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성태윤 교수 “빠른 재정 악화 속도 방치 땐 IMF보다 큰 위기”

[특집] 여당發 ‘국가부채론’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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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1-03-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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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부채 현황보다 재정 악화 속도가 중요

    • 한국 재정 악화 속도 OECD 2위

    • 국가재정은 미래세대도 함께 쓸 돈

    • 정치권이 재정 마음대로 쓰려 해선 안 돼

    • 과도한 재정정책 국가경제에 악영향 미쳐

    • 재정위기 겪은 스페인, 그리스 전철 밟는 중

    • 예타 강화하고 재정 준칙 확립해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의 재정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의 재정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지금처럼 국가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면 IMF보다 심한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의 한국 재정 상황을 두고 이같이 평했다. 그는 2016~2018년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아온 경제정책 전문가다.
     
    코로나19 집단감염사태(이하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의 곳간은 빠르게 비어가고 있다.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만큼 세입은 줄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재정지출은 늘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국세 수입은 총 285조5000억 원으로 2019년(293조4000억 원) 대비 7조9000억 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세 지출은 485조1000억 원에서 501조1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은 아직 한국의 재정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0년 8월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OECD 회원국 평균인 110%에 비해 약 3분의 1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재정 여력, 즉 국가채무 발행 여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밝혔다. 

    2020년 12월 2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9년 일반정부 부채 및 공공부문 부채’에 따르면 2019년 공공부문 부채는 총 810조7000억 원. GDP 대비 부채비율은 42.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OECD 회원국의 평균 GDP 대비 부채비율은 80.9%. 한국의 2배에 가깝다. 그간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해 왔으니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지출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렇지만 경제학자 과반은 정부의 낙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2020년 10월 6일 한국경제학회는 경제학자 40여 명에게 현재 한국의 국가부채에 대해 설문했다. 응답자의 75%는 “국가재정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정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2월 초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성 교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코로나19 같은 비상시국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나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 재정 악화 속도 세계 2위

    -현재 정부 재정은 건전하다고 볼 수 있나? 

    “당장은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재정이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정 악화 속도가 문제인가. 

    “그렇다. 재정은 몸무게와 같다. 단순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사람의 키나 근육량 등을 고려해 봐야 한다. 진짜 건강의 적신호는 몸무게가 변하는 속도다. 몸무게가 70㎏이던 사람이 매달 몸무게가 10㎏씩 늘어난다면 의사가 아니라도 건강을 걱정할 것이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재정 상태보다는 재정 상태가 변하는 속도가 빠른 것이 더 큰 문제다.” 

    재정 악화 속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6월 OEC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구조적 재정수치는 0.86% 흑자였다. 구조적 재정 수치는 경기와 상관없이 재정의 건전성을 알려주는 지표다. 이 수치만 보면 한국 재정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의 2019년 재정건전성은 2.14% 흑자였다. 한 해 만에 수치가 1.28%포인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OECD회원국 중에서 한국보다 빠르게 재정이 악화된 국가는 그리스(-2.21%포인트)뿐이다.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재정지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재정을 지출한 효과가 미비하다는 게 문제다.” 


    검증 없는 재정지출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늘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재정을 쓴다면 국가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한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재정을 투입했을 때 GDP가 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금 1조 원을 썼다면 적어도 GDP가 1조 원은 늘어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쓰면 GDP가 얼마나 느는지를 ‘재정승수‘라는 수치로 측정하는데 쓴 돈에 비해 GDP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2019년 기준 기획재정부는 한국의 재정승수를 0.3~0.4로 추산하고 있다. 1조 원의 재정을 풀면 GDP가 3000억~4000억 원가량 늘어난다는 의미다. 

    -재정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재정지출의 효율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를 통해 정책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검증한 후 재정을 집행한다. 현 정부 집권 이후 이 조사를 면제받는 정책이 늘었다.” 

    기획재정부와 국회재정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7년 8월~2020년 12월 기준 총 113개 사업의 예타가 면제됐다. 총예산 규모는 95조4281억 원. 한편 이명박 정부는 총 90개 사업의 예타를 생략했고 예산 규모는 61조1378억 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94개 사업의 예타를 진행하지 않고 24조9994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두 정부의 예타 면제로 집행된 예산 규모는 총 86조1372억 원. 현 정부가 4년간 예타 없이 쓴 돈보다 적다. 

    -예타를 건너뛰고 집행되는 정책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정치적 이유가 큰 것 같다. 국민에게 인기를 끌만한 정책을 펴려다 보니 재정을 무리하게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자면 어떤 정책이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이 비근한 예다.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기획재정부도 이에 대한 경고를 계속 해왔으나 정부는 (1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최근 4차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국가재정을 쓰더라도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다면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국민의 소득이 월 3만 원 늘어난다고 해서 내수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 일정 금액을 지원해 이들이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이 합리적이다.”

    인기 신경 쓰다 국고에 구멍이 날 수도

    2020년 10월 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 브리핑’에서 재정 준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2020년 10월 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 브리핑’에서 재정 준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국민 위로 차원에서 전 국민 대상으로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불필요한 재정지출은 결과적으로는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정부가 세입보다 많은 돈을 쓰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세금을 더 걷게 되면 경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는 데다 세금도 일종의 규제라 해외투자도 줄어들게 된다.” 

    -국채를 발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국채 발행도 마찬가지다. 국채가 발행되면 회사채보다는 국채에 국내외의 자본이 몰린다. 국채가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필요한 민간기업은 더 어려워질 위험이 있다.” 

    -범여권에서는 한국은행이 국채를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국고채를 사들이는 현상을 ‘국채의 화폐화’라 한다. 이렇게 되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가격이 폭등할 위험이 있다. 한국의 국채를 민간에서 구입하지 않아 생긴 일이니 국제자본시장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신뢰도가 과도하게 떨어지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재정문제가 경제위기로 이어진 사례가 있나?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 2008년 이후 경제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 대부분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스페인은 2007년만 해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35.5%에 불과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이 비율은 40%대까지 올랐다. 경제위기 10년이 지난 2018년까지도 부채비율은 꾸준히 올라 97.1%를 기록했다. 급격히 높아진 국가부채는 스페인 경제에도 상흔을 남겼다. 현재 스페인의 고용률은 55%로 한국(65.9%)보다 10% 이상 낮다. 

    그리스는 2007년에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7%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2000년에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4%이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늘지는 않았다. 경제위기가 시작되는 2008년부터 113%로 수치가 가파르게 올랐다. 4년 뒤인 2010년에는 무려 170%에 달했다. 결국 그리스는 그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재정문제 해결 안 하면 외환위기 이어진다

    -이들은 재정도 문제지만 세계경제위기의 영향으로 타격을 입은 것 아닌가? 

    “재정은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이다. 재정이 튼튼하다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만성적 경제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이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인가? 

    “당장 그렇게 되리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재정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추후에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IMF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인가? 

    “IMF 외환위기보다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당시 외환위기는 외환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인 정부 재정은 튼튼했다. 재정을 기반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국가채무 비율은 11.4%. 당시 정부는 튼튼한 재정 상황을 바탕으로 168조7000억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경제를 부양할 수 있었다.

    재정위기 시작되면 경제 만성질환 생긴 셈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재정 사용 한도 계산식. [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재정 사용 한도 계산식. [기획재정부 제공]

    -재정위기가 온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나? 

    “재정위기는 한번 오면 극복하기 힘들다.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라틴아메리카가 대표적인 예다. GDP 대비 정부지출이 과도하니 금융위기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대중 영합적인 정책을 수행하며 재정을 과도하게 썼다. 인기를 위해서라도 세금을 올릴 수는 없으니 대부분 국채를 발행해 가며 재정적자를 메웠다. 국가경제가 튼튼하다면 이 국채를 대부분 국내에서 소화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해외 자본이 주로 국채를 사들이게 된다.” 

    -해외 자본이 국채를 사는 것이 문제가 되나? 

    “해외 자본은 국가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국가의 국채를 시장에 내놓게 된다. 시장에서 매력을 잃은 국채는 금리가 계속 올라간다. 추후 상환 시점이 되면 그만큼 정부의 부담이 커진다. 외환보유고가 튼튼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재정위기가 외환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미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98.2%, 일본은 225.3%에 달한다. 한국보다는 이들이 먼저 재정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미국은 기축통화 보유국이다. 돈을 찍어낼 수 있으니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이 낮다. 일본의 엔화도 기축통화에 준하는 무역 통화로 분류된다. 게다가 일본은 국채의 대부분을 자국에서 소화한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기축통화 국가라 해도 코로나19로 재정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기축통화 국가도 지출이 갑자기 늘어난다면 문제가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정부부채 상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 정부부채 상한을 정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가재정 관리를 위해 필요한 장치가 있다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고 국가부채 상한제도 같은 강한 수준의 재정 준칙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재정 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정부도 재정 준칙 도입에 나섰다. 2020년 12월 30일 기획재정부는 국회에 재정 준칙 수립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재난 상황이라도 효율적 재정 운영해야

    -정부가 내놓은 재정 준칙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산 당국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재정 준칙을 마련하려 노력한 것은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이 준칙이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준칙이 상당히 느슨하다.”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재정 준칙에 따르면 2025년부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지 못한다.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3% 아래로 떨어져선 안 된다. 하지만 전쟁이나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발생하면 이 준칙은 면제된다. 

    -재해나 경제위기에는 준칙이 면제된다는 조항 때문인가? 

    “그렇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킬 수 있는 준칙이 필요하다.” 

    -한국은 현 정부 집권 이전까지 건전한 재정을 유지했다. 원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던 시스템을 사용할 수는 없나? 

    “그간 한국의 재정을 지켜온 것은 기획재정부의 관료였다. 규칙이 아닌 사람인지라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사람이 재정을 맡는 편이 낫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권의 압력이 행정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재정 준칙에 의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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