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에 대한 이의 제기는 불경죄, 조국은 성역
정권 실세 우상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
與, 담 쌓고 끼리끼리 나눠 먹는 이권 공동체
文 대통령, 2017년 5월 10일 하루만 존경
언론중재법, DJ·盧 당시 민주당은 상상 못할 일
DJ·盧 정부는 ‘자유 확대’, 文 정부는 ‘반동’
尹에게 중도개혁 시각 불어넣는 게 내 역할
호남 검사 승진시켜 악역 맡겨, 호남에 대한 모독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이 9월 7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그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다고 했을 때, ‘이 사람마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유종필.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한국일보·한겨레신문 기자. 이해찬 서울시 부시장 보좌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무비서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공보특보. 새천년민주당 최장수 대변인. 민선 5·6기 서울 관악구청장. 지난해 총선 때는 관악구 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패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의 둥지는 민주당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뒤 ‘분당 사태’가 발발할 때조차 새천년민주당 잔류를 택한 사람이다. 민주당원으로서의 정통성에 관한 한 그의 앞에서 훈장(勳章) 내밀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그가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지금은 윤석열 캠프 상임고문 자격으로 정무·공보 분야 자문에 응하고 있다. 호남이 고향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참모였으며, ‘민주당의 성지’인 관악구가 지역구였던 그는 왜 윤석열을 택했을까. 9월 7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586 실세 영합 않고는 배지 달기 힘들어
- 지난해 총선 뒤 어떻게 지냈나.“4월부터 혼자 배낭 하나 메고 하루에 막걸리 한 통 들고 전국을 다녔다. 친구들이고 동네 사람들이고 피해서 혼자만 있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걷고 또 걷고.”
- 무슨 생각이 들던가.
“살아온 길도 반추하고 26년간의 정치권 생활도 되돌아봤다. 특히 요즘의 민주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2017년 5월 10일, 딱 하루 존경했다. 그날 취임사를 듣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에는 실망하고 절망했다가 분노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민주당의 역사를 편의상 ‘김대중 민주당’과 ‘노무현 민주당’ ‘문재인 민주당’으로 나눠보자. ‘문재인 민주당’은 ‘김대중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당이다. ‘노무현 민주당’에서도 한참 궤도를 벗어났다.”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만 하더라도 ‘김대중 민주당’이나 ‘노무현 민주당’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분들도 집권하고 언론에 스트레스는 많이 받았다. 이너 서클(inner circle)에서는 ‘언론 좀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그렇지만 명분이 없으니 밖으로는 차마 그런 말을 못했다. 지금은 유력 주자 중 한 분은 ‘현직 기자라면 찬성했을 것’(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이라 하고, 더 유력한 한 분은 ‘가짜 뉴스를 만든 언론사는 망해야 한다’(이재명 경기지사)고 한다.”
- 과거 민주당은 DJ계와 친노계, 민평련계 등이 공존하는 정당이었다. 지금은 친문 주류 일색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냥 ‘문재인 당’일 따름이다. 민주당이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없다.”
-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민주당에 뭐라 충고했을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역사가 진전하는 방향으로 갔다. 정책의 실패는 있었으나, 방향은 ‘자유의 확대’ 과정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반동이다. 언론중재법 추진을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전 대통령이라면 ‘잘못 가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대북 문제도 그렇다. 김 전 대통령은 항상 ‘한 손에는 교류협력, 다른 한 손에는 튼튼한 안보’를 강조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는 튼튼한 안보가 없지 않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계셨더라도 ‘언론을 손보더라도 명분은 쥐고 해야 한다’고 했을 거다.”
2005년 8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유종필 당시 민주당 대변인(가운데)이 새로 바뀐 민주당 로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DB]
얼치기 진보 정책 청산해야
유 전 구청장은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캠프 합류 기자회견에서 “저 같은 사람이 숨 쉴 공기가 (민주당에는) 한 줌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숨 쉴 공기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
“정치를 하면서도 늘 기자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 애썼고 계보에 충성하는 걸 거부했다. 이런 사람에게 민주당에는 숨 쉴 공기가 한 줌도 남아 있지 않다. 586 실세에 영합하지 않고는 (국회의원) 배지 달기도 힘들다. 586 실세의 일개미 노릇을 할 사람만 골라서 배지를 달아줬다. 머리는 필요 없고 손발 노릇해 줄 사람 말이다. 국회에서 표결하려면 손이 필요하니까. 기백을 가진 자는 아예 싹을 잘라내 버린다.”
- 그래도 20대 국회 때는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라는 소장파 그룹이 있었다. 그들의 활동은 어떻게 봤나.
“높게 평가했다. 특히 김해영 전 의원은 지역구가 부산이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한 거지, 서울이었으면 쫓아냈을 것이다. 김해영 같은 사람이야말로 민주당의 미래다.”
그가 가진 분노의 강도는 컸다. 그는 청춘을 바친 친정을 ‘비리 옹호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자신이 당을 배신한 게 아니라 당이 민주당의 정통성을 배신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이 됐다. 정경심 교수(조국 전 법무장관 부인) 판결도 2심까지 (유죄 취지로) 나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여권 주요 인사들이 법원 재판으로 드러난 비리를 대놓고 옹호한다. 과거 군사독재보다 나을 게 뭔가. 민주당은 자기들끼리 담 쌓고 이권을 나눠 먹는 이권 공동체로 전락했다. 정권교체를 통해서 얼치기 진보정권의 얼치기 진보 정책을 청산하고, 국가의 노선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기시감이 들었다. 사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조국 사태’ 이후 숱하게 들어온 바다. 이름값 하는 진보 지식인들이 ‘친문 패권주의’에 날선 공세를 펴왔다. 이 과정에서 ‘탈문(脫문재인) 진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유 전 구청장 역시 최장집(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등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진보학자들도 문재인 정권에 대해 얼마나 많은 비판을 했나”라고 강조했다. 이해는 가는데 이것이 곧 ‘윤석열 지지’의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그에게 물었다.
- 그렇다면 왜 많은 후보 중 국민의힘 소속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택했나.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으로 본분에 충실하다 보니 반문의 상징이 돼버렸다. 윤석열이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라는 말이라도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정권교체에 가장 가깝게 가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총장 때 여권의 공세에 맞서는 것을 보니 강단과 배짱이 있더라. 물론 현실정치 경력이 짧다 보니 부족한 점은 많지만, 원석(原石)은 뛰어나다. 이 원석을 절차탁마하기 위해서는 우선 본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다.”
- 윤 전 총장과는 어떻게 연결됐나.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사람 중 나와 가까운 사람이 많다. 특히 윤 전 총장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를 원해서 만났는데, 소탈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 정의감이 강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해력이 빠르다는 점도 알게 된다. 단순 검사라고는 볼 수 없다.”
尹, 보수적 마인드와 중도적 지향 사이
- 최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정체 국면에 있는데.“그사이 몇 차례 말실수가 있었고, 당에 들어가자마자 어쨌든 당대표와 불협화음이 있었다. 내부 경쟁자들의 독한 비판도 있고 아직 새로운 비전도 못 내놨다. 그건 시간이 좀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여당이 ‘고발 사주 의혹’이라면서 집중 견제를 하고 있지 않나.”
- ‘고발 사주 의혹’의 실체는 어떻게 판단하나.
“헛것이다. 적어도 윤 전 총장과는 관계없다.”
- 윤 전 총장이 유 전 구청장에게 ‘중도개혁적인 시각을 전해 달라’ 말했다고 들었다.
“나는 스스로의 정치 좌표를 중도개혁이라 여긴다. 윤 전 총장도 스스로 중도로 자리매김하는 사람이다. 만났을 때도 중도와 국민통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 이 정권이 어설픈 이념으로 국민을 다 갈라놨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여러 장점 중 국민통합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런 철학이 나와 똑같더라.”
- 하지만 윤 전 총장이 대권 행보를 시작한 이후 너무 보수 색채가 짙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니까 그것이 문제인데, 말실수라고 하는 게 몇 개가 있었지.”
- 가령 부정식품 발언이라든가….
“그런 것이 굳이 따지자면 보수적인 이야기다. 공무원 특히 검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조금 보수적 마인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본인은 중도를 지향하고, 진보적인 사람들과 많이 만나려 노력한다. 나도 윤 전 총장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국민의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전해 줘야 할 것이다. 가령 캠프에서 후보의 스피치(연설문) 봐달라고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중도개혁적 논리나 용어를 넣어준다. 또 나는 민주당에 오래 있어서 그들의 행동 양태를 잘 안다. 말하자면 상대 진영의 움직임을 잘 아는 셈인데, 그런 데 내 역할이 있겠지.”
- 정작 확장성의 지표인 2030세대와 호남 지역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지지율이 윤 전 총장을 앞선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홍 의원이 20·30대에게 원래 인기가 좀 있다. 그런데 호남에서의 지지율 상승은 ‘역선택’이라 봐야 한다. 호남에서 좋아하는 정치인을 물으면 홍준표나 윤석열이나 높게 안 나온다. 그러나 여권 정치인을 빼고 물으면 홍 의원의 지지율이 쭉 올라간다. 그것은 본선 가서는 의미가 없는 지지다. 방송에 나오는 친여 패널들의 발언을 자세히 살펴봐라. 홍 의원을 띄우면서 윤 전 총장은 깎아내린다. ‘윤석열은 약점이 많아서 본선 상대로 쉽다’고 한다. 그것은 ‘윤석열 포비아’다.”
- 본심과 반대로 말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좌파들이 그런 데에 상당히 능하다.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자들한테 물어보면 비교도 안 되게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 이번에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가 확정한 ‘본선 경쟁력 조항’은 사실상 역선택을 방지한다. 국민의힘 당원 상대로는 윤 전 총장이 (홍 의원을) 크게 이긴다고 봐야 한다.”
동창 카톡방에서 마구 인격 살해당해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정권 실세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집단”이라고 일갈했다. [지호영 기자]
“이른바 검찰개혁 과정에서 권력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다 쫓아내고 그 자리에 대신 앉힌 검사들이 대부분 호남 출신이다. 보직 혜택을 주고 승진시켜 악역을 맡겼다. 호남을 욕보이는 행위다. 호남 유권자들은 하도 오랫동안 야당을 해서 다시 야당이 될까 두려워하는 심리가 있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호남 출신 검사들을 출세시켜 주면서 악역의 최전선으로 몰고 갔다. 나는 호남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호남 민심은 문재인 정권의 버팀목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업체가 9월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9월 2주차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 비율은 45%로 집계됐다. 범위를 광주·전라로 좁히면 긍정평가 비율은 72%에 달했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등을 참조)
- 아직도 호남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매우 높다.
“호남을 빼고 여론조사를 하면 대통령 지지율이 푹 빠질 거다. 말하자면 호남이 지탱해 주는 정권이다. ‘우리 정권을 지키자’는 호남 사람들의 정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호남이 시시비비를 가려주면 이 정권이 저렇게 잘못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2019년 서초동에서 열린 소위 ‘조국 수호 집회’에서 ‘광주가 조국이다’라는 플랜카드가 있는 걸 봤다. 조국 전 장관처럼 후안무치한 사람과 광주를 일체화한다? 누가 썼는지 몰라도 정말 자괴감이 느껴졌다.”
- 호남에서 초·중·고교를 나왔고 지역구인 관악에도 호남 출향민이 많다. 진영을 바꾸면서 애로 사항이 있었을 것 같다.
“인간관계는 다 포기한 셈이다. 동창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는 마구 나를 인격 살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랜 골수 당원을 중심으로 격려 문자가 많이 온다.”
- 1987년 이후 대한민국 선거판은 늘 영·호남의 대립 구도로 치러졌다. 유 전 구청장을 포함해 호남 출신 인사 몇몇이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고 해서 이 구도가 깨지겠나.
“고향분들이 너무 진영 의식에 빠지지 말았으면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일 때 호남이 뭉친 것은 그래도 명분이 있었다.”
- 저항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우리 권력 지키자’가 됐다. 고향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조금 더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때다. 지금도 호남이 고립돼 있다. 예컨대 어떤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보면 다른 지역에서는 다 반대가 많은데 호남만 찬성이 많다던가 하지 않나.”
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
이날 그는 “후련하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민주당에 있을 때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지금은 속 시원히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말하자면 둥지를 떠나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도 ‘모 아니면 도’일 수밖에 없는 한판 승부의 후폭풍을 잘 알고 있다.“민주당에 있다가 대선에 지면 내가 크게 잃는 것은 없다. 어차피 현 정권에서 권력을 누리는 사람도 아니니까. 하지만 진영을 옮겼는데 대선에서 패하면 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럼에도 나는 민주당 정권의 연장이 국가적 재앙이라는 확고한 판단으로 탈당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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