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이후 대출 사기 문자 신고 330% 급증
정부 지원 대출 사칭하고 청년·소상공인 노려
“정부 지원 대출 대상” “은행보다 저렴 대출” 등 유인
저금리 대출 상환 안내하는 척 돈 가로채기도
대출 사이트서 100만 원 빌리면 열흘 뒤 150만 원 상환해야
“대부업체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청년 현실 되짚어 봐야”
[GettyImage]
코로나 사태 이후 대출 사기 문자 신고 330% 급증
급한 마음에 해당 번호로 전화하니 상담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전자신청서만 접수가 가능하다면서 A씨의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라고 권했다. A씨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상담원이 안내하는 대로 문자메시지에 첨부된 URL(IP 주소)를 눌러 앱을 내려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A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S은행 계좌에서 840만 원이 인출됐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메신저 피싱에 당한 것 같다고 했다. 그제야 A씨는 자신이 속은 걸 알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30대 자영업자 B씨도 얼마 전 K은행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신용보증재단의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대상자로 선정됐으니, 대출 가능한 금액을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1년 동안 연 1.52%의 이자를 무료로 지원해 준다”는 문구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성동구에서 족발 가게를 운영하던 B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문자메시지에 고지된 방법대로 휴대전화에 앱을 깔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아 K은행 지점에 전화로 확인한 뒤에야 금융 사기임을 알게 됐다.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정부의 긴급 자금 대출을 빙자해 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한 메신저 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8월 대출 사기로 의심되는 문자 신고 건수는 총 1172건으로, 지난해 9월(272건)보다 330% 급증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언론과 금융 당국의 지속적인 홍보로 메신저 피싱 수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제고되면서 기존 수법으로는 과거처럼 쉽게 사기에 성공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과거 기승을 부리던 허위 대출 상품을 단순 안내하던 대출 사기 문자가 요즘엔 허위 대출 승인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내용의 메신저 피싱으로 옮겨왔다. 그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밝혔다.
급기야 8월 5일 금융감독원은 “정부의 국민 재난지원금 또는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 지급을 빙자한 대출 사기 문자메시지 발송이 급격히 늘어날 우려가 있으니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달라”며 ‘소비자 경보(주의)’ 조치를 발령했다.
7월 15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영업을 중단한 서울 중구의 한 중식당. 코로나19 확산으로 사면초가에 놓인 청년층 소상공인을 노리는 메신저 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아DB]
정부 지원 대출 사칭하고 청년 소상공인 노려
메신저 피싱 수법은 아주 다양하다. △당사자가 신청하지도 않은 대출 상품의 승인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문자메시지를 발송한다. △정부 정책자금 지원을 빙자하고 KB국민, 신한 같은 시중은행 또는 신용보증재단 상호나 ‘국민행복기금’ ‘버팀목 자금 플러스’ ‘새희망홀씨’와 같은 시중 대출 상품 문구를 사칭해 현혹한다. △대출 신청 기한을 임박하게 기재하고, 대출 이자를 정부에서 1년 동안 지원한다는 문구로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한다. △‘365일 24시간 상담 가능, 신청 가능 대출금 조회’ 같은 문구를 이용해 개인정보를 남기도록 유인한 후 해당 정보를 탈취하는 식이다.중장년층보다 금융 거래 경험이 적고 물정을 모르는 청년층 소상공인이 메신저 피싱 사기범의 주요 범행 대상이 된다. 청년층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 연락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아 사기단끼리 공유하기도 한다. 메신저 피싱 수사에 정통한 한 수사관은 “일단 돈이 궁한 청년 사업자는 불안감을 조성하면 사기에 걸려들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시국에도 장사를 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린 탓에 이자가 부담되고 돈 빌리기가 쉽지 않다 보니 정부가 지원하는 대출을 받으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피해자들은 ‘이자가 더 오르기 전 미리 대처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멀어 경계심을 푼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언급한 20대 청년 사장 A씨처럼 ‘원격제어 앱’을 설치한 경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팀 뷰어’ ‘퀵 서포트’ 등 원격제어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하면 사기범은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자신의 전화기처럼 일일이 들여다볼 수 있다. 이름·연락처·대출 현황과 같은 개인정보 탈취는 물론 대출 신청, 온라인 결제 등 금전적 편취도 가능하다. 4월 대전 천안시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다 적발된 사기단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원격제어 앱을 통해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피해자의 신용카드 정보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해 92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결제했다. 그나마 피해자가 상품권업체 측에 곧장 전화를 걸어 ‘블록 처리’를 요청한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블록 처리는 현금 지급 정지와 같이 사기꾼에게 노출된 핀(PIN) 번호(상품권 하단에 적혀 있는 번호)를 일정 기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이다. 이 사기범들은 현재 컴퓨터 등 사용 사기 등의 혐의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저금리 대출 상환 안내하는 척 돈 가로채기도
최근에는 “저금리 대출 전환 대상자로 선정됐다”며 기존 대출금 상환을 안내하는 척하면서 돈을 가로채는 피싱도 성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범행 수법을 보자. 사기범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은행을 사칭해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뒤 “저금리 대출 상품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니, 대출금 전부 또는 일부를 상환하면 그 금액만큼 저금리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피해자를 유혹한다. 그러고 나서 “대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피해자로 하여금 원격조정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하게 한다. 이후 피해자에게 기존 대출 은행에 전화를 걸도록 유도한다. 피해자가 기존 대출 은행에 전화를 걸면 사기범은 원격조정 앱을 실행해 가짜 콜센터로 전화가 연결되도록 조치를 취한다. 그런 다음 기존 대출 은행 직원인 척 “타 은행 측으로부터 방금 일시 상환 요청을 받았으니, 지정하는 계좌번호로 대출금 일부를 송금해 상환하면 된다”고 피해자를 속여 송금하게 한다.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금융사기단은 중국 또는 수사기관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지역에서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 한국에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를 보낸 뒤 코로나19 지원 대출 신청을 빙자해 피해자의 돈을 무통장 입금하도록 유인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코로나19 특별 자금 지원’을 빙자한 대출 광고는 모두 메신저 피싱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메신저 피싱 사기단 대부분은 보이스 피싱 사기 조직이다. 이들은 범행 전체를 총괄하는 총책과 총책의 지시를 받아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책,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시중은행 등을 사칭해 거짓말로 피해자들을 기망하는 유인책 또는 콜센터, 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을 인출해 전달하는 현금인출책, 범행에 사용할 대포통장이나 조직원을 모집하는 모집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다.
수사기관은 피싱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와 접촉한 현금수거책 또는 유인책이 남긴 휴대전화 번호나 메시지를 단서로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경찰이 총책이나 관리책 같은 주범까지 검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수시기관의 한 관계자는 “범죄에 가담한 현금수거책이나 유인책을 붙잡아도 조직으로부터 ‘빌려준 돈을 대신 받아오라’는 말만 따랐을 뿐, ‘피싱 범죄인 줄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탓에 윗선까지 수사망을 확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고금리 대출 직거래 사이트 10일에 이자 67%?
시중은행보다 조건이 좋다는 말에 넘어간 사업자가 대출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소액을 빌렸다가 불법 대부업체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 대출 직거래 사이트의 주 고객층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은 청년층 소상공인이다.대출 직거래 사이트는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올린 게시물을 대부업체가 보고 연락처를 남겨 대출이 성사되게 하는 일종의 비대면 대부 중개 사이트다. 시중은행보다 대출 승인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신용도 낮은 청년층 소상공인도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한 온라인 대출 직거래 사이트에는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는 대출 신청 게시물이 하루에 100개 넘게 올라온다. 한 신청자는 “경기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이틀 내 150만 원을 마련해야 한다. 1주일 뒤 상환할 예정이니 대출 가능한 업체는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썼다.
대출 직거래 사이트에서 연결해 주는 일부 대부업체는 최고 금리(20%)가 법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를 비웃듯 높은 이자를 받으며 청년 소상공인의 고혈을 쥐어짠다. 요즘 유행하는 고금리 사채는 급전 대출이다. 급전 대출에 가장 취약한 이들은 담보 없고 신용도 낮은 청년 사업주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금전 대출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 중에는 2030세대 사장님이 많다”고 밝혔다.
임대료, 인건비 등 당장 쓸 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급전 대출에 손을 대지만 사채에 손대는 순간 고리대라는 족쇄를 차게 된다. 일례로 100만 원을 빌리는 조건으로 열흘 뒤 150만 원을 갚기로 하고 급전 대출을 받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언뜻 이자율이 50%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업체는 대출이 성사되면 대출금액의 10% 내외를 수수료 명목으로 먼저 공제한다. 10만 원을 공제했다 가정하면 청년 소상공인이 가져가는 돈은 90만 원. 실제로는 90만 원을 빌려 쓰고 열흘 뒤 150만 원을 갚는 셈이다. 10일간 이자율을 계산하면 67%에 달한다. 이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채의 연 평균 이자율은 401%로, 2019년(145%)에 비해 256% 포인트 급증했다.
청년 소상공인들은 당장 쓸 돈을 빌릴 데가 없어 급전 대출의 유혹을 받아들이지만, 사채에 손대는 순간 고리대라는 족쇄를 차게 된다. [뉴스1]
“대부업체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청년 현실 되돌아봐야”
청년층 소상공인이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이유는 돈을 빌릴 곳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중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출 상품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가 없는 청년 소상공인은 제도권 밖 금융으로 내몰리게 된다”면서 “소액의 급전을 빌릴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된다면 불법 대부업체에 발이 묶이는 청년 소상공인의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이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사채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든 현실을 되짚어 봐야 한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대출사기 #정부지원사칭 #메신저피싱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