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모더나·화이자 백신, 특허권 무시하고 한국서 만들 수 없나

[코로나백신 팩트체크③]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12-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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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성, 유효성 입증된 코로나19 백신 해외 출시 초읽기

    • 미국‧유럽, 이르면 연내에 대규모 백신 접종 시작할 듯

    •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 의약품 특허 중단, 국제적 인정

    • 특허법상 ‘강제실시권’ 발동하면 국내 생산 ‘이론적’ 가능

    • 강제실시 찬성측 “특허권자에 적절한 보상하면 문제될 것 없다”

    • 강제실시 반대측 “무역의존도 높은 우리나라에는 오히려 손실”

    영국 정부가 2일(현지 시간)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을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7일부터 이 백신을 7일부터 영국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른 글로벌 백신 제조사도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 등에 각각 자사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심사 과정에서 해당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될 경우, 이르면 이들 백신 또한 연내에 접종이 시작될 전망이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12월 2일 영국은 세계 최초로 이 백신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뉴시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12월 2일 영국은 세계 최초로 이 백신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뉴시스]

    이제 관심은 우리 국민이 언제 백신을 사용할 수 있을지에 쏠린다. 현재로서는 내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방역당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물량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지만, 일찌감치 구매 계약을 맺은 서구권 국가에 비해 순서가 뒤질 수밖에 없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1월 19일 국제보건의료재단 포럼에 참석해 “2021년 2분기에는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신 초기 생산량이 제한적이라 이때 주사를 놓기 시작한다 해도 우리 국민이 ‘집단면역’을 형성할 만큼 충분한 접종이 이뤄지는 시기는 내년 하반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의 백신 생산 역량을 활용해 우리가 직접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어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WTO, 공중보건 위기상황 특허 강제실시 허용

    영국이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을 승인했다고 보도한 로이터 통신 기사. 이 백신은 12월 7일부터 영국 전역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영국이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을 승인했다고 보도한 로이터 통신 기사. 이 백신은 12월 7일부터 영국 전역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당장 국산 백신을 ‘개발’하기는 어렵다. 제넥신과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코로나19 백신 연구에 뛰어든 국내 제약사는 아직 임상시험 1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단, 국내에는 복제약(제네릭) 생산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는 제약사가 많다.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특허 내용을 공개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약품을 만들어내는 건 가능할 수 있다. 

    국제법적으로도 위법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부속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TRIPs)’ 제31조는 ‘권리자의 승인 없는 특허 사용’에 대해 규정한다. WTO 회원국 정부 등이 필요한 경우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개별 특허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때 특허권자에게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보상’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을 A 제약사가 갖고 있을 경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다른 제약사가 해당 백신을 생산하면 안 된다. 이건 특허권 침해 행위다. 백신을 만들려면 A사와 계약을 맺고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면 여기서 앞 단계를 생략할 수 있다. 즉 A사 허락 없이 해당 백신을 생산해 사용하고, 추후 그에 합당한 보상을 지급한다. ‘TRIPs’에 보상금 산정 방식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다. 개별 사례에 따라 보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식의 특허 사용을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라고 한다. 



    그렇다면 WTO 회원국 정부는 어떤 상황일 때 강제실시권을 사용할 수 있을까.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발표된 ‘WTO 각료선언문(도하선언)’에는 ‘강제실시권 발동 요건을 각 회원국이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어떤 상황을 ‘위기’로 볼지는 회원국 자체 판단에 따른다는 의미다. 

    WTO에 가입한 세계 각국은 자국법에 강제실시권을 구체화한 명문 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 특허법에서는 제106조의 2가 그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상황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비상업적(非商業的)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개별 특허를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즉 우리 정부가 현재 코로나 팬데믹을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하고 공익적·비상업적 목적으로 글로벌 제약사의 백신 특허권을 사용하겠다고 결정하면, 우리나라에서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백신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미국, 태국 등 의약품 특허 강제실시 적극 사용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1월 30일(현지시간) 영국 웨일스주 레스섬에 있는 제약 제조 시설에서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들고 있다. 해당 백신은 빠르면 연내 영국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뉴시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1월 30일(현지시간) 영국 웨일스주 레스섬에 있는 제약 제조 시설에서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들고 있다. 해당 백신은 빠르면 연내 영국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뉴시스]

    정말 그래도 될까. 해외 사례를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미국은 2001년 9·11 사건 후 국내에 탄저균을 이용한 테러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자 독일 제약사 바이엘이 특허를 가진 탄저병 치료제 ‘시프로’에 대한 강제실시를 추진했다. 이후 바이엘사는 미국 정부에 해당 제품을 원래의 절반 가격에 팔기로 약속했다. 캐나다도 같은 시기 시프로에 대한 강제실시를 결정했다가 바이엘사와 유리한 조건으로 대량 구매계약을 맺은 뒤 철회했다. 

    태국은 2006년 말 미국 애보트사가 특허를 가진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에 대한 강제실시를 선언한 일이 있다. 애보트는 당시 “태국에서 판매하는 자사 약품을 모두 철수하겠다”며 맞섰으나 이듬해 결국 태국에 공급하는 칼레트라 가격을 내렸다. 이 밖에도 스위스, 인도네시아, 가나 등 세계 여러 나라가 강제실시권으로 다국적 제약사 특허를 무력화하거나 약값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했다. 

    남희섭 변리사(지식연구소 공방)는 “서구 국가들은 지식과 기술 생산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조한다. 하지만 의약품의 경우 강제실시 필요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의약품 특허권자의 권리만 보호할 경우 다중의 생명 또는 건강 같은 공익이 침해될 소지가 있어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도하선언’이 발표된 배경에는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에이즈가 창궐했던 1990년대 말 국제 상황이 있다. 당시 글로벌제약사들이 에이즈치료제를 개발한 상태였음에도 약가가 높이 책정된 탓에 아프리카 지역 환자 절대 다수가 약을 써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2001년 ‘도하선언’이 제정됐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진행하는 한국 제약사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후보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진행하는 한국 제약사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후보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일반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반면 일단 개발된 약을 제조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글로벌제약사 노바티스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출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 제약사들이 10분의 1 가격에 복제약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사례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의약품은 특허의 독점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전자기기의 경우 한 제품에 여러 개의 특허가 복합적으로 적용되지만 의약품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의약품 특허를 잠정적으로나마 제한하는 강제실시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남희섭 변리사는 “이 제도가 국제 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의료 복지를 지키려는 목적이 컸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가난한 나라 정부는 글로벌제약사와의 소송 등에 대한 부담 때문에 사용을 꺼리고, 선진국이 적극적으로 강제실시권을 활용하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한국 특허청, 강제실시 요구 번번이 기각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하는 백신 후보물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하는 백신 후보물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발동한 적이 없다. 정부가 앞장서 강제실시를 추진한 적도 없다. 시민사회 등이 중심이 돼 2003년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2009년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의 강제실시를 요구했으나 특허청이 두 번 다 기각했다. 당시 환자들은 글로벌제약사가 책정한 약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반면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할 정도로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코로나19가 지구적으로 확산한 지금 상황은 어떨까. 한성하 ‘국경없는 의사회’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지금이야말로 국제적 연대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에 대한 특허권 제한을 요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한성하 매니저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에서 관련 논의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요청으로 WTO TRIPs 위원회에서 12월 중 이 안건을 다룰 예정이기도 하다. 

    한성하 매니저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을 보면 글로벌제약사가 독자적으로 만든 약이라고 보기 어렵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까지 여러 과정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제품 특허를 특정 제약사가 독점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현재 세계 90여 개국 정부와 국경없는 의사회를 비롯한 300여 개 국제단체가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의 특허권 제한을 지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이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한성하 매니저 의견이다. 

    반면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강제실시는 신중히 접근할 주제”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 코로나19 상황이 위급하긴 하지만 해외 제약사가 가진 백신 특허권을 중단시키고 자체적으로 백신을 생산해 공급해야 할 만한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의약품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앞장서서 글로벌 제약사 특허권 무력화 조치를 취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11월 30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시험 백신 임상 참가 지원자들이 접종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11월 30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시험 백신 임상 참가 지원자들이 접종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에도 글로벌제약사 로슈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강제실시해야 한다는 각계 요구가 컸다. 하지만 글로벌제약사들이 우리 정부 조치에 반발해 주요 의약품 공급 중단 등을 선언할 경우 오히려 국내 보건 위험이 가중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추진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해외 제약사의 백신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 생산을 선택할 경우, 해외에서도 우리 기업이 세계적 강점을 갖고 있는 코로나19 진단기기 특허를 침해해 자체 생산에 나설 수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많은 것이 상호적으로 얽혀 있어 고려할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강제실시를 원해도 해당 제품을 생산할 제약사를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제약사 상당수는 해외 제약사 의약품을 수입 판매하는 것으로 수익을 낸다. 다국적 제약기업과 관계가 틀어지면 향후 약 공급 계약 등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특정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맡는다 해도 그것으로 이익을 남길 수는 없지 않나. 득은 없고 장기적으로 실이 될 소지만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회사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현재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강제실시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희섭 변리사는 이에 대해 “지금 당장 코로나19 백신을 국내 생산하지 않더라도 이번 팬데믹을 계기 삼아 장기적 관점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국민에게 백신과 치료제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공제약사 설립, 특허권 강제실시 관련규정 정비 등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남 변리사에 따르면 이미 해외 여러 나라는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의약품 강제실시를 손쉽게 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캐나다 의회가 올 3월 ‘코로나19 대응 특별법’을 제정해 특허법의 정부 사용 규정을 보강한 게 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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