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앞세운 선거운동, ‘거부감’ 줄이고 ‘친근함’ 배가
핵심 지지층 결집엔 효과적, 전국 지지세 확장엔 걸림돌
노무현, ‘호남이 민 영남 후보’ 콘셉트로 승리
尹, 정권교체 여론 높은 영남 민심부터 견고히 했더라면…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8월 30일 오전 충남도당을 방문해 지지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뉴스1]
친근함 앞세운 연고 활용 선거운동
대한민국 미래 5년의 국정 최고책임자를 선택하는 대통령선거는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에게 더 많은 선택을 받은 후보자가 당선의 영광을 누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선택’의 문제다.대통령선거에 나선 대선주자들은 더 많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지층 결집에 나선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선거운동 방식은 연고(緣故)를 활용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맡이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1992년 대선 때 ‘초원복국사건’에서 비롯된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로 압축되는 지연(地緣)과 ‘동문수학’ 인연을 강조하는 학연(學緣)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선거운동 방식으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연고를 활용한 선거운동은 유권자의 ‘거부감’은 줄이고 ‘친근함’은 배가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지지 세력을 구축하는 데 일정 정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핵심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되지만 지지세 확장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 ‘끼리끼리’라는 인식을 주게 되면 고향이 다르고 학연이 없는 더 많은 유권자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넛지’가 구매자가 눈치채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선택을 유도해야 ‘구매’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지연’ ‘학연’ 등 연고를 배경으로 한 선거운동 역시 지나치면 오히려 반감만 키워 ‘지지세 확장’이라는 당초 의도한 목표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시작된 8월 3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경선 첫 행보로 충남과 세종 등을 방문하며 충청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는 “뿌리 없는 줄기와 열매가 없다”며 “500년 조상의 고향인 충청의 피를 타고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지역 연고를 강조했다.
충청대망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충청인들이 이권을 얻고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충청대망론은 충청인들이 가진 중용과 화합의 정신으로 국민을 통합해서 국가 발전의 주력이 되는 국민통합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청의 충(忠)은 가운데 중(中)자에 마음 심(心)자로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향해서만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8월 30일 하루에만 윤 전 총장은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지와 세종 선영, 논산 파평 윤씨 종친회, 공주 산성시장과 공산성 방문자센터 등 충청권 일대를 돌았다.
尹 “충청의 피 타고난 것 자랑스러워”
충청대망론은 대선주자 윤석열을 만들어낸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의 높은 대선 여론조사 지지율 가운데 충청에서 올린 높은 지지율이 한몫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본질적으로 대선주자 윤석열을 만들어낸 십중팔구는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선후 관계를 굳이 따져보자면 그가 충청 출신이라 대선후보 반열에 올랐다기보다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그가 문재인 정권과 맞서 싸운 투사 이미지가 생겨 정권교체를 바라는 다수 국민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함으로써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그렇다면 정권교체를 바라는 다수 국민은 어느 지역에 많이 분포해 있을까.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은 지역적으로 부산·울산·경남(PK)이 62%로 가장 높았고, 대구·경북(TK) 56%, 대전·세종·충청 55%, 서울 52% 순으로 높았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전국 평균 응답률은 49%였고, 현 정권 유지를 바란다는 응답은 37%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권교체를 이룰 선봉장이 되고자 하는 대선주자라면 정권교체 여론이 가장 높은 PK와 TK에서 강력한 지지 세력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조상과 인연이 있는 충청 지역을 먼저 찾아가 ‘연고’를 강조하며 ‘충청대망론’을 앞세웠다.
충청은 지역적으로 수도권과 영호남 사이에 자리해 ‘대한민국’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역대 대선에서 당락을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선거 전략상 중요한 요충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대통령직선제 실시 이후 충청 출신 대통령은 아직 배출되지 못했다.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정운찬, 이완구, 반기문, 안희정 등 역대 대선 때마다 충청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후보로 거론됐지만 정작 본선에 진출해 대통령에 당선하는 ‘충청대망론’은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충청’ 연고를 내세운 이유는 ‘충청 출신 대통령’ 배출을 바라는 충청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 경선 첫 행보로 지역 연고를 앞세우는 게 효과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확실한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됐을 수 있지만, 표의 확장성 즉 타 지역의 광범위한 지지세를 확보하는 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노무현,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 콘셉트로 승리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PK 출신 노무현 후보는 광주 경선에서 1위를 기록하며 승기를 잡았다.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라는 콘셉트로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호남에서의 확실한 지지를 바탕으로 영남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려 본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점을 당원과 선거인단에게 어필했고, 그 전략이 주효해 대선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만약 윤 전 총장이 대선 경선 첫 행선지로 충청이 아닌 여론조사 지표상 정권교체를 더 간절히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 PK와 TK를 먼저 찾아가 “영남에서 확실히 지지해 주면 조상의 고향인 충청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아 정권교체를 확실히 이뤄내겠다”며 ‘영남이 미는 충청 후보’ 콘셉트로 대선 행보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윤 전 총장이 충청권을 돌며 충청대망론을 앞세운 이후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PK 출신 홍준표 의원에게 추격을 허용하는 대선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권교체’라는 전국을 관통하는 대의보다 ‘충청대망론’을 앞세운 그의 대선 행보에 실망한 일부 유권자들이 새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인들은 결과로서 ‘충청 출신 대통령’을 바라는 것이지 ‘충청대망론’을 주장하며 점잖은 유권자들에게 “나를 따르라” “나를 지지하라”고 선택을 강요하는 정치 신인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바둑에서 수순이 꼬이면 사활 문제에 봉착하듯, 단판 승부인 대선 경선에서는 대선후보가 어떤 행보를 걷느냐에 따라 당락이 엇갈리는 법이다.
#윤석열 #충청대망론 #신동아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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