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시론] 김호기 교수가 말하는 ‘20대 大選 시대정신’

“‘강하고 유능한 정부’ 누가 만들 수 있는가”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입력2021-09-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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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정신은 과거 성찰, 현재 진단하는 가치 집약

    • ‘거대한 후퇴’와 ‘끝없는 변화’의 지난 10여 년

    • 정치는 ‘포퓰리즘’, 경제는 ‘플랫폼’ 중심으로 변화

    • 자산 불평등으로 한국 사회 ‘불안’ 커져

    • ‘공정 사회’ ‘해결사로서의 국가’ 강조

    • 李·尹 제시한 ‘공정’, 文정부 지지 철회한 중도 겨냥

    • 이재명 ‘성장과 공정’, 이낙연 ‘복지국가’

    • 윤석열 ‘공정과 상식’, 홍준표 ‘선진화’

    • 삶에 선행하는 시대정신은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에 오른 여야 대선 후보들. 왼쪽에서부터 이재명 경기도 지사,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뉴스1]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에 오른 여야 대선 후보들. 왼쪽에서부터 이재명 경기도 지사,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뉴스1]

    바야흐로 ‘대선의 시간’이다. 2022년 3월 9일에는 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시대정신’이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된다. 대선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중대한 정치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란 대체 뭘까. 2020년대를 지나는 현재, 지구적 차원에서 시대정신이 놓인 자리는 어디이고,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길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또 유력 대선 후보들은 어떤 시대정신을 주장하고 있는가.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말은 괴테의 불멸의 고전 ‘파우스트: 한 편의 비극’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제자 바그너와 대화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대들이 시대정신이라 부르는 것은, / 실로 매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 저자(著者) 양반들 자신의 정신이라네 / 그래서 실로 한탄할 만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지!”

    파우스트의 탄식에 대한 바그너의 답변이다.

    “그러나 이 세계! 인간의 마음과 정신! / 모두가 이것들에 대해 무언가 알고 싶어 합니다.”



    근대 태동기에 등장한 ‘시대정신’

    1789년 시작된 프랑스대혁명에 대해 괴테는 양가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편에선 낡은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프랑스대혁명 이전의 절대군주 체제, 즉 구체제)의 극복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혁명의 급진적 전개를 우려했다. 독일 부르주아 계급으로 태어나 일찍이 정치적·예술적 성공을 거둔 괴테의 삶을 돌아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양가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가 위대한 것은 괴테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했다는 데 있다. 근대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인 시대,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한 시대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모험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이다.

    프랑스대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고전 반열에 오른 것은 새로운 체제의 시대정신과 그 시대를 사는 인간의 정신을 탐구했다는 점 때문이다. 괴테는 “삶이란 결코 완성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삶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완성된 결과 자체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모험의 마지막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괴테는 유토피아는 주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바로 그러한 노력과 분투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게 새로운 근대의 시대정신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괴테의 문제의식은 이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새로운 시대로 변화하는 역사적 분수령에서 그의 시대정신은 반드시 소환됐다. 대선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모멘텀에서 시대정신을 생각해 보려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구 전통에서 시대정신은 특정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공통되는 정신적 태도·양식·이념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시대정신은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다. 시대정신은 한 사회의 발전에서 북극성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어둠 속의 망망대해에서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북극성처럼 한 국가의 미래 좌표로서 의미를 가진다. 시대정신 탐구의 제1과제는 지구적·일국적 차원의 변동에서 과거를 성찰해 보고 현재를 진단하는 것이다.

    2008 금융위기 후 들어선 암중모색기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년 9월 16일 코스피는 1387.7로 마감했다. [동아 DB]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년 9월 16일 코스피는 1387.7로 마감했다. [동아 DB]

    먼저 지구적 차원에서 지난 10여 년은 대침체 이후 ‘암중모색기’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대침체란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말한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1990년대 말,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21세기를 우울하게 전망한 바 있다. 21세기가 되면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저급한 선동정치가가 등장하며, 병적인 가학성 세계로 회귀해 여성과 소수자를 증오하는 경향이 만연할 것이라는 예견을 내놓았다.

    로티의 예측은 안타깝게도 틀리지 않았다.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2014)과 포퓰리즘을 다룬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가 전 세계적 화제를 모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 불평등의 확산은 우리 인류를 불만과 불안의 세계로, 포퓰리즘의 발흥은 격정과 분노의 세계로 안내했다.

    인류의 삶은 최근 10년간 크게 흔들려왔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경기침체와 뉴노멀(New Normal·저성장으로 대표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질서)의 등장,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비즈니스의 약진, 중국의 부상과 미·중 경제전쟁의 개막,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위기, 불평등의 강화와 사회갈등의 증대, 정보사회의 진전과 포스트트루스(Post Truth·탈진실) 시대의 도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민족주의의 분출, 개인주의와 부족주의의 동시 심화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까지 발생했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뉴노멀’ ‘불안’ ‘글로벌 위험’이다. 비정상적인 것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뉴노멀이었다면, 이러한 변화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불안이다. 이 와중에 지난해 인류는 글로벌 위험으로서의 코로나19 팬데믹과 마주했다. 변화의 방향은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여기에 속도까지 더해져 인류는 낯선 풍경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거대한 후퇴와 끝없는 변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암중모색 과정은 독일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이 제안한 ‘거대한 후퇴’의 시기다. 거대한 후퇴란 세계질서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는 형국을 의미한다. 동요하는 세계화와 불평등의 강화,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퇴조, 연대와 통합의 시민문화 고갈은 거대한 후퇴의 구체적인 증거들이었다.

    암중모색의 과정에서 ‘끝없는 변화’도 시작됐다. 미국 경제학자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은 이를 ‘트리플 혁명’이라 한다. 머신·플랫폼·클라우드 발전이 이끄는 변화의 시대라는 의미다.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머신 능력의 혁신, 구글로 대표되는 플랫폼 기업의 부상,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집단지성인 클라우드의 등장은 경제적으로 ‘혼동 속 성장’을 가져왔다.

    이를 주도하는 플랫폼의 네 거인은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이다. 플랫폼의 세계에는 빛과 그늘이 존재한다. 플랫폼은 스타트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을 달성한 스타트업)으로, 다시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을 달성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혁신의 공간을 제공한다. 동시에 플랫폼은 노동시장과 부의 새로운 양극화가 진행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혼동 속 성장이 경제의 특징이라면,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성장 속 혼동’이 두드러졌다. 모바일 사회의 진전은 개인적 삶과 사회적 활동의 초연결을 낳았고, 동시에 탈진실 시대를 열었다. 탈진실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서와 신념은 진리와 도덕의 자리를 대신한다. 나아가 중간적 완충지대를 소멸시켜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끝없는 변화’는 정치·사회·문화 분야에서도 명암을 드리웠다. 개인주의의 발달로 오늘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경유하지 않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가 개념화한 ‘부족주의’와 이와 연관된 포퓰리즘 또한 강화됐다. 특히 포퓰리즘은 기득권 대 국민의 균열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위협해 왔다. 개인주의 대 부족주의, 민주주의 대 포퓰리즘의 혼란스러운 공존은 우리 시대의 생생한 자화상이다.

    시대정신의 제2과제가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라면 지구적 차원에서 2020년대를 이끌 시대정신은 무엇이 돼야 할까. 먼저 거대한 후퇴에 맞서는 ‘새로운 회복’이 요구된다. 새로운 회복은 불안과 분노를 해소할 포용적 성장과 불평등의 완화를 겨냥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사회·경제적 격차를 키워 사회갈등을 증대시키는 상황을 고려할 때,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어 끝없는 변화에는 ‘민주적 혁신’이 요구된다. 2020년대 도래할 플랫폼의 시대에서 플랫폼에 내재한 승자독식 경향을 완화할 섬세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나아가 탈진실과 포퓰리즘에 맞서서 다원적 공론장을 형성하고 시민사회에 자율적 활력을 북돋아야 한다. 요컨대,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회복’과 ‘민주적 혁신’을 인류가 지향할 새로운 가치이자 시대정신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1945년 광복 직후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은 ‘새로운 나라 만들기’였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적 산업화’와 자유와 평등을 누리려는 ‘정치적 민주화’가 두 축이었다. 1960~80년대의 산업화 시대와 1987년 이후의 민주화 시대는 이렇게 열렸다.

    민주화 이후 시대정신으로 선진화와 복지국가가 제시됐다. 민주화를 넘어 사회를 선진화해야 한다는 진단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였다. 선진화가 보수 시민에게 설득력이 높았다면, 복지국가는 진보 시민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선진화는 2007년 대선을 이끈 담론이었고, 복지국가는 2012년 대선을 주도한 의제였다.

    2021년 한국 사회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최근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입구에 도달해 있고, 그만큼 서구사회와의 거리감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앞서 말한 거대한 후퇴와 끝없는 변화의 한가운데 한국 사회 역시 놓여 있다. ‘성공의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 아래 ‘위기의 대한민국’에 대한 불안감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불안의 거시적 실체는 두 가지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비즈니스 활성화로 인한 일자리 문제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부담 증가가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 미시적 차원에서의 불안 역시 두 가지다. 젊은 세대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자신의 생애에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고령 세대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노후 빈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 겹의 불안은 결국 불평등 문제와 맞닿아 있다. 특히 아파트 가격으로 대표되는 자산 불평등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강화하는 삶의 질 양극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당장 풀어야 할 일차적 과제는 불평등 해결이다. 경제적 불안은 사회적 분노로 전이되고, 이 분노의 그늘에서 혐오와 적대 감정이 서식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성장과 공정’, 이낙연 ‘복지국가’

    1970년 7월 7일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산업화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1970년 7월 7일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산업화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한국도로공사 제공]

    이러한 진단 아래 대선을 6개월 앞둔 지금, 여야 유력 후보로 평가되는 이들이 제시하는 시대정신을 살펴봤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이 지사는 ‘공정 성장’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 정치’ ‘모두 함께 잘사는 대동 사회’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다. 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성장과 공정’이다. 성장이 경제적 과제라면, 공정은 사회적 목표다. 이 지사는 출마 선언문에서 “대공황 시대 뉴딜처럼 대전환의 시대에는 공공이 길을 내고 민간이 투자와 혁신을 감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력한 경제정책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공정 성장이 겨냥하는 바를 분명히 보여준다.

    경제적 공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정도 강조한다. 이 지사는 “규칙을 지켜도 손해가 없고 억울한 사람도, 억울한 지역도 없는 나라, 기회는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를 약속했는데, 이는 사회적 가치로서 공정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요컨대, 이 지사의 시대정신을 하나의 개념으로 파악한다면 공정 성장과 공정 사회를 아우르는 ‘공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전 대표가 내건 국가 비전은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다. 구체적으로 △신복지 △중산층경제 △헌법개정 △연성강국 신외교 △문화강국을 5대 비전으로 내놓았다. 이 가운데 특히 강조한 것은 사회와 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신복지’와 ‘중산층경제’다. 신복지가 소득·주거·노동·교육·의료·돌봄·문화·환경에서 최저한의 생활을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의미라면, 중산층경제는 현재 57%인 중산층을 7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

    이 전 대표는 ‘복지’를 자신의 시대정신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볼 때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는 21세기에 들어와 꾸준히 탐구돼 온 문제다. 박세일 교수의 선진화 담론은 보수 세력의 대표적인 시대정신이었고, 이에 맞선 복지국가 담론은 진보 세력의 대표적인 시대정신이었다. 이 전 대표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이러한 흐름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공정과 상식’, 홍준표 ‘선진화’

    2월 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거리에 세워진 미용실 광고판에는 마스크와 비닐캡을 쓴 모나리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아일보 송은석 기자]

    2월 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거리에 세워진 미용실 광고판에는 마스크와 비닐캡을 쓴 모나리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아일보 송은석 기자]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의 시대정신은 국민의힘 경선이 늦게 진행돼 아직 구체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윤 전 총장이 제시한 국가 비전에서 주목할 것은 세 가지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이 하나라면, 이념과 진영의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마지막 하나는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시장 질서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장과 통합을 중시하는 보수적 정치이념에 충실하면서, 그동안 반복해 주장해 왔듯 ‘공정과 상식’을 자신의 시대정신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홍 의원은 ‘정상국가와 선진국 시대’를 비전으로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7대 개혁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선진국 수준의 정치·행정 시스템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선진국형 경제 시스템 △서민복지 체계 확립 △무너진 공정 바로 세우기 △선진 사법 체계 구축 △강력한 안보와 강력한 나라 △문화 다양성 회복이다. 전반적으로 홍 의원은 앞서 언급한 고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선진화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 점을 주목해 홍 의원의 시대정신은 ‘선진화’로 파악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이 공정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 있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언명은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였다. 문제는 많은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적지 않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가 기회나 과정에서 평등하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중도층의 이반은 공정한 대한민국을 내걸었던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은 평등과 정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사회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위계적일 수밖에 없더라도, 부당한 방법과 수단으로 부와 권력을 얻었다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불공정하다는 감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감각은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상대적 박탈감은 불공정의 감각이 누적되면서 분노로 진화한다. 여기서 내가 공정을 강조하는 것은 현재 이 전 지사와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이유가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공정사회’와 ‘해결사로서의 국가’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봐야 할까.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과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위험사회가 결합하면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는 ‘뉴노멀 2.0 사회’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앞서 말한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회복과 민주적 혁신은 바로 뉴노멀 2.0 사회에 대응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현재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강하고 유능한 정부’다. 경제의 불확실성과 위험의 상시화라는 미래의 도전에 맞서 정부는 시장을 적절히 제어하고 국민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강한 존재이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유능한 존재여야 한다. 미래의 디자이너이자 해결사가 필요한 것이다.

    사회의 복합성이 크게 증대한 21세기에 시대정신이 단수일 필요는 없다. 시대정신이 복수라면,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공정 사회’와 ‘해결사로서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파우스트’로 돌아오면, 이 불멸의 고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은 다음과 같다.

    “소중한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네. 그러나 삶의 황금 나무는 초록색이지.”

    어떤 이론과 사상, 시대정신도 삶에 선행하지는 않는다. 2022년 대선이 관념과 이념에 앞서 국민 다수의 실제적인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시대정신의 경연장이 되길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시대정신 #20대대선 #김호기 #신동아


    김호기
    ● 1960년 출생
    ●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 前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
    ● 現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저서: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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