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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 결혼식장에서上

판사의 ‘이혼주례’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판사의 ‘이혼주례’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정재민 전 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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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결혼식에 가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깨끗한 도심 거리가 아름다워서 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었다. 머리칼을 쓰다듬고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상쾌했다. 햇살도 적당히 따뜻하고 밝아서 샤워하듯 온몸에 흠뻑 적시고 싶었다. 봄 햇살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 햇살엔 딸 내보낸다는 속담의 절묘함을 새삼 깨달았다. 

식장은 외부 치장이 화려한 결혼식 전용 빌딩이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깔끔한 5층 건물이었다. 1층에서 신랑, 신부와 그 가족이 하객의 인사를 받고, 4층에서 결혼식을 하고, 2~3층에서 피로연을 하고, 5층에는 신랑·신부 대기실이 있는 아주 효율적인 구조였다. 거기다 좀 더 쌓아올리면 ‘토털 라이프 센터’가 완성될 것 같았다. 6층에 신혼여행을 위한 여행사를, 7층에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8층에 유치원과 아이들 학원을, 9층에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10·11·12·13층에 각각 10년씩 사는 아파트를, 14층에 양로원을, 15층에 장례식장과 화장장을.


결혼이 처음이라

10여 년 전 가을, 나도 지금의 아내와 함께 결혼식장을 알아보러 다녔다. 우리가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라 서로 아직 결혼 확신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아내가 당시 결혼적령기를 넘겼다며 한 살이라도 일찍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일단 식장은 예약해두자고 했다. 자신이 가톨릭 신자인데 인기 있는 성당은 지금 예약해도 반년 이상 지난 뒤에야 결혼할 수 있다고, 일단 예약해두고 결혼하기 싫어지면 안 하면 된다는, 뭔가 이상하고 찜찜했지만 큰 흠결을 찾기도 어려운 논리를 폈다. 

처음엔 명동성당에 가봤는데 그렇게 큰 곳은 성대한 결혼식에나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그럴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 되도록 작은 데서 조촐하게 하고 싶었다. 다른 성당에 가보려고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가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는 대한민국에서 결혼하기에 가장 멋진 성당은 합정역 근처에 있는 절두산성당이라고 강조했다. 귀가 솔깃해져 택시비를 잔뜩 주고 그곳으로 가보았다.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건물이 아담했고 그 등 뒤로 굽이쳐 돌아가는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 벽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고 오로지 정면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만 걸려 있어서 순결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겼다. 성당이 너무 아름다워서 결혼에 확신이 없어도 결혼식만큼은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들뜬 기분으로 사무실에 가서 ‘여기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곳은 순교지라 결혼식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낙심한 마음으로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을 찾았다. 지어진 지 120년이 넘은 작고 소박한 곳이었다. 절두산성당과는 분위기가 딴판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우리는 5개월 뒤로 결혼식을 예약했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다음 결국 정해진 날짜에 그곳에서 정해진 사람과 무사히 결혼했다. 



전문 웨딩홀이 아니다 보니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행사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모든 것을 챙겨야 했다. 하객과 인사하다 말고 주차장이 다 찼다는 얘기를 듣고 인근 주차장을 확보했다. 그 외에도 성당으로 올라오는 입구에 시장 상인들이 앉아서 장사하는 바람에 차가 올라오질 못한다거나, 친구들이 축가를 준비했는데 성당에서 녹음한 반주를 틀어주지 않는다거나, 웨딩카를 따로 빌리지 않고 아내가 쓰던 차를 내가 직접 운전해 갔는데 주차하다가 비싼 차를 들이받아 사고를 냈다거나, 비행기 표 예약을 할 때 영문 철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결국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문제들이 생겼다. 연습도 없이 처음 하는 결혼이다 보니 서투르기 이를 데 없었다(아내는 부케를 높이 던지고는 자기가 다시 받았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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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서 있는 신랑을 향해 다가갔다. 평소 성기고 푸석하던 머리칼이 대형 세단의 보닛처럼 번쩍거렸다. 흑채를 잔뜩 뿌린 듯했다. 신랑이 나를 알아보고 과장된 눈인사를 했다. 나를 끌어당기는 그 느끼한 눈길을 뿌리치고 옆으로 샜다. 봉투에 축의금을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이걸 내야 식권을 받기 때문이다. 

신랑은 초혼인데 나이가 40대 후반이었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결혼 연령이 의미 없고, 뭐든 좋게 말해주는 게 예의라고 해도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쓰였는지 묻지도 않는데 그는 내게 청첩장을 주면서 수줍게 말했다. 박사를 딸 때까지 공부하고 취업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그때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요즘 세상에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전혀 소년답지 않게, 말해주었다(정작 나는 한 해라도 더 일찍 결혼하려고 결혼 확정 전에 예식장부터 서둘러 예약한 여자와 살면서도). 

나는 신랑과 그의 부모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솔직히 진심으로 터져 나오는 말은 아니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누군가가 결혼을 발표하거나 심지어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말만 해도 주변 친구들이 반사적으로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네가 스파이더맨이었다니! 깜짝이야!” 하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LED 전등 백 개를 켠 듯한 밝은 표정으로 요란하게 축하한다. 그것을 볼 때마다 진심인가 싶다. 

차라리 결혼하면 잘살 수 있을지 불안해 궁합을 보러 가는 것이 더 솔직해 보인다. 내가 재판한 어느 형사 사건이 생각난다. 피고인은 궁합을 봐주는 점쟁이였는데 궁합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특별 처방을 내렸다. 그 사건에서는 예비 신부에게 천(天), 지(地), 인(人) 세 주체의 조화가 중요하다며 남자 삼각팬티 석 장을 구해 그 안에 3333만3333원을 현찰로 넣고 자신이 말하는 언덕의 나무 밑에 파묻으라고 했다. 신부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신랑이 의심이 들어 그곳에 가서 땅을 파보니 삼각팬티만 뒹굴고 있었다. 이에 고소를 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했다거나, 승진을 했다거나,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아파트 분양에 당첨돼 시세보다 싼 가격에 집 장만을 하게 됐다면 조금도 주저 않고 축하할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이 그토록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결혼은 미래의 사랑에 대한 약속이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게다가 부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다. 사랑이란 것이 원래 의지다.
 
잘해주기 싫은데 참고 억지로 잘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속에 천불이 나는데 억지로 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받은 것도 없는데 그냥 잘해주고 싶고 무슨 말을 해도 화도 안 난다면 그것은 욕정이다. 사랑이 의지이므로 결혼하며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서약하는 것은 평생 매일 팔굽혀펴기 50번씩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같다. 수월하게 해내는 날도 있겠지만 하기 싫어서 쉬고 싶은 날도 널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쉬는 날이 거듭되면 관계가 깨지고 심하면 이혼할 수도 있다. 평생 매일 팔굽혀펴기 50번씩 하겠다는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수월하게 나오겠나. 게다가 가정법원에서 수천 명을 이혼시키는 데 가담한 판사라면. 

지인의 결혼식은 적절하고 적당하게 아름다웠다. 신부가 천장에서 구름마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미스코리아처럼 봉을 잡고 장갑 낀 다른 손을 흔들어서 하객들을 무안하게 만든 것도 아니었고, 내 친구의 결혼식처럼 신부 없이(만삭에 양수가 언제 터질지 몰라 불참) 신랑 혼자만 등장해 교장선생님한테서 상장을 받는 학생처럼 주례와 일대일로 마주 선 것도 아니었다. 

내 결혼식 때는 신부님이 미사를 주재했는데 젊고 의욕이 넘치시는 터라 말씀이 너무 길었다. 신랑인 나조차 선 채로 졸 뻔했다. 부부가 지켜야 하는 원칙을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일러주셨는데 결혼을 안 해보신 분이 원칙은 어찌 그리 꼼꼼히 세우시는지.


이혼 주례의 기억

이혼 조건에 대해 부부간에 합의가 안 되면 재판을 해야 하지만, 합의가 되더라도 판사 앞에서 이혼 의사를 확인받아야 한다. 이러한 일을 판사들 사이에서는 은어로 ‘이혼 주례’라고 한다. 판사가 하는 일이 결혼식장에서 주례가 하는 일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법대 앞으로 나온 두 사람에게 판사가 본인이 맞는지 확인한 다음(아프리카 가나의 가정법원에서처럼 결혼식 때 착용했던 복장을 했는지 확인하지는 않는다.) 각각 “진정으로 이혼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네” “네” 남성과 여성 목소리가 한 번씩 들리면 내가 “네, 이혼 의사가 확인됐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1분에 두세 쌍을 처리할 수도 있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년 남자 연예인이 이혼을 하러 법원에 간 경험을 늘어놓는 걸 봤다. 그는 이혼을 하겠다고 하면 판사가 말릴 줄 알았는데 그냥 순식간에 이혼이 돼버려 황망했다고 했다. 그 말에 기억나서 덧붙이자면 초짜 판사 시절 처음 이혼 의사를 확인하던 날엔 말을 좀 붙여볼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도무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혼을 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불필요한 사생활 침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힘내세요!”라거나 “힘드시겠어요”라거나, “힘드신가요?”라거나 “빨리 좋은 분 만나시기 바랍니다”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다만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친권과 양육권, 양육비, 면접교섭권 등에 대한 합의를 확인해야 해서 시간이 다소 길어진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자녀 양육을 맡으면서 “사내답게(?)” 양육비는 받지 않겠다고, 마치 여럿이 밥을 먹고 밥값을 계산하면서 다른 사람이 건네는 돈을 뿌리치듯 시원하게 선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지 않던 남자가,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이 그러면 더 걱정이 됐다. 열심히 자녀를 키워보고 열심히 돈을 벌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양육비를 10만 원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쓴다. 한번 양육비를 안 받는 것으로 결정되면 나중에 소송을 해도 내용을 뒤집기 어려워진다. 굳이 말을 하지 않지만 때로는 그들이 무책임해 보이고 그 자녀가 걱정된다. 소년 재판에 나오는 아이 중 상당수는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양육자가 양육비를 받지 않고 양육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다. 

요즘은 이혼 주례를 할 때 판사와 당사자들만 있는 별도의 방에서 이혼 의사를 확인받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대기자가 보는 앞에서 절차가 진행되곤 했다. 내가 판사석에 앉아 있으면 마치 강연자가 청중을 바라보듯 100여 명이 넘는 대기자를 마주 보게 됐다. 직원이 한 쌍씩 부부를 호명하면 멀찍이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제각각 법대 앞으로 나와서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둘 사이에 마치 같은 극의 거대한 자석이 있어 팽팽한 척력이 작동하는 듯 느껴졌다. 

종종 나란히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누다 편안하게 나오는 부부도 있었다. 채권 추심이나 부동산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이혼이 의심되는 경우다. 처음 신청할 때는 둘 다 나오기로 약속했는데 정해진 기일에는 한쪽의 마음이 바뀌어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온 쪽은 허탕을 친 셈이 된다. 그때 그 사람의 표정은 그야말로 복잡하다. 결혼 내내 배신하더니 마지막까지 배신하는구나 하며 화내는 표정이 있는가 하면(내게 하소연하는 이도 있었다), 풍선 인형에 바람이 빠지듯 기운이 쭉 빠져버린 표정도 있다. 기일을 마친 내 표정도 후자와 다르지 않다.

- 다음 달에 계속 -


판사의 ‘이혼주례’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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