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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된 민주, 어용된 진보, 감염된 보수

[봉달호 편의점 칼럼] 세상에 어떤 리버럴이 5·18왜곡처벌법 같은 해괴한 법을 만드나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오용된 민주, 어용된 진보, 감염된 보수

  • ● 용어의 횡령, 용어의 약탈
    ● ‘민주진보’ ‘애국보수’ 떠들며 정치적 분단국가로
    ● 야매(野昧) 근본주의 아수라 싸움판
    ● 민주 보류하고 적(敵)부터 쳐내는 ‘독재’
    ● 세상에 이토록 경박한 ‘보수’도 있는가
    ● 조지 오웰이 ‘1984’에 예견한 신어(新語)의 새 시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 민주묘지 추모탑에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 민주묘지 추모탑에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민주당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어느 정치인과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다. 자리에 앉기 전 명함을 주고받으며 약력을 간단히 말했더니 그가 환히 웃으며 했던 말, “동지, 반갑습니다.” 만난 지 채 3분이 되지 않은 때였다. ‘동지’가 3분카레처럼 척척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진대 그가 내 무엇을 알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어느 정치인의 학교 후배라고 하니까 “어, 그래?”라며 곧장 말을 놓은 정치인보다는 그래도 나아 보였다. 한 번 만난 사람과 형님 동생이 되고, 심지어 동지도 되는, 하여간 정치인들의 넉살이란.

“우리 민주진보세력”

그 잠룡과의 만남에서 의아함을 느낀 건 ‘민주진보세력’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는 대화에서 수시로 “우리 민주진보세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언제부터 민주당이 민주진보세력이 된 걸까? 민주는 그들의 슬로건이니 그렇다 치고, 과연 언제부터 그들은 ‘진보’마저 된 걸까? 

내 기억으로 언론이 한국의 정당 구조를 보수-진보로 양분하기 시작한 것은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그전에는 여당-야당, 혹은 신한국당, 민주당, 평민당, 자민련 하는 식으로 그저 당명(黨名)으로 말했지, 제도권 정당 가운데 어떤 정당을 오롯한 보수정당, 또 어떤 정당은 특별히 진보정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내에도 보수-진보가 섞여 있어 당내 보수파, 당내 개혁파 혹은 소장파라고 불렀으며, 보수-진보는 대체로 그런 의미로 사용됐다. 몇 개 정당을 묶어 보수진영, 진보진영이라고 통칭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색깔론을 의식한 탓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 우파’라고 유난히 강조했다. 김대중이 만든 정당들도 항상 ‘중도 정당’을 표방했지 한 번도 스스로 진보세력이라고 하지 않았다. 정당 내부 이념 지형이 특정 방향으로 쏠리고, 외부에 그렇게 인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때는 2003~2004년경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하고,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이른바 ‘탄돌이’라고 불린 운동권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해 보혁(保革) 갈등이 촉발할 때, 열린우리당이 스스로 ‘진보’ 범주 안에 차별적 포지셔닝을 한 것이 출발점 아닐까 싶다. 국민의 정치 성향도 보수-진보로 나누어, 여론조사를 할 때 “당신은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합니까, 진보라고 생각합니까” 묻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에도 그런 식의 여론조사가 있었나. 과문한 탓이지만 없던 것 같다. 

그것부터 다시 살펴보자. 정치 지형을 보수-진보로 나누는 일은 과연 타당한가. 진보를 영어로 옮기면 당연히 Progressive일 텐데, 세계 어디에도 정치 지형을 Conservative와 Progressive로 양분하는 나라는 없다. Progressive는 사실 정치용어로 잘 쓰이지도 않는다. 보수에 대척하는 용어로는 대체로 Liberal을 사용한다. 리버럴의 뜻을 온전히 살려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그리 수월치 않고, 물론 리버럴에 ‘진보적’이라는 뜻도 들어 있지만, 한국의 이른바 진보세력을 과연 ‘리버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 어떤 리버럴이 5·18왜곡처벌법 같은 해괴한 법을 만들려 하며, 세상에 어떤 민주나 진보가 당원 26%가 참여한 온라인 투표를 “압도적 찬성” “전폭적 지지”라며 당헌까지 뜯어고쳐 자신들의 성추행 파문으로 실시되는 보궐선거에 기어이 후보를 내려고 할까? 



각설하고, 한국의 진보는 과연 뭐가 진보인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한국적 진보’다. 말이 진보지 대체 무엇을 지향하는 진보인지 알 수 없고, 그저 “우리는 진보”라고 용어를 선점해 버린 꼴이다.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진보를 자처하고 있으니 용어의 횡령이라고 말할 수 있고, 용어의 약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보이는 모양으로는 “썩어빠진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고 우리가 새로운 사회의 주류(主流)가 되겠다”는, 이른바 주류 교체가 그들이 말하는 진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러한 논리라면 탈레반도 진보고 박정희는 혁명한 것이 된다.

야매(野昧) 근본주의 아수라 싸움판

진보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용어를 먼저 ‘찜’해 버렸는데 어쩌겠나. 문제는 이른바 ‘보수’라고 불리게 된 세력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낙인찍혔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쳐야 하는데 오히려 보수라고 불리지 못해 안달이다. 무슨 이런 황당한 사람들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다. 

용어 자체의 호감도로 볼 때 보수는 출발부터 불리하다. 세상 어떤 사람이 “나는야 보수”라고 자랑하고 싶을까? (요즘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다. 세상은 그들을 ‘꼰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되도록 개혁적이고 진취적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 일부러 완고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려 애쓰는 사람은 없다. 국민 가운데 30%가량이 아직도 자신의 이념 성향을 보수라고 밝히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정치용어로서 보수-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관점과 태도’로서 보수-진보를 묻는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진보적이고 싶어 한다는 말이고, 이것이 정치 프레임으로 옮겨와 보수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보수-진보는 되도록이면 벗어나야 하는 프레임이다. 출발부터 공정하지 못하니까. 이른바 진보가 용어를 횡령해 스스로 진보라고 떠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보수는 그럴수록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정치 서적으로는 이제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책인데, 이 책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코끼리(공화당의 상징)는 생각하지도 말라는 충고다. 미국 민주당이 선거에 지는 이유를 분석해 보니 공화당이 짜놓은 프레임에 자꾸 휘말려 그들 주장에 논박하는 일만 계속하다 유권자에게는 공화당의 들러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기 주도 프레임을 만들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지금 한국의 이른바 보수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 아닐까. 언론이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수와 진보로 양분하려 할수록 “요즘 세상에 보수가 어디 있고 진보가 어디 있느냐”며 그것을 낡은 이분법으로 만들어버려야 하는데, 이 바보들은 “내가 바로 진성(眞性) 보수”라며 그 프레임 안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 아찔한 일이다. 

한국의 제도권 주류 정당이 스스로 보수정당이라고 포지셔닝하기 시작한 것도 극히 최근 일이다. 생각해 보자.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의 정당이 언제 보수정당을 자처한 적 있던가? 오히려 개혁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달이었다. 이른바 ‘안정 속의 개혁’을 내세우면서, 야당이 강점으로 자랑하는 것을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것을 당연한 전략으로 삼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 발언을 보자. “현대 정당은 사회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가 함께 있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따라서 근본주의자들로만 뭉친 당은 수권정당이 되기 어렵다.” 누가 한 말일까? 2001년 5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한 말이다. 그는 당시 “건전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어우러진 정당, 즉 보수의 기조 위에서 개혁을 지향하는 이른바 개혁적 보수정당”을 한나라당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참고로 이 발언도 보자. “우리 당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두 날개를 갖고 중산층과 서민에 역점을 두는 국민정당이다.” 여기서 ‘우리 당’은 어떤 당일까? 이 말은 또 누가 했을까? 2001년 8월 박상천 민주당 최고위원이 한 말이다. 2001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제도권 정당들은 이렇게 ‘멀쩡’했다. ‘국민정당’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당치도 않은 이념을 앞세우며 ‘민주진보’니 ‘애국보수’니 하면서 편향성이 두드러졌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목소리 크고 활동력 왕성한 소수가 시민의 이름을 가장해 정당을 뒤흔들며 사회를 ‘양극화’하는, 정치적 분단국가가 돼버렸다.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근본도 모르면서 근본을 떠드는 야매(野昧) 근본주의자들의 아수라 싸움판이 펼쳐지고 있다. 

용어가 약탈당했다. 민주는 오용된 지 오래고, 진보는 계산기를 두드려 어용이 됐으며, 보수는 이상하게 감염됐다. 

운동권 출신 민주당 정치인의 다수를 점유하는 NL(민족해방)계열은 원래 ‘진보정당’ 전술을 즐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NL의 세계관은 “대한민국은 미제(美帝)의 완전한 식민지”라는 불멸의 관점에 입각해 있는데, 미제가 제도권에 진보정당을 허용하는 일은 환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지하 전위당(前衛黨) 전술을 기본으로 했다. 그것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 당선이었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기둥이 흔들렸는데, 김대중 집권 초기만 해도 “군복쟁이든 사복쟁이든 대한민국 대통령은 미제 앞잡이”라던 그들은, 김대중이 ‘수령님’을 만나면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노무현 정부 들어 대대적 제도권 진입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일어났다. 


민주 보류하고 적(敵)부터 쳐내는 ‘독재’

2019년 1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촉구 촛불문화제’(왼쪽). 2019년 12월 14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뉴스1]

2019년 1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촉구 촛불문화제’(왼쪽). 2019년 12월 14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뉴스1]

사실 NL은 ‘민주’도 그리 달갑게 생각지 않았다. NL은 혁명의 3대 과제를 자주·민주·통일이라고 정리하고(줄여서 자민통), 그것을 이름으로 내건 NL계열 지하조직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자민통’마저 개량(改良)이라고 했다. (이념 운동권에서 ‘개량’은 더러 변절자보다 심각한 내부의 적으로 취급된다.) 어찌 감히 자-민-통을 동일선상에 놓느냐는 것이다. “자주 없이 민주 없고, 자주 없이 통일 없다. 오로지 반미자주!” 이것이 정통(!) 주사파다운 입장이다. 게다가 학생운동 내부가 군대 조직처럼 상명하복 위주였고, 북한의 인권탄압이나 수령독재를 변명하자니 NL은 민주주의를 후순위채권처럼 여겼다. 필요할 때 갖다 쓰는 도구 같은 존재였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우리가 인민에게 호의를 베풀 듯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민주라고 내심 가늠했다. 사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그런 이치 아닌가. 민주는 보류하고 적(敵)부터 쳐내는 것이 우선이며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중국 문호 루쉰의 에세이 제목)고 이를 악무는 태도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 이른바 ‘착한 독재’다. 지금 이른바 ‘대깨문’들도 그런 정신으로 싸우는 것 아닐까 싶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진보’라는 용어의 원래 점유권(?)을 갖고 있는 운동권 PD(민중민주)계열이다. 1987년 백기완을 이른바 민중 후보로 추대하려 한 때로부터,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을 만들어 진보정당의 가시밭길을 헤쳐 가던 때로부터, NL에 밀려나 제도 정치권에 먼저 진입해 ‘진보’라는 용어를 들여오려 무던히도 애쓴 세력은 바로 그들이었다. 다른 누군가 진보를 참칭하면 분연히 들고일어나 선명한 ‘진보 각(角)’을 세워야 하는 것이 진보정당 본연의 모습일 텐데, 지난 몇 년간 정의당은 말 그대로 2중대가 돼버렸다. 이제는 천하가 아는 일이 됐지만 가당찮은 이른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그로 인해 얻게 될 국회의원 배지 몇 개에 눈이 멀어 그랬던 것 아닌가. 

대한민국에 진보정당은 사라졌다. 권력형 부정비리가 눈앞에 무수히 보이고, 청와대와 결탁한 사기꾼들의 협잡으로 수조 원이 공중에 사라졌으며, 개혁을 빙자한 탈선과 망동, 권력장악 음모가 착착 계속되고 있는데 자칭 진보정당은 민주의 횡령자들과 한패가 돼 있다. 이 범죄는 착한 범죄, 저 범죄는 나쁜 범죄인가. 대한민국에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도 사라졌다. 꼼수와 위선, 거짓과 변명으로 점철된 세력을 ‘얕은 허물’이라고 감싸주면 곧장 ‘깨어 있는 지식인’이 되는 그런 수월한 세상이 됐다. 덧붙이자면 방송이 이렇게 어용인 시절이 언제 또 있었던가 싶다. 그리하여 먹고살기는 한참 편해졌으니, 어느 쪽이 이길지 약삭빠르게 판단하며 그쪽에 가서 넙죽 달라붙으면 되는 것이다. 이 편한 민주진보 세상!

세상에 이토록 경박한 ‘보수’도 있는가

자, 그래서 정명(正名) 운동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민주를 파렴치라 부르고 진보는 사쿠라라 부르면 되는 것일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 소개하는 것처럼, 정치는 역설적으로 ‘국민은 정치에 관심 없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민주니 진보니 수구니 보수니 하는 것에 관심 있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셜미디어에 글줄깨나 쓰는 사람들은 그런 논쟁에 대단한 가치와 의미를 두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민초들에게는 한낱 한가로운 식자들의 외계어일 뿐이다. 모든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고 결국 ‘밥그릇 싸움’이란 사실은 현명한 국민이 더 잘 안다. 

국민은 실속 없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검찰개혁인지 검찰장악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더라도, 싸움이 길어지고 뒤엉켜 속칭 ‘개싸움’이 돼버리면 국민은 양쪽 모두에 화를 낸다. ‘누가 이기든 빨리 끝내라’는 식으로 넌더리를 친다. 지금 딱 그렇게 굴러가고 있지 않은가. 민주당 사람들은 그런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고, 모든 것을 개싸움으로 만드는 중이다. “악랄하게 전진하자”(과거 노사모가 내세웠던 구호)는 예전 그들의 다짐대로 말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무관심의 광야에서 새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시선은 다시 이른바 ‘보수’로 돌아온다. 민주와 진보가 구제 불능이라면 보수라도 제 역할을 해주면 된다. 어떤 측면에서 ‘보수’라는 용어가 그리 나쁜 위치 선정은 아니다. 외부에서 “저 사람들은 보수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보수가 ‘개혁’할 때 그렇다. 당신들이 보수라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안다. 그런데 “어라, 보수라더니 개혁도 하네?”라는 식으로 이른바 ‘개혁보수’로 거듭날 때, 그런 때에 보수의 가치는 배가된다. 민초는 희망을 갖는다. 

하나 작금 한국의 보수는 단단히 감염됐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시점에 자꾸 “코끼리처럼 되지 못해” 안달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싸움에 집착하는 태도. 자꾸 “싸우는 야당이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세상에 그리 경박한 보수도 있는가. 연신 장외 투쟁을 외치고, 민주당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려 든다. 그래야 존재감이 산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국민 다수는 그런 정치에 신물이 나 있다는 사실을 이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이들이 깨닫지 못한 사실이 또 하나 있는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아무리 높다 한들 국민들은 아직 ‘이명박근혜’ 시절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차라리 박근혜가 나았다” 말하는 사람마저 생겨나고 있지만 그들이 미처 다수는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가 국민의 모든 사고 판단을 장악한 시절이다. 전술의 기본은 피아(彼我) 역학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로 시작한다. 

보수는 자기들이 소수이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며 주류에서 이미 배제됐다는 사실을 여전히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차마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하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곧장 치른 대선에도 자기들 후보를 냈을 정도니 이들의 판단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한숨이 나오는 일이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지났고, 지난 총선 민심을 통해 ‘확인 사살’까지 당하고도 ‘애국보수’를 외치고 있으니…. 갈수록 참담한 일이다.

조지 오웰이 ‘1984’에 예견한 신어(新語)의 새 시대

한국인의 이념 성향을 분석한 2004년 어느 여론조사에 눈여겨볼 점이 있다. 한국인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느냐 하는 것인데, 결론인즉 ‘약자에 대한 배려’가 진보적 가치관, ‘국가안보 중시’는 보수적 가치관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15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러한 판단 기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대체로 평균적 한국인은 보수-진보를 그렇게 가늠한다. 

알다시피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 가치관이다. 안보를 중시한다고 약자를 외면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한다고 안보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느 곳에 더 방점을 찍느냐 하는 것에 달렸을 뿐. 그래서 현대사회의 정당은 기본적으로 대중정당,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포괄하려 말이다. 원래 진보는 이념으로 살아가고 보수는 융통성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진보는 이념 정당이어도 보수는 실용 정당이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보수가 집권할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 돼버렸다. 신기하게도, 보수는 융통성을 잃어가고 진보는 이익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용어를 약탈하고 급기야 독점하려는 자들의 지독한 세상이다. 조지 오웰이 ‘1984’에 예견한 신어(新語)의 새 시대가 찬연히 펼쳐지고 있다.



신동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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