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찾아오는 달콤한 사랑의 감성
미셀과 테리, 누구나 꿈꾸는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
1930년 원작 소설 바탕, 영화 4편 제작
‘다시 만나자’는 운명적 약속, 나의 연인은 어디에…
1994년 영화 ‘러브 어페어’의 한 장면.
외로운 ‘거리두기’ 일상에서 활력소는 역시 사랑 영화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아린 사랑의 경험이 있을 터. 아픈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난 사람도 사랑의 환상은 소중하게 간직한다.
미국에서만 네 차례(1932, 1939, 1957, 1994) 리메이크된 영화 ‘러브 어페어(Love affair)’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처럼 동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우연의 반복이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다. 1994년 이전 세 편의 영화는 모두 흑백영화, 후속 세 편은 모두 리메이크작인 만큼 관객들은 영화 스토리를 손금 보듯 잘 안다. 그러나 ‘러브 어페어’ 시리즈는 지금도 운명적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대표 영화다. 임자 있는 두 남녀가 이성에게 맘을 빼앗기는 B급 로맨틱 코미디로 평가절하될 수 있지만, 문학적 명대사와 눈을 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은 이내 관객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빨아들인다.
엠파이어 빌딩과 교통사고
주인공 테리 매케이(애넷 베닝 분), 마이크 갬브릴(워런 비티 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1929년 10월,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 대공황에 월스트리트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과소비를 일삼던 미국인들은 하루 만에 당장 먹을 끼니조차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추락하는 소비 심리는 출판 시장도 강타했다. 망해가는 회사와 자살하는 가장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가득 찼지만 월간지 ‘칼리지 유머(College Humor)’는 사랑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연재했다. 어려운 시기에 달콤한 동화적 판타지는 미국인들의 도피처였다. 1930년 이 월간지에 실린 우르술라 페롯의 단편소설 ‘러브 어페어’는 세간의 화제가 됐고, 2년 후 할리우드에서 손턴 프리랜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로 제작됐다. 대공황으로 뉴욕 월가가 유례없는 침체기를 맞았지만 할리우드는 전례 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이 분위기에 힘입어 1932년 ‘러브 어페어’도 거뜬하게 흥행에 성공했다.
‘러브 어페어’를 세계적 명작으로 세상에 내놓은 감독은 1939년, 1957년 후속작을 만든 레오 매커리(1898~1969)다.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인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21세에 허드렛일을 하는 스태프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거장들의 영상 기법과 미장센(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는 작업), 편집 기술 등을 먼발치에서 습득하며 잔뼈가 굵었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능력만 있다면 신예 감독이 활동할 무대는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35세에 코미디 장르로 첫 메가폰을 잡은 뒤 연이어 흥행작을 선보이며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1937년 매커리 감독은 심혈을 기울인 영화 ‘내일을 위한 길(Make Way For Tomorrow)’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영화사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인생 최악의 해를 보내던 그는 이혼을 결심한 두 남녀가 서로의 재혼을 방해하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 ‘이혼소동(The Awful Truth)’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기사회생했다. 이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 감독상 등 각종 상을 안겼고,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매커리 감독은 곧 ‘러브 어페어’ 제작에 돌입했다. 실패를 맛본 그는 스토리부터 가다듬었다. 원작 소설에는 없던 불의의 사고를 설정하고, 두 남녀 사랑의 유예기간을 정하고, 갓 완공된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영화로 끌어들였다. 1931년 완공된 102층 규모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소설 원작이 연재되던 1930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매커리 감독은 당시 뉴욕의 랜드마크이던 이 빌딩을 영화에 끌어들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토리는 이렇다.
미셸과 테리의 운명적 만남
1939년 ‘러브 어페어’ 스틸컷. 주인공 테리 매케이(아이린 던 분)과 미셸 마넷(샤를 보와이에 분)(왼쪽). 레오 매커리 감독의 1937년작 ‘이혼소동’ 스틸컷. [RKO Radio Pictures, Columbia Pictures]
그들은 6개월간 심사숙고한 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꼭대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관객 처지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나타난다고 해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몰입도와 낭만은 반감되게 마련이다. 이즈음 매커리 감독은 관객의 애간장을 녹일 반전을 마련한다. 그동안 난잡한 사생활을 모두 정리한 미셸은 6개월 후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일찌감치 나와 테리를 기다린다. 미셸과 사랑의 열매를 맺을 생각에 테리도 붕 뜬 마음에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차를 발견하지 못한 테리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를 모르는 미셸은 그녀가 마음이 변해 나타나지 않았다고 낙담한다. 이 같은 설정에 관객은 발을 동동 구른다.
시작도 안 했으니 끝날 것도 없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원망과 그리움만 쌓인다. 둘은 우연히 마주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만 불거질 뿐이다. 테리의 교통사고를 알 턱이 없는 미셸의 반응에 관객은 안타까워 안달이 난다. 운명적 사랑은 이런 걸까. 눈이 펑펑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에 테리와 재회한 미셸은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서로의 운명적 사랑을 확인한다.
“백조인 줄 모르는 미운 오리새끼야”
1957년 리메이크 작 ‘어페어 투 리멤버’ 스틸컷. [Jerry Wald Productions]
유람선이 중간 기착지인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멈추자 미셸은 나폴리에 살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테리를 소개한다. 미셸의 마음을 간파한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 미셸에게 “너는 백조인 줄 모르는 미운 오리새끼야. 이제 백조를 만나 안착해야 해”라며 손자를 독려한다. 특히 나폴리에서 할머니가 연주하는 주옥같은 피아노 선율은 대중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달하게 녹여준다. 여기에 기술의 발달로 정교해진 카메라 화질에 세련된 촬영 기법을 가미해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미묘한 감정 변화를 사실적으로 담았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러브 어페어’는 세기의 고전으로 기록된다.
20세기 추억의 명화로 사라질 줄 알았던 ‘러브 어페어’는 세기가 바뀌기 전인 1994년 또다시 리메이크된다. 리메이크 소식에 반가워하던 팬들은 주인공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워런 비티(83)와 애넷 베닝(62)이 각각 마이크 캠브와 테리 매케이 두 주인공을 맡은 것이다(1939년부터 여주인공의 이름은 그대로지만 남자 주인공 이름과 직업은 리메이크 버전마다 바뀐다). 특히 워런 비티는 전성기도 한참 지난 ‘케케묵은 배우’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사실 두 배우는 영화 촬영 직전인 1992년 결혼한 중년 신혼부부였다.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로 무수한 여인과 스캔들을 일으켜 화제를 모은 워런 비티는 환갑을 몇 해 앞두고 21세 연하의 애넷 베닝과 결혼을 선언했다. 많은 이들은 두 부부가 오래 못 갈 거라고 확신했고, 두 배우의 사생활로 영화의 환상까지 깨질 위기였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영화의 사랑은 마법처럼 현실이 됐다. 워런 비티는 운명의 여인 애넷 베닝을 만나 과거를 말끔히 청산했다. 두 사람은 할리우드 대표 ‘깨소금 커플’로 영화 속 운명적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호주행 비행기로 바뀐 대서양 크루즈
특히 1994년 영화에서는 전작에서 할머니로 등장한 배우 캐서린 헵번(1909~2003)이 숙모로 등장해 66년 연기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헵번이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노래 부르는 테리(애넷 베닝)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가 작곡한 감미로운 선율은 남태평양의 신비한 풍경과 함께 관객에게 환상을 선사한다.1994년 ‘러브 어페어’의 감독을 맡은 글렌 고든 카슨 감독은 그동안 변화된 대중 성향도 영화에 반영했다. 매커리 감독 영화처럼 주인공들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대서양 횡단 크루즈 여정을 그대로 답습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신 호주행 비행기에서 만나는 설정으로 바꿨다. 비행기가 기체 이상으로 남태평양 한가운데로 비상착륙한다. 관객까지 덩달아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채광을 흠뻑 맛보며 이국적 사랑을 감상한다. 6개월의 유예기간도 3개월로 대폭 줄었지만 사랑의 온도는 1930년대나 1990년대나 마찬가지다. 몸도 마음도 유난히 스산한 2020년 초겨울에 만나는 ‘러브 어페어’가 “당신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습니까?”라고 묻는 듯하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