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사바나

“진상 손님?” 2030 카공족의 항변

“열악한 자취방이 너무 싫어요”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0-02-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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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 10명 중 4명 “난 카공족”

    • 잠만 자는 좁은 방… 청년 주거 환경 ‘빨간불’

    • “방의 외부화 현상, 배부른 소리 아냐”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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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인 대학생 김모(22·여) 씨는 얼마 전 카페에서 민망한 경험을 했다. 학교 근처인 서울 마포구 한 카페서 홀로 음료 1잔을 주문한 후 전공 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 카페 사장이 와 넌지시 냉수를 권한 것. 빙긋 웃으면서도 연신 시계를 쳐다보는 사장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2시간 넘게 카페에 머무른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진상손님(무례하고 민폐 끼치는 손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볼을 붉히며 짐을 챙겨 자리를 떴다. 

    2016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대학생 56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 준비나 공부할 때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 1위는 카페(42.5%)다. 또 응답자 10명 중 4명꼴로 자신을 카공족이라고 규정했다(41%). 이들은 카페를 공부 장소로 선호하는 이유로 ‘학교나 도서관과 달리 답답하지 않고 마음이 편하다’(46.1%)는 것에 이어 ‘적당한 소음으로 오히려 집중이 잘된다’(40.6%) ‘공부 중에 간식을 편히 먹을 수 있다’(39.3%)는 점 등을 꼽았다(이상 복수 응답 허용).

    대학가 카페 점령한 ‘카공족’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들에게 카공족은 ‘계륵’이다. 한번 자신에게 맞는 편안한 카페를 찾으면 꾸준히 방문해 단골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장 좌석의 회전율을 낮추는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4134원어치 음료를 구입한 손님이 1시간 42분 넘게 매장에 머물면 카페는 손해 본다. 이마저 전체 손님의 3분의 1가량이 ‘테이크아웃’ 손님이라는 전제가 붙는다(‘늘어난 非매너 ‘카공족’, 업주 한숨도 늘어난다’ 참조). 

    서울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에서 11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5000원 안팎의 음료 한 잔을 주문한 손님이 2~3시간가량 머무는 것을 전제로 영업하고 있다. 매장 방문 4시간이 지나면 새로 음료를 시켜야 하는 점포 자체 룰을 운영하고 있다”며 “손님에게 추가 주문을 권하면 대체로 흔쾌히 응하지만 일부는 불쾌함을 내비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부 카공족의 몰지각한 행태다. 해당 업주는 “일단 음료만 주문하면 매장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문제”라며 “홀로 자리를 지나치게 넓게 차지하거나 큰 소리를 내 주변 손님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공족을 자처하는 또 다른 대학생 신모(19·여) 씨는 선배들로부터 전해 들은 노하우를 따라 이런 상황을 피하려 애쓴다. “카페에서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는 날이면 음료뿐 아니라 디저트까지 주문해 면피한다. 자리는 최대한 덜 차지하고 콘센트 사용도 삼가서 다른 손님과의 마찰도 줄이려 한다”는 것. 신씨는 “일부 카공족이 카페에 자리를 맡고 장시간 자리를 비우거나 외부 음식을 반입하는 행태를 보면 나도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앞선 설문조사 응답자들도 카페에서 공부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오랜 시간 공부하면 눈치가 보인다’(46.1%)는 점을 꼽았다. 그럼에도 대학가 카공족이 카페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페 사장의 ‘무언의 압박’을 받고 민망했다는 대학생 김씨가 카페를 전전하는 것은 좁은 자취방에서 수면 외에 일상생활을 하기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김씨가 사는 곳은 신촌에 위치한 100가구 넘는 규모의 오피스텔.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이곳에서 3년째 보증금 1000만 원에 한 달 45만 원으로 20㎡(6평) 방을 임차해 살고 있다. 대학 1학년 때는 한 달 30만 원꼴인 학교 기숙사에 살았다. 하지만 1 ,2학년생에게 전체 기숙사 80%가량이 할당되는 탓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쟁률이 점차 높아졌다. 주거비를 더 들이고 자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 

    살림살이가 적어도 방은 좁다. 일부 가구는 준공 당시 붙박이로 설치된 터라 집주인 허락 없이 철거할 수도 없다. 실평수는 더 좁아진다. 빨래라도 해서 방에 널어두면 당분간 빨랫감에 집을 내줘야 하는 형편이다. 김씨는 “들인 돈에 비해 주거 환경이 썩 좋지 않아 늘 아쉽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기보다 좁은 주거공간을 확장한다는 심정으로 카페로 향한다”고 덧붙였다.

    환기 안 되는 좁은 방, 전기레인지·세탁기도 무용지물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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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의 20㎡ 원룸에서 2년째 자취하는 대학원생 김모(28) 씨는 “겉은 그럴싸한데 속은 골병 든 곳”으로 자신의 주거 환경을 표현했다. 김씨가 사는 곳은 본래 66㎡(20평) 남짓한 단층 건물을 얇은 석고 벽으로 나눈 2개 방 중 1곳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19~39세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 주거 안정을 위해 집주인과 최대 1억2000만 원 한도(수도권 단독거주 기준)로 전세 계약을 대신 체결하는 ‘청년전세임대’ 주택이다. LH청년전세임대주택의 경우 계약 과정이 까다로운 탓에 집주인들이 계약을 꺼려 겨우 잡은 집이다. 

    김씨는 전세금 8000만 원을 보조받아 LH에는 연 1~3%의 이자만 내면 된다. 여기에 가열 구멍이 하나인 전기레인지에 소형 드럼세탁기까지 구비돼 일견 나쁘지 않은 주거 조건이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김씨의 체감은 달랐다. 함석 지붕에 단열이 잘 안 되는 콘크리트 조적 건물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옆 건물 외벽 쪽으로 난 가로세로 30㎝가량의 작은 창문으로는 환기가 어려워 취사나 세탁물 건조도 쉽지 않다. 김씨는 “구하기 어려운 LH청년전세임대주택에 사는 것을 위안 삼는다”면서도 “집이 좁고 환기가 안 돼 카페는 물론, ‘코인빨래방’이나 짐 보관 대행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사실상 추가 주거비용이 늘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홀로 사는 전체 540만 가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30대(17.6%)였고 20대(17.2%)가 뒤를 이었다. 대학생 2명 중 1명꼴로 본가를 떠나 자취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결혼 전까지 1인 가구를 유지하는 탓으로 보인다. 문제는 2030세대 1인 가구의 상당수가 열악한 주거 조건에서 살고 있다는 것. 국토교통부의 ‘최저주거기준’ 규정에 따르면 주택은 최소 주거면적은 14㎡(4.2평)에 상하수도가 완비된 화장실과 목욕 시설, 부엌 등을 갖춰야 한다(1인 가구 기준).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청년가구의 주거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청년 가구주(만 19~34세) 8.9%는 최저 기준에 못 미치는 주택에 살아 전체 평균치 5.7%보다 높았다. 조사 대상 청년의 24.7%가 월 소득의 2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주거빈곤층’임에도 주거의 질은 낮았다.

    “열악한 청년 주거 환경, 정부가 나서야”

    좁은 자취방 밖을 떠도는 청년들의 모습을 두고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방의 외부화 현상”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카페에서 쓸 돈은 있으면서 형편이 어렵다며 우는 소리한다는 일각의 조롱은 이런 실정을 고려하면 난센스다. 나쁜 주거 조건은 대학생뿐 아니라 취업준비생에서 사회 초년생까지 2030세대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청년들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주택 임대차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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