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호

‘공공부문 철밥통’ 방치하고 ‘청년팔이’하는 文정권

“文, 임금개혁 없이 노동계에 선물만” (최영기 盧정부 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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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12-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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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 다시 시대정신이 되다⑤]

    • ‘청년의 날’에 ‘공정’ 37번 언급한 文

    • ‘인국공 사태’ 염두에 둔 표현도

    • 공공부문에서 채용 기회 늘려면 연공급 혁파 필요

    • 與 인사조차 “연공급은 기성세대 기득권”

    • 노조 “개악 시도” 반발에 한 걸음도 진전 없어

    • “임금체계 개편, 최단 5년 소요되는 프로젝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년의 날’이라고 했다. 법정기념일이었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된 청년기본법에 따라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이 청년의 날로 지정됐다. 올해는 9월 19일이었다. 권력이 고른 열쇳말은 ‘공정’이었다. 이날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이라는 단어를 서른일곱 차례, ‘불공정’은 열 차례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정과 정의, 평등한 사회를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려면 채용, 교육, 병역, 사회, 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체감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한편에선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여겨졌다.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공정에 대해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이른바 ‘인국공 사태’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 


    불공정 게임의 수혜자들

    ‘인국공 사태’가 한창이던 6월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인천공항 직원이 공정을 강조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스1]

    ‘인국공 사태’가 한창이던 6월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인천공항 직원이 공정을 강조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스1]

    현재의 20대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즈음해 태어났거나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경쟁과 기회에 대한 감각이 매우 예민하다. 앞 세대에 비해 대학 진학률은 높은데 일자리는 구조적 불경기 탓에 줄었다. 생존을 위해 끝없는 ‘스펙 경쟁’에 내몰렸다. 인국공 사태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청년층이 공분한 건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2010년대의 청년 세대는 (앞 세대보다) 공정성에 훨씬 민감하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상층 노동시장에 자리 잡고 있는 기득권층이 품앗이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특혜를 줘 취직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자(취직자의 청탁비율이 80%를 넘은 강원랜드 사건을 보라.) 이 세대는 취업문이 실제 수치보다 더 ‘좁아졌다’라고 느낀다. 상층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은 좁아지고 진입하고자 하는 경쟁자는 많아졌는데, 불공정한 게임의 수혜자들은 점점 더 많이 (언론과 SNS의 발달로) 눈에 띄는 형국이다.” 



    청년층은 학창 시절부터 ‘나쁜 일자리’가 폭증하는 현실을 목도한 세대다.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 규모는 2004년 처음 500만 명을 넘어선 뒤 2009년 575만 명에 달했다. 통계청이 10월 27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742만6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중 36.3%를 차지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152만3000원으로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은 2년 5개월에 그쳤다. 이에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공공부문이 청년층 사이에 ‘꿈의 일자리’로 떠올랐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청년에게 취업 기회가 늘어나려면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근무 기간이 길면 높은 보수를 받는 연공급 임금체계는 기업의 비용부담을 키워 비정규직, 하도급 양산을 자극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신규채용 감소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입사 후에도 승진·수당 등 인사관리의 기준이 연공서열에 맞춰져 있다. 

    이 와중에 공공부문은 매출 절벽에 직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천공항 내부에서도 올해 적자 규모를 4300억 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작 인천공항의 정규직 1인당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 9129만8000원(공공기관 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달했다. 고도성장기에 맞춰 시행돼 온 연공급제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자연히 청년층이 선호하는 취업문은 더 쪼그라든다. 청년층이 보기에는 불공정 게임이다.

    기성세대 ‘철밥통’ 혁파할 직무급제

    정작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월 박근혜 정부가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추진한 ‘성과연봉제’를 백지화했다. 대신 들고 나온 대안이 직무급제다. 직무급제는 업무 난이도와 성격, 요구되는 기술, 지식·경험 등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방식이다. 연공급제는 같은 해에 입사했다면 하는 일에 상관없이 같은 임금을 적용한다. 직무급제는 기술직, 사무직, 단순노무직 등 직무에 따라 임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한다. 같은 업무를 하면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받는 터라 여권과 노동계가 강조해 온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부합한다. 

    독일의 경우 전체 공공부문 직무를 1~15등급의 임금 등급에 배치하는 직무급제를 적용하고 있다. 즉 연차에 따라 1등급에서 15등급까지 임금 등급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직무에 따라 직무의 하단과 상단이 고정된 식이다. 예를 들어 단순노무 및 기능직에 대해서는 1등급에서 최고 7등급까지 임금 등급의 상승 구간을 고정했다.(이승협, ‘월간 노동리뷰’ 2018년 4월호 ‘독일 공공부문 임금체계 사례 분석’ 참조) 

    이에 직무급제는 공공부문에 만연한 ‘철밥통’ 문화를 혁파하는 데 요긴한 도구로 평가받는다. 생산성과 상관없이 연장자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임금 상승분을 청년 신규 채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쓸 수 있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도움이 된다. 만약 직무급제 도입 없이 공공부문 채용을 늘리면 부채가 증가할 공산이 크다. 이에 진보진영과 여권 인사들조차 직무급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11월 9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공공부문에서 직무급제를 통해 급여는 조금 낮게 조정하는 대신,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김기식 전 의원도 11월 10일 ‘한겨레’ 칼럼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연공급 임금구조는 노동자 안에서도 기성세대의 기득권”이라면서 “연공급 구조는 직무급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직사회 직무급제 도입이 과제”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은 난항 중이다. 한국석유관리원과 새만금개발공사, 한국재정정보원, 한국산림복지진흥원,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등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공공기관들이 직무급제를 도입했을 뿐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 공공부문 노조가 “보수체계 개악 시도”라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장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과거 정부에서 공공부문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데 일정한 진전을 이뤘는데 현 정부에서 그런 움직임이 희석됐다”며 “부채 증가를 비롯해 공공부문의 경영효율성이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지만,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정치 논리에 의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동계 원하는 정책만 집행”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직무급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지난 20여 년간 진행돼 왔는데, 현 정부는 이에 대한 정책 의지가 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1988년부터 한국노동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정부 노동정책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노동경제학자다. 김대중 정부 때 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노동연구원장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으로 노사정 대타협 논의에 관여했다. 그와의 문답이다. 

    -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조에 조직된 근로자 처지에서 연공급 개혁은 삭감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임금이 정체하거나 상승 속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찬성할 리는 없다. 신규 입사자나 젊은 직원들, 비정규직들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 조직화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렇다. 발언권도 약하고 교섭력도 없다. 사실 그들에게는 직무급이 더 유리하다. 그들은 직무나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게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반 동안 노동계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임금개혁 논의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노동계가 원하는 정책만 집행하면서 선물만 줬다. 공공부문 직무급 도입을 선언했지만 실제 정책 의지가 실려 있지 않으니 이를 추진하는 기재부 등에서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 연공급 중심의 노동시장이 정규직을 과보호해 청년에게는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맞다. 고도성장기에는 근로자가 장기 근속하는 게 기업에 유리해 연공급이 현실과 잘 맞아떨어졌다. 지금은 저성장기이자 신산업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시기다. 고령화까지 겹쳐 연공급에 기반한 인사 및 임금제도는 사치가 됐다.” 

    - 사치라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고비용 제도라는 뜻이다. 이에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청년 채용을 줄이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나는 정년 연장, 더 나아가 정년 폐지까지 필요하다고 본다. 단, 정년 폐지와 연공급 폐지는 패키지 개혁의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직무·숙련도 등 근로자의 전문성을 중심으로 보상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하는데, 그 필요성이 가장 시급한 분야가 공공부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은 5년짜리 프로젝트”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개혁은 늘 청와대발(發) 프로젝트였다. 대통령이 의제를 던지고 국회에서 토론이 이뤄지면서 개혁 논의가 차츰 숙성되는 식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법을 개편해야 한다는 걸 정부에 제의한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에도 여태 묵묵부답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통령선거 등이 연이어 시행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권이 집권 후반기에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의 동력이 이미 사라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영기 교수는 “실질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 수 있는 시기는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노동개혁 정책을 한 가지 시행하려 해도 2~3년은 걸린다. 더군다나 임금체계 개편은 최단 5년 이상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라면서 “현 정부가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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