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제네시스, 한국에서 벤츠 BMW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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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11-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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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산차 실적 내리막에도 2배 이상 성장

    • G80은 전년대비 판매량 218% 늘어

    • 출시예정 GV70도 국내외에서 호평

    • 인기모델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 재합류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2009년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뉴 럭셔리’의 TV광고 문구다. 그랜저를 탈 정도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에 있다는 의미가 녹아들어 있다. 2020년에는 그랜저 대신 제네시스 G80으로 대답해야 할 듯싶다. 2020년 준대형급 고급 차량 중 제네시스 G80이 가장 많이 팔린 까닭이다. 국산차 중에는 물론이고 수입차와 견줘도 동급 1위다.

    G80 국내외 가리지 않고 경쟁차종 중 최고 판매량

    2020년 준대형 고급차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제네시스 G80. [동아DB]

    2020년 준대형 고급차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제네시스 G80. [동아DB]

    “고급 승용차를 타는 가장 큰 이유는 ‘하차감’”이라는 말이 있다. 자동차의 성능보다는 고급차량을 탄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고급차량 구매를 생각하는 소비자는 국산 고급차량 보다는 수입차를 선호한다. 2019년 국산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고급 승용차는 벤츠 E클래스였다. 2019년 한 해에만 3만9782대가 팔렸다. 제네시스 G80은 같은 기간 판매량이 2만2284대에 불과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산 고급차가 수입차의 판매량을 넘었다. 2020년 자동차 누적 판매량을 보면 G80은 10월까지 총 4만 4481대 팔렸다.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218.6% 늘었다. 벤츠 E클래스의 2020년 누적 판매량은 2만4297대. 같은 차급인 BMW 5시리즈는 같은 기간 1만6971대가 팔렸다. 두 브랜드의 판매량을 합쳐도 G80의 판매량에 미치지 못한다. 국산 경쟁차종인 K9은 같은 기간 누적 판매량이 6860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도 G80의 올 상반기 판매 실적 증진을 도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악화된 소비 심리를 회복하고자 정부는 4월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했다. 이를 계기로 신차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었다. 특히 국산차가 개별소비세 인하의 덕을 톡톡히 봤다. 수입차보다 국산차의 가격인하 폭이 컸기 때문이다. 수입차는 수입원가에 개별소비세율을 적용하지만 국산차는 소비자가 차를 사는 가격에 개별소비세를 적용한다. 개별소비세 인하 이후 수입차 대비 국산차의 가격 경쟁력이 훨씬 좋아진 셈이다.



    불황에 홀로 빛난 제네시스

    올해 6월까지는 국산차 대부분이 전년 대비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영광은 짧았다. 7월 개별소비세 인하폭이 70%에서 30%로 줄어들자 판매량이 줄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집계에 따르면 7월 국내 자동차 판매량은 전월 대비 18.2% 줄었다. 8월에는 전월 대비 판매량이 22.2%까지 줄었다. 10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6월 판매량에 비교하면 22% 줄었다. 자동차 시장 연구기관인 ‘카이즈유데이터 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국산 신차 등록대수는 13만 257대. 전월 대비 10.5% 줄었고 전년 동월에 비해서는 0.5% 감소했다. 

    불황 중에도 성과를 내는 브랜드가 있었다. 제네시스가 그 주인공. 7월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177.9% 늘었다. 제네시스의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은 8월과 9월에는 각각 81.7%, 171.8% 늘었고 10월에도 141.3% 늘었다. 모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의 다른 브랜드는 10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13.4% 줄었고, 기아자동차는 0.1% 줄었다. 타 자동차 기업의 다른 브랜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르노 삼성과 쌍용은 각각 같은 기간 판매량이 16.0%, 6.3% 감소했다. 쉐보레는 7.8% 판매량이 늘었다. 

    제네시스의 선전은 현대자동차의 실적 개선의 일익을 담당했다. 현대자동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3138억 원 적자다. 실적은 좋았지만 적자인 이유는 엔진 개발 충당금 2조 1400억 원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영업 이익을 계산하면 1조 8200억 원 가량 흑자다. 이 중 자동차 판매 영업 이익액은 약 1조 2400억 원. 전체 영업이익의 68% 가량이 자동차 판매에서 발생했다. 

    김민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부문 호실적의 배경에는 국내 내수 신차 판매 호조세와 G80, 그랜져, 팰리세이드 등 고가 차량 판매에 따른 실적 개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2020년은 특히 고급차의 판매 실적이 좋다. 기아자동차의 ‘카니발’, 제네시스의 G80이 대표적인 예다. 그 중 G80은 브랜드 ‘제네시스’의 얼굴과 같은 모델이다. G80의 성공이 제네시스 브랜드 전체의 성공을 견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성공 이끈 디자인 현대차 전반으로 퍼진다

    현대자동차가 10월 29일 공개한 GV70.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가 10월 29일 공개한 GV70. [현대자동차 제공]

    제네시스의 판매량 호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출시된 G70을 시작으로 GV70, 제네시스 전기차 등 2021년까지 신차 발매가 예정돼 있다. 이용우 제네시스사업부 부사장은 1월 22일 현대자동차 경영실적 발표에서 “2020년 GV80, GV70, G80을 선보이고 2021년에는 제네시스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 10월 29일 외관과 세부 사양이 공개된 GV70은 출시 전임에도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디자인에 대한 호평이 많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타 브랜드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첫 인상이 잘생겼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다른 자동차 전문 매체 ‘카앤드라이버’도 “GV70은 역동적 비율을 갖추면서 제네시스의 독창적인 디자인 언어를 가장 우아하게 표현했다”며 긍정적 의견을 내놨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도 GV70의 디자인을 두고 호평이 많았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벤틀리의 SUV인 ‘벤테이가’보다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벤테이가는 최저가가 2억 원이 훌쩍 넘는 차량이다. GV70의 출시가격 예상가는 4000~6000만 원 정도로 벤테이가의 4분의 1 수준이다. 

    현대자동차는 2달간 국내 도로 주행 테스트를 거친 뒤 GV70을 올해 말 쯤 내놓을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G80도 디자인 덕을 톡톡히 봤다. 고급차량에 걸맞은 우아한 디자인에 많은 소비자들이 만족하고 있다. GV70도 디자인이 호평받은 만큼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G80 디자인을 총괄한 루크 동커볼케 현대자동차 부사장. [현대자동차 제공]

    G80 디자인을 총괄한 루크 동커볼케 현대자동차 부사장.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를 비롯한 자사 신차 디자인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11월 2일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인 루크 동커볼케를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동커볼케는 람보르기니와 세아트, 벤틀리 등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에서 디자인 총괄을 맡은 인물이다. 2020년 2월에는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에게 수여되는 ‘오토 베스트’ 디자인 부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현대자동차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 제네시스 G80, 아반떼 7세대 디자인 총괄을 담당했다. 이후 2020년 4월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했지만 현대자동차가 6개월간 구애한 끝에 현대자동차로 돌아왔다. 현대자동차는 디자인 기반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최고 크리에이티브 담당자(CCO; Chef Creative Officer)를 신설. 동커볼케 부사장을 이 자리에 앉혔다. 

    현대자동차 측은 “동커볼케 부사장이 맡은 역할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라 디자인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가 디자인 방향성 정립과 전략 수립에 기여했던 만큼 2021년 제네시스 유럽 진출은 물론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 신설 및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 쇄신에도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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