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전야’ 따위의 운동권 묵시록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폐해
尹 해임 시도는 ‘혁명적 폭력’
레닌이 선거 부정 뒤 무력 썼을 때 논리
윤석열 검찰총장(가운데)이 12월 1일 서울행정법원의 ‘직무 복귀’ 결정이 나온 지 40여 분 만인 오후 5시 10분경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1층 현관으로 출근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프랑스 합리론과 독일 관념론의 자장
서양 근대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표준적 설명은 이렇다. 영미의 경험론과 영미식 민주주의가 있고 다른 한편에 프랑스의 합리론과 독일의 관념론 그리고 그에 기초한 민주주의론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학교 교과서에 그렇게 기술돼 있다. 당연히 1970년대 민주화 운동권이 직면했던 민주주의론도 여기서 출발한다.영국의 민주주의는 경험론에 기초하고 있다. 경험론은 지식의 원천으로 경험을 중시한다. 자연히 절대적 진리 혹은 존재가 있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주체가 애초부터 제한성을 갖는 존재라면 다수의 합의와 토론이 중요해진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에 있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존재다. 사회와 민주주의는 그런 인간들에 의해 구성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바람직한 모델과 그렇지 않은 모델로 서열화할 수 있다.
2020년 현재 시점에서 보면 영미의 경험론과 민주주의론이 적자(嫡子)다. 영미의 경험론은 19세기말 영국과 오스트리아로 파급됐고 그 뒤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미국의 경제학, 통계학, 컴퓨터 과학 등의 밑바탕에 영미의 경험론이 있다.
1970년대 시점에서 보면 독일과 프랑스의 인간론·민주주의론이 상당한 세를 확보하고 있었다. 한국은 사상을 수용하는 데 있어 미국보다는 독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70년대 지식층에서 칸트나 헤겔 같은 독일 관념론, 니체나 샤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허무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국내 철학과에 독일 관념론 전공자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70년대 운동권의 민주주의관 역시 주로 프랑스 합리론과 독일 관념론에서 파생된 관점과 태도에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문과(文科)에 한정한 이야기다. 1970년대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가 쓴 저작들이 이미 국내에 소개됐다. 한국 과학기술자들은 1980년대 초반 컴퓨터 혁명에 발맞춰 세계적인 IT(정보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1990년대가 되면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관련 저서 등이 기본 교양으로 읽혔다.
묵시록, 허세, 행동파
1984년 3월 1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열린 ‘학원자율화를 위한 공개토론회’. [동아DB]
직업 운동가가 되고 나서도 이정우의 발언이 잊히지 않았다. 40대가 되면서 나는 1970년대 운동권의 사상 지형이 어떻게 구성돼 있었기에 레닌주의가 대세처럼 수용됐는지 탐문하기 시작했다. 나 나름 공부도 하고 선배들로부터 조언도 구했으나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 아래 내용은 그나마 지금까지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첫째, 운동권의 사상은 치열한 토론의 산물이 아니었다. 1970년대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바탕은 서구 근대 민주주의였다. 거기에서 왜 마르크스와 레닌 심지어 주체사상으로 운동권의 사상이 뻗어나갔는지 합리적 설명이 있어야 한다. 학생 시절이나 그 이후에나 이에 대한 토론은 없었다. 1990년대가 되면 사상 지형에 대한 기본적 관심조차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유력한 정치 엘리트 거의 대부분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사상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을 거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어느 날 불현듯 레닌주의에 물들었다.
둘째, 1985년 운동권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정서와 감수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1980년대 유신체제 선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당시 운동권은 반독재 투쟁에 헌신하면서 한편으로는 판타지에 가까운 생각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반독재라는 상황에 압도돼 역사의 종말, 민생의 파탄, 혁명 전야와 같은 묵시록에 가까운 허구를 쏟아냈다.
본인의 역할을 과장하는 유교적 지식인관과 허세도 작용했다. 돌이켜보면 20대 초중반 대학생들의 생각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영미권 사상을 실용주의라고 가볍게 무시하고, 과학기술 지식은 기능적 지식으로 폄하했다. 그러고는 스스로 만사를 종합적이고 균형 있게 파악하는 지식인으로 간주했다.
여기에 레닌주의가 결합했다. 레닌주의의 지침은 단순명료했다. ‘당을 만들고 봉기를 통해 권력을 접수하라.’ ‘여기에 저항하는 자가 있다면 분쇄하라.’ 1900년대 초반 유럽 후진국을 모델로 한 모험적 정치이론은 20대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소양이 턱없이 부족한 행동파 청년들이 대량 출현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러시아
2011년 9월 14일 러시아 연방 부랴트 자치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중앙광장에 레닌 두상이 서 있다. [동아DB]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본문 서술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탐구는 모두 무시한 채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투쟁이 이어진다. 러시아와 중국, 베트남이 망라돼 있다. 책 전체가 겨냥한 것은 단연 1905~1917년의 러시아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겠다. 나는 이 책을 20대에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 뒤적인다. 변방의 혁명가와 사상에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왜 그렇게 탐닉했던 것일까. 불행히도 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단순화하자면 전근대 시대의 혈통에 의한 승계가 아니라 선거에 의한 권력 교체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폭력 혁명이나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행위 따위는 민주주의에서 제외된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위험한 까닭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넘어선 주장과 행동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구분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로 구분한다. 1980~1990년대 운동권이 썼던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두 단계로 구분하면 내용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모종의 정치적 행위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정당화된다. 레닌이 1917년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 사용한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오염된 민주주의
자 이제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를 살펴보자. 일단 징계위원회를 열어 윤 총장 해임을 시도하려는 듯한 정부의 태도가 이해가 되는가? 이해가 된다면 당신하고는 할 말이 없다. 윤 총장에 대한 공격과 해임은 단순히 독재 회귀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민주주의는 단순하다. 적법한 절차로 치러진 선거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사태를 뒤집지 못하는 것이다. 법률로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복잡하고 구차해도 그런 지루한 과정을 존중하고 따르는 게 민주주의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그런 게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마르크스-레닌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민주주의를 두 단계로 구분한 뒤 두 번째 단계에서 민주적 절차를 뛰어 넘는 행동을 정당화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이와 같다. 그들은 촛불-적폐청산에 이어 자신들의 재집권을 방해하는 윤석열 총장에 대해 일종의 ‘혁명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운동권에 있던 사람 다수는 ‘그게 무엇이 문제냐’고 천연덕스럽게 반문할지 모른다. 특히 운동권 물을 먹은 40대 상당수가 그렇다. 그들은 애초부터 민주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해 오염된 형태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레닌의 민주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