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그 날” 찐친 케미 ‘여은파’ 유튜브서 5000만뷰 기록
10대 래퍼 이영지 ‘무례’에 ‘유쾌’로 응수
빌보드 1위 곡 ‘Wap’ 女쾌락 다뤄… 리액션 영상 봇물 터지듯
유교걸(가부장제 영향 받은 보수적 여성)도 대리만족 느껴
MBC와 유튜브 채널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방영되는 ‘여은파’(여자들의 은밀한 파티). [MBC 제공]
9월 18일 MBC ‘나 혼자 산다’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여은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여은파’는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를 줄인 말이다. ‘나 혼자 산다’ 멤버 박나래‧화사‧한혜진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spin off‧인기 작품에서 파생된 콘텐츠) 웹 예능이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자 공중파로 역진출했다. 공중파에는 ‘순한맛’, 유튜브에는 ‘매운맛’ 버전이 공개된다. 매운맛은 지상파 심의를 고려하지 않은 유튜브용 편집본을 의미한다. 28일 기준 유튜브에 게시된 ‘여은파’ 20개 영상 조회수를 합하면 5000만이 넘는다.
여성 셀럽 공중파‧유튜브‧케이블 종횡무진
매운맛 콘텐츠가 대세다. 온라인에서 매운맛은 ‘19금’ ‘센’ ‘솔직한’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최근 매운맛 콘텐츠를 주도하는 것은 여성 출연자다. 연령‧국적을 막론하고 여성 유명인이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여은파’ 세 출연자는 웹 예능에서 공중파 심의규정으로부터 자유롭다. 한 영상에서 한혜진이 드라이브를 하던 중 “한강은 서울의 젖줄”이라고 말하자, 박나래는 “젖줄이요? 저는 젖 줄 일도 없다”며 농을 친다. 솔직한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박나래와 화사는 맹장수술을 받은 한혜진 집에 병문안을 간다. 죽을 먹는 한혜진 앞에서 화사가 열심히 막창을 먹자, 박나래는 “그만 좀 X먹어”라고 말한다. 화사는 “저 오늘 그날이에요”라고 응수한다. 이 영상 제목은 ‘맹장 병문안 가서 막창 먹는 찐친구 여은파’다.
시청자는 여성 출연자 사이의 ‘찐친 케미’(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에 환호한다. 한 누리꾼은 ‘여은파’ 영상에 “이건 진짜다. 여자들은 이렇게 논다. 중간 중간 욕설까지 들어가면 그야말로 일상 콘텐츠”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렇듯 각자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여성이 함께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는 엄정화‧이효리‧제시‧화사가 모인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른바 가요계 ‘센 언니’가 모였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따뜻한 ‘케미’로 주목받는다. 케이블 채널인 티캐스트 E채널 ‘노는 언니’에는 운동선수 ‘언니’들이 나온다. 골프선수 박세리, 펜싱선수 남현희 등이다. 체중 관리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성형 수술로 억울하게 징계를 받은 사연이 소개된다. ‘노는 언니’는 인기에 힘입어 9월 13일부터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됐다.
남성 출연자가 그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점령했다. 국민 예능으로 불린 ‘무한도전’ ‘1박2일’이 대표적이다. 분위기는 달라졌다. 종합편성채널 예능 PD A씨의 말이다.
“여성 출연진이 주를 이루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기획 단계에서 낮은 시청률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반려되곤 했다. 여성 중심 예능에 시청자가 호감을 보이자 방송국도 바뀌고 있다. 유튜브‧넷플릭스 등 플랫폼이 다양해져 새로운 시도가 수월한 측면도 있다.”
한계도 지적된다. 종합편성채널 PD B씨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성평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다. 다만 아직까지 여성 출연자가 메인인 프로그램은 지상파나 종편에서 자리 잡기 힘들다. 과거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와 같은 여성 예능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도 화제성이 높은 여성 예능 프로그램은 단발성이거나 유튜브‧케이블에서 방영된다.”
세상에 할 말 하되, 유쾌하게!
KBS 웹 예능 ‘영지전능쇼’. 10대 여성 래퍼 이영지가 편한 자세로 KBS 예능 프로그램을 비평한다. [유튜브 캡처]
여성 래퍼 이영지(18)가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을 이렇게 평가했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KBS 웹 예능 ‘영지전능쇼’에서다. ‘영지전능쇼’는 일종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이다. 기본 포맷은 리액션 영상이다.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10대 래퍼가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 KBS 예능 프로그램을 향해 직설을 날린다. 칭찬도 있다. 이영지는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두고 “이제 KBS에 대한 ‘리스펙’이 좀 생겼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있을 때만 KBS 봤는데 (이영지 섭외해서) 약간 호감.”
한 누리꾼이 ‘영지전능쇼’ 영상에 이렇게 댓글을 달자, 이영지는 “저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보세요”라고 답글을 달았다. 이영지의 무기는 시청자와 소통이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할 말은 하는 콘텐츠로 처음 인기를 얻었다. 이영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74만 명, 틱톡은 58만 명이다.
이영지의 ‘사이다’ 면모는 이른바 ‘기자 대면’ 사건이 잘 보여준다. 한 연예 매체 기자가 이영지 인스타그램에 달린 한 댓글을 인용해 기사를 썼다. ‘“똥 못 싼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 오늘자 이영지 안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영지는 직접 기자를 찾아갔다. 기자에게 “왜 이런 기사를 썼느냐”고 묻고, 직접 반론 기사를 써 그 매체에 실었다. 기자와 함께 찍은 사진도 첨부했다. 무례한 내용의 기사를 유쾌함으로 맞받은 것이다.
시청자는 이영지의 거침없는 행보에 통쾌함을 느낀다. 유튜브에서 이영지 관련 영상을 찾아본다는 대학생 김나영(22) 씨는 “이영지가 직설(直說)을 날릴 때마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유쾌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평소 튀는 발언으로 주목받지만 랩도 잘한다”고 말했다.
“여기가 ‘유교 자아’를 깨닫는다는 곳인가요?”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카디 비 ‘WAP’ 리액션 영상. [유튜브 캡처]
중독성 있는 비트만큼 화제를 모은 것은 ‘Wap’의 가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담겼다. 성(性)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논란이 됐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제임스 브래들리는 SNS를 통해 “‘WAP’을 듣고 내 귀에 성수를 붓고 싶었다. 카디 비는 하느님, 강한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여성 래퍼들이 야한 가사를 쓰지 않으면 대중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지지해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우리를 욕하지 말라.”
카디 비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MZ세대는 여성의 성적 쾌락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카디 비에 환호한다. 부모에게 ‘WAP’을 들려주고 그들의 반응을 찍는 ‘밈’(meme·인터넷에서 전파되는 유행 콘텐츠)이 유행한다.
“여기가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유교 자아’를 깨닫고 간다는 곳인가요?”
‘WAP’ 가사 한국어 번역본 유튜브 영상에 달린 반응이다. 자극적 가사와 선정적 뮤직비디오는 이른바 ‘유교걸’에게도 전파됐다. 유교걸은 가부장제 영향을 받아 보수적 문화에 익숙한 여성들이 자신을 자조적으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WAP’ 뮤직비디오를 기성세대와 함께 보는 리액션 영상이 한국에서도 유행이다.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에 등장하는 박막례 씨와 그의 언니가 함께 ‘WAP’ 뮤직비디오를 보는 영상은 조회수가 132만에 달한다. 카디 비의 솔직한 발언을 담은 인스타그램 라이브도 번역돼 유튜브에 올라온다. 그중 질염 치료 조언 영상은 73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카디 비는 영상에서 “증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에 가라.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학교에서 배우는 성교육보다 카디비의 짧은 영상이 더 도움이 된다”고 댓글을 썼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카디 비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아티스트다. 주체적인 성 담론을 펼친다는 주장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유도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도 부딪히고 있다. 카디 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성 시청자들이 판단할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 중심 콘텐츠가 늘어나는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여성 유명인의 영향력이 커졌다기보다는 콘텐츠 시장이 정상화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시청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남성 중심 기존 콘텐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할 말은 하는 여성 유명인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다만 일부 여성 예능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대상화를 웃음 코드로 사용하는 일이 벌어진다. 성별이 바뀌었을 뿐 잘못된 관행이 유지되는 것이다. 콘텐츠 내용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