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탈레반 ‘4세대 전쟁’ 승리의 교훈 “韓, 아프간처럼 빠르게 붕괴”[백승주 칼럼]

“亡國도 도둑처럼, 벼락처럼 온다”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입력2021-10-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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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 침략 英·蘇의 쇠락…‘강대국의 무덤’

    • 미국 위엄 깎이고, 盟主 진영 외교 고개

    • 美 ‘안보 독트린’의 함의 “세상이 변하고 있다”

    • 미어샤이머의 ‘역외균형전략’ 계승

    • 中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전략

    • 중국·베트남 공산당 이은 ‘4세대 전쟁’ 승리

    • 마크 티센의 경고 “韓, 아프간처럼 빠르게 붕괴”

    • 북한보다 잘산다고 안보 튼튼하다는 망상

    • 흥남부두 철수 ‘빅토리호’가 생각나는 이유

    9월 8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카피사주에서 탈레반 병사들이 투항한 민병대를 감시하고 있다. [AP=뉴시스]

    9월 8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카피사주에서 탈레반 병사들이 투항한 민병대를 감시하고 있다. [AP=뉴시스]

    국제정치에서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은 ‘침략자들의 고속도로’이자 ‘강대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아프간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많은 패권국가의 침략을 받았는데, 근대 이후 영국으로부터 세 차례, 구소련으로부터 한 차례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미국과 전쟁을 했다.

    공교롭게도 1919년 아프간과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전쟁을 치른 영국은 이후 세계사에서 일등 국가의 지위를 미국에 내줬고, 1979년에 아프간을 침략한 구소련은 1989년 2월 15일 철수한 뒤 3개월 만에 연방이 해체됐다. 아프간 정복, 혹은 아프간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려고 국력을 소모한 국가들의 국력과 영향력이 급격히 쇠락하면서 아프간은 강대국들의 무덤이 됐다.

    그렇다면 2021년 탈레반에 ‘사실상 패배’한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 신화통신은 “쇠락의 조종”이라고 조롱했다. 서방의 많은 국가는 “미국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력 소모라는 수렁에서 미국을 구해 낸 결단”으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탈레반의 승리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 군사력 중심의 세계질서에 변곡점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점, 미국에 대한 신뢰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 점은 분명하다. 미국에 대한 이러한 신뢰 균열이 국제정치와 한반도 안보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카불 함락 장면과 6·25전쟁 데자뷰

    “신문에는 날마다 국군의 전과가 유리하다고 보도하고, 방송에서는 정부를 옮기지 아니하고 대한민국의 수도를 사수하겠다고 하니, 이것을 안 믿고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춘원 이광수의 차녀 이정화 박사가 쓴 ‘15세 여학생이 겪은 6·25 남침전쟁’이라는 글의 일부다. 필자는 이 글을 아프간 전쟁 종전 직후에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아프간 카불이 함락되는 당시의 세 장면이 생각났다.



    #1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통화(8월 15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오늘(8.15) 아쉬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통화로 아프간의 상황 악화에 대해 논의했다. 블링컨 장관은 아프간 정부와의 강력한 외교 및 안보 관계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아프간 국민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를 강조했다(통화 당시에는 이미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하고 있었다).

    #2 미국의 자국민 소개 작전(8월 15일 미국 정부 공동성명)
    안보 상황이 악화되는 점을 감안할 때, 출국을 원하는 외국인과 아프간 주민들의 안전하고 질서 있는 출국을 촉구한다. 아프간과 출국을 원하는 국제 시민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3 아프간 정부의 항복과 가니 대통령의 도주
    8월 15일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했고, 8월 16일 가니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 많은 돈을 갖고 도주했다. “학살을 막기 위해 떠난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탈레반의 승리로 아프간 전쟁이 종결되는 과정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가니 정부와 탈레반을 상대로 오로지 자국민의 안전한 출국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이미 가니 정부나 아프간 국민의 고통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블링컨 장관이 가니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한 통화에서 미국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를 했지만 외부로는 가니 정부에 대한 지지만 밝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에 대한 ‘외통수 항복’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전한 도피, 도피 이후의 풍족한 삶을 위한 준비를 했다. 소개 작전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바이든 정부는 ‘셀프 평가’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미군의 완전 철수를 결심하고 이를 이행하면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리라고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예측 속에서 아프간 종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위한 안보 독트린을 준비했으며, 그 핵심 내용을 8월 31일 발표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폭격하는 전투기(왼쪽)와 미군 모습. [위키피디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폭격하는 전투기(왼쪽)와 미군 모습. [위키피디아]

    미국의 경쟁력 약화

    8월 31일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종전과 관련한 긴 입장문(Remarks by President Biden on the End of the War in Afghanistan)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그의 포괄적 안보 인식과 대외 전략이 함축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설문 속 다음 내용은 ‘안보 독트린’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이해해야 할 중요한 것은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러시아와 여러 전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은 사이버 공격과 핵 확산에 직면해 있다. 21세기 경쟁에서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설 내용을 고려할 때 바이든은 미국이 직면한 상황을 ‘미국의 국가경쟁력 약화’로 진단하고 있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인식의 근저에 미국 국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자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도전받고 있고, 그 도전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경쟁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셀프 평가’한 것이다. 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를 아프간 전쟁과 같은 대외 전략에서 찾고 있다.

    ‘20년간 2조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전쟁 비용이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내용을 연설에 담고, 이를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 약 3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시민의 세금을 사용해 아프간에서 친미(親美) 정부를 유지하는 대외 전략이 결국 미국의 국가경쟁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키고 있다는 전략적 결론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향후 동맹 유지, 대외 전략 예산 편성에 그대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산하 세계경쟁력센터(WCC)가 발간한 ‘2020년 국가경쟁력 연감’을 보면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은 국가경쟁력 순위 63개국 중 10위로 7계단 떨어졌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의 길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중·러 패권 도전 차단, 테러 적극 대응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당시 전투 장면. [GettyImage]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당시 전투 장면. [GettyImage]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대외 전략 방향과 관련, 미국을 위협하는 도전을 두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이를 막기 위한 두 개의 큰 기둥을 세우고 있다.

    첫째 기둥은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 도전을 차단하는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동유럽에서는 러시아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 전략과 관련해 전임 트럼프 정부와 같은 맥락의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을 철저하게 계승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역외균형전략은 미국 시카고대 미어샤이머(J.J. Mearsheimer) 교수가 정립한 대외 전략으로, 트럼프 시대 대외 전략의 이론적 토대가 돼왔다. 

    그가 구성한 ‘역외균형전략’의 목표는 서반구에서 미국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여타 지역에서는 미국의 ‘우월적(dominant)’ 지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아메리카와 서유럽 이외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 패권국(regional hegemon)’의 등장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군사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는 전략이자 글로벌 차원에서 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철저하게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아프간 철군을 통해 ‘절약’한 대외 정책 및 군사 역량을 중국 견제에 투입할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는 러시아보다는 중국 견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둘째 기둥은 핵 확산 방지와 사이버 테러 등 국가 테러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지를 밝히고 있다. 현 상황에서 미국의 핵 정책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국가는 이란과 북한이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비록 철수했지만 핵확산, 사이버 테러로 미국에 도전하는 국가에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할 국가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아프간 종전을 바라보는 눈

    8월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한 탈레반 병사가 탈레반 깃발과 지도자들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AP=뉴시스]

    8월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한 탈레반 병사가 탈레반 깃발과 지도자들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AP=뉴시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종전 관련 특별연설에서 언급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중국은 8월 16일에 탈레반 과도정부를 공식 승인했다. 중국은 탈레반 과도정부를 아프간 국민의 새로운 선택으로 존중하면서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을 해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정치적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은 이미 7월 하순 톈진에서 열린 미·중 외교회담 직후 탈레반 지도자와 왕이 외교부장관이 만나 종전 이후 상황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준비된 반응이다.

    중국은 탈레반이 중국 내 위구르 지역 저항 세력을 자극하거나 연대하는 새로운 상황 발생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미국 쇠락의 조종이 울렸다”라는 표현으로 미국의 패배, 미국 영향력 감퇴를 진단했다. 신화사의 표현은 중국 지도자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9월 8일 왕이 외교부장은 파키스탄, 이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아프간 이웃 6개국과 화상회의를 열고, 아프간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화상회의를 통해 중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아프간 문제의 원흉”이라며 미국의 아프간 정책을 비판했다.

    반면 러시아는 탈레반의 세력 확장을 우려하면서 공식 승인에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는 8월 초 우즈베키스탄 등과 합동 훈련을 하면서 탈레반 세력 확장을 군사적 차원에서 견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정부 승인을 유보했다.

    한편 북한은 ‘미국의 비참한 패배’로 종전 성격을 규정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아프간에 이식하려는 정책을 맹비난했고, 이란은 아프간과의 정상적 관계 유지를 시사했다.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바이든 정부의 미군 철수가 ‘외교적 실패’라고 평가하면서도 바이든 정부의 고육지책임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국가 위엄 흔들린 美, 고개 드는 새로운 국제질서

    이러한 반응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9월 7일 “중국은 탈레반과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는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란 탈레반과 신장위구르 반군단체가 협력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말한다. 이는 탈레반 정부가 미·중 갈등, 미·러 갈등의 새로운 전선으로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초기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 종전 이후 중국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탈레반 과도정부와 조기에 협력체계를 구축해 아프간에 반미 정부를 구축하는 동시에 위구르 지역에 대한 안보 리스크를 차단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탈레반과 탈레반 인접국가의 정치군사적 연대를 묶어서 미국의 대중 압박을 일거에 차단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서방국가와 함께 탈레반과 새로운 신뢰를 만들어 탈레반 정부를 통해 오히려 중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을 시사하고 있다. 안보 리스크를 줄이고 새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현실 외교가 진행되고 있다.

    아프간 종전 이후 미국의 국가 위엄(prestige)이 흔들리며 국제질서에서 새로운 네 갈래 길이 생기고 있다.

    그것은 첫째,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이 더욱 드세질 것이다. 미국에 대한 약소국가들의 신뢰가 약해지고, 그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가 비집고 들어갈 공산이 크다. 전랑은 늑대를 말한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무기로 공세적 외교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에서 ‘군함 외교’와 비교되는 압박 외교를 의미한다. 미국 조야의 지도자가 바이든 탄핵까지 거론하는 것도 미국의 지도력 붕괴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념이 아닌 ‘맹주(盟主) 중심 진영 외교’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쿼드(QUAD·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한 비공식 안보회의체)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에 대응하고, 미국이 유지하는 동맹의 ‘약한 고리’를 압박해 여러 나라를 중국의 진영으로 끌어오는 대외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이때 한미동맹은 대표적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또한 증대될 것이고, 대만 등 일부 친미 국가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우크라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등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 친미 성향 국가에서 진행되는 내전에서 반군 세력은 탈레반 승리를 모델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을 강화할 것이다. 국익을 우선 고려해 아프간에 대한 ‘손절 외교’를 한 미국에 대한 신뢰 붕괴가 일부 국가들의 국내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넷째, 핵확산과 사이버 테러로 의심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실질적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다. 북한, 이란 등은 기존 핵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 실질적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안보에 주는 교훈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언론인 마크 티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언론인 마크 티센.

    물론 바이든 정부의 독트린에 나오는 것처럼 아프간 전비(戰費)를 절약하고, 그 전비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면 극적으로 국가 위엄을 회복하는 보약이 될 수 있다.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평판은 한순간에 잃기 쉬워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2001년 아프간 전쟁을 결심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연설문 작성자로 유명한 미국 언론인 마크 티센(54)은 아프간 종전 직후 “만약 한국이 이런 종류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 지원 없이 한국은 아프간처럼 빠르게 붕괴할 것이다. 우리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미국의 동맹국은 사실상 없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남겼다. 마크 티센의 발언에 대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험담”이라고 일갈했다. 송 대표는 우리나라가 세계 6대 군사 강국이자 10대 무역대국임을 강조하면서, “아프간 사태는 조기 전시작전권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군사전문가 처지에서 볼 때 티센의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아프간 종전의 가장 큰 교훈은 ‘인간의 정치적 의지가 총구(銃口)를 이긴다’는 것이다. 걸프전쟁 이후 ‘4세대 전쟁’을 연구한 저명한 미 해군 전략가 하메스(Hammes)는 전쟁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를 중심으로 근·현대 전쟁의 세대를 분류했는데, 1세대는 상비군 규모, 2세대는 화력의 위력, 3세대는 기동력 수준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봤다. 나폴레옹이 이끈 전쟁에서는 상비군의 규모가, 1차 세계대전에서는 화력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기동력이 전쟁 승패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4세대 전쟁에서는 ‘정치적 의지’가 전쟁 승패를 결정하며, 중국공산당과 베트남공산당이 4세대 전쟁 승리의 전형으로 꼽는다. 그런데 ‘의지’로 뭉친 탈레반은 중국·베트남 공산당의 전쟁 이론을 그대로 따랐다.

    4세대 전쟁 관점에서 남북 군사력을 비교해 보면 마크 티센이 왜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남북 간 경제력 차이로 핵무기를 제외한 주요 장비 성능 면에서 우리 군이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군의 ‘정치적 의지’가 탈레반과 비슷한 수준으로 단련돼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은 아프간 종전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공산화할 수 있다는 새로운 교훈을 확인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우리보다 못살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공산화하려는 의지를 담금질해 왔고, 아울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공세를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경륜과 통찰력을 고려할 때 마크 티센의 말에 우리 지도자들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1950년 흥남 철수 작전 당시 피난민을 태운 빅토리호. [GettyImage]

    1950년 흥남 철수 작전 당시 피난민을 태운 빅토리호. [GettyImage]

    “亡國도 도둑처럼, 벼락처럼 온다”

    2021년 8월 카불 공항을 보면서 1950년 흥남부두에서 출항한 메레디스 빅토리(SS Meredis Victory)를 생각해 본다. 당시 라루(Leonard LaRue) 선장은 처벌을 각오하고 군사 장비를 버리고 1만4000여 명의 피난민을 태웠다. 거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승선했다. 아프간 카불 공항을 보면서 ‘문 대통령도 흥남부두를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당수 국민도 남북한 경제적 격차 때문에 북한 노동당과 북한군의 정치적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인식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보다 조금 잘산다고 국방과 안보가 자동적으로 튼튼하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군이 핵으로 무장하고 탈레반식 정치적 의지를 가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방부는 합참,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신속히 ‘아프간전쟁연구팀’을 구성하고, 연구를 통해 교훈을 찾아야 한다. 한때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쟁이 된 적이 있다. 아프간공화국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망국도 도둑처럼, 벼락처럼 온다”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누구보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이 아프간 종전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빅토리호를 잊으면 새로운 빅토리호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한국 안보 #망국 #신동아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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