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의혹’ 의원 25명 중 11명이 농지법 위반 가능성
땅 사놓고 방치, 불법 대리 경작
양이원영母 평택 땅 가보니…잡풀만 무성
인근 부동산 “기획부동산에 당한 듯”
윤희숙 父 세종 땅 시세차익 11억 원 예상
20여 년간 이어져 온 공직자 농지법 위반
경자유전 원칙에서 ‘농지농용(農地農用)’ 제도로
“농지 관리할 포괄적 국토보전계획 필요”
9월 9일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방리에 있는 논. 계단 형태로 펼쳐진 1만871m²(3300평) 규모의 토지는 윤희숙 국민의힘 부친의 소유다. [문영훈 기자]
‘신동아’는 권익위 자료를 입수해 국회의원들의 농지법 위반 사례를 분석했다. 또한 공직자 농지법 위반 문제가 되풀이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전문가에게 물었다.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3기 신도시로 개발될 경기 광명·시흥 지역 농지를 취득한 사실이 밝혀져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국회의원 농지 소유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권익위 내 ‘부동산 거래 특별 조사단’은 국회의원 300명과 그 가족에 대해 최근 7년간 부동산 거래 내역을 조사했다.
권익위 자료와 언론보도에 따르면, 농지법 위반 의혹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농지를 취득한 뒤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강원 평창군 방림면 일대에 32필지, 약 11만m²(3만3333평) 규모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토지는 경작은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취득한 농지에 대한 불법 임대차계약을 맺은 경우도 있다. 오영훈 민주당 의원은 2017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일대에 3871m²(1173평) 규모의 농지를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는데, 2018년부터 마을 주민에게 임대했다. 농지법에 따르면 직접 경작하지 않고 농지를 임대하려면 한국농어촌공사에 위탁해 계약을 맺어야 하지만 이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각각 강원경찰청과 제주경찰청은 농지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외지인이 점령한 평택
9월 9일 경기 평택시 현덕면 장수리의 한 필지. 왼쪽 논과 비교하면 잡풀이 우거져 있다. 해당 필지는 양이원영 무소속 의원의 모친이 2017년 사들인 땅이다. [문영훈 기자]
이로 인해 외지인의 평택 농지 투자도 빈번했다. ‘한겨레21’이 2017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거래된 경기도 토지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평택 소재 농지를 구매한 외지인 비율(84.2%)이 경기도 전체에서 가장 높았다.
양이원영 무소속 의원의 모친 이모 씨도 그중 하나다. 등기부등본상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이씨는 2017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경기 평택시의 토지 다섯 곳을 매입했다. 최소 33m²(1평)에서 최대 82m²(25평) 규모로 거래금액을 모두 합치면 1억9185만 원에 달한다. 모두 한 필지를 여러 명이 공유해 소유하는 지분 쪼개기 형태다.
9월 9일 기자는 이씨가 보유한 평택 현덕면 장수리 필지 두 곳을 방문했다. 인근 논에서는 한창 벼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지만 이씨가 소유한 땅에만 잡풀이 무성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이 입수한 농업경영계획서에는 자기 노동력으로 벼 등을 경작하겠다고 나와 있다.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농지법 위반이다.
평택에 땅을 산 국회의원 가족은 또 있다. 2017년 7월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배우자 조모 씨는 경기 평택시 현덕면 황산리 33m²(10평) 규모의 농지를 2744만 원에 구입했다. 해당 필지 역시 조씨 외 공유자 27명이 함께 소유하는 지분 쪼개기 방식이다. 평택 경찰서는 조씨를 농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직접 경작하지 않은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덕면에서 농사를 짓는 70대 홍모 씨는 “3~4년 전부터 개발 이야기가 돌면서 외지인이 농지를 다 쓸어갔다. 그때보다 가격이 두 배는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본 인근 부동산 중개인들은 “이들이 시세차익을 거두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2017년 당시 현덕면 인근 토지 가격은 평당 40만~60만 원 선이었는데 이씨는 평당 약 200만 원, 조씨는 평당 약 270만 원을 주고 해당 토지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씨는 4월 자신이 산 가격(2744만 원)보다 244만 원 저렴한 가격(2500만 원)에 해당 토지 지분을 팔았다.
평택 안중읍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성수 씨는 “전형적인 기획부동산 사기에 당한 것”이라 말했다. 기획부동산은 사실상 개발이 어려운 토지를 싼값에 사들인 후 개발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일종의 사기다. 이씨와 조씨가 구매한 농지와 같이 한 필지를 여러 명에게 쪼개 파는 수법을 사용한다. 이어지는 김씨의 말이다.
“최근 5년간 서울에 근거지를 둔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내려와 지역을 돌며 구매할 땅을 구하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에 혹해 땅을 산 사람들 잘못도 있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지자체 책임도 피할 수 없다.”
같은 날 방문한 세종시 전의면 일대에는 ‘토지 매입’ ‘땅 투자’ 등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행정수도 이전과 산업단지 개발 이슈로 세종에도 투기 바람이 불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세종시 지가 상승률은 10.62%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 발표 후 논란을 일으킨 윤 전 의원 부친 윤모 씨의 농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윤희숙 父 사다리꼴 계단식 논 가보니…
8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의원은 “문제가 된 농지는 매각되는 대로 이익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평택 사례와 달리 윤씨는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해당 토지는 당시 8억2200만 원에 거래됐는데, 평당 약 25만 원이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해당 토지 가격은 평당 60만 원 선. 현시점에서 토지를 처분한다면 11억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여당은 윤 전 의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하면서 얻은 내부 정보로 가족과 함께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부친의 땅은 세종시 스마트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지인 세종시 연서면에서 직선거리로 약 10㎞ 떨어져 있다. 해당 산업단지는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지역공약으로 채택돼 2020년 9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마쳤다.
세종시 전의면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대리 경작한 정황을 보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사전 정보를 알고 투기한 것이라면 땅 모양이 특이하고 산으로 막혀 있는 외진 곳을 택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실제 찾은 윤씨의 땅에는 산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의 계단식 논이 형성돼 있었다.
농지법 위반 혐의를 놓고 여야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국회의원에 이어 9월 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부친이 2004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2023m²(613평)의 농지를 구입해 17년간 방치해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법 위반 색출에만 골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기 사례를 찾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농지법 위반 사례가 왜 계속 나오는지 파악하려는 시도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공직자 농지법 위반 혐의가 문제가 된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2005년 3월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재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배우자의 부동산투기 의혹 및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2008년에는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배우자가 인천 영종도 땅을 농업 경영에 이용하지 않아 농지법 위반 혐의가 제기됐다. 2013년과 2019년에는 19·20대 국회의원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기도 했다.
농지법 위반이 많은 이유
농지법 위반 의혹이 이처럼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농지에 대한 감시·감독 부재 탓이 크다. 실제 농지를 취득하려면 농지법에 제시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관할 지자체장으로부터 농지취득자격증을 발급받고, 필요한 장비·인력 등을 기록한 농업증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언뜻 까다로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간 연도별 경기도 농지취득자격증명서 신청·발급 건수’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농지취득자격증 신청은 총 33만5008건이다. 이 중 실제 발급된 비율은 98.27%(32만9215건)로 사실상 누구나 신청만 하면 농지를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LH 사태’ 이후 농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총 12차례 발의됐고, 7월 23일 농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농지취득자격 심사를 강화하고, 농지법 위반 사항이 적발될 시 바로 처분토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7월 13일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 전국 농지이용 실태조사’를 실시해 10년 이내 관외거주자가 소유한 토지에 대해 농지를 전수 조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농지법을 전문으로 하는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의 말이다.
“농지법 개정으로 일부 규제가 강화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농지를 관리·감독하느냐다. 기존에도 농지법 위반이 적발될 시 처분 조치 명령을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시 강제 이행금을 부과하는 법령이 있었지만 적발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으니 농지법이 유명무실하게 존재했던 것이다.”
“경자유전 대신 농지농용”
9월 9일 세종시 전의역 인근의 한 부동산 앞 투자용 계획관리 지역(농지)에 대해 문의하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문영훈 기자]
헌법 제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부재지주는 갈수록 늘고 있다. 1월 28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 화성·안성·여주시(각 1개 마을)와 경남 거창시(2개 마을)에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부재지주 농지 면적이 전체 조사 면적의 30.5%에 달한다. 경기 여주시의 한 마을은 부재지주 비율이 91.1%에 달하기도 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었던 박석두 GS&J 연구위원은 경자유전 대신 ‘농지농용(農地農用)’ 제도, 즉 농지는 농지로만 쓰게 하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농지법상 상속받은 농지는 직접 경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농지를 상속받을 사람 중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비율이 전체의 5% 이하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경자유전의 원칙은 실효성이 없다. 소유는 누구나 할 수 있게 하되 그 땅을 농업에만 사용하게 하는 방식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임영환 경실련 농업개혁위원도 “경자유전 원칙이 현실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가가 농지 보전 계획을 수립해 국토에서 필요한 농지를 정하고 해당 농지의 전용 가능성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농지의 전용이나 개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경자유전 원칙이 폐지되면 농지 가격이 올라 농지를 갖고 있지 않은 농민들이 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농지법 논란이 마무리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실제 농민들이다. 기자가 만난 세종시 전의면에서 농사를 짓는 70대 김모 씨의 말이다.
“농지가 외지인으로부터 점령당할 때까지 정치인들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농지법 위반이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진다. 그러니 문제점은 고쳐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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