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보면서 경악”
“훈련 중단으로 한미연합군 방어능력 격감”
“기념주화 때문에 회담 성공” 자조
“대북특사 정의용 실장이 오판?”
한국 군 관계자들은 트럼프-김정은 간 회담 자체가 아닌, 이후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주목했다. 몇몇은 “기자회견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연합훈련을 “도발적(provocative)” “전쟁게임(war game)”이라고 북한식으로 규정했으며 “지금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주한미군 철수를 원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트럼프의 3대 발언(연합훈련중단, 전쟁게임, 미군 철수 희망)에 대해 군 당국자 몇몇은 “한국 안보에 재앙 수준”이라고 했다.
한미연합사가 주관하는 한미연합훈련은 연간 두 차례다. 통상 2~4월 열리는 키리졸브/독수리훈련(Key Resolve/Foal Eagle)과 8월 실시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Ulchi Freedom Guardian)이다. 둘 모두 적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성격이다. 각각 전시에 수행될 작전계획을 숙달하기 위해 컴퓨터 모의 방식의 군사지휘소 연습이 진행되고 미국의 전략자산 등을전개하는 야외기동훈련이 실시된다.
“북한군은 연례 훈련 취소 안 해”
2017년 8월 21일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열린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동아DB]
한 한국군 관계자는 “한국군과 미군의 주요 지휘관과 참모는 보직을 1~2년 단위로 교체하고 있어 한 해만 연합연습을 하지 않아도 전쟁 시 한미연합군의 방어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특히 주한미군은 한미연합사령관을 비롯해 대부분 1~2년 단위로 교체되므로 1년에 두 번인 한미연합연습이 중단되면 작전 능력이 격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주요 전략자산이 함께 전개해 전시임무수행능력을 숙달해아만 수준 유지가 가능하다. 가령 북한 지역 표적에 대한 초전 3일의 전투기 공격계획인 Pre-ATO도 해당 전력이 출동해 주기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들은 “북한군은 주요 간부의 보직 기간이 우리에 비해 상당히 길다고 한다. 또한 북한군은 연례훈련을 축소하거나 조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대북 특별사절단 대표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같은 지도급 인사들이 북한을 오판한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한미연합훈련을 예년 수준으로 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미 훈련을 예년 수준으로 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건 통 큰 변화다. 대화의 모멘텀, 북·미 대화 여지를 키우려고 작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북한은 5월 16일 0시 30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남북 고위급회담 무기 연기를 일방 통보했다. 이때 북한은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공사의 책 출간 기자회견과 함께 한미 연합 공중 훈련인 ‘맥스선더’ 실시를 이유로 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맥스선더 훈련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맥스선더 훈련에 B-52전략폭격기의 출동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이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연습 시나리오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
한미연합사에서 연합훈련 관련 업무를 맡은 한 담당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아래와 같이 털어놨다.“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 이번 8월 UFG의 경우 이미 연습 시나리오가 거의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에서 시나리오 승인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현실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할 시간이 없으므로 훈련은 축소 또는 취소될 것으로 본다. 향후 한미 양국의 통수권 차원의 지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 및 침략을 전제로 방어 연습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이를 미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도발적(provocative)’이라고 하면 연습 시나리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특히 UFG 연습은 정부을지연습과 병행하게 되는데 정부에서 북한의 침략을 가정하는 상황을 거부하면 연습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쟁이 중단된 날짜인 7월 27일 남·북·미 간 종전선언이 추진된다면 연합연습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 담당관은 “어떤 상황이든 군의 입지는 더 축소될 것”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한국군과 미군의 관계자 대부분은 “연례 한미연합훈련이 축소되거나 중단되어선 결코 안 된다”는 데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전직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이렇게 주장해왔다. 지금 한국 내 여러 언론과 여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당사자인 군 관계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한미연합사에서 대북정보 업무를 담당한 예비역 R장성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실종된 회담”이라고 잘라 말했다.
“군의 사기 저하라는 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전입한 주한미군의 고위 정보관계관은 한국군 전문가에게 “곧 미·북 정상회담이 다가오는데 정보감시자산(ISR)의 운용 수준을 높여야 하는지 낮춰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자문했다고 한다. 한국군 전문가가 그에게 최고의 대북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해 그의 판단을 도왔다고 한다. 주한미군도 동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미군의 정책 및 전략 관련 부서를 체크하는 군 고위 관계관은 “미군 장성들 사이에서 ‘코인(기념주화) 때문에 회담은 성공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조크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미군 관계자들은 “미·북 회담 및 북핵 문제가 톱-다운(Top-Down) 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미 국방부도 언론 보도와 동시에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미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북한 핵을 천천히 폐기하는 쪽으로 물러섰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한다. 몇몇은 “군의 사기저하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안겨준 ‘덤’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한국군 예비역 장교 출신인 P 대학교수는 필자를 만날 때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Fake Love·가짜 사랑)’를 듣고 있었다. “I’m sorry, but its Fake Love, Fake Love, Fake Love….” P 교수는 “북·미 회담이 성공한 것처럼, 김정은이 평화를 사랑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그것은 김정은의 페이크 러브(Fake Love)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 사이에도 거짓말을 하는데, 국가 간 관계는 이보다 더하다. 기본적으로 국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국제정치란 뒷마당에서는 몰래 무기(武器)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말로 하는 약속에는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북, 정세 유리하게 급변시켜”
미국 공군의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 2대가 2017년 6월 20일 한국 상공에서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와 함께 훈련하고 있다. [동아DB]
또한 군 관계자들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으로 마련된 평화가 비록 ‘가장된 평화’라 할지라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속으론 서로 증오하고 불신하면서도 어쨌든 겉으로는 세계가 보는 앞에서 서로 사랑하고 신뢰한다고 고백했기에 이를 물리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국내 한 전략문제연구소는 최근 ‘미·북 정상회담 전망과 대책’이라는 비공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선 “북한이 정세를 유리하게 급변시켰다. ‘한·미·일 대 북·중’ 구도를 ‘남·북·중 대 미·일’ 구도로 바꿨다. 대미 역(逆)포위망 구축과 한미동맹 유명무실화를 획책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령 출신의 핵 문제 전문가인 K대 K교수는 “미국과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CVID를 합의하고 이를 합의문에 명시했어야 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 능력을 불가역적으로 없애기 위해 12개 재협상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런 조건을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미국 국민의 20%만이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조사에서 미국의 전문가 30명 전원이 북한의 핵 폐기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깜짝 놀랄 만한 핵 감축 흥정’으로?
필자가 접촉한 군 관계자들은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닌 ‘핵 감축’을 흥정하려는 것 같다.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상당수의 핵탄두를 없애는 ‘깜짝 놀랄 만한 핵 감축’을 제안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이 갈린다. 미국은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과 일정량의 핵탄두만 제거해도 한숨을 돌린다. 반면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한국은 북한의 핵탄두 마지막 한 발까지 제거해야 안보가 보장된다.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핵 군축 보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이름의 ‘한미군사동맹 해체’가 될 것이라는 데엔 군 관계자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중국도 이런 보상을 전폭 지지한다.
군 관계자들은 “이럴 경우,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고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막대한 비용까지 떠안아야 한다. 여기에다 국가 방위력의 근간이 허물어지는 치명적 위기 앞에 서게 된다”고 말한다.
김기호
● 육군사관학교 졸업(35기), 육군 대령 전역
● 전 한미연합사 작전계획과장
● 전 국방대 안보대학원 군사전략학부 교수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KBS 객원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