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장, DSR ‘핀셋 규제’ 거론
경제부총리·금감원장도 규제 관해 언급
국토부, 규제 전면 강화 원한다고 알려져
금융위, 서민 돈줄 끊길 부작용 우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6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0월 27일 현행 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주목받은 점은 ‘DSR을 현행 40%에서 30%로 낮추는 방법이 있다’는 언급이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모든 가계대출의 연간 원리금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금융사가 대출 심사 시 차주(돈을 빌리는 사람)의 연소득을 바탕으로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을 수 있는지 살펴보는 지표라고 이해하면 쉽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카드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금융권 대출 원리금 부담을 반영해 계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관리기준 40%냐 30%냐
그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한 신규 주택담보대출에 DSR 40%(비은행권 60%) 규제를 개인별로 적용하고 있다. 차주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뒤 추가로 신용대출 등의 대출을 받아도 차주 단위 DSR 규제가 적용된다.은 위원장은 이날 ‘금융의 날 기념식’ 참석 뒤 취재진과 만났다. 그는 DSR 규제 관련 질문에 세 가지 방안을 언급했다. DSR을 강화하는 방법은 40%를 30%로 낮추거나, 시가 9억 원 기준을 낮추거나, 적용 지역을 확대하는 방법이 있다는 발언이다. 은 위원장은 “어떤 방법이 바람직한지 논의 중”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돈에는 꼬리표가 없기 때문에 대출액이 생활 자금으로 가는지 부동산으로 가는지 모르지 않으냐”라면서 “가급적 제한적으로 ‘핀셋 규제’로 해보려고 하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이게 핀셋이냐 전체냐를 두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했다. “서민들이 일상생활하는 데까지 규제할 생각은 없다”고도 강조했다.
대출 규제가 향후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평소 금융 당국 수장은 이에 대한 말을 아끼는 편이다. 반면 이날 은 위원장의 발언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금융권의 시선이 이미 은 위원장의 입에 쏠려 있던 때기도 했다.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제부처 수장들이 일제히 DSR 규제 강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출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DSR 규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석현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달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머잖아 DSR의 확실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고, 은 위원장 역시 “DSR 규제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경제 부처 수장들이 일제히 규제 강화를 내비친 데다 은 위원장이 직접 언급까지 했으니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금융위는 뒷날 곧장 반박(?) 자료를 내놨다. 조직 수장인 은 위원장의 발언을 반박한 것은 아니다. 보도 내용을 바로잡겠다는 목적이었다. 금융위는 은 위원장 발언의 방점은 ‘핀셋 규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은 위원장이 DSR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지만, 이런 방안보다 뒤이어 언급한 ‘핀셋 규제’를 고려하고 있다는 취지라는 의미다. DSR을 30%로 내리는 식의 일괄적인 방식은 전혀 논의된 바 없다는 게 금융위 측 주장이다.
국토부는 전면적 DSR 강화 원하나
아리송한 설명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은 위원장이 제시한 세 가지 방법은 단순히 ‘일반론’이었다는 의미가 된다. 일반론을 굳이 취재진에게 풀어놨다는 뜻이다.금융위 내부에서는 그간 DSR을 일괄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현행보다 규제를 강화할 경우 서민들의 ‘돈줄’이 끊기는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DSR을 확대할 경우 부작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핀셋형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전면적 확대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위는 11월 13일 DSR 규제를 일부 강화하는 ‘핀셋 대책’을 내놨다. DSR 40%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앞으로 연소득 8000만원 넘는 고소득자라면 총 신용대출을 1억 원 넘게 받을 경우 무조건 DSR 40%를 적용받는다. 또 신용대출 총액이 1억 원 넘는 차주가 1년 내 규제 지역에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해당 신용대출을 회수하는 방안도 도입된다. 고소득층의 ‘투기 수요’를 잡고, 신용대출을 주택 구입에 우회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금융위의 ‘해명’처럼 핀셋 규제가 이뤄지게 됐다.
그런데 은 위원장의 발언은 대체 왜 나왔을까. 금융권은 국토교통부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부동산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경우 그간 일괄적인 DSR 규제 강화를 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연내에 전면적인 DSR 강화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는 태도다.
결국 정부 내에서도 부처 간 의견이 엇갈렸다는 얘기다. 은 위원장이 제시했던 세 가지 규제 강화 방안은 부처 간에 오간 의견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은 위원장은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하면서 본인, 혹은 금융 당국의 입장은 ‘핀셋 규제’라고 언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해프닝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이에 따른 대출 규제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은 23회에 달한다. 최근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시장에서는 24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오리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규제를 통해 이를 제어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부동산 탓에 가계대출이 급격히 늘면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시장이 당장 안 좋은 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다급하게 추가 대책을 내놓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점이다.
한쪽 규제하면 한쪽 부풀어 올라
부동산 관련 정책 발표가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시장도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진은 10월 27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모습. [뉴스1]
황성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0%대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유동성으로 인해 새로운 규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틈새를 공략하는 투기 자금과 이를 막기 위한 핀셋 대응책, 이로 인해 또 다른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우후죽순 규제 방안을 내놓으면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도 모자라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대형은행 관계자는 “점포에 있는 은행원조차 부동산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고객이 확정되지 않은 뉴스를 보고 다급해하는 사례도 다반사”라면서 “정부 내에서도 갈피를 못 잡고 있어 금융사도 고객도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