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반찬, 요리, 소스로…가지·오이·자두의 색다른 변신

채소로 차린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10-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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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을 즐기는 이가 점점 늘어난다. 고기와 해산물 섭취를 자제하고 가능하면 채소와 곡물 위주로 끼니를 해결하는 식이다. 우리 엄마는 고기보다 채소를 훨씬 좋아하지만, 채소는 밥 반찬 정도로 여겼다. 반면 채식을 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한 끼에 한 가지 채소 요리를 꽤나 잘 만들어 즐긴다. 가지는 반찬을 하기에도, 또 푸짐한 한 그릇 요리 주인공으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채소다.
    길쭉한 가지를 2~3등분해 프라이팬에 구우면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풍미 넘치는 요리가 된다. [GettyImage]

    길쭉한 가지를 2~3등분해 프라이팬에 구우면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풍미 넘치는 요리가 된다. [GettyImage]

    가지는 가열하면 숨어 있던 단맛이 점점 드러난다. 부드러우면서도 오물오물 씹는 맛이 있고,수분이 많아 열량도 낮다.

    가지는 그저 굽기만 해도 맛있다. 길쭉한 가지를 길이로 2~3등분해 프라이팬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고 굽는다. 노릇하게 색이 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지만, 익기 시작하면 금세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며 금빛으로 물든다. 여기에 양념간장만 곁들이면 그대로 밥반찬이 된다.

    다른 걸 얹을 수도 있다. 굵게 다진 양파, 씨를 빼고 작게 썬 방울토마토, 실파나 쪽파 송송 썬 것, 소금, 올리브유, 후추를 잘 섞는다. 이것을 구운 가지에 얹어 먹는다. 리코타 같은 부드러운 치즈까지 함께 올리면 풍성한 맛이 몇 뼘은 더 자란다. 알싸한 풍미와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채소 토핑은 달게 익은 가지 맛을 한껏 살려준다. 한입 먹을 때마다 다채로운 채소 맛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갓 튀긴 가지에 동남아풍 소스를 조르륵

    가지를 비롯한 여러 채소를 깍두기 모양으로 썬 뒤 뭉근하게 끓여 만든 카포나타. 바삭한 빵에 소복하게 올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가지를 비롯한 여러 채소를 깍두기 모양으로 썬 뒤 뭉근하게 끓여 만든 카포나타. 바삭한 빵에 소복하게 올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앞의 채소 토핑 레시피에서 소금을 빼고 레몬즙과 피시소스를 조금 더하면 동남아시아풍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이 소스에는 튀긴 가지가 딱이다. 앞서 가지를 구울 때처럼 길쭉한 모양을 내거나 아니면 원형으로 두툼하게 썰어도 된다. 가지는 튀기기 전 소금을 뿌려 물기를 살짝 빼고 밑간을 해야 맛있다.

    매끈한 가지에 먼저 밀가루를 살짝 묻히고 튀김반죽을 입힌다. 달군 기름에 퐁당 넣고 튀김옷만 익으면 바로 건져 뜨거울 때 차가운 동남아풍 소스를 조르륵 뿌려 먹는다. 여름이니 입맛이 벌떡 일어나도록 매운 고추도 잘게 썰어 섞어본다. 새콤매콤 짭조름하게 간이 밴 튀긴 가지를 한입 베어 물면 뜨거운 김과 함께 구름처럼 부드러운 속살이 터져 나온다. ‘입천장이 벗겨지겠구나’ 싶지만 순간의 기쁨을 위해 꾹 참는다.



    가지를 듬뿍 넣고 만드는 카포나타(caponata)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먼저 가지, 양파, 파프리카, 애호박(수분 적은 주키니호박이 더 좋다), 셀러리를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부지런히 썬다. 가지는 수분이 많아 크기가 쪼그라드니 다른 채소보다 큼직하게 썰어 소금을 뿌려 잠시 둔다. 이후 가지만 따로 구워 수분을 뺀다.

    이제 커다란 냄비에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으깬 마늘 서너 쪽을 넣어 볶는다. 맛있는 향이 피어나면 구운 가지를 포함해 손질한 채소를 모두 넣고 윤기 나도록 잘 볶는다. 홀 토마토, 올리브, 케이퍼, 건포도, 꿀이나 설탕, 식초나 와인 비니거를 넣어 뭉근하게 끓인다. 맛은 새콤달콤 자극적이어야 하고, 국물이 흥건하지 않아야 한다.

    가지 튀김이 선물하는 달콤한 기쁨

    튀긴 가지는 고단한 일상에 달콤한 선물이 될 만큼 맛있다(왼쪽). 오이를 곱게 채 썰고 새콤달콤 국물을 부어 만드는 별미 오이냉국. [GettyImage]

    튀긴 가지는 고단한 일상에 달콤한 선물이 될 만큼 맛있다(왼쪽). 오이를 곱게 채 썰고 새콤달콤 국물을 부어 만드는 별미 오이냉국. [GettyImage]

    완성한 카포나타는 바삭한 빵에 소복하게 올려 먹는다. 볶은 잣과 이탤리언 파슬리 잎을 올리면 본토 맛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전체적으로 달고 부드러운 카포나타를 한입 그득 넣고 오물거리면 재료 각각의 맛이 새콤함과 함께 톡톡 치고 나온다. 이탈리아, 그것도 시칠리아라는 머나먼 땅에서 온 요리지만 누구라도 즐겁게 먹을 만한 음식이다. 파스타나 쿠스쿠스를 삶아 카포나타와 곁들이면 가벼운 한 끼를 완성할 수 있다. 핫도그 빵에 소시지와 함께 그득 넣거나, 연어구이 또는 돈가스와 곁들여도 좋다. 카포나타는 보관하기 좋으니 넉넉히 만들어도 된다.

    간혹 비현실적으로 진한 보라색의, 마치 스펀지 같은 몸통을 가진 가지는 결코 먹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라건대 튀긴 가지만은 한입 먹어보면 좋겠다. 살면서 고단한 일은 많지만 이처럼 달콤한 경험은 잘 없을 테니까.

    입맛 돋우는 채소로는 오이도 빼놓을 수 없다. 생기 넘치는 수분과 부드러움, 신선한 향이 오이의 매력이다. 오이는 고추장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 생오이를 길쭉길쭉하게 썰어 밥반찬으로 차려내면 금세 사라진다. 풋풋한 향, 시원한 맛, 아삭한 식감에 입맛이 살아난다.

    오이를 먹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곱게 채를 썰어 새콤달콤 냉국을 만들어 먹고, 어슷하게 썰어 겉절이처럼 무쳐 먹고, 둥글게 썬 뒤 소금에 절여 감자나 참치샐러드에 뒤섞는다. 긴 몸통을 필러로 긁어 근사한 샐러드를 만들고, 납작납작 썰어 햄·치즈·달걀 등과 함께 빵에 끼우면 정갈한 샌드위치가 된다.

    잘 드는 칼과 소금만 있으면 오이로 수많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오이는 자기 풍미를 확고히 갖고 있음에도 요거트, 마요네즈, 겨자, 머스터드, 땅콩소스, 스리라차 소스,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어떤 재료와도 모나지 않게 어울린다. 세계 각국에서 오이를 먹는 이유인 듯싶다.

    매콤하게 입맛 돋우는 두반장 오이볶음

    볶음밥을 만들 때 오이를 도톰하게 썰어넣으면 아삭한 식감이 살아나 더 맛있다. [GettyImage]

    볶음밥을 만들 때 오이를 도톰하게 썰어넣으면 아삭한 식감이 살아나 더 맛있다. [GettyImage]

    기분과 입맛이 처지는 날엔 북어 대신 오이를 두들겨보자. 절굿공이나 밀대 같은 방망이로 오이를 가차 없이 두드려 깬다. 오이가 길쭉한 결대로 갈라지면서 씨 부분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길게 갈라진 오이는 손으로 뚝뚝 부러뜨려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든다. 소금을 약간 뿌려 밑간을 하면서 수분을 뺀다. 마늘 한두 쪽을 다져두고, 맵게 먹고 싶다면 청양고추를 잘게 썬다. 물기를 가볍게 짠 오이에 마늘, 고추, 식초, 설탕, 간장을 넣고 간을 맞춰 버무린다.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깨소금이나 통깨를 넉넉히 뿌려 먹는다. 마늘, 참기름, 참깨가 어우러지며 침이 꼴깍 넘어가는 향이 난다. 칼로 썰었을 때와는 다른 아삭한 식감에 새콤달콤매콤한 맛이 자극적이라 기분 좋다.

    나는 오이를 간장 대신 두반장에 무쳐 먹는 걸 더 좋아한다. 두반장을 쓸 때는 간장과 참기름을 뺀다. 파를 송송 썰어 함께 무쳐도 맛있다. 두반장은 콩으로 만든 중국식 양념인데, 기름지면서 맵고 자극적인 향미가 있다. 푹푹 찌는 여름에 이국의 풍미를 즐긴다고나 할까. 간혹 중국집에서 내주는, 고추기름에 매콤달콤하게 버무린 오이무침 맛과 비슷하다.

    잘게 썬 돼지 살코기에 두반장을 넣고 오이와 함께 볶아도 아주 맛있다. 그래, 오이는 꼬들꼬들 익혀 먹어도 맛좋다. 매운 고추를 쫑쫑 설어 넣고 둥글게 썬 오이를 달달 볶은 뒤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때 들기름, 참기름, 고추기름 중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휙휙 달라진다. 부드러운 불고깃감 소고기를 구해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오이와 함께 볶아도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 선생님은 간장찜닭에 두툼하게 썬 오이를 넣어보라고 하셨다. 직접 만들어보니 고기와 함께 씹을 때 은은한 향이 났다. 모든 재료가 부드러운 요리에서 오이가 아삭함을 선사하는 것도 좋았다.

    볶음밥을 만들 때도 오이를 도톰하게 썰어 넣는다. 아삭하게 씹어 먹는 맛이 그만이다. 볶음밥에 넣을 오이는 소금에 미리 절이지 않아도 되지만 씨는 제거해야 밥이 고슬고슬해 더 맛있다.

    무엇과 곁들여도 맛있는 향긋 달콤 자두소스

    자두는 웨지 모양으로 잘라 설탕과 기름을 뿌려 지글지글 굽기만 해도 맛있다. [GettyImage]

    자두는 웨지 모양으로 잘라 설탕과 기름을 뿌려 지글지글 굽기만 해도 맛있다. [GettyImage]

    가을까지 맛볼 수 있는 과일 자두도 각종 요리와 제법 잘 어울린다. 자두는 그 자체로 조각조각 썰어 먹고, 얼음과 꿀을 넣어 곱게 갈아 마실 수 있다. 설탕에 재우면 청, 설탕과 끓이면 잼이 된다. 이국 풍미를 지닌 ‘살사’도 만들 수 있다. 살사는 빵이나 나초, 타코 등에 얹어 먹는 소스의 일종이다. 살사 재료로 보통 토마토를 떠올리는데, 자두로 만들면 그보다 더 맛있다.

    아삭하고 새콤한 자두를 골라 작게 썬다. 작더라도 식감이 느껴지는 크기로 써는 게 좋다. 오이도 조금 준비해 작게 썰어 섞고, 양파나 적양파는 굵게 다져 넉넉히 넣는다. 할라피뇨 절임, 청양고추도 조금씩 썰어 넣는다. 입맛에 따라 고수 혹은 파슬리를 다져 넣고, 소금과 레몬즙(라임즙)으로 맛을 낸다. 여기 후추를 갈아 뿌리면 끝이다. 좋아하는 허브를 더 넣거나 마늘을 다져 섞어도 된다. 공식은 없다. 자두의 시고 단맛과 개성 강한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 입안에서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도록 만들면 된다. 모든 걸 골고루 섞어서 냉장실에 넣고 차가워질 때까지 뒀다가 먹는다.

    탐스러운 향기와 새콤달콤한 맛을 가진 자두는 조리하면 모든 것이 한결 진해진다. 자두 예닐곱 개를 모아 잼을 만들 듯 듬성듬성 썰어 작은 냄비에 던져 넣는다. 설탕 1/3컵, 화이트 식초 1/3컵을 붓는다. 생강 2~3쪽을 편으로 썰고 마늘 2쪽은 손바닥으로 꾹 눌러 으깨 섞는다. 여기에 건자두(프룬) 네댓 개를 더한다. 집에 시나몬 스틱이나 팔각이 있으면 같이 넣고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인다. 다양한 향이 어우러져 피어나고, 자두 과육이 물러질 때까지 10분 정도면 된다. 한 김 식히는 사이 향신 재료는 모두 건져내고 자두는 따로 믹서에 간다. 이 물을 다시 냄비에 붓고 맛을 본 다음 설탕으로 단맛을 맞추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짠맛을 더한다.

    자두소스는 사실 기름진 고기 요리와도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훈제오리나 오리로스구이, 탱탱한 껍질이 붙은 오겹살구이, 무수분으로 조리한 삼겹살 수육, 닭다리나 닭날개구이 등에 얹어 먹는다. 양고기와도 썩 잘 어울린다. 간단하게는 짭조름한 베이컨이나 미트볼과 곁들이면 된다. 사실 자두는 웨지 모양으로 잘라 설탕과 기름을 뿌려 지글지글 굽기만 해도 고기와 곁들이면 맛이 좋다.

    #채식레시피 #가지레시피 #오이요리 #자두소스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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