다”고 함으로써, 지금 법원의 중견 판사들도 공격했다.
법관의 책임
이렇게 말할 때 그는 분명 전·현직 법원 수뇌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 등 젊은 판사들 편에 서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내 이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의 창을 겨눴다. 선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혜택을 덜 누렸을 뿐, 그들 또한 ‘법원 기득권’에 안주해왔으며, 그래서 국민 눈높이에 맞춰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모두까기 인형’ 같다고 할까.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나설 각오가 서면 위기 상황에서 나를 엄호해줄 최소한의 ‘내 편’은 확보해둬야 할 텐데, 신 교수는 애초에 그런 계산 자체가 없는 사람인 듯 보였다.소장 판사들이 법관의 독립성 강화를 주장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그건 맞다. 그런데 왜 헌법이 법관의 ‘독립성’에 대한 조항을 뒀을까. 그건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려면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법관의 독립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민이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그런데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가 그 내부 구성원에게 잘못된 특혜를 주고 정작 사회적 요구에는 귀를 닫게 하는 원인이 되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볼 만한 소지가 있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사법부의 독립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사법 영역에 행정부가 간섭하는 건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민주화 과정에서 힘을 얻으면서 사법부의 독자적인 영역이 계속 넓어졌다. 또 과거 우리나라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는 엄청난 고통을 자기 극복의 의지로 견뎌내며 공부에 열중한 ‘초인’으로 간주됐다. 초인들로만 구성된 사법부는 일반인이 감히 비판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졌다. 일부 판사들은 이런 사회적 인식을 내면화해 극단적인 특권 엘리트 의식을 가졌다. 내부적으로는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 성적에 따라 철저히 서열화되는 관료집단의 질서에 길들었다. 이처럼 사법관료화가 심화되면서 사법행정권이 강력해진 게 이번에 불거진 사법부 내홍의 한 원인이다. 그런데 이번 문제가 ‘법관의 독립성 확대’로 풀리겠나. 지금 소장 판사도, 대법원장도 다 똑같이 ‘독립성 강화’ 얘기를 한다. 뭔가 문제가 있다.”
재판의 공정성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사법의 독립보다 사법의 책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세계 법학 선진국 중 사법부 독립만 강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사법의 과도한 독립은 그 구성원들에게 잘못된 특혜를 주고 사법부를 사회적 수요에 반응하지 않는 독재 기관으로 바꿔버린다’고 비판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다. 이제 우리도 사법의 독립 보장이 곧 공정한 재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법부가 외부의 견제와 간섭을 받는 게 문제’라는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공정한 수사와 재판의 길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을 얘기해달라.
“배심제를 좀 더 충실하게 하는 등 국민의 재판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또 법관과 검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신설해야 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법관은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일부는 그렇지 않다. 법관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금도(禁度)를 어기는 판사, 자질 부족 탓에 잘못된 재판을 하는 판사가 분명 있다. 이런 불공정하고 잘못된 재판을 걸러내지 못하면 국민은 사법부를 불신하게 된다. 현재 공수처 설치에 대해 찬반양론이 갈리는데 나는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을 개선하려면 공수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수처가 생기면 판·검사를 대상으로 한 진정이 가장 많이 접수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공수처가 법원과 검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관선변호, 현관예우
법관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금도를 어기는 일은 예를 들어 어떤 게 있나.“최근 차성안 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 등을 통해 ‘관선변호’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내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다. 관선변호는 법관 세계의 은어로, 법원 내부에서 판사가 다른 판사에게 재판에 대해 청탁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가족이나 지인 관련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청탁이 법원 내부에서 적잖게 일어나고, 그 영향력 또한 적지 않음을 법관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누구 한 명도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차 판사가 큰 용기를 낸 만큼, 이제는 법원 내부에서 이런 ‘적폐’를 없애려는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어떤 노력이 가능한가.
“판사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을 거다. 국민이 엄청난 충격에 빠지겠지만, 그것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재판의 공정성 논란이 일 때 주로 지적된 건 판사를 그만둔 법관이 재판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전관예우’였지 않나. ‘관선변호’는 ‘현관’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관예우’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도 일반인은 잘 몰랐다. 이 내용을 투명하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알고 보니 학계에서도 이미 이 문제를 지적한 이가 있었다. 박준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1년 ‘이른바 현관예우(現官禮遇), 관선변호(官選辯護) 현상에 대한 법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펴낸 것이다. 박 교수는 이 논문에서 ‘현관예우·관선변호는 법관·검사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담당 법관·검사에게 청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면서 ‘법관·검사의 알선·청탁행위는 그것이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공정한 직무를 저해하는지 여부, 부당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금지하여야 한다. 법관·검사가 알선·청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외관을 만들게 되고 이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법원 안팎에는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로스쿨의 한계
신평 교수는 2018년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제정한 대한민국법률대상을 수상했다. 신 교수의 대학 시절 은사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시상하고 있다.
2000년부터 법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지금의 로스쿨이 당시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고 있다고 보나.
“안타깝지만 전혀 그 구실을 못하고 있다. 지금 로스쿨은 오히려 기득권자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가 됐다.”
그렇게 법원을 향해 있던 신 교수의 칼날이 이번엔 로스쿨로 옮겨졌다. 법원에 이어 그가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다. ‘조직의 논리’가 굳건한 한국 사회에서 번번이 조직과 불화하는 신 교수에게 그가 생각하는 로스쿨의 문제는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당초 기득권을 깨고자 만들어졌는데, 가장 기득권 친화적인 조직이 됐다는 게 무슨 뜻인가.
“대중은 로스쿨의 문제를 지적할 때 흔히 비싼 학비, 공정성이 떨어지는 입학제도 등을 비판한다. 사실 그런 건 지엽적인 부분이다. 20년 가까이 법학교수로 일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얘기하자면 너무 성급하게 로스쿨을 한국에 들여온 것 자체가 문제다. 대륙법계 국가에서 3년 만에 법이론과 실무를 다 연마하도록 학생을 가르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프랑스, 독일, 일본 중 어느 나라도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로스쿨 도입을 검토할 때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법조인을 양성하는지 제대로 연구만 했어도 지금 같은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현재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 ‘참사’ 수준이라는 말인가.
“전혀 과장 없이 딱 그 말 그대로다. 우리나라 로스쿨 학생들은 대부분 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비싼 학비를 부담하면서 청춘의 황금 같은 시기를 공부에 쏟아붓는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노력하고도 혼자 변호사 역할을 충분히 해내기 어려운, 빈약하고 허술한 법률가가 되고 만다. 이건 학생들 잘못이 아니다. 제도의 잘못에 학생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힘 있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있는 사람은 괜찮다. 좋은 로펌에 취업해 수준 높은 실무교육을 받고 좋은 네트워킹을 쌓는다. 그러면 자질을 갈고닦아 훌륭한 법률가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문제다. 평생 밑바닥을 깔아주는 구실밖에 못하게 된다. 현재 로스쿨은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로스쿨 졸업생을 폄훼한다는 지적을 받지 않겠나.
“결코 아니다. 현장에서 보면 로스쿨 학생 중 10~20%는 정말 탁월하다. 그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로스쿨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안타깝다. 로스쿨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에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신 교수는 2016년 바로 이러한 주장을 담은 책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펴낸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현재의 로스쿨은 학생이 아니라 오직 ‘로스쿨 교수’만을 위해 존재한다며 동료 교수들을 비판했다. 또 ‘로스쿨 입시 과정에서 유력 인사들이 자기 자녀를 합격시키고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자신이 겪은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이 언론 기사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신 교수는 금세 ‘공공의 적’이 됐다. 그러잖아도 사회 곳곳에서 로스쿨 제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당시 신 교수가 마음을 다스리고자 써내려간 일기 중에는 ‘내가 매명(賣名)을 위해 거짓으로 로스쿨 입학 청탁이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대학과 로스쿨 학생들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켰다는 대자보가 학내 군데군데에 걸리고 나서는 연구실에 나가는 것조차 겁났다’는 대목이 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수개월간 학교 곳곳에 대자보가 나붙고 많은 학생이 그의 수업 듣기를 거부했다. 동료 교수들 또한 그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한다.
잔인한 ‘닭싸움’
법원에서 쫓겨났을 때 못잖게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두 사건을 비교해보자면 법관재임용 심사에 탈락했을 때는 그래도 좀 괜찮았다. 거기에는 최소한의 금도가 있었다. 그런데 교수 사회는 그런 게 없다. 교수 사회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받으면서 ‘이건 정말 닭싸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닭싸움이나 개싸움을 본 적 있나. 여러 동물이 싸움을 하지만 양상이 좀 다르다. 보통 개는 한쪽이 꼬리를 내리고 항복하는 표시를 하면 싸움을 그만 둔다. 닭은 그렇지 않다. 상대의 머리뼈가 다 부서져 허옇게 뇌수가 드러나도 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상대가 저항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게 보여도 계속 쪼아댄다. 그만큼 잔인하다. 내가 로스쿨의 공적(公敵)이 되면서 딱 그런 대우를 받았다.”
신 교수는 “나는 학자적 양심에서 로스쿨 문제를 지적했는데, 로스쿨 교수들은 그걸 용납하지 못했다. 내가 쓴 책 내용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게 아니라 인신공격만 했다. 나를 ‘사시존치론자’로 몰아서 학생들마저 내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전직 법관, 전직 교수
로스쿨 교수들과 몇 차례 송사도 있었다고 들었다.“동료 교수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법정을 드나들어야 했다. 우리 사회에는 내부고발자를 존중하기보다 조롱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법원이나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그 틈바구니에서 싸워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신 교수는 동료 교수와 수년간 소송전을 벌인 끝에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명예훼손죄로 벌금 500만 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그에게 오히려 마음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그날 이후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정년이 아직 남았는데 사표를 낸다는 뜻인가.
“이번 1학기까지만 교수 생활을 할 생각이다. 이렇게 더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겠나. 집사람과도 이미 이야기를 마쳤다. 오래전 경북 경주에 집을 한 채 마련했다. 이번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그곳에서 살 준비를 조금씩 했다. 앞으로 경주에서 농사지으며 살아보려 한다.”
신 교수는 “텃밭이 제법 커서 우리 식구 먹을 것 정도는 다 키울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예사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4월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봄이 오면 농사꾼은 바쁘다. 밭에는 온갖 작물의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다. (중략) 지금까지 2주일 넘게 밭일을 했다. 허리가 이제 조금만 움직여도 아프다. 얼굴은 햇볕에 타서 시커멓고 몸의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울린다. 대봉감, 대추, 석류, 매실나무를 식재하고, 오늘은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를 심었다. 밭에 퇴비를 뿌리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니 꼭 어린 소녀가 흥겹게 뛰어노는 것 같다. 생업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나, 한 세월 보내기에 농사만큼 좋은 일이 없다.’
이제 곧 학교를 떠나 바로 그 밭 한가운데로 삶의 중심을 옮기겠다는 얘기다.
인생 2막
[지호영 기자]
좋은 학교 나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다는 시험에도 합격했는데 이례적으로 판사재임용에서 탈락하지 않았나. 안정적인 국립대 교수 자리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날 상황이 됐고.
“그 과정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후회할 일은 없다. 남한테 이유 없이 고개 숙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삶의 가치가 대법관 된 것만 못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나 아니면 또 누가 이렇게 조직에 대해 할 말을 하며 살 수 있겠나.”
그건 무슨 뜻인가.
“나는 판사 못 해도 변호사를 할 수 있고, 교수 안 해도 우리 가족 생계는 책임질 수 있다. 이런 환경에 있으면서 자기 생각만 하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를 위해, 내가 몸담은 조직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꼭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다.”
문득 그가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책을 펴내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는 당시 ‘내 인생에 있어서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싸움을 한다’면서 이렇게 썼다.
‘(내가 판사를 하던 시절) 그때는 판사들에게 참 좋은 때여서 많은 것을 누렸다. 변호사를 하면서는 가족들이 무난히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다음에 과거 법학부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로스쿨에서 나 역시 지금까지 그 혜택을 누렸다. 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향유했고 다른 미련도 없다. 이 싸움을 마지막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 환갑을 넘겼다. 이 일이 끝나면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본다.’
그 싸움이 어쩌면 막을 내릴 시점이다. 신 교수에게 이제 경주로 내려가면 싸움은 그만두는 것인지 물었다. 신 교수는 그건 아니라고 했다. 로스쿨 안에서의 싸움을 끝냈을 뿐,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지켜야 할 ‘상식’과 ‘정의’에 대한 발언은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조만간 변호사 개업을 하고 새로운 일을 모색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동안 여러 언론사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칼럼을 기고했다. 2004년 ‘수필문학’ 추천으로 등단하고 2009년 ‘문학시대’ 시부문 신인상을 받는 등 문학적인 글도 써왔다. 또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도 좀 한다. 언론, 출판, 번역 등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법률가로서 우리나라의 내부고발자와 사법 피해자를 돕는 일도 하려 한다.”
신 교수의 얘기다.
신평
● 1956년 대구 출생
● 경북고, 서울대 법학과 졸
● 1981년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대구가톨릭대, 경북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