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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기업은행장 임명은 ‘관치 독극물’?

‘낙하산’ 靑, 야당 때 ‘관치는 독극물·발암물질’이라더니…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윤종원 기업은행장 임명은 ‘관치 독극물’?

  • ● ‘모피아’·靑 경제수석 윤종원, 국책은행 입성
    ● 민주당, 4년 전에는 ‘낙하산 방지법’ 발의
    ● 금융노조 “총선에서 민주당 낙선운동 벌일 수밖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1월 3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으로 첫 출근을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발길을 돌렸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1월 3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으로 첫 출근을 시도했으나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발길을 돌렸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은 것. 좋은 관치가 있다는 말은 좋은 독극물, 좋은 발암물질이 있다는 것처럼 어불성설이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민주당 정무위원들이 낸 성명 중 일부다. 이들은 “능력을 인정받는 내부 인사 출신을 내치고 모피아를 낙하산으로 보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며 “기업은행장의 낙하산 인사 계획을 하루빨리 단념하라”고 촉구했다. 

기업은행장 낙하산 인사를 이렇게 강한 어조로 반대했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 태도가 돌변했다. ‘모피아’ 낙하산 인사를 버젓이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MOF)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세력을 구축해 정계와 금융계 등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다.


“낙하산 반대했더니 대안이 前 경제수석?”

이로써 IBK기업은행은 10년 만에 다시 외부 인사를 수장으로 맞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 번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윤종원 행장이 당사자다. 윤 행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7회에 합격해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특명전권대사 등을 역임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동창이자 행정고시 동기다. ‘모피아’에 들어맞는 이력을 쌓은 셈이다. 

윤 행장이 임명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앞서 새 기업은행장에는 반장식 전 대통령일자리수석비서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 전 수석을 두고는 금융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을 꼬집는 목소리가 거셌다. 인선이 지연되면서 행장 자리가 공석이 되는 등 혼란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윤 행장 임명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윤 행장 역시 전문성이 떨어진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그의 금융권 경력은 지난 1996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 서기관 1년과 2011년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 1년이 전부다. 

노조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모피아’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선 캠프와 맺은 정책협약서를 공개했다. 협약서에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우리가 반대한 것은 반 전 수석이 아니었다”라며 “함량 미달 낙하산을 반대한다는 뜻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는데 청와대가 찾은 대안이 윤 전 수석이라니 헛웃음만 나온다”라고 꼬집었다. 이후 노조는 윤 행장의 첫 출근길부터 막아서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윤 행장은 다소 색다른 행보로 노조에 대응했다. 그는 20~21대 기업은행장을 지낸 고(故) 강권석 전 행장의 묘소를 참배했다. 강 전 행장은 행정고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원, 금융감독위원회 등을 거친 정부 관료 출신 인사다. 또 임기 중 ‘자산 100조 원 돌파’와 ‘은행권 첫 차세대 전산 시스템 구축’ 등의 업적을 이루기도 했다. 관료 출신 은행장이라도 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낙하산 방지법 발의 민주당, 지금은 침묵

1월 6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이 투쟁본부를 설치하고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며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뉴스1]

1월 6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노조원들이 투쟁본부를 설치하고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며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뉴스1]

윤 행장의 메시지가 틀린 것은 아니다. 금융계 안팎에서도 ‘출신’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여론이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경우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정부와 정책 공조를 해야 할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서는 내부 출신보다는 윤 행장과 같은 외부 출신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선 때의 약속을 뒤집으면서까지 이번 인사를 강행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그간 내부 출신이 기업은행장을 맡았더니 실적이 지지부진했다’는 둥의 이유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기업은행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조준희 행장을 시작으로 지난 정부 당시 권선주, 김도진 행장까지 10년간 내부 출신 인사가 수장을 맡아 끌어왔다. 2018년의 경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경영 성과가 좋았다는 평을 받아왔다. 

게다가 민주당은 기업은행에서 내부 출신 인사가 행장이 되는 관행을 만든 당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과 2016년에 각각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과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기업은행장으로 내정하려 했다가 노조와 시민단체, 민주당의 강한 반대로 철회한 바 있다. 

민주당은 심지어 4년 전에는 ‘낙하산 방지법’을 발의한 적도 있다. 이 개정안은 국책은행 임원의 자격 요건으로 ‘5년 이상 금융회사 근무경력’ ‘금융 관련 분야 교수’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금융 관련 공공기관 7년 이상 근무 경력’ 등을 명시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금융권 낙하산 인사를 반대한 데에는 뚜렷한 이유도 있었다. 정권 실세가 국책은행장으로 앉았을 경우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다 산업은행 수장으로 임명된 홍기택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에 거금의 공적자금을 무리하게 지원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결정에 일방적으로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회장의 사례는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게 때에 따라서는 되레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정권의 이익만 좇다 보면 공공기관의 발전에는 해가 될 수 있는데, 낙하산 인사의 경우 이런 측면에서 유독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정권 바뀐 뒤 낙하산 비판 명분 없어져”

청와대는 윤 행장에 대해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인사”라고만 했다. 이런 설명은 모든 정권이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낼 때마다 내놓는 별 의미 없는 문구일 뿐이다. 그간 기업은행장이 정부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엇박자를 낸 일은 없었다. 이번 인사가 ‘논공행상’을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윤 행장이 임기 동안 과거 어느 때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고 직원들과도 잘 소통해 훗날 존경받는 행장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소통이 원활하다는 점은 기업은행이라는 조직의 이익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윤 행장이나 기업은행의 성과와는 별도로 이번 인사는 문재인 정권에 명백한 흠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라며 “이러면 향후 정권이 바뀐 뒤에 낙하산 인사를 하더라도 비판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노조는 “(문재인 정권이) 이대로 정책협약을 파기하겠다면, 금융노조는 집권 세력에 대한 모든 지지를 철회하고 총선에서 민주당 낙선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동아 2020년 2월호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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