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깨져서는 안 될 경쟁의 규칙
지역인재 할당제 공정 경쟁 망친다
특권보다 경쟁이 지역 살린다
정부 비정규직 문제 천착하다 공정 놓쳐
계속 기성세대 기득권만 챙기다 보면 공정 무너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홍중식 기자]
어려운 취업 탓에 고통받는 취업준비생의 일갈인 듯 보이지만 아니다. 1968년생. 올해 52세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다.
86세대에 속한 하 의원은 청년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가 청년의 대변인으로 알려진 계기는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 사태다. 인국공이 비정규직 21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당시 “청년들의 소박한 바람은 기존 정규직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되는 것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공정한 경쟁을 통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다. 지금의 청년층이 원하는 공정이 ‘규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 의원은 “굳이 취업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젊은 세대는 경쟁에 익숙하고 이를 즐긴다. 이들이 공정이 깨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경쟁의 규칙이 깨졌을 때다. 편법이나 특권을 통해 승자 선발에 예외가 생기는 일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지역인재 할당제 그 자체로 공정 해쳐
하태경 의원이 11월 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공기관 지역인재 할당제 비율을 30%에서 50%로 늘리자고 발언한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캡처]
11월 1일 하 의원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설전을 벌였다. 이 대표가 “지역인재 할당제로 공공기관 채용 50%를 채울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같은 날 하 의원은 페이스북에 ‘공정은 쓰레기통에 내버렸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 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지역인재 할당제로 공공기관 채용 인원의 50%를 채우는 일에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50%가 문제가 아니다. 지역인재 할당제 자체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고 본다. 지역인재 할당제는 그 비율을 천천히 줄여 최종적으로는 없애야 할 제도라고 본다. 지역인재 할당제를 현 정부가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당초 정부는 취업 시장 공정 경쟁 확립을 위해 출신 학교, 지역 등을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역인재 할당제는 지역 대학 출신을 우대한다는 내용이다. 공정 경쟁 확립과는 정반대의 정책이다.”
공정 경쟁이 지역 경쟁력
-지역인재 할당제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제도다. 없애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없나.“지역인재 할당제를 통해서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줄일 수 없다. 그로 인해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벌어질 위험이 크다. 지방자치단체든 국가든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인재다. 지방이 좋은 인재를 많이 유치해야 지역 균형 발전에 가까워진다. 지방에 있는 공기업의 채용은 좋은 인재를 지방에 오게 할 기회다. 이 기회의 일부를 지방대학 출신에게 할당해 준다는 이유로 제약을 둔다면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수도권 공공기관은 블라인드 채용 등 공정 경쟁을 통해 좋은 인재로 채울 수 있지만, 지방 공공기관은 할당제 때문에 경쟁을 통해 뽑는 인원에 제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태경 의원의 지역구는 부산 해운대구갑이다. 부산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 기술보증기금 등 23개의 공공기관 및 공기업이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해당 공공기관도 지역인재 할당제를 폐지해야 한다.
-지역에 좋은 인재를 유치할 대안은 있나.
“지방 국립대에 한해 무상 등록금 제도를 운영하면 된다. 무상 등록금은 지방대 경쟁력을 높일 방안이다. 굳이 높은 등록금을 내고 서울 소재 사립대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우수한 학생들은 지방 국립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이 는다는 것은 지방에 새로운 젊은 인구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인구 유입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단번에 무상 등록금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방 국립대 등록금과 지역인재 할당제를 동시에 줄여가면 된다. 등록금 인하로 좋은 학생들이 모이고 나아가 지역에 젊은 인구가 늘어난다면 지역인재 할당제가 필요 없다는 인식이 커질 것이라고 본다.”
-지역구가 있는 부산에서도 지역인재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11월 1일 지역인재 할당제에 반대한다고 발표했을 때 대안인 지방 국립대 무상 등록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안을 내놓았으니 논의를 해가면 된다.”
-부산시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부산시장 선거 출마 계획은 있나.
“전혀 없다. 보수 전체의 변화와 국민의힘을 청년 정당으로 바꾸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시장이 된다면 청년보다는 부산시민을 대변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 사회의 약자가 돼버린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항상 뒷전인 청년 취업 문제
8월 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원들이 서울 종로구 서린동 광동교 인근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동아DB]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이 취업 시장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 관련 지표가 매해 최고치를 경신한다. 지금의 청년들은 100대 1,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입사원이 된다. 경쟁이 심한 만큼 규칙은 확실해야 한다. 하지만 이 규칙이 정부의 정책 때문에 깨지는 일이 종종 생긴다. 정부가 취업 과정의 공정을 다시 세우겠다며 가장 약한 사람인 청년을 핍박하는 격이다. 대표적 예가 인국공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건이다. 이렇게 취업 시장 진입에 경쟁이 아닌 예외가 생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돌아간다.”
-인국공은 정규직화로 신규 채용 인원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발상 자체가 문제다. 지금의 한국은 노동계급 사회다. 가장 상위에 정직원이 있고 중위에는 비정규직, 하위에는 무직자가 있다. 가장 먼저 도와야 할 층은 무직자가 많은 청년층이다. 이들이 빠르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급선무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시장 내부의 불평등에만 관심이 있다. 소득이 없는 청년층보다는 중위인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다. ‘노동시장’이라는 성벽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는 청년들은 자연스레 소외된다. 경쟁 없는 채용이 발생하니 공정의 가치도 무너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문제라는 지적인가.
“그렇다.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집착하다 보니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밀린다. 게다가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바꾸면 기업에는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결국 채용 규모를 줄이고 청년 실업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청년들도 이를 알고 있으니 인국공 사건에 더욱 분노한 것이다.”
-이외에도 현 정부의 정책 중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요소가 있나.
“너무 많아서 하나를 꼬집기가 어려울 정도다. ‘불공정 정권’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가장 큰 방해 요소를 꼽는다면.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돼 있다. 기존 인력이 나가야 기업이 신규 채용을 할 텐데 해고가 어려우니 회사가 저성과자를 내보낼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정년을 연장하려 든다. 물론 정년 연장에도 장점은 있다. 부양인구 증가세가 완화되니 일하는 세대의 부양 부담이 줄어든다. 다만 정년을 연장하려면 고연봉 장기 재직자의 임금을 줄이는 ‘임금 피크제’도 함께 도입해야 고용시장에 타격이 덜하다. 지금의 정부 방침에는 임금 피크제 도입이 빠져 있다.”
직장 가진 사람도 취준생과 경쟁해야
-어떤 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보나.“취업 문제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키워드로 해결해야 한다. 다만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쉬운 해고가 선행돼야 한다. 해고가 쉬워진다면 이미 직장을 가진 사람과 취업준비생이 경쟁을 벌일 수 있다. 취업준비생이 이미 취업한 사람보다 생산성이 좋다면 언제든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청년들도 해고가 쉬운 직장보다는 안정적 일자리를 원한다.
“취업이 어려우니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직장을 잃게 되면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다수의 청년이 첫 취업임에도 안정적이고 고수익의 직장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회안전망을 잘 구축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덴마크가 대표적인 예다. 해고가 쉬운 대신 실업수당이 높다. 해고를 당하더라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해고가 쉬운 만큼 기업의 채용 부담이 줄어든다. 그만큼 사람을 자주 뽑을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얻을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절대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취업 시장을 활성화하면 창업에 나서는 청년도 늘어난다. 창업해서 실패하더라도 언제나 취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창업이 늘면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날 확률이 높다. 공정 경쟁과 사회 안전망을 전제한 쉬운 해고는 이처럼 고용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덴마크 등 주요국의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국제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는 “덴마크의 해고보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에서도 낮은 수준이지만 고용불안도 낮은 수준이다. 이는 소득대체율이 70%에 달하는 실업수당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쉬운 해고를 막는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인가.
“일부 기성세대다. 이들이 기득권을 놓으려고 하질 않는다. 일부 노조는 정년 연장과 임금 인상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청년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기가 어렵다면 급여라도 일부 줄여야 할 텐데 둘 다 놓으려 하질 않는다. 기업이 쉽사리 신규 채용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할 테지만 관련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기성세대 특권 늘리면 청년은 손해
민주유공자 예우법을 대표 발의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TF 정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동아DB]
“그렇다. 민주유공자라는 표현도 이상하다. 19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모든 국민이 민주화 유공자다. 가두시위에 단 한 번도 참여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마음속으로는 민주화 세력을 지지했다. 국민의 열망이 민주화를 이룬 것이지 특정인의 희생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운동권 86세대는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당연히 특권을 받아야 한다는 듯이 법안을 발의했다. 젊은 시절 특권층을 없애자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자신들이 특권 세력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청년층에는 이 특권이 어떤 불이익을 주나.
“공정 경쟁을 방해한다. 논란이 된 대입 전형 외에도 민주유공자 자녀에게 학비, 취업 혜택을 준다는 것이 법의 내용이다. 특권이나 예외가 많아지면 그만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이 줄어든다. 이 법을 발의한 것 자체가 여권이 청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단초다. 아무도 실업 등 청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기득권을 유지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다. 하지만 국방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 어떻게 청년층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군 입대 문제를 다루며 지금 청년이 처한 환경이 내가 젊은 시절 처한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20대이던 시절에는 군 복무 이후 취업 걱정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보다 일자리가 많던 시절이다. 2010년대 이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학 4년을 오롯이 취업 준비에만 바쳐도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데 군에서 2년을 보내야 한다. 그만큼 지금 청년이 과거 청년에 비해 군 복무로 받는 손해가 큰 셈이다. 이 문제를 보며 청년문제 전반을 생각하게 됐다.”
진정성 있는 정책 있어야 청년 마음 돌릴 수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군복무 기간 단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나.“그렇다. 국방위원회 위원 차원에서도 군복무 기간이 줄어야 한다고 본다. 현대전에서 백병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무기가 현대화돼 훈련으로 한 명의 병사를 키워내는 시간이 짧아졌다. 그만큼 군복무 기간을 줄여야 한다.”
-공정 경쟁, 청년 취업 문제에 줄곧 목소리를 내왔다. 그럼에도 2030세대 중 국민의힘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은 적다. 11월 13일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대 국민의힘 지지율은 4%, 30대는 14%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20대 38%, 30대 42%다.
“청년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국민의힘이 청년 정당이라는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당의 중요 역점 사업으로 두고 현실적 성과를 내야 한다. 지금은 청년층 지지자를 확대하겠다는 목표는 있지만 확실한 정책이 없다.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과거 보수정당의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내가 당 대표가 된다면 청년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으로 세계를 잇다, 평화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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