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외상’이라 불리는 BNPL
신용카드와 달리 가입 요건, 연회비 없어
보안 프로그램 필요 없어 사용도 간편
미국, 유럽권 MZ세대에게 각광
BNPL “글로벌 전자상거래 회사에는 필수”
아마존, 페이팔은 물론 네이버, 쿠팡도 도입 고려
8월 31일 아마존은 ‘BNPL(Buy Now Pay Late·선구매 후결제)’ 서비스업체인 어펌(Affirm)’과 제휴하고 BNPL 결제 방식을 도입했다.
이 시각 발표된 어펌과 아마존의 협력 소식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어펌은 ‘BNPL(Buy Now Pay Later·선구매 후결제)’로 불리는 후불 결제 서비스 제공업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결제 방법 중 하나로 어펌을 적용한다는 소식에 기대감이 폭발했다. 이 기대감은 월요일인 8월 30일까지 이어졌다. 정규 시장이 열리자마자 어펌의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했고, 단 하루 만에 46.67% 상승, 투자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마존과 어펌의 협력은 기록적인 주가 급등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미국 전자상거래 점유율 47%(GMV·총거래액 기준)를 차지한 아마존의 상징성 때문이다. 3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유통 공룡’이 후불결제(BNPL)를 도입했다는 건 그만큼 BNPL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IT·투자업계에서는 “BNPL이 신용카드, 현금처럼 대중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마존 참전…BNPL 대세로
에릭 모스(Eric Morse) 어펌 수석부사장은 “아마존과 협력해 수많은 미국 소비자에게 투명성, 예측 가능성, 합리적 가격을 제공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결제 선택지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BNPL은 신용카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은 소비자가 50달러 이상 상품을 결제할 때 어펌 할부 옵션을 제공할 예정이다.실제로 미국, 유럽에서 BNPL은 거대한 트렌드로 부상하는 추세다. 미국 핀테크 업체 ‘스퀘어’가 지난 8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의 BNPL 업체 ‘애프터페이’를 기업가치 290억 달러(약 34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 예다. 호주 증시에 상장돼 있는 애프터페이의 시가총액(7월 30일 기준) 대비 30.6%의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인수·합병으로, 역대 호주 기업 인수·합병 중 최대 규모의 빅딜이었다.
트위터 창업자이기도 한 잭 도시 CEO가 설립한 ‘스퀘어’는 미국 핀테크 산업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꼽힌다. 그가 이런 과감한 인수·합병을 추진한 배경에는 BNPL 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평가다. 원조 핀테크 기업 ‘페이팔’ 역시 자체 BNPL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도 BNPL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BNPL 서비스인 ‘애플 페이 레이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90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한 스웨덴 BNPL 업체 ‘클라르나(Klarna)’가 유명하다.
벤처투자자인 톰 서(Tom Seo) ‘대시 펀드(Dash Fund)’ 공동 설립자는 프로토콜과의 인터뷰에서 “(핀테크 및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BNPL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라며 “BNPL은 모든 전자상거래, 결제 회사의 ‘기본 조건(table stakes)’이 됐다”고 했다.
발급 절차·심사가 없는 BNPL
BNPL 대표 주자인 어펌의 올해 1분기 총거래액(GMV)은 23억 달러(약 2조7000억 원), 활성 사용자(active consumers)는 540만 명에 달한다.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83%, 60%씩 급증한 수치다. 상품 판매 시 결제 수단으로 어펌을 제공하는 활성 판매자 수는 1만2000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두 배로 늘었다.BNPL이 이처럼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드 회사들이 기존에 제공하던 할부 결제와 비슷하지만, 카드 발급 절차, 신용(credit) 심사 과정이 없다. 신용 점수가 없어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못했거나 계좌 잔고가 없는 경우에도 BNPL을 이용해 물건을 구매하고 일정 기간 나눠서 갚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신용카드 발급이 우리나라처럼 자유롭지 않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면 합법적 근로가 가능하다는 증명인 사회보장번호(SSN)가 필요하며 소득 증명이나 일정 규모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거래 이력이 없는 대학생이나 신용 점수가 낮은 청년층이 할부로 물건을 사기 어려운 환경이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가 BNPL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돈을 낼 필요가 없고, 어펌이 판매자에게 돈을 지급한다. 소비자는 결제 후 6주부터 48개월까지 다양한 할부 기간에 맞춰 이를 갚기만 하면 된다. 상품 판매자 처지에서는 후불 결제 옵션을 제공해 제품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 특히 Z세대를 타깃으로 한 기업들이 BNPL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다.
어려운 할부 이자 계산도 간단
유럽을 대표하는 BNPL 업체 ‘클라르나(Klarna)’. [클라르나(Klarna) 홈페이지 캡쳐]
소비자에게 명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 카드 업체와 달리 어펌은 투명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어펌은 홈페이지에도 신용카드와 BNPL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어펌은 있는 그대로 말한다. 연체료를 내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펠로톤(Peloton·구독형 홈트레이닝 서비스)’ 등 어펌 후불 결제를 제공하는 브랜드의 상품 구매 과정을 따라가 보면 “월 124.58달러씩 12개월 나눠서 갚으면 총 1495달러를 내게 된다”는 자세한 숫자를 확인할 수 있다. 24개월이면 월 62.29달러, 39개월이면 월 38.33달러다. 정가 1495달러짜리 제품을 동일한 비용에 39개월에 걸쳐 무이자로 살 수 있다. 대신 BNPL은 가맹점 수수료를 받는다. 판매자가 사용료를 내는 구조인 셈이다.
어펌은 펠로톤 외에도 무이자 후불 결제를 제공하는 협력 업체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자를 내야 하는 경우에도 신용카드 연회비, 연체료 등 잘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없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 버클리에 거주하는 기예르모 알티에리(27) 씨는 “이자가 붙더라도 정해진 금액만 지불하면 된다는 점이 좋다. 신용카드보다 BNPL을 선호한다”고 했다. 어펌과 달리 애프터페이와 클라르나의 경우 각각 연체료를 10달러, 7달러로 책정해 두고 있지만, 이 사실을 명확히 고지해 혼란을 막고 있다.
미국의 BNPL 시장 규모 증가세를 보여주는 그래프. [스태티스타(Statista) 제공]
보안 프로그램 없어도 사용 가능
마지막 차별점은 편리성이다. ‘무이자 4회 분납(Pay in 4)’ 정책을 앞세운 애프터페이, 클라르나 등 다른 주요 BNPL 기업 역시 결제 시 복잡한 보안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지 않으며 앱뿐 아니라 웹에서도 쉽게 결제할 수 있다.세 업체 모두 직관적인 사용자 환경(UX)을 갖췄고, 상환할 때도 신용카드, 직불카드, 온라인 송금 등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상환 시기를 기억할 수 있게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사전 알림(reminder)도 제공한다.
이처럼 BNPL 업체는 번거로운 절차를 제거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자의 만족도를 끌어올렸다. 데이비드 사이크스(David Sykes) 클라르나 북미 책임자는 “미국 내 고객의 급증은 유연한 결제 옵션, 원활하고 편리한 쇼핑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다”고 했다. 미국 투자 매체 모틀리 풀(Motley Fool)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BNPL을 사용해 본 세대 중 Z세대(18~24세) 비중이 61.16%(올해 3월 기준)로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향후 젊은 세대의 구매력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YPulse)’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구매력은 2020년 기준 2조5000억 달러(약 2900조 원)에 달한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올해 550억 달러(약 63조6400억 원) 규모인 미국 내 후불 결제 시장이 2024년에는 1140억 달러(약 131조9000억 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기업도 관심…채무 유발 우려도
결제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인프라(기반)이기 때문에 BNPL의 미래 전망이 밝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광이 아니라 청바지를 파는 비즈니스가 성공한다”는 격언처럼 결제 솔루션은 전자상거래업체뿐 아니라 대부분의 디지털 기업이 활용하는 도구가 됐다.이 분야에 벤처투자금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정보회사 ‘CB인사이츠’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BNPL 등 결제 스타트업이 유치한 자금 규모는 49억 달러(약 5조7000억 원)로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 분야 중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유치한 자금 대비 172% 증가한 수치다.
한국 IT 기업들 역시 BNPL 흐름에 동참하는 추세다. 쿠팡은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로켓배송 상품을 구입한 후 다음 달 15일에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나중결제’ 서비스를 도입했고, 네이버는 일부 고객에게 월 20만~30만 원 한도의 ‘네이버페이 후불 결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BNPL이 밝은 미래만 약속하는 건 아니다. 저신용자나 수입이 변변치 않은 젊은 층의 채무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모틀리 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BNPL 사용자 중 45%가 자신의 예산을 뛰어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BNPL 서비스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신용카드의 한도가 초과돼 BNPL을 사용했다는 응답자도 17%에 달했다.
BNPL 업체들은 내부 신용평가 모델, 알고리즘 등을 활용해 채무 불이행 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펌에 따르면 어펌 사용자의 36개월 채무 불이행률은 1.1% 수준에 그친다. 클라르나 역시 채무 불이행률이 1%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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