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수태력 높이려면 사각팬티 입어라”

위대한 ‘핫바지’의 추억

  •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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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2-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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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짤깍 짤깍.” 

    1960~70년대를 떠올리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일지라도 엿장수의 차진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동네 아이들이 골목 어귀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오로지 엿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빈병, 헌책, 깨진 그릇 같은 폐품을 들고 뛰었다. 심지어 멀쩡한 냄비까지 들고 와서 엿과 바꿔 먹으려고 줄을 섰다. 요즘으로 치자면 엿장수는 고물수집상이었던 셈이다. 이제 와서 떠올리면 엿장수가 팔던 엿보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부른 ‘호객 타령’이 정말이지 흥미진진하고 리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 엿이 왔어요. 엿들 사려! 둘이 먹다 혼자 죽어도 모르는 찹쌀엿이 왔습니다”로 시작되는 엿장수의 가위 장단. “삼베 걸레 떨어진 것, 신랑 각시 첫날밤에 오줌 누다 빵구 난 놋요강도 받습니다. 아버지 바지 핫바지, 어머니 바지 홑바지, 안 되는 게 없어요.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를 잡지…엿 먹을 사람 다 나오세요”라며 얼씨구절씨구 가위 장단에 맞춰 흥을 돋우며 살짝살짝 19금(禁) 코멘트를 내지르는 호객 타령에 온 동네 꼬마와 아줌마들이 다 모였다.
     
    아무리 달달한 엿을 먹고 싶어도 그렇지, 핫바지(솜을 두어 지은 바지)까지 들고 나갔을까. 절로 웃음이 나온다. 철부지 아이가 아비의 핫바지를 들고 나갔겠지, 아낙이 멀쩡히 잘 입고 다니는 서방 핫바지를 엿 바꿔 먹었을까. 그 시절 무엇을 가지고 나가야 엿을 많이 받는지는 딱히 공식이 없었다. 모든 게 ‘엿장수 마음대로’였으니 말이다.

    레깅스 입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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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바지. 생식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정자 형성 바지(정자 생산에 이바지하는 바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지가 헐렁해 정자를 생성하는 음낭 속 고환에 통풍이 잘 되고 압박감도 없기 때문이다. 또 바지가 늘어질 대로 늘어져 정자 형성을 왕성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에 헐렁한 사각팬티가 남성의 생식 능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하버드 의대)가 발표됐다. 656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헐렁한 속옷을 입은 그룹의 정액 샘플 농도가 꽉 끼는 속옷을 입은 남성 그룹보다 25% 높았다는 것이다. 정액 내 정자 수는 17%가 더 많았고, 활발히 움직이는 정자도 33% 더 많았다고 한다. 



    왜 헐렁한 팬티와 바지를 입어야 정자 생성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헐렁한 바지 혹은 팬티가 고환 주변의 온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꽉 끼는 속옷을 입으면 아무래도 고환의 온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난임 전문의인 필자가 수태력이 좋은 남성이 되려면 삼각팬티보다는 사각 트렁크 팬티를 입으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특히 트렁크 가운데가 열려 있는 팬티라야 한다. 

    귀가하면 펑퍼짐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생활하다 취침하기를 권한다. 샤워할 때 음낭 주위를 찬물로 씻으면 더욱 좋다. 2세를 마음먹은 대로 제때 만들기 위해서는 고환 보호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그나저나 요즘 젊은 남성들을 보면 걱정이다. 레깅스라고 해서 몸에 착 달라붙는 내복 같은 하의를 입는 남성이 늘고 있는데 정자 형성에 장애를 줄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바지가 몸에 붙을수록 패션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고환 건강을 위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핫바지를 시대에 뒤떨어지는 옷으로 인식할 일이 아니다. 남성의 생식기능이 남성성의 상징임을 잘 알고 있다면 특히 하의 선택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레깅스는 격렬한 운동에도 움직임이 편하지만, 시원해야 할 남성의 아랫도리가 고온다습해질 수 있다. 특히 레깅스를 입고 장기간 달리기와 사이클 등을 하면 고환의 온도가 점점 상승해 고환 주위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는 정계정맥류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사타구니에 땀과 열이 많아지면 습해지고 통풍이 안 돼 곰팡이와 세균 번식에 의해 가려움과 습진 등 피부 질환에 걸릴 수도 있다. 

    정자는 체온 상승에 매우 민감하다. 오죽하면 몸에서 밖으로 튀어나와 있겠는가. 정자 형성을 하려면 고환은 체온보다 2~3도 낮아야 한다. 음낭이 다른 피부에 비해 피하지방이 적고 주름이 많은 이유가 체온을 발산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고환 쪽 혈류에 문제가 생기면 고환 주위에 독소가 쌓이거나, 정액 내 활성산소가 증가해 정자 상태가 나빠지고 남성호르몬 생산 기능도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고환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잠복고환을 가진 남성들은 정자 형성이 아주 낮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잠복고환이 오래 지속될 경우 고환에서 악성 종양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환의 체온을 낮추기 위해 벗고 다녀야 하는가. 아니다. 몸이 추운 데 있으면 면역력만 떨어질 뿐이다. 옷은 따뜻하게 입고 주기적으로 음낭 주위를 환기해주면 된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볼 때마다 음낭을 환기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임 남성이라면 사우나를 너무 자주 가면 안 된다. 이탈리아 파도바대 의대 비뇨기과에서 정자 수가 정상치를 보인 30대 남성 10명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매주 2회 15분씩 사우나를 하게 했더니 정자 수가 실험 전보다 줄었고, 줄어든 정자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는 6개월이나 걸렸다. 더 놀라운 것은 정자세포 DNA에도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그 이유를 사우나를 하는 동안 남성의 음낭 온도가 3도가량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엿장수 마음’이라는 배짱

    최근 남성 원인 난임이 늘고 있다. 남성으로 인한 원인이 40%를 차지한다.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정자 감소증’ ‘정자 활동성 부진’을 꼽을 수 있다. 요즘 정자 수가 적고 운동성과 직진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남성이 적지 않다. 평균적으로 정액 1㏄당 정자가 7000만 마리 정도 있는데, 여기서 1500만 마리 이상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정자 수가 평균치 이하면 인공수정(자궁내 정자 주입술)이 힘들고 체외수정술(IVF)을 해야 임신을 할 수 있다. 

    당부컨대, 혹여 정자 검사에서 수와 활동성 등에 평균 이하라는 검사 결과를 듣는다고 해도 낙심하거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기를. 집안의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때로는 ‘엿장수 마음’이라는 식의 배짱이 필요하다. 패션 감각에 뒤떨어지더라도 정자 건강을 위해 헐렁한 트렁크 팬티와 파자마로 편하게 입고 생활해 보라. 기죽은 가장이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가장이 되면 정력이 더 좋아지고 정자까지 풍부해질 것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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