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방역강국 한국, 코로나 백신 개발 뒤처진 속사정

[코로나 백신 팩트체크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11-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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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백신 개발, 미국‧중국‧유럽 각축전

    • 3상 진행 후보물질 11개, 한국 제약사 참여는 全無

    • 감염병 관련 논문 수 중국 세계 3위, 한국 16위

    • 바이러스 취급 가능 연구시설, 민간엔 2개뿐

    • 감염병 예방치료 R&D 예산, 2020년 처음 편성

    언제, 어떤 제약사 백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것인가. 연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많은 이가 궁금해 하는 주제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등은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 초읽기에 들어갔다. 중국, 러시아, 벨기에, 인도 등에도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백신 후보물질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1월 12일 현재 3상 후보물질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는 중국(4개)이다. 미국이 3개로 뒤를 잇고, 영국 러시아 벨기에 인도가 각각 1개씩 3상을 진행한다. 총 11개 후보물질 가운데 한국 제약사 또는 연구기관이 개발에 참여한 물질은 하나도 없다. 한국은 제넥신과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각각 1상을 진행하는 게 전부다. 

    방역과 진단에서 세계 정상급 실력을 자랑하는 한국이 백신 개발에서는 왜 이렇게 뒤처진 걸까. 우리 기술로 백신을 개발하지 못하고 수입만 기다리는 처지가 된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기초연구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감염병 관련 논문 수 중국 세계 3위, 한국 16위

    11월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했다. 이로써 한국이 임상시험에 돌입한 백신 후보물질은 2개가 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11월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했다. 이로써 한국이 임상시험에 돌입한 백신 후보물질은 2개가 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강희종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감염병을 주제로 한 논문 수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연구 역량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세계 20위권에 턱걸이를 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강 책임연구원은 세계 최대 학술 데이터베이스 스코퍼스 등을 활용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발표된 국가별 논문 수를 집계했다. 세계 1위는 9만3914편을 발표한 미국으로 확인됐다. 이어 영국(2만9902편), 중국(2만2321편), 프랑스(2만1633편), 독일(1만5626편), 인도(1만5456편) 등이 뒤를 이었다. 모두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나라들이다. 해당 기간 한국이 발표한 감염병 관련 논문은 7677편으로 세계 16위에 그쳤다. 

    논문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인 ‘상대적 피인용지수’를 봐도 한국의 감염병 연구 역량은 세계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논문 수 상위 20개국 가운데 상대적 피인용지수 1등 국가는 스위스(2.04)로 나타났다. 벨기에(1.82). 영국(1.68), 네덜란드(1.65) 독일(1.63) 등도 전체 평균(1.0)을 훌쩍 뛰어넘는 논문 피인용지수를 보였다. 우리나라는 0.87로 미국(1.52)은 물론 중국(1.05)에도 뒤지는 수준이었다. 강희종 책임연구원은 “최근 한국에서 중국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보이는데 관련 통계를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며 “중국은 오랜 시간 관련 분야를 성장시켜왔고, 지금은 논문 양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한국보다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감염병 분야 상위 10%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으로 범위를 좁혀 봐도 중국의 성장이 쉽게 확인된다. 1996년 한 해 동안 중국이 해당 그룹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은 6편에 불과했다. 2018년에는 그 수가 1664편으로 277배 이상 늘었다. 2000년(22편), 2005년(120편), 2010년(469편), 2015년(1047편) 등 5년 단위 추이를 보면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관련 분야 연구역량이 급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1996년 당시엔 13편으로 중국에 다소 앞섰으나 2018년 기준 32편으로 10년 넘게 사실상 ‘제자리걸음’ 상태다. 같은 기간 감염병 연구 1위 국가 미국의 논문 수가 2000편에서 7160편으로 약 3.6배 증가한 것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진다.


    감염병 연구 한국 1위 서울대, 세계 73위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하는 백신 후보물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하는 백신 후보물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개별 대학, 연구소 상황을 봐도 우리나라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앞서가는 국가들에 못 미친다. 강희종 책임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09년부터 2018년 사이에 감염병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대학은 서울대(1250편)다. 논문 수 면에서 국내 2위 연세대(750편)를 큰 차로 따돌리는 압도적 1위지만, 세계 순위는 73위에 불과하다. 1위 미국 하버드대(6179편), 2위 미국 존스홉킨스대(5735편) 등은 물론 64위 중국 푸단대(1365편)에도 뒤진다. 한국 대학 가운데 감염병 논문 편수 세계 150위 안에 든 대학은 서울대(73위), 연세대(149위) 등 2개인 반면 중국은 5개 대학이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공공연구기관 가운데 2009년부터 2018년 사이에 감염병 관련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곳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9880편)였다. 최근 코로나19 대응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는 기관이다. 이외에도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연구기관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중국의 경우 세계 8위를 기록한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1974편)를 비롯해 7개 공공기관이 세계 50위 안에 포진했다. 우리나라 연구기관은 논문 615편을 발표한 국립보건연구원(37위)이 유일하다. 국립보건연구원 논문의 상대적 피인용지수는 0.72로 평균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1.32)보다 크게 낮았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국내 연구진이 해외 유력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도 많지 않다. 4월 김우주 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교수팀이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한국 코로나19 무증상 징후의 과제들’이라는 논문을 실었고, 5월에는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 등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셀(Cell)에 게재했다. 손에 꼽히는 성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 주요 학술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코로나19 관련 논문을 싣는 상황에서 한국 과학자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초분야 과학자는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바이러스 관련 기초연구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배양처럼 병원체를 직접 취급하는 실험을 하려면 연구자 안전 보장 설비를 갖춘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Biosafety Level 3, BL3)’이 필요하다. 국내에는 관련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평소 마음 놓고 관련 연구를 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얘기다. 

    보건복지부가 5월 20일 집계한 자료를 보면 국내 BL3 허가 시설은 전국에 73개가 전부다. 공공기관(54개)과 교육기관(11개) 의료기관(6개)을 제외하면 민간이 가진 시설은 2개 뿐이다. 제약사나 바이오기업이 코로나19 병원체 관련 연구를 주도하기 힘든 셈이다. 올 봄 정부의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지원단’이 국내 제약사를 대상으로 요청 사항을 조사했을 때도 “후보물질의 유효성 평가 시설을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현재 공공기관 내 BL3 등을 중심으로 전국 31개 BL3을 확보해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추진하는 연구그룹에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성과를 기대하는 사업으로, 기초연구 환경 개선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염병 예방치료 R&D 예산, 2020년 처음 편성

     영국 옥스퍼드대와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하는 백신 후보물질. 아스트라제네카는 11월 23일 이 물질이 최대 90% 이상의 코로나19 예방 효과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뉴시스]

    영국 옥스퍼드대와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하는 백신 후보물질. 아스트라제네카는 11월 23일 이 물질이 최대 90% 이상의 코로나19 예방 효과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뉴시스]

    여러 면에서 현재 한국은 코로나19 백신을 선도적으로 개발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글로벌 제약사와 연구소가 만든 백신을 확보해 안전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다. 동시에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감염병 연구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일각에서는 메르스 충격 이후 한국 방역 역량이 급성장했듯, 코로나19가 국내 바이러스 연구 수준을 한 단계 성장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공공재정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신종감염병 관련 예산은 2015년 688억여 원에서 2016년 1608억여 원으로 약 134% 증가했다. 2020년에는 1943억여 원으로 더욱 늘었다.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약 23%로, 같은 기간 보건지출 증가율(약 5%)의 4배를 상회한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5년 간 이어진 집중 투자가 현재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한국 코로나19 방역 성공의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얘기다.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우리에게 의료와 방역은 별개라는 교훈을 줬다. 삼성의료원 등 국내 최고 수준 병원에서 메르스 전염이 확대된 것을 계기로,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술 발전과 별개로 방역시스템 구축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 결과 2016년부터 관련 예산이 크게 늘었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2015년 54억7800만원에 불과했던 검역관리 예산은 이듬해 123억27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현재의 철통 경계와 치밀한 환자 추적 시스템 등은 그 결과로 마련됐다. 단, 감염병 관련 예산이 위기 대응 쪽에 쏠리면서 예방치료를 위한 기술개발사업(R&D)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게 현실이다. 관련 예산은 2020년 사상 처음으로 437억5000만원 배정됐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2020년 예산은 2019년 결정되는 만큼,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기 전 우리 정부가 감염병 예방치료를 위한 연구 예산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메르스 이후 방역기초를 다진 뒤 기초연구 강화로 방향을 잡은 셈인데, 바로 코로나19가 닥쳤다. 관련 준비를 충분히 못한 상태에서 연구개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듯하다”고 밝혔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인플루엔자 백신 등 전통적인 백신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화이자와 모더나 등이 주도하고 있는 mRNA 백신 등 첨단 백신 연구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 삼아 관련 분야 육성 계획을 세우고 연구개발 투자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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