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文 정부 ‘낙하산 인사’ 실태분석

공공기관장 | 둘 중 하나 ‘낙하산’ 의심

상임감사 | 셋 중 둘이 ‘文의 사람들’

  • 입력2018-06-27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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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나가는 ‘문캠’ 출신들

    • ‘꽃보직’ 상임감사에 ‘무자격’ 의혹 다수

    • 낙선자 위해 남겨놨다? ‘빈자리’ 수두룩

    • “청와대 호위병 노릇만 할라” vs “성과로 평가해달라”

    시계를 7년 뒤로 돌려 2011년 9월 15일.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전국적으로 순환 정전이 발생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고, 신호등이 꺼지고, 공장 가동이 멈추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다섯 시간의 순환 정전 사태로 우리나라 전체 1757만 가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753만5000여 가구가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김진표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현 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는 한 달 후 열린 국정감사에서 “9·15 정전 대란의 근본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있음이 증명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전과 관련한 자회사들의 경영진과 감사 22명 중 17명이 낙하산 인사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이었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 요직에 투하된 낙하산 부대가 8개 유형 332명이나 된다’고도 밝혔다. ‘낙하산’으로 지목된 이들은 TK(대구·경북), 고려대, 소망교회, 영일·포항, 서울시, 캠프·인수위, 한나라당, 재계 출신들이다. 이 전 대통령의 출신지, 출신 대학, 관련 조직 및 소속 정당과 관계된 사람을 모두 낙하산으로 간주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MB 정부 4년이 민생 경제를 파탄시킨 것은 인사를 망사(亡事)로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김진표 의원은 지난해 장미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일자리위원장을 맡아 활약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다. 김 의원은 문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박근혜 때는 ‘셋 중 하나’였는데…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는 일성(一聲)과 함께 닻을 올린 문재인 정부는 구시대의 잘못된 낙하산 관행과 과감히 결별했을까. 

    ‘신동아’가 알리오(www.alio.go.kr)에 공시된 자료를 토대로 공공기관 인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 기관장 156명 중 77명이 ‘낙하산 인사’ 의혹 범주에 드는 인물이었다. 둘 중 한 명(49%)에 가까운 비율이다. 기관장보다 눈에 덜 띄면서 대우는 기관장 못지않은 ‘꽃보직’ 상임감사의 경우는 더 심하다. 문 정부에서 새로 취임한 공공기관 상임감사 23명 중 17명(74%)이 낙하산 의혹 범주에 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낙하산 인사에 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폭넓게는 내부 승진을 통하지 않고 외부 인사가 임명되는 인사 관행을 가리키기도 하고, 전문성 없는 인사가 ‘최고 권력’의 입김 덕분에 자리를 꿰찬 경우로 한정되기도 한다. ‘신동아’는 낙하산 인사의 대상을 ‘윗선으로부터 압력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상급 부처 공무원 및 상급 공공기관 임직원, 집권여당 인사,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일했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 등으로 한정했다. 

    ‘신동아’는 이와 같은 기준으로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실태를 보도한 바 있다(2015년 5월호 ‘점입가경!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의혹’).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인 2015년 2월 25일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기관장, 감사, 이사 등) 1860여 명 중 600명 이상이 낙하산 인사 의혹 범주에 포함됐다. 비율로는 33%.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의혹이 더 짙어진 셈이다. 

    공공기관 유형별로 인사 실태를 살펴보면, 준(準)정부기관에 낙하산 의혹 기관장이 선임된 비율이 79%로 가장 높았다. 기타 공공기관은 32%로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나, 공기업의 비율은 67%로 상당히 높았다. 한편 77명의 낙하산 의혹 기관장을 출신별로 살펴보면 문재인 캠프 출신의 독주가 두드러진다(더불어민주당 인사 중 캠프 활동을 한 사람은 캠프 출신으로 분류). 28명으로 상급 부처·기관 출신(27명)보다 1명 더 많다. 중앙정부 관료나 상급 기관 임원이 자신들이 관할해오던 공공기관으로 ‘내려앉는’ 관례가 그간 뿌리 깊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문캠 파워’는 새로운 낙하산 트렌드로 주목된다. 한편 문재인 후보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한 인사가 공공기관장에 중용된 경우도 10건에 달했다. 

    준정부기관은 ‘기금관리형’과 ‘위탁집행형’으로 나뉘는데,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선임된 9명의 기관장 전원이 낙하산 의혹을 제기할 만한 인물들로 드러났다.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으로,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한국주택금융공사는 부산에 소재한다).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문재인 캠프에서 직능본부 수석부본부장을 지냈고,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지낸 인물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긴밀하게 손발을 맞춰온 사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9대 국회 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를 지내고, 문재인 캠프에서 복지 공약을 총괄한 주인공. 이 때문에 문 정부의 국정철학을 현장에서 실천할 적임자로도 거론된다. 이에 대해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김성주 이사장의 지역구가 전주인데, 국민연금공단 소재지 역시 전주”라며 “대선 공신을 자신의 지역구 관리에 유리한 공공기관의 장으로 보낸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인사”라고 지적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20대 총선 때 출마를 위해 임기 중 사퇴한 공공기관장은 모두 13명으로, 이들 대부분은 정치인 출신이었다. 김 실장은 “이들에게 공공기관 임원 자리는 다른 자리로 건너가기 위한 교두보, 다음 공천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낙하산 의혹 인사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등 정치권 인사들이 눈에 띈다.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은 여성운동가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5선 국회의원(15~19대)이고,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19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관광 분야 경력이 전무한 안영배 사장을 발탁함으로써 ‘한국관광공사 낙하산 사장 열전’에 동참했다. 안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 국정홍보처 차장 등을 지내고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지난 5월 자유한국당은 안 사장 발탁에 대해 “일자리 재난인데 낙하산 인사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논평했다.

    ‘경영’ 안 해본 사장님들

    준정부기관은 여타 공공기관보다 정부 부처가 해야 할 일을 ‘위임’ 받은 성격이 강하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정부기관과 가까운 정체성을 갖기 때문에, 정부 부처나 여당 출신이 기관장을 맡는 것이 어느 정도 합당한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기업은 다르다. 정부 조직이 아닌 ‘기업’으로서 자율성을 지켜가야 하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공기업 사장 자리는 ‘낙하산’ 차지였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들은 상급 부처·기관 출신들을 사장으로 맞이했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출신이다. 한국남동발전(유향열 사장·전 한국전력 부사장)과 한국서부발전(김병숙 사장·전 한국전력 신성장동력본부장), 한전KDN(박성철 사장·전 한국전력 신성장동력부본부장)은 모회사인 한국전력 출신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그나마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산업부 차관을 지낸 뒤 하이닉스 사장, 지멘스 회장을 거치며 관료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한 경우다. 

    정치권 출신 공기업 사장이 이번에도 또 여럿 등장했다. 문태곤 강원랜드 사장,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이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인 문태곤 강원랜드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1년간 청와대 근무를 한 것을 빼놓고는 감사원에서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경력은 없다. 이강래 사장은 3선 국회의원(16·17·18대) 출신으로,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명지전문대 석좌교수 등을 지내다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됐다. 역시 기업을 경영한 경력은 없다. 17대 국회의원이었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중앙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 부본부장이었던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은 1995년 영구아트무비 대표이사를 잠깐 지낸 것이 기업 경영 관련 이력의 전부다.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도 철도나 기업 경영과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다. ‘운동권 출신’ 3선 국회의원(16·17·19)으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을 맡았다. 공기업 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정치인 사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기업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데 탁월하다. 이 때문에 일부 임직원은 정치인 출신 사장을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네트워크가 반대로 작용할 때가 많다. 각종 민원을 회사로 들고 와 조직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공기업은 전문경영인이 이끌어가는 것이 맞다.” 

    한편 조재기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명예교수는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오석근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시민문화연대’ 공동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박삼득 전 국방대학교 총장은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신용도 부산지방변호사협회장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모두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구체적 자격 기준 명시할 필요”

    “낙하산 인사의 백미(白眉)는 감사(監事)다. 기업의 부정을 조기에 적발하여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감사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표가 나지도 않는 직책이기도 하다. 제일 만만한 자리인지 아무나 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10월 열린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 해법은 없는가’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상임감사 인사 실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23명의 신임 상임감사 중 경영이나 회계, 감사 관련 경력을 가진 인물은 찾기 힘들다. 대다수가 정치권 출신이거나 현 여당과 연관된 인물이다. 임상경 한국에너지공단 상임감사는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책임연구원이었고, 박재혁 주택관리공단 상임감사는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부설 단디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이재강 주택도시보증공사 상임감사는 지난 대선 때 부산선거대책위원회 상임본부장, 송기정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상임감사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었다. 김명경 한국원자력원료(주) 상임감사는 20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총선 기획단장을 맡았었다. 한국원자력원료(주)는 대전에 소재한다. 

    조용순 한국수출입은행 상임감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경호처 경호본부장을 지낸 인물.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2012년 8월~2014년 8년)를 거쳐 국책은행 감사가 됐다. 한국수출입은행 고위 임원을 지낸 한 금융계 인사는 “수출입은행 감사는 잘못된 금융 리스크를 관리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라며 “업무의 특성상 금융뿐만 아니라 세계무역, 해외투자, 국제 정세 등에 대해서도 식견이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선 교수는 “과거 감사의 역할은 회계에 한정됐지만 최근에는 사업 타당성 판단, 리스크 관리 등 업무 감사와 관련해 할 일이 아주 많다”며 “이런 자리를 정치권의 전리품처럼 여기며 아무한테나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시장법에서 상장회사는 1명 이상의 재무전문가를 두도록 규정하는데, 국민이 곧 주주인 공공기관도 이처럼 상임감사 자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7월 ‘공공기관 혁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공기관이 각자의 혁신 계획을 마련하는 데 참고가 되는 가이드라인을 기재부가 제시하는 것이다. 기관장과 상임감사 등 공공기관 주요 직책에 자격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등의 낙하산 방지 인사 기준 도입은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바다. 그러나 기재부 관계자는 “낙하산 근절 대책을 혁신 방안에 포함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출신’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공모 절차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엄정하고 생각보다 까다로운 면접을 치렀다”며 “출신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성과로 평가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6월 11일 현재 50개 공공기관 기관장과 29개 공공기관 상임감사 모집공고가 난 상태다. 한국공항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장학재단·대한법률구조공단·국토연구원 등이 신임 기관장을, 한국전력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투자공사·강원랜드·한국도로공사 등이 새 상임감사를 기다리고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역대 정권에선 낙선자를 공공기관에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이들 공공기관 빈자리가 6·13지방선거 낙선자 차지가 되지 않는지 면밀히 지켜볼 때”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낙하산 인사 의혹 공공기관장(77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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