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코로나19 공기전파 인정
자연환기 안 되는 공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 빈발
독일 실내 공연장 코로나19 전파 실험이 보여준 희망
시간당 12번 환기하면 공기 중 비말 88% 감소
8월 2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실내 공연장의 코로나19 감염 위험 측정’ 목적으로 열린 콘서트 현장. 관객들이 방역용 마스크를 쓰고 가수 팀 벤츠코의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GettyImages]
공기 통해 퍼져나가는 코로나19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충남 천안시 한 콜센터 건물 입구가 11월 5일 굳게 닫혀 있다. [뉴스1]
문제는 코로나19 공기전파를 보여주는 증거가 속속 나타났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올 봄부터 대형 콜센터와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이어졌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최대 수백 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1~2m 이내에서 밀접 접촉했거나 서로의 비말에 노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때부터 전문가들은 공기순환이 잘 안 되는 공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할 경우 코로나19가 공기를 타고 전파될 수 있는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7월 5일 세계 32개국 과학자 239명이 WHO에 코로나19 공기감염 가능성을 인정하라는 공개서한도 보냈다. 과학자들은 건조한 환경에서 바이러스를 포함한 비말 내 수분이 증발하면 무게가 가벼워져 공기 중을 떠다니며 추가 감염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WHO는 “폐쇄적이며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아주 특정한 환경에서 코로나19 공기전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후에도 ‘코로나19 접촉전파’만을 인정하던 CDC까지 의견을 바꾼 건 10월 초다. CDC는 10월 5일 홈페이지에 코로나19 확산 양상에 대한 글을 올리며 “코로나19가 공기를 매개로 전파될 수 있다”고 처음 확인했다. “환기가 잘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코로나19 병원체가 최대 몇 시간 동안 떠다니며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게 CDC 설명이다.
밀폐·밀집·밀접 환경서 집단감염 연속 발생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서울 강동구 한 콜센터 건물. 방역당국은 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을 집단감염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뉴스1]
문제는 국내에 ‘수시 환기’가 불가능한 환경에 있는 다중이용시설이 적잖다는 점이다. 창 없는 사무실이나 지하 공간에 있는 헬스장, 노래방처럼 자연환기가 어려운 곳 상당수가 현재 환기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바로 이런 장소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꾸준히 이어진다. 11월 5일 기준 코로나19 환자 21명이 확인된 충남 천안 콜센터의 경우 창문이 거의 열리지 않다시피 하는 고층건물에 있다. 역시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십 명 발생한 서울 강남구와 구로구 헬스장 위치는 모두 지하 1층이다. 이곳에서 상당수 이용자가 마스크를 벗은 채 운동하는 등 방역수칙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우주 교수는 “환기가 잘 안 되는 밀폐된 장소에 비말이 퍼지면 코로나19 전파가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며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간당 12번 환기하면 공기 중 비말 88% 감소
8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고 있다. [뉴스1]
한국에서도 실내 공기를 시간당 12회 환기하면 공기 중 비말의 88%를 제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과 환기전문업체 힘펠이 중·고등학교 교실 정도 크기의 공간(181㎥)에서 환기 풍량에 따른 비말 제거율 등을 확인해 발표한 내용이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 당 5회 환기를 했을 때는 공기 중 비말이 6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에서는 마스크 착용과 적절한 환기 등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면 많은 사람이 실내에 모이는 경우에도 코로나19 전파 위험이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테판 모리츠 박사 등 독일 할레의과대학 연구팀이 10월 30일 의학논문 사전 출판 플랫폼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공개한 논문 내용이다.
연구진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다중이 모이는 실내 행사를 개최해도 될지 확인할 목적으로 8월 2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실내 콘서트를 열었다. 독일 인기 가수 팀 벤츠코(Tim Bendzko)가 무대에 서고, 실험 참여를 자원한 시민 1212명이 관객석에 앉았다. 연구진은 세 차례에 걸쳐 공연장 출입구 개수와 좌석 배치, 환기시설 운영 시스템 등을 변화시키며 감염병 확산 위험을 비교·분석했다. 이 논문의 결론은 “관객이 모두 정해진 좌석에 앉은 채 공연을 관람하고,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등의 수칙을 잘 지키며, 환기 시스템을 적절히 가동하면 코로나19 전파 위험이 크지 않다”이다.
방역수칙 지키면 대형 공연도 가능
8월 2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실내 공연장의 코로나19 감염 위험 측정’ 목적으로 열린 콘서트 참가 관객들에게 지급된 접촉 기록 장치. 다른 사람이 반경 1.5m 이내에 접근하면 ‘접촉’ 내역이 저장된다. [GettyImages]
독일 연구진은 이번 실험에서 첨단 전산 유체 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 시스템을 활용해 코로나19 공기전파 가능성도 시뮬레이션했다. 분석 결과 최신 환기시스템을 작동해 실내 공기를 순환시킬 경우, 첫 번째 실험 환경의 공연장에 코로나19 환자가 참석해도 그가 뿜은 에어로졸에 노출되는 관객 수가 최대 10명에 그쳤다. 환기시스템 가동을 멈추면 그 수가 108명으로 치솟았다. 적절한 환기의 중요성이 확인된 셈이다.
“팬데믹 상황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독일의 이 연구는 작센안할트 주정부 등이 99만 유로(약 13억 원)를 지원해 이뤄졌다. 프로젝트 공식 명칭은 ‘RESTART-19’로, ‘실내 스포츠 및 공연 행사에서 코로나19 전파 위험 예측(Risk prEdiction of indoor SporTs And cultuRe events for the Transmission of COVID-19)’이라는 연구 제목의 주요 글자를 따 붙인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단어로 보면 ‘다시 시작(restart)’이라는 의미가 표현된다. 연구책임자 모리츠 박사는 “이번 실험을 통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대형 실내행사를 열 수 있다는 게 확인됐다”며 그 전제 조건으로 △행사장 수용 규모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것 △좌석 없는 스탠딩 공연은 피할 것 △입장 대기 중 접촉을 줄이도록 출입구를 최대한 많이 만들 것 △음식물은 반드시 좌석에서만 섭취하게 할 것 △참석자 전원이 마스크를 쓸 것 △적절한 환기 시스템을 마련할 것 등을 제시했다.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방역과 일상의 조화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 연구를 통해 코로나19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