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에 관해 할 게 뭐가 있어? 이 나라에 치마 두른 여자들이 사는 한, 김치 같은 거 사 먹을 리가 없지.”
집집마다 김장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얘기다. 우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만나고 지금까지 겪어온 변화 역시 2년 전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으니, 당시 지도교수의 견해도 이해는 된다.
내 손으로 가뿐히 만드는 쪽파김치
쪽파와 고춧가루, 액젓, 설탕, 풀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쪽파김치. 담그기 쉬운데 맛은 끝내준다. [GettyImage]
내 친구 대부분은 아이를 낳고 키워 ‘수험생 엄마’ 되는 일이 코앞이다. 이들 중 김치를 손수 담가 먹는 이는 없다. 요리사 친구, 영양사 친구도 김치를 담그지는 않는다. 나처럼 운이 좋으면 양가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는다. 아니라면 여러 브랜드를 순회하는 김치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놓친 게 있다. 김장은 엄두조차 낼 수 없게 어렵지만, 어떤 김치는 담그기가 매우 간단하다는 점이다.
김장은 1년을 두고 먹을 엄청난 양의 김치를 만드는 일이다. 재료를 준비한 다음 배추를 절이고, 속을 만들고, 배추 잎마다 켜켜이 넣고 버무려야 한다. 그 많은 걸 잘 익히고 보관하는 일도 고되다. 그러니 김장은 잠시 접어두자. 대신 내 두 손으로 가뿐히 해볼 법한 파김치, 깍두기, 겉절이부터 시작해본다.
가장 쉬운 건 쪽파김치다. 쪽파 1kg과 고춧가루(2/3컵), 멸치액젓(2/3컵), 설탕(2.5큰술), 풀(2큰술)을 준비한다. 간단한 김치라도 풀은 꼭 필요하다.
풀은 유산균의 먹이다. 풀이 들어가야 김치가 맛좋게 익는다. 또 풀은 끈적거리는 성질로 양념이 채소에 착착 들러붙게 해준다. 풀은 주로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물과 같이 끓여 만든다. 믹서에 흰 밥과 물을 넣고 걸쭉하게 갈아서 사용해도 된다.
이제 쪽파가 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그릇에 양념 재료를 잘 섞은 다음 쪽파를 가지런하게 놓고 살살 버무린다. 그대로 30분 동안 뒀다가 다시 버무린다. 이러면 다 된 것이다. 통에 담고, 요즘 날씨라면 이틀 정도 실온에 뒀다가 냉장실에 넣는다.
쪽파의 알싸한 맛은 액젓과 딱 맞아 떨어진다. 입맛에 따라 멸치진젓이나 꽁치젓처럼 진한 걸 써도, 다진 새우젓처럼 순한 걸 써도 된다. 대파김치 만드는 법도 이와 비슷한데, 파 굵기 때문에 억세고 매울 수 있다. 대파 흰 부분을 액젓에 서너 시간 담갔다가 같은 방법으로 김치를 담그면 된다.
하얀 쌀밥에 깍두기 국물 졸졸
달고 시원한 가을무로 담근 국물 자박자박 깍두기. 밥이 끊임없이 들어가게 만드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GettyImage]
겉절이는 알배추로 만들어야 달고 아삭하다. 배추만 있으면 다소 심심하니 쪽파, 홍고추도 썰어 넣는다. 양념은 파김치, 깍두기와 비슷하다. 고춧가루, 액젓, 다진 마늘, 다진 생강, 풀을 준비한다. 겉절이는 이름처럼 살짝 절이는 게 포인트다. 알배추 한 통을 낱장으로 뜯어 큼직하게 썬 뒤 소금(1/2컵)을 뿌리고 대강 섞어 60~90분 동안 둔다. 물에 살짝 헹궈 물기를 잘 빼고 양념에 버무린다. 겉절이는 무쳐서 바로 먹는 음식이니 고춧가루 입자가 굵으면 입에서 겉돌 수 있다. 고춧가루와 액젓을 먼저 섞어 살짝 불려 부드럽게 한 다음 양념을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다 만든 겉절이는 밥 위에, 고기 위에, 이불처럼 길게 척척 얹어 우적우적 먹는다. 넓은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도 금세 비운다. 밥이 움푹움푹 줄어 걱정이지만, 가을 겉절이가 돋운 입맛을 내 나약한 의지로 주저앉히기란 쉽지 않다.
코웃음 날 만큼 쉬운 김치 레시피
알배추에 쪽파, 홍고추 등을 썰어 넣고 양념에 쓱쓱 무쳐 먹는 겉절이. 밥 위에, 고기 위에, 이불처럼 척척 얹어 먹으면 좋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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