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용인·북미관계 개선, 동시 결행 불가
中에 유착해 정치적 안정 확보하려 할 수도
中에 밀착·김정은 실각 아니라면 동북아 핵도미노
북핵 포기 시 리더십 교체 일어날 것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신형 ICBM.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핵이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북핵은 어떤 상황이 돼야 그 나름의 정치적 평형을 유지하며 안정될 수 있는가.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 중국의 영향력 확대, 둘째 동북아시아의 핵 도미노, 셋째 김정은 정권의 실각이다.
김정은 체제가 등장하면서 북핵은 다양한 정책 조합이 얽히고설킨 이슈가 됐다. ①북핵 용인 ②북한의 정상국가화 ③남북‧북미관계 개선이 그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북핵 용인과 북·미관계 개선이 함께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상적 정책 조합을 실현하고자 북한은 특별한 외교적 수단을 동원했다. 문재인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특한 캐릭터를 지렛대로 삼은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한마디로 제멋대로였다. 트럼프는 미국 주류와 많이 달랐다. 북한은 트럼프의 이런 성향이 불가능해 보이는 정책 조합, 즉 북핵 용인과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할 동력이 되리라고 봤다. 그러나 트럼프는 북한의 생각보다 더 제멋대로인 인물이었다. 북·미 간 몇 차례 만남이 가져온 성과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평화와 통일은 추상적 레토릭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53분간 단독 회담을 가졌다. [판문점=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환상적 이벤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북한에는 용인 받지 못한 핵무기만 남았다. 핵무기는 공격 대상이 되는 상대방에게 핵무기를 방어할 수단과 시스템을 강제한다. 따라서 북핵은 궁극의 안식처를 찾듯 그것을 받아줄 정치적 구조를 찾아 움직여야만 한다. 향후 정세는 어떻게 변모할까.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의 영향력 제고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독자 노선을 강조했다. 심지어 독자노선을 하나의 사상 즉 주체사상으로 정립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에도 독자노선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김정은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장성택, 김정남 등 친중파를 제거했다. 남북‧북미 정상 간 이벤트에서 주로 남·북·미가 주연, 중국이 조연 역할을 한 까닭도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다.
2018년~2019년 이벤트가 진행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이 나타났다. 북핵 문제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은 각국은 다가오는 미국 대선 결과를 주목했다. 이 시기, 미국의 중국 압박도 본격화했다.
미국의 압박은 대체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지역으로 규정하며 중국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이에 대응해 세력 확대에 나섰다. 미국은 호주, 일본, 인도 등 강대국을 하나로 결속했다. 홍콩과 대만의 반중(反中) 경향도 주목할 만하다. 반면 중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권위주의 정권을 주요 협력 대상으로 삼았다. 필자의 지인은 2010년 이후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영향력을 확대해나간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①필리핀: 포퓰리즘 권위주의 성향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이후 친중 행보 가속.
②태국: 2014년 쁘라윳 짠오짜의 군부 쿠데타 이후 친중 행보 가속. 최근 대규모 반정부 시위 진행 중.
③미얀마: 민주화 이후 중국과 거리두기가 진행됐으나 2017년 로힝야 학살이 서방의 비난을 사게 되며 중국에 다시 밀착.
④말레이시아: 2009년 당선된 나집 라작 총리가 차이나머니에 포섭됐고, 일대일로(一帶一路) 관련 스캔들로 2018년 낙마.
⑤라오스: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인접한 중국 윈난(雲南)성의 자장에 끌려 들어감.
⑥캄보디아: 권위주의 지도자 훈센 총리는 대표적 친중 인사.
⑦북한: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으며 최근 열병식에서 선보인 현대적 군 장비는 중국의 지원으로 갖춘 게 아닌지 의심됨.
중국과 유착이냐 대남·대미 담판이냐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을 고려하면 한국과 북한에서 각각 미·중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과 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요성과 한국의 지위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이와 같다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관심도 상응해 존재할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동아시아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북한은 특별한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이 과정에서 중국을 돌파구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종합하자. 2018년~2019년 남북·북미 이벤트가 끝난 현재 시점에서 향후 예측 가능한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 중국과 유착해 정치적 안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친중화’와 ‘소규모의 북한 전술핵 용인’은 정책 조합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라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북핵은 북한의 의지와 중국의 이해가 일치할 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핵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억지할 수 있다. 그러나 미·중 사이의 갈등이 커진다면 북핵은 미·중 대리전에 사용될 수도 있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직후처럼 친중 노선이 아니라 대남·대미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이 경우라면 판을 흔들기 위한 공격적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이때 북핵은 위협적 무기가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시나리오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높다. 평화통일 분위기에 취해 이 가능성이 낮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2018년~2019년 거대한 이벤트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북한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북한은 쓸데없는 회담을 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이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국가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위협적 무기가 있다면 이를 통해 무언가 얻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과거를 떠올려보자. 1969년 김신조를 포함한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기 위해 침투했다.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는 전두환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폭탄을 설치했다. 2010년에는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었다.
두 번째 시나리오가 작동하면 당연히 한국과 미국 나아가 일본의 대응 시나리오가 작동한다. 한국과 일본은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미국도 한일의 핵무장을 거부하기 어렵다.
고릴라 실험과 나의 대북관
11월 23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전 전투영웅 제10주기 추모식에서 고(故) 서정우 하사·문광욱 일병의 영정이 놓여 있다. [뉴스1]
정치와 역사에는 경로 의존성이 존재한다. 김정일이 사망하고 북한에는 여러 가능성이 있었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 내부는 북핵을 보존하고 용인 받는 형태로 돌파구를 열자는 쪽으로 1차 합의를 했다. 이 합의는 견고하고 구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단기적·정책적 합의에 가까웠다. 따라서 이제 와서 북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치적 리더십의 교체, 즉 김정은 정권의 실각을 의미한다.
김정은 정권의 실각은 한반도 정세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북핵의 세 번째 시나리오다.
심리학에 고릴라 실험이라는 게 있다. 농구공을 주고받는 사람들 한 가운데로 커다란 고릴라가 지나간다. 농구공을 주고받는 데 열중한 사람들은 고릴라가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유명한 실험이다. 유튜브에서 한 번 검색해보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에 대해 과신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이 얼마나 근원적으로 편향돼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단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 2010년 11월 북한은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다. 동·서해 공해상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섬에 포탄이 떨어졌다. TV를 통해 그 장면을 지켜봤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북한의 통일정책에 우호적이던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평양과 결정적으로 멀어졌다.
돌이켜 보면 다른 계기도 많았다. 1983년 버마 아웅산 사건,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등이 있었다. 나는 그 사건들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건들과 북한을 연계해 북한에 대한 시각을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마치 고릴라를 봤지만 이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고릴라가 지나갔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와 같았다.
군사도발 말고 카드가 없다
나는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고릴라 실험과 같은 상태가 장시간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쪽에는 핵과 미사일 도발 나아가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는 북한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다양한 회담과 행사에 참여하는 북한이 있다. 둘 중 전자를 인위적으로 거세하고 후자의 북한만을 상정한 헛된 시도가 되풀이되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평화통일의 동반자다. 국가보안법의 규정처럼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생각하는 과거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을 평화통일의 동반자가 되도록 만드는 단호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곧 펼쳐지는 바이든 시대, 한반도 정세를 재구성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될 것이다. 이 글이나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통해 상황을 돌파하려할 가능성이 크다. 냉정히 보면 북한에는 그것 말고는 카드가 없다. 그 시점이 남북관계를 재설계하는 때가 될 것이다.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