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총력특집 | 미완의 합의, 불안한 미래 |

IAEA 고위직 출신 김병구 박사가 본 CVID

“ 핵무기 은닉 시 검증 불가능… 완전한 비핵화 10년 넘게 소요”

  • 입력2018-06-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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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 산증인’이자 ‘한국형 원전의 아버지’

    • 핵물질 제조공정 후진적이라 로스(loss) 많았다며 축소 신고할 것

    • 방사능 오염 심각한 플루토늄 북한 밖 반출 어려워

    • 내부자가 숨겨놓은 핵무기 자수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 머릿속 지울 수는 없다…核기술자 완벽 통제 필요

    • CVID 완벽 이행 시 北 신포 경수로 재건도 가능

    • ‘北원자폭탄’ 녹여 ‘南원전연료’ 사용 후 北에 송전하자

    • 한반도 비핵화 차원에서 탈원전 정책 再考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김병구(74) 박사는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 산증인’이면서 ‘한국형 원전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 1975~2005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일했다. 서울대 입학 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Caltech)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 근무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1975년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로계통설계 사업책임자, 선임연구부장, 원자로개발단장, 원자력통제기술 센터장, 부소장 등을 거쳐 IAEA(국제원자력기구) 고위직인 기술협력국장을 지냈다. IAEA에는 2002~2008년 몸담았다. 2011~2013년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사업 일환으로 칼리파대(아부다비)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13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왕립 원자력청 기술고문으로 일해왔다. 최초의 국산 원전인 한국표준형원전(OPR1000) 개발 주역 중 한 사람이다.

    “核 문제 해소되려면 北 인식 변해야”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을 맞바꾸는 것에 포괄적(comprehensive)으로 합의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는 공동성명에 명시하지 않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절차와 한국 원자력 기술의 역할’을 주제로 6월 7일, 13일 그와 대담했다. 그는 “CVID를 전제로 한 ‘완전한 비핵화’란 10년 넘게 소요되는 어려운 과정”이라면서 “북한이 핵무기·핵물질 일부를 은닉한다면 완벽한 검증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후 “세월이 흘러 신뢰가 쌓인 후 선진국들처럼 북한 사람들이 ‘핵무기 필요 없다, 오히려 손해다’라는 인식을 가질 때 핵 문제가 비로소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미 합의로 비핵화 과정이 시작됐다. 



    “완전한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이행되는 것이지 2~3년 안에 완결되는 게 아니다. 북한이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갖췄으며 핵무기를 완성했기에 10년 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연료주기를 완성해 돌려봤고, 핵무기도 만들었고, 핵탄두를 터뜨려도 봤다. 북한처럼 노골적으로 핵무장을 선포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핵무장 완성을 공표한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한 것은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기왕에 만든 핵무기와 핵연료주기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중간에 생각이 바뀌면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북한 같은 규모의 핵 폐기는 전례 없는 일이다. 

    “CVID를 전제로 한 완전한 비핵화는 전대미문의 어마어마한 일이다. 비핵화 과정을 3단계로 나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 단계로 농축·재처리·원자로를 불능화하고, 핵(核) 기술자를 통제하는 데만 최단 3년이 걸린다. 이 단계가 북·미 간 첨예하게 논의된 CVID의 골자다. 둘째 단계로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줄 때 함경북도 신포에 짓다 만 경수로를 재사용할 경우 최단 5~6년이 걸린다. 셋째 단계는 오염된 북한 핵시설의 방사선 제염·해체 및 환경관리·복원 사업이다.”

    “1975년 남북의 운명이 갈렸다…核으로 인해 다른 길 걸어”

    북한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3월 ‘원자력 평화적 이용협정’을 소련과 체결한 후 1950대 말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핵무기 개발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1980년대 말부터 가시적 성과를 내놓는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 공동관리를 위해 IAEA가 1957년 설립됐다. 남북이 IAEA 창설 멤버로 가입했다. 이승만 정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1959년 원자력연구소를 세웠으며 김일성은 평안도 영변에 원자력 단지를 만들었다. 평양은 1970년대까지 전력 생산과 군사 목적 양쪽으로 접근했다. 1975년께 남북의 운명이 갈린다. 그때부터 북한은 평화적 이용이 아닌 핵무기 개발에 전념한다. IAEA 회원국이 자진 탈퇴한 것은 전례가 없다. NPT를 탈퇴한 것도 북한이 유일하다. 핵으로 인해 남북이 다른 길을 걸었다. 동시에 원자력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정반대다. 기구하고 특이한 한반도의 운명이 핵에 담겨 있다.” 

    북한은 1993년 IAEA와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1994년 영변 시험용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인출해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차 북핵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위기가 봉합되는 듯했으나 2002년 우라늄 농축 문제가 불거지면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까지 마쳤다. 

    “나는 기계공학자로서 원자력엔 문외한이었다. 1975년 귀국했더니 고리 1호기 건설이 한창이었다. 원자력만이 가진 특수한 매력이 있다. 대전 유성구 원자력연구원 정문 앞 큰 돌에 ‘E = mc²’ 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새겨져 있다. 우라늄이 핵분열하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E’ 다. 질량(m) 곱하기 ‘c²’ 에서 ‘c’ 는 광속이다. ‘c’ 가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인데 그것의 제곱이니 천문학적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안전하게 뽑으려면 기계공학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원자력에 매료됐다. NASA에서 일하려면 미국 국적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원자력 하면서 미국 국적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국적을 정리하고 우리나라 원전 사업에 말뚝을 박기로 했다.” 

    핵무기와 원전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E = mc² 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한꺼번에 터뜨리면 핵무기, 느린 속도로 정밀하면서도 안전하게 컨트롤하면 원전이다. 쉽게 말해 핵무기 개발에 비해 원전이 훨씬 더 어려운 기술이다.”

    “영변에 엄청나게 큰 재처리 공장 터 잡아”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이 폐기하거나 해외로 이전해야 할 핵물질은 어떤 것인가. 

    “북한은 황해도 평산에 우라늄 광산이 있어 원료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 영변에는 초창기 영국식 가스로(Magnox type)가 도입됐다. ‘마그녹스’라고도 하는 발전 겸용 원자로를 지었다. 마그녹스는 핵무기와 플루토늄 생산엔 적합하지만 발전 능력은 좋지 않다. 마그녹스에서 타고 나온 핵연료는 부식이 발생해 부서지기에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다. 핵연료가 부서지면 방사능 오염이 발생한다. 한국 원전처럼 사용 후 핵연료를 수조(水槽)에 장기간 저장하지 못하므로 곧바로 재처리해야만 한다.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평화적 목적 사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마그녹스를 포기한 이유다.” 

    2009년 11월 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영변 핵시설 내 폐연료봉 8000개 재처리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영변의 영국식 가스로에 이웃한 곳에 엄청나게 큰 재처리 공장이 터 잡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자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것이지만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으면 앞서 말했듯 연료가 부서져 관리가 안 된다. 북한은 사용 후 연료봉을 재처리해 충분한 무기용 플루토늄을 얻었다. 이 무기용 플루토늄을 전량 북한 밖으로 반송(搬送)해야 한다.” 

    북한이 완성한 핵무기는 어떤 것인가. 

    “원자폭탄엔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이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게 우라늄탄, 나가사키에 떨어진 게 플루토늄탄이다. 북한은 마그녹스 원자로에서 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탄을 만들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이뤄져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함경남도 신포에 경수로 2개를 지어주기로 했다. 울진 3·4호기를 참조 발전소로 삼은 한국형 원전이 북한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플루토늄 프로그램 중단 대가로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합의가 이행되는 듯하더니 2차 북핵위기가 터졌다. 우라늄 농축 문제가 불거졌다.” 

    KEDO는 북한이 마그녹스 원자로 2기를 동결하는 대가로 제공하기로 한 1000MW급 경수로 2기를 건설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컨소시엄이다.

    우라늄 농축 기술 이란서 넘겨받았나?

    “2차 북핵위기가 터지면서 우라늄 농축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KEDO가 경수로를 짓는 상황에서 우라늄 농축이 탄로 났으니 북·미 협정을 엄중하게 위반한 것이다.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하면서 KEDO 사업이 중단됐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이란에서 넘겨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란에 넘기고 우라늄 농축 기술을 대가로 받았다는 것이다. 이란이 농축 기술을 엄청나게 축적해놓았기에 나온 추측이다. 천연우라늄을 농축한 고농축우라늄(HEU)이 우라늄탄 원료다. 국제적으로 20% 넘게 농축한 우라늄을 HEU라고 칭한다. 천연우라늄은 U-235가 0.7%가량 농축돼 있는데 무기용으로 사용하려면 98% 이상 농축해야 한다. 무기용 HEU는 초고농축 우라늄이라고 하겠다. 비핵화 과정에서 HEU도 모두 북한 밖으로 반송해야 한다.” 

    원전 원료로는 얼마나 농축된 우라늄을 쓰나 

    “경수로에서는 3~5%짜리 농축우라늄을 쓴다. 북한이 확보한 농축 기술이 원심분리식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란이 가진 기술이다. 원심분리기로 천연우라늄을 돌려 3~5% 농축됐을 때 꺼내 사용하면 원전 연료, 98%까지 계속 농축하면 핵무기 원료가 된다. 북한이 풍계리에서 6차례 핵실험하지 않았나. 플루토늄탄뿐 아니라 우라늄탄도 만든 게 확실하다.” 

    기왕에 만든 핵무기와 핵물질은 작고 북한은 넓다. 

    “핵무기 시설만 영변을 비롯해 수십 곳에 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땅 덩어리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산업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7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核) 기술자 거의 전원이 무기 개발 요원인 것이다. 영국식 가스로를 사용했기에 방사능 오염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대조적이다. 평화적 이용을 통해 원전을 수출하는 단계까지 왔다. 1978년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가동했다. 지난해 영구폐쇄가 결정된 고리 1호기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이 24기다. 원전에서 나온 전력이 국내 에너지의 30%가량을 차지한다. UAE에 수출한 한국형 APR1400은 최신형 3세대 원전으로 세계적으로도 몇 기가 되지 않는다. 상용 원전을 워낙 여러 개 짓다 보니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다만, 한미 간 협정으로 인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없기에 농축우라늄을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 원전을 돌린다.”

    “핵무기는 원전에 비하면 원시적 기술”

    NASA가 촬영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 위성사진. 불빛이 찬란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아 캄캄하다. [뉴시스]

    NASA가 촬영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 위성사진. 불빛이 찬란한 한국과 달리 북한은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아 캄캄하다. [뉴시스]

    그가 인공위성이 한반도를 야간에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다. 

    “남북을 이렇듯 명료하게 비교해주는 사진이 없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남북이 양극화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수도권을 비롯한 남측의 불빛이 터질 듯한 반면 북측은 새까맣다. 평양이 작은 점 하나로 보일 뿐이다. 1975년 남북이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만 만들다가 암흑천지 꼴이 됐고, 한국은 원전을 주력으로 삼아 확대함으로써 번영을 이뤄냈다.” 

    북한이 ‘한국이 걸은 길’을 걸었다면 소련·중국 지원을 받아 원전을 건설했겠다. 

    “그렇다. 북한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전기가 급하니 제네바 합의 때 경수로 지어달라고 한 것 아닌가. 핵탄두·핵폭탄 만드는 것만 하다 보니 에너지난이 가중됐다. 앞서 말했듯 핵무기는 원전에 비하면 원시적(primitive) 기술이다. 컴퓨터도 없던 제2차 세계대전 때 E = mc²을 놓고 ‘이렇게 하면 터질 것’이라면서 만든 게 핵무기다. 북한뿐 아니라 기본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결심한 후 마음만 먹으면 개발할 수 있는데 북한은 국력을 그곳에 탕진해 민생이 굶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원자력 정책이 남북의 운명을 바꿨다.” 

    완전한 비핵화는 어떤 절차를 거쳐 이행되나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으로 나눠볼 수 있다. 과거 핵은 완성한 핵무기와 뽑아놓은 핵물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핵물질은 플루토늄과 우라늄 두 종류다. 마그녹스 원자로에서 나온 핵연료를 재처리한 플루토늄은 원자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약 8㎏이 필요하다. 북한이 플루토늄 핵무기 수십 개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재처리를 통해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을 뽑아야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은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 추출 과정을 마스터했다. 문제는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무기용 외에 다른 용도로 쓰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HEU 희석하면 원전 연료로 쓸 수 있어”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원전 연료 등으로 전환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속로가 상용화하기 전까지는 쓸모가 별로 없다.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독성이 강해 어마어마한 차폐막(shield)으로 격리해야 한다. 방사능 독성이 심해 다른 나라로 반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반면 고농축 금속 우라늄(HEU)은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과 달리 취급이 쉬운데다 방사능 관리 또한 용이하다. 98%까지 농축한 HEU 약 25kg으로 핵탄두 1개를 만들 수 있는데, 98%로 농축된 것을 천연우라늄과 물리적으로 섞어 희석하면 4~5%로 농축도를 낮출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연료로 쓸 수 있는 우라늄 양이 20배가량 늘어난다.” 

    HEU는 북한 밖으로 반출해 처리하기가 용이하겠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한 후 HEU 500t을 미국에 돈을 받고 판매한 전례가 있다. ‘메가톤을 메가와트로(Megatons to Megawatts)’라는 명칭의 프로그램이다. 20년간 지속됐는데 미국 원전에서 전력 생산에 활용했다. ‘파괴력을 희석해 전력으로 바꾼다’ 멋진 말 아닌가.” 

    핵물질·핵무기를 미국으로 옮겨 폐기하는 것과 북한에서 처리하는 것을 두고도 협상에서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봉인과 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핵물질·핵무기는 북한 밖으로 반출해야 한다. 수송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물질은 북한 내에서 처리하는 게 더 안전하긴 하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재처리 공정 중의 플루토늄은 어떻게 하나. 

    “미국 등으로 수송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 핵연료가 부식돼 부스러졌으면 건져내기도 어렵다.” 

    기왕의 핵무기는 은닉한 것 없이 모두 외부로 반출해야 의혹이 남지 않는다. 

    “워싱턴은 전체 핵탄두와 무기급 핵물질을 통째로 미국으로 가져와 폐기하겠다고 주장할 것이나 북한이 쉽게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 내놓기가 어려운 것도 많을 것이다.”

    “중동에서 北 기술자 스카우트하는 것도 核 확산”

    과거 핵에 대해 지금껏 설명했다. 현재 핵은 어떻게 폐기하나 

    “현재 핵은 대부분 시설과 관련된 것이다. 영변을 비롯해 100여 곳에 산재한 것으로 알려진 핵시설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 농축 시설, 재처리 공장, 부속 및 부품 공급 시설, 원자폭탄 저장 시설, 비밀 동굴 등이 있을 텐데 그것을 다 찾아내 불능화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겠다. 

    “비핵화 첫 단계로 CVID 범주에서 대상 핵시설을 불가역적으로 폐쇄하거나 주요 기기를 제거해야 한다.” 

    과거 핵, 현재 핵을 폐기하더라도 미래 핵은 남는다. 과학자·기술은 남았으므로 재(再)핵무장이 가능하다. 

    “사람의 머릿속을 지울 수는 없다. 북한 핵기술자들은 평생 그 일만 했다. 다른 기술을 가르쳐 전직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위치에 도망 못 가게 묶어놓고 일감을 주고 먹고살게 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겠나. 이란, 시리아 같은 나라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혈안일 것이다. 북한 핵기술자가 700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고급 과학자와 1,2,3급을 나눴을 때 하위급 기술자는 젊고 경력도 적을 테니 전직이 이뤄질 수 있겠으나, 상위급으로 올라갈수록 다른 기술을 가르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란, 시리아 등에서 스카우트해가면 굉장히 위험하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1단계가 이뤄지려면 핵기술자까지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 CVID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핵기술자의 대부분을 방사선 오염 해결, 제염·해체, 폐기물 처리·처분 및 환경관리 분야에서 활동하게 해야 한다. 

    1990년 소련 붕괴 후 ISTC(Inter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enter)라는 조직이 모스크바에서 창설됐다. 소련 시절 핵무기 개발에 종사한 과학기술자가 수십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일하면서 외국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도록 일감을 줬다. ‘한반도판 ISTC’를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의 ISTC는 현재까지 진행된다. 북한에 원전이 건설된다면 그곳에서 일하게끔 직업 전환 교육을 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핵물질 숨겨놓고 신고하지 않아도 찾아내긴 어려워”

    사람을 빼가는 것도 일종의 ‘핵 확산’이라고 봐야겠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핵 확산이다.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려보자. 비핵화는 어떻게 시작되나. 

    “첫 단계는 핵 프로그램 전체를 북한이 자진 신고하는 것이다.”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자신신고 목록 작성 단계에서 파탄 났다. 

    “북한이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을 샅샅이 신고해야 한다. 신고한 내용이 실제와 같으냐를 살피는 게 검증 단계다. IAEA가 사찰할 것이다. IAEA와 미국, 또한 한국의 사찰 전문가들이 (북한이) 핵물질을 어떻게 관리해 핵탄두까지 갔느냐는 히스토리를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데이터를 내놓으면 히스토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나. 

    “핵 시설 운전 실적부터 검증할 것이다. 원자로를 언제 얼마나 가동했고, 재처리 공장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동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핵물질이 얼마나 생산됐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 만들었으며 핵물질은 ○○○㎏이 남았다는 계산이 가능하다면 데이터를 넘겨받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겠다. 엉터리 데이터를 내놓을 가능성은 없나. 

    “데이터를 확보하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나 북한은 공정이 후진적이어서 로스(loss·손실)가 많았다고 틀림없이 주장하리라고 예측한다. 며칠을 운전하면 얼마가 나와야 하는데 반밖에 안 나왔다, 로스로 다 사라졌다는 식으로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 해석을 두고도 논란이 생기겠다. 

    “검증 단계에서 북한이 정직하게 신고했는지를 두고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IAEA가 검증을 끝낸 후 사찰 결과를 내놓는다. 완벽한 검증은 불가능하다. 숨겨놓고 신고하지 않아도 찾아내기 어렵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할 때 핵물질 상당량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나. 소련 과학자들이 나라가 해체돼 혼란스러울 때 핵물질뿐 아니라 핵탄두도 팔아먹었다는 얘기가 있다. 북한으로도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 

    북한에 소련 과학자들이 망명했다는 탈북 북한 관료 증언이 있다.

    “北 ‘이게 다다, 더는 없다’ 주장할 것”

    핵무기와 핵물질 일부를 숨겨놓는다면 완벽하게 검증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인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은닉 가능성을 전제로 삼고 비핵화 단계를 밟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북한 내부에서 증언이 나오지 않는 한 은닉하더라도 찾아내기 어렵다. 참여한 이들이 자수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모호성을 가진 상태에서 각 단계를 밟아갈 공산이 크겠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게 다다, 더는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신뢰가 쌓인 후 이웃 나라와 평화적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선진국처럼 북한 사람들이 ‘핵무기 필요 없다, 오히려 손해다’라는 인식을 가질 때 핵 문제가 비로소 해소될 것이다. 핵무기라는 게 숨겨놓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고 국력을 피폐하게 한다.” 

    핵물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나. 

    “핵물질은 일반 물질과 다르게 특이한 성질을 지녔다. 반감기를 거치면서 강도가 떨어진다. 오래 보관하면 터질 수 있는지 불투명해진다.” 

    업그레이드 없이 10년, 20년 지나면…. 

    “저장·관리·보관하기도 위험하고 쓸모없는 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실험을 다시 할 수도 없지 않나. 

    “언젠가는 자수할 수밖에 없다. 유지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갖고 있는 것 자체도 엄청나게 부담이다. 플루토늄 계열이 특히 그렇다. 방사능이 세서 격리해놓아야 한다. 언젠가는 들통이 날 수밖에 없다.” 

    불능화 과정은? 

    “핵 시설을 하나하나 찾아내 폭파하거나 주요 장비를 떼어내 폐기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영변 핵시설의 방사능 오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방사능 덩어리를 폭파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방사능이 주변에 확 퍼질 수 있다. 핵심 장비를 뜯어내 공정이 돌아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방사능 오염 시설을 해체하고 오염된 환경을 복구하는 작업은 인력과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에 IAEA나 미국이 진행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기술자들이 올라가 북측과 공동으로 관리·감독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방사능 오염 지역 및 시설의 제염과 해체, 환경 복원에 남측이 가진 선진 기술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북측의 핵기술자를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할 능력은? 

    “핵물질 관리나 환경 보존에 신경 쓰지 않고 핵무기를 빨리 만들어 터뜨리는 데만 집중했으므로 아무래도 안전성 관련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켜 유엔 대북 제재가 풀리면 한국 기술자가 할일이 많겠다. 

    “북한이 경제 발전에 나서려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력난부터 해결해야 한다. 1단계 비핵화로 CVID가 차질 없이 진전된 후 2단계 비핵화로 남북 간 경협 차원에서 에너지 분야에서 남측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에 송·배전선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다.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 남북을 잇는 송·배전선도 필요하다. 남측 여유 전력을 북측에 송전해줄 수 있다. 한여름 극히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여유 전력이 충분하다”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도 전력 송전이 도움을 줄 수 있겠다. 

    “그렇다. 북측은 남측에서 보내주는 전기를 받아쓰는 게 불안할 것이다. 핵 폐기 보상으로 발전소를 지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신포에 KEDO가 짓다 만 경수로가 있다. 그것을 재활용할 수 있다. 토목 구조물을 거의 완공한 상태에서 공사를 언제 재개하더라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게끔 해놓고 철수한 것으로 안다. 바닷가다 보니 철근, 콘크리트가 소금기 탓에 부식될 수 있기에 철저하게 밀봉해놓고 철수했다고 들었다. 신포 경수로를 재건설하는 날이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신포 원전은 2009년 15억 달러를 투입한 상태에서 공정 35%에서 중단됐다. 

    그가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야 2:3~4)’라는 구절이다. ‘메가톤을 메가와트로(Megatons to Megawatts)’를 성경 구절에 빗대 설명한 것이다. 그는 “북한 비핵화 지원이 침체된 국내 원자력계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도 했다. 

    “고농축우라늄(HEU)을 희석(dawn-blending)하면 저농축우라늄(LEU)을 생산할 수 있다. 아주 쉬운 기술로 가능하다. 북한이 확보한 HEU가 대략 200㎏가량인 것으로 얘기된다. 98%를 4%로 희석하면 20배가량 양이 늘어난다. 북한이 200~500㎏을 갖고 있다면 그것의 20배에 해당하는 원전 연료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국내 기술로 HEU를 LEU로 희석할 수 있다. 무기용 HEU로 원전 원료를 만들어 한국이 사용하면 핵 폐기 대가로 북한에 지원한 돈을 돌려받는 셈이 된다. 구약성경에서 말한 대로 칼, 창(무기)을 보습, 낫(농기구)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그가 덧붙여 말했다. 

    “완벽한 국제적 신뢰와 검증을 전제로 비핵화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북한의 원자폭탄과 핵물질을 한국에서 국내 기술로 희석해 원전 연료로 만들어 사용한 뒤 생산된 전기를 북한에 송전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北이 만든 ‘무기용 핵물질’로 南 원전 돌려 北에 송전”

    핵탄두에 들어간 HEU도 꺼내 원전 연료로 쓸 수 있나. 

    “그렇다. 원자폭탄을 녹여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1990년대 옛 소련의 HEU를 미국이 사들여 경수로 핵연료로 연소한 실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극비리에 개발·완료한 우라늄 핵탄두를 자진 포기하면서 이를 녹여 상징적으로 농기구인 쟁기로 재가공해 IAEA 본부에 기증한 적도 있다. 북한이 만든 핵물질을 한국에서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소량이더라도 남북 간 아주 상징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 구상에 주목하면 좋겠다.” 

    미국은 비핵화 과정에서 핵물질의 해외 반출을 바랄 것이다. 

    “물론 비핵화 첫 단계에서는 전량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미 간 비핵화의 신뢰가 충분히 쌓이면 일부 HEU 물질을 대전 원자력연구원에서 핵연료로 재가공할 수 있다. 북한이 만든 무기용 핵물질로 한국 원전을 돌려 북측에 송전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실현된다면 기가 막힌 한반도 평화의 상징적 사업이 될 것이다. 남측의 기술로 분명히 가능한 일이니 남·북·미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고순도 금속 플루토늄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골칫거리다. 플루토늄을 원전 핵연료로 쓰는 나라는 프랑스밖에 없다. 그것도 소량이다. 방사능 덩어리인 터라 운반도 어렵다. 플루토늄을 고속증식로에서 태우면 재사용이 가능하긴 한데, 미국도 고속증식로 사업이 상업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접었다고 들었다. 운반을 쉽게 하면서 핵무기로 사용될 수 없도록 하는 파이로 기술(pyro-processing)이 국내에서 개발 중인 것으로 안다.” 

    그는 끝으로 탈(脫)원전 정책의 모순을 지적했다. 

    “UAE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체코 등 해외 수출 전망이 아주 밝다. 원전 기술이 뛰어난 데다 한국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높고 가격도 경쟁력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경쟁력이 앞섰는데 국내에서 탈(脫)원전을 한다고 해 문제가 생겼다. 원전 사업에 종사하는 국내 전문 인력이 3만여 명에 달한다. 수만 가지 부품, 서비스가 들어가기에 유관 산업체가 700여 개다.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갖췄는데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기존 원전도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할 일이 사라진다. 이 전문 인력이 흩어지면 국내 원전 기자재 공급망이 총체적으로 와해될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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