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개발, 과도하고 부당한 협상력
리스크 낮고 낮은 비용 개발 가능
자본주의 윤리 따르는 민영개발
갈등에 따른 리스크 감수해야
알쏭달쏭 이재명式 ‘환수’의 의미
강제수용 ‘치트키’ 쓴 기괴한 民개발
한국 정치가 ‘화천대유 사건’, 혹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매일 새로운 의혹과 해명이 나온다. 지금 쓴 글이 내일, 아니 반나절 뒤에도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므로 사안의 본질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아무리 새로운 사실관계가 불거져 나온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어떤 정당의 정치인이 연루됐건, 어떤 대선후보에게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건, 바뀔 수 없는 사실이 존재한다.
만약 이 사안을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누군가에게 설명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독자 여러분이 모두 알만한 그 노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9월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에서 건설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가운데 터널을 중심으로 왼편이 A1, A2, A6 구역, 오른편이 A10 구역이다. 위로는 빌딩이 밀집한 판교 테크노밸리가 위치해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며 놀 때, 늘 의아했다. 남들도 다 부르는 노래여서 나도 따라 불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대체 두꺼비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두꺼비에게 헌 집을 내어주고 두꺼비는 내게 새 집을 줘야 한단 말인가?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헌 집’은 알을 몸속에 품다가 낳고 죽는 옴두꺼비 어미를 뜻하고 ‘새 집’은 그렇게 태어난 자식을 뜻한다는데, 선뜻 납득하기는 어려운 설명 같다.아무튼 룰(rule)은 분명하다. 내가 헌 집을 주면 두꺼비는 새 집을 준다. 두꺼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꺼비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런 믿음을 품고 놀이터의 모래밭에서 한쪽 손을 파묻고 다른 손으로 모래를 쌓아 토닥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대한민국 공영개발이 원론적으로 표방하는 바가 바로 저 ‘두꺼비 놀이’와 같다. 공공개발은 원칙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두꺼비처럼 헌 집을 받아 새 집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원론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예상 가능하다시피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그 어그러진 현실의 구조를 이해해야,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두꺼비는 왜 헌 집을 받고 새 집을 돌려줄까.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두꺼비가 이타적이다. 내가 헌 집에 사는 걸 원치 않고, 대신 새 집을 주고 싶어 헌 집을 가져간다. 이런 경우 두꺼비는 내게 집을 공짜로 주거나, 저렴하게 팔거나, 낮은 가격으로 빌려줄 것이다. 내가 새 집에 살게 하는 것이 헌 집을 가져가는 두꺼비의 목적인 게 분명하다면 말이다.
두 번째 가능성도 있다. 두꺼비가 이기적인 경우. ‘이기적’이라는 말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두꺼비는 나의 헌 집을 사서 새 집을 지은 다음 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팔아 이익을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두꺼비에게 헌 집을 순순히 내놓지 않을 것이다. 두꺼비가 새 집을 지어서 얼마나 이익을 볼지 따져본 후, 두꺼비가 제대로 된 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나의 헌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타적 두꺼비와 이기적 두꺼비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 있는 화천대유 사무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물론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공영개발이 결정되고 추진되면 해당 부지의 땅 주인과 원주민은 맞서기 어렵다. 더 많은 이에게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는 대의명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영개발 두꺼비는 ‘새 집 줄게’의 약속을 내밀고 ‘헌 집 다오’에서 과도하거나 부당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토지소유자와의 매각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공영개발의 주체는 공익사업 용지를 강제로 취득할 수 있도록 토지수용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갖추고 있는 제도적 장치다.
‘이타적인 두꺼비’는 착한 두꺼비, ‘이기적인 두꺼비’는 나쁜 두꺼비, 이렇게 단칼에 나눠서 이야기하기 곤란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기적인 두꺼비는 헌 집을 사서 새 집을 지어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타적인 두꺼비와 달리 강제수용 같은 수단을 동원할 수 없다. 이기적인 두꺼비는 자본주의 윤리에 충실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당 토지의 적절한 시장 가격을 파악하고, 개발했을 때 얼마나 이익이 날지 스스로 계산하여, 땅 주인과 제대로 협상을 해서 매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토지개발 대상지의 땅 주인 처지에서 보자. 제대로 협상이 진행된다고 가정했을 때, ‘이타적인 두꺼비’보다는 ‘이기적인 두꺼비’를 만나 땅을 파는 것이 좋다.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Win-Win) 게임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존의 땅 주인 내지는 주택 소유주와 ‘이기적인 두꺼비’의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이기적인 두꺼비가 너무 이기적인 가격을 불러서일 수도 있고, 땅 주인이 소위 ‘알박기’를 하며 버틸 수도 있다. 집과 땅 등 부동산은 대략적인 시세만 있지 ‘정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의, 혹은 단 한 명의 땅 주인이 버티고 들어서 전체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 그 손해가 한도 끝도 없이 커질 수 있다. 개발 사업에서 ‘리스크’라 할 수 있는 것 중 큰 부분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5500억 원 환수? 이중인격 두꺼비!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수사팀이 9월 29일 경기 성남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품을 버스에 싣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반면 민영개발은 민간이 추진하는 개발 사업이다. 모든 토지 소유주와 협상해야 하며 세입자를 내보낼 때도 갈등이 생길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토지 매입 단계부터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공영개발에 비해 큰 것이다. 따라서 리스크가 크고, 큰 리스크는 곧 높은 사업비로 이어진다. 대신 민영개발의 주체는 공영개발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택을 분양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
이제 화천대유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여러 정치인의 이름과 다양한 의혹과 논란이 오가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대장동 개발은 공영개발의 탈을 쓴 민영개발이었다. 원주민을 내쫓고 토지 소유주의 땅을 가져갈 때는 공영개발이었는데, 막상 토목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고 분양을 할 때가 되자 민영개발이 되고 말았다. ‘이타적인 두꺼비’인 척 하면서 내 헌 집을 값싸게 가져가더니, ‘이기적인 두꺼비’가 돼 나에게 새 집을 비싸게 팔았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토지개발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토지 매입 단계에서 발생한다. 공영개발의 경우 강제수용이라는 ‘치트키’를 통해 그 리스크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대신 공영개발은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거나, 이익이 남더라도 법에 규정된 상한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공영개발의 탈을 쓰고 강제수용을 동원해 토지를 매입한 후 민영개발의 형식으로 개발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국가나 지자체 등을 앞세워 '공공선'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땅을 헐값에 매입한 후, 그것을 통상적인 시장가에 판다면, 당연히 턱없이 높은 이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재명 지사가 이런 비상식적인 사업 모델을 자신의 치적인 양 포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대장동 개발이 천문학적 이익을 냈으며, 그 중 5500억 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그것을 ‘환수’라 부르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민영개발의 경우에도 당연히 진행되는 온갖 기부채납 등을 마치 자신이 추진해 이루어진 ‘환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모든 민영개발에서 막대한 ‘환수’가 이루어져 왔다고 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애초에 ‘환수’할 만큼 큰 이익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익만 해도 수천억 원이 넘는다. 공영개발의 명목 하에 싸게 매입한 땅을 민영개발의 형식으로 비싸게 팔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민중의 소리’는 그것을 “민간업자들은 성남시에 5500억 원을 환수 당하고도 8000억 원에 가까운 순익 로또를 맞았다”고 정리한다. 현실을 호도하는 해석이다. 5500억 원은 ‘환수’ 당한 것도 아니고, 8000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순익은 애초에 발생하지도 말았어야 한다. 비상식적이고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낳은 ‘민관 공동개발 모델’ 그 자체가 문제다. 이타적인 탈을 쓰고 이기적으로 돈을 번 이중인격 두꺼비, 그것이 바로 대장동 개발의 실체다.
기괴하고도 잔인한 ‘설계’
이재명 지사 스스로가 인정했다시피 그는 이런 기형적인 개발 모델을 ‘설계’한 사람이다.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본인이 직접 서명한 문서까지 남아 있다. 화천대유나 개발 시행사 성남의뜰로부터 이 지사에게 직접 흘러간 자금이 없다고 해도, 우회적인 방식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이 사건에는 이 지사 뿐 아니라 최근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곽상도 무소속 의원, 이 지사의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무죄 의견을 냈던 권순일 전 대법관 등이 연루돼 있다. 9월 29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친 소유 주택과 관련한 논란도 제기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검에 찬성해 최대한 빨리 수사를 진행해야 옳다.
공영개발은 공영개발의 요건을 준수하며 진행돼야 한다. 민영개발은 개발 대상지 소유주와 원주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전제해야 한다. 이 지사가 ‘설계’한 민관 공동개발은 강제수용을 통해 토지를 값싸게 수용하여 민영 사업자를 통해 비싸게 판다. ‘오징어 게임’보다 기괴하고 잔인한 ‘두꺼비 게임’이다. 특검을 통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그 내막이 낱낱이 밝혀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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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