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점포가 주목받는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무인점포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인다. 목적은 국가별로 다르다. 미국과 중국은 리테일 산업 혁신을 꾀한다. 일본은 구인난의 대안이다. 한국에선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으로 추진된다. 무인점포 도입을 기술혁신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된다. 사회에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아마존 고’ 식품 코너. [Flickr]
SK텔링크가 전시한 무인점포에 들어가려면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한 후 출입문에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시회 때는 안내원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대신 인증해줬다. 출입구를 통과하니 SKT에서 개발한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누구(NUGU)’가 배치돼 있다.
누구의 역할은 상품 진열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매장 내 비상 상황 발생 시 대응 역할도 담당한다. 가령 도난 사고가 일어나면 누구가 경찰에 곧바로 신고한다. 누구는 편의점 ‘CU’에도 도입될 전망이다. CU 측은 매장에 누구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CU 매장에서 누구의 역할은 점원을 돕는 것이다. 상표정보, CU 운영정책 등도 누구에게 문의할 수 있다. 비상 상황 발생에 대처해 ‘신고 서비스’도 제공한다.
SECON에 출품된 누구는 점원을 돕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대체하는 용도다. 진열대에 콜라가 놓여 있다. 방문자가 콜라를 집어 드는 것을 진열대의 센서와 점포 안 카메라가 인지하는 것 같다. 물건을 손에 들고 출입구로 향하면 계산과 결제가 이뤄진다. 전시회에서는 안내원이 소지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상으로 결제가 이뤄졌다.
SK텔링크가 시연한 ‘무인점포’는 신선했다. 쇼핑이 점원을 거치지 않고 이뤄져서다. 첨단 ICT(정보통신기술)가 활용됐다는 점에서 로테크(Law-Tech)로 인식한 리테일 산업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도 됐다.
물론 SK텔링크가 무인점포를 시작한 최초 기업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무인점포’ 기술이 각광받는다.
선두주자 ‘아마존 고’
미국의 ‘아마존 고(Amazon Go)’가 대표적이다. 아마존 고는 아마존이 개발한 무인점포 서비스로 2016년 12월 첫 매장이 개설됐다. 매장 위치는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아마존 본사 건물 1층이다. 매장 규모는 167㎡.운영 방식은 SK텔링크의 무인점포와 비슷하다. 출입하려면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앱을 설치해야 한다. 쇼핑을 마치고 나갈 때는 SK텔링크와 약간 다르다. 인증 없이 출입문을 통과하면 자동으로 결제된다. 아마존 고는 이러한 기술을 ‘저스트 워크아웃(Just Walkout)’이라고 명명했다.
아마존 고 매장에는 카메라 센서를 비롯한 수백 대의 센서가 설치돼 있다. 자세한 원리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러한 센서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구매 행위를 파악하는 것 같다. 영상 정보를 확보하는 카메라 센서에 자율주행차에 사용하는 AI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존 고의 성공은 아마존 내 무인점포 서비스 확대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무인점포가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오프라인 매장인 ‘월마트’도 무인점포 개장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무인점포는 마트뿐 아니라 다른 소매업으로도 확대된다. ‘이트사(EATSA)’는 무인 식당을 표방한다. 2015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했다. 요리사, 도우미 일부를 제외하고는 점원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주문은 앱을 다운로드 해서 하고, 결제는 신용카드로 한다. 현재 뉴욕, 워싱턴 등 지점 7곳이 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독특하게 생긴 완전 자율주행차가 눈에 띄었다. 자동차 안에는 식료품이 가득했다. 스타트업 ‘로보마트(Robomart)’가 개발한 것으로 자율주행기술을 이용해 고객 집 앞까지 식료품을 가져다주는 자동차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실증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눈앞으로 다가온 ‘무인점포 시대’
맥도날드 셀프 계산대. [Flickr]
무인점포 산업이 미국에서만 활성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일본, 한국에서도 무인점포 산업에 관심이 쏠린다. 국가별로 무인점포 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르다. 일본 닛케이는 지난해 12월 중국과 일본에서 무인점포가 활성화하는 이유가 다르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리테일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기술 유입이 이뤄져 자연스럽게 무인점포가 활성화하고 있고, 일본은 구인난을 해결하고자 무인점포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중국 리테일 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이마케터(eMarketer)에 따르면 2015년 4조3000억 달러에서 2020년 7조10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2016년을 기점으로 시장 규모가 미국을 넘어섰다.
중국 무인점포 시장 역시 미국 무인점포 시장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무인 편의점 선두 기업 ‘빙고박스(BingoBox)’는 2016년 8월 첫 매장을 연 후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중국 29개 도시에 200여 개 매장이 들어섰다. 올해 목표는 5000개 매장을 추가로 개설하는 것이다.
빙고박스 운영 원리는 아마존 고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스마트폰으로 인증받고 편의점에 들어가는 것은 똑같으나 계산대를 거쳐야 한다. 빙고박스 내 상품에는 태그가 부착돼 있다. 소비자가 계산대에 고른 상품을 올려놓으면 태그를 인식해 가격이 노출된다. 계산 후 매장을 나오면 된다.
알리바바 또한 무인점포 사업을 준비한다. 알리바바는 2017년 항저우에서 무인 편의점 ‘타오 카페(Tao Cafe)’를 개설했다. 타오 카페도 다른 무인점포처럼 스마트폰으로 인증을 받고 입장한다. 원하는 물건을 고른 후 특정한 공간을 지나면 구매 물건이 스캔돼 계산이 이뤄진다. 결제는 알리바바 앱에 금액이 청구되는 방식이다.
중국에는 모비마트(MobyMart)라는 이동형 무인점포도 등장했다. 고객 집 앞까지 찾아간다는 개념에서 미국의 로보마트와 비슷하다. 모비마트는 스웨덴 스타트업 ‘윌리스(Wheelys)’, 스웨덴 유통 전문 기업 ‘히말라피(Himalafy)’와 중국 허페이대학교가 협업해 개발했다. 현재 상하이에서 실증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로보마트와 다른 점은 공간이 버스만큼 크다는 것이다. 로보마트는 일반 자동차만 한 크기여서 미리 주문하고 물건을 가져가는 방식인 반면 모비마트의 경우 소비자가 직접 안에 들어가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태양광을 이용한다는 것도 모비마트의 특징이다. 출입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으로 인증해야 한다. 구매할 물건에 붙은 바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는 방식으로 쇼핑이 이뤄진다. 버스에서 내리면 자동으로 결제된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적 관점을 중심으로 무인점포를 추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무인점포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표 아래 사업이 이뤄진다. 그런데 무인점포를 단순히 소비자에게 편의성만을 제공하는 기술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영향력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톰 미첼 카네기멜런대 교수는 AI로 인해 더욱 더 가난해지는 사람과 더욱 더 부를 쌓는 사람이 있다고 본다. AI로 인해 빈부격차가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좀 더 확장해 해석하면, AI로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는 뜻이다.
AI가 적용되는 무인점포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 고가 점주의 인건비 걱정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점주는 AI를 통해 이득을 보는 셈이다. 물론 아마존은 이러한 목적으로 아마존 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매장 안에 도우미 등 직원을 상주시킬 계획이다. 그럼에도 필요 인력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점원의 경우에는 손해가 된다.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지난해 맥도날드는 올해 12월 말까지 셀프 계산대 확대를 위해 키오스크(무인정보 시스템) 2500대를 새로 도입한다고 밝혔으며 미국 언론은 1000명 넘는 맥도날드 직원이 해고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무인점포는 점주에게는 득이고, 종업원에게는 손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