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김치 양념에 버무리면 뜨끈한 햅쌀밥과 잘 어울리는 ‘고수김치’가 된다. [GettyImage]
경동시장은 청량리 과일시장, 수산물시장과 연결돼 있다. 채소, 과일, 다양한 육류와 해산물, 건어물과 약재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구성이다. 한반도 먹을거리 구경은 거의 다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 바퀴 돌아 나오면 계획에 없던 주전부리나 채소, 과일이 손에 들려 있기 일쑤다.
뜨끈한 햅쌀밥 부르는 계절 김치 레시피
고들빼기 김치를 담글 때는 소금물에 이틀 정도 담가 쓴맛을 좀 우려내고 양념에 버무리면 좋다. [GettyImage]
김장이라니, 부럽긴 하나 멀고 먼 남의 일이다. 그래도 탐스럽게 물 오른 채소를 보니 김치 욕심이 난다. 두고두고 꺼내 먹는 김장김치가 아니어도, 독특한 맛 즐기는 계절 김치 또한 군침이 돈다. 노르스름 앙증맞은 알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무채와 쪽파 넣고 김치 양념에 버무려 바로 먹으면 아삭아삭 고소한 채소 맛이 나 좋다. 익혀 먹으면 어우러진 감칠맛이 올라와 개운하다. 덜어 먹을 때마다 미나리처럼 향긋한 채소 조금 섞어 내면 매번 맛이 새롭다.
요즘 많이 나오는 고수도 딱 한 다발만 사서 김치로 버무리고 싶다. 고들빼기처럼 잔뿌리가 달린 걸로 골라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김치 양념에 버무린다. 고수 다발이 굵지 않으면 굳이 가르지 않고 한 뿌리 통째로 김치를 담가도 된다. 실온에서 하루 정도 폭 익히면 부드러우면서도 향긋한 맛이 뜨끈한 햅쌀밥을 부르고 또 부른다.
뿌리라고 하면 고들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잠깐 나오는 고들빼기는 씁쓸한 뿌리 맛이 그만이다. 그냥 먹으면 너무 쓰니 소금물에 이틀 정도 담가 쓴맛을 좀 우려내고 양념에 버무린다. 고들빼기김치를 떠올리니 억센 맛이 좋은 가을 부추, 알이 여물기 시작하는 쪽파김치의 매콤한 감칠맛이 줄줄이 따라온다.
아작아작 씹을 때마다 단맛이 스며나는 대파김치도 빼놓을 수 없다. 질기지 않을까 싶지만 큼직하게 썰어 오물오물 씹으면 달고 알싸한 맛이 좋기만 하다. 대파의 통통한 흰 뿌리를 반으로 갈라 액젓에 충분히 절이는 것만 기억하면 맛있는 김치를 완성할 수 있다.
콜라비, 시금치, 늙은 호박과 김치 양념의 행복한 만남
굵은 줄기에서 향기와 매운 맛이 힘차게 퍼지는 갓김치는 이 무렵 먹기 좋은 별미다. [GettyImage]
양파를 식초 물에 담가 아린 맛을 빼면 김치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아삭함 뒤 산뜻한 단맛이 쫓아와 가을철 푸짐한 밥상에 반찬으로 내놓기 딱 좋다. 씹는 맛이 좋고 단맛이 나는 양배추, 일반 무보다 조밀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덜 매운 순무, 와그작와그작 씹으면 계속 단맛이 나는 콜라비도 김치 양념을 만나면 금세 밥반찬의 면모를 갖춘다.
추석 내내 금값이던 시금치 가격이 내렸다는데 야무진 포항초를 구해 김치로 만들어도 달고 맛나다. 씀바귀, 고구마, 늙은 호박, 봄동, 얼갈이, 유채, 돌나물, 상추, 깻잎, 오이, 풋고추에 여러 가지 과일까지 김치라는 커다란 그릇 안에 넣고 휘휘 버무릴 수 있다. 젓갈과 고춧가루를 바탕으로 하는 양념과 제철 재료가 만나 이처럼 다양한 맛의 가지를 뻗어간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백김치와 물김치 이야기는 미처 꺼내지 못했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각종 김치를 생각하니 입맛이 돌아 엉덩이가 들썩인다. 이번 주말에는 경동시장에 가서 제철 김칫거리 좀 구해다 벌겋게 버무려 햅쌀밥에 걸쳐 먹어야겠다. 하나 둘 손에 익히다 보면 어느새 김장을 척척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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